중력 삐에로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0
이사카 고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중력 삐에로>라니 상당히 뜬금없는 제목같다. 제목만 봐서는 도통 무슨 내용인지 짐작도 할 수 없고, 이사카  코타로라는 작가도 처음이니 아리송하다. 또 한권의 말랑말랑하고 달콤비릿한 소설이려나....했는데, 의외로 이야기와 문장이 탄탄하게 다가 온다. 최근 만난 일본 소설 중 가장 괜찮았다.

 요즈음 정말 서점에 가면 일본 젊은 작가들의 소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와 있는데, 소설의 질은 차치하고 문화적 편식 현상이 너무 심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꽤 여러 출판사들이 앞다투어 일본 소설 출간에만 열을 올리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정작 일본에서보다 우리 나라에서 그들의 소설이 더 많이 소비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아무튼 <중력 삐에로>는 제목만큼이나 신선한 발상을 깔고 시작한다. 우선 이야기는 유전자 회사에서 일하는 형 이즈미와 거리의 그래피티를 지우는 일을 하는 동생 하루의 어릴 적 에피소드로 시작한다. 어릴 적부터 성적인 문제에 대해 민감했던 하루는 강간당하려는 자신의 동급생 여학생을 구하기 위해 다짜고짜 중력을 무시한다. 나는 무엇보다 첫번째 에피소드가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하루가 성적 괴롭힘을 당할 뻔한 여학생을 위해 조던 배트를 휘두르는 모습이 멋졌다.

 하루는 강간범의 자식이다. 이즈미의 동생인 하루는 이즈미의 어머니를 강간한 청소년 범죄자의 아들이었다. 이즈미의 아버지는 신께 물음을 구한 후에 결국엔 스스로의 결단에 의해 하루를 제 자식처럼 키우기로 한다. 물론 쿨하게도 소설에는 이즈미의 아버지나 어머니가 얼마마한 상처와 고통을 겪었는지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이즈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두 아들에게 생의 중력을 이기는 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낄낄대며 서커스를 구경하는 와중에.....

 작가는 인간을 옥죄는 온갖 사회적 편견이나 압박을 생의 중력이라고 말한다. 서커스의 삐에로가 관객의 즐거움을 위해 곡예를 하다 보면 중력을 망각하는 것처럼 두 아들에게도 즐겁게  살 것을 권유한다. 물론 결과론적으로 이즈미와 하루는 생의 중력을 잊어버릴 만큼 둔하지 않았다. 동생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이즈미는 강간범에 대한 복수심을 키우게 되고 언젠가는 그를 찾아내 죽이려고 마음먹고 있다. 또 하루 역시 자신의 삶을 너무나 무겁게 만들어 버린 그 강간범에게 조던 배트를 휘두를 결심을 하고 있었다.

 두 형제의 통쾌하고 기발한 복수담은 마치 퍼즐을 맞추듯이 아리송하게 전개된다. 추리소설처럼 전개되는 이야기에 빠져 있다 보면 이 이야기의 결말이 어떻게 진행될지 종잡을 수 없다. 이런 이야기 방식이 복수의 무거움과 중력을 중화시켜 준다. 자못 살벌하고 무거운 이야기가 될 수 있을 소재를 유쾌하게 풀어내는 작가의 솜씨와 내공이 느껴진다.

 나는 이 작품에서 '하루'라는 기묘한 인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어릴 적부터 그림을 잘 그렸지만, 어느 순간 그림을 그만두고 커서는 그래피티를 지우는 사람으로 살아간다. 그림을 창작하는 사람이 아닌 지우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은 어떤 기분을 느끼게 할까? 그래피티라기보다는 거리를 오염시키는 더러운 낙서를 지우며 어떤 성취감을 맛본 것일까? 그는 사회악인 강간범을 죽이는 일도 더러운 낙서를 지우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을까? 자신의 삶을 끝내 옥죄고 있던 출생의 아픔을 하루는 너무나 무겁게 느낀 것일까? 자신에게 유전자를 나누어 준 강간범의 자장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일까? 어쩌면 그는 유전자의 끈적한 힘을 부정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벗어나고 싶었는지도....

 모두들 자신을 짓누르는 생의 중력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은가? 그것이 자신의 유전자가 됐든, 못난 재능이 됐든 말이다. 자신을 정형화된 틀에 묶어 버리는 생의 중력 그리고 세상의 중력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이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02년 7월
평점 :
절판


  '파리는 나면서부터 부모한테 버려진 채 평생 친구도 가족도 없이 혼자 산다. 항상 벌, 거미, 참새 등의 위협을 받지만 남을 위협하는 일은 없고, 먹이라고는 사회의 폐기물에 지나지 않는다. 파리의 생태는 전혀 아름답지 않지만, 잔인하지 않으며, 극히 조촐한 말하자면 서민의 생활과 같다. '

  학교에서 말도 하지 않고, 공부도 하지 않으려 하는 불량(?) 학생 데쓰조는 파리를 키우는 아이이다. 데쓰조의 파리에 대한 열정과 사랑은 놀라울 정도이다. 이 때문에 초임교사인 고다니 선생님은 어찌할 바를 모른다. 열정은 넘치나 아직 경륜은 부족한 선생님은 데쓰조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아, 어떻게 하면 데쓰조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그러나 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한 작업을 하면서 고다니 선생님은 결코 조급해 하지 않는다. 사람은 얼마나 복잡미묘한 존재인가? 아무것도 아닌 행동과 눈짓 하나에 무너질 수도 있고, 다시 날아 오를 수도 있는 존재가 아니던가?

 고다니 선생님은 차근차근 데쓰조에게 다가간다. 먼저 데쓰조의 파리 연구에 관심을 기울인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혐오스러운 파리를 연구하다니......' 거부감이 와락 끼쳐 오지만 고다니 선생님은 모든 것을 상대의 입장에서 보기로 한다. 데쓰조의 관심과 열정을 존중해 주기로 결심하니, 파리 따위 두렵지 않다. 데쓰조에게 파리라는 매개체를 통해 공부를 시키는 고다니 선생님의 지혜와 끈기에 탄복하게 된다.  나 역시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입장이라 아이들의 관심과 열정을 존중해 준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다. 환경적, 물리적 제약도 있지만 내 스스로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기란 참 어렵다. 아이들의 마음을 열기 전에, 내 마음부터 활짝 열어야 하기 때문이다.

 고다니 선생님의 끈질긴 작업은 마침내 성공한다. 폐쇄적이었던 데쓰조는 파리라는 매개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한다. 파리의 이름과 생태를 기록하기 위해 글자를 깨우치는 데쓰조는 고다니 선생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나중에는 파리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 지역 공장에 꾀어드는 파리를 퇴치하는 데 공을 세우기도 한다. 그래서 신문에 나는 등 파리 연구자로(?) 이름을 알린다. 데쓰조의 파리에 대한 집념을 존중해 주고 지지해 준 고다니 선생님 덕분에, 데쓰조는 자신의 재능을 살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고다니 선생님은 데쓰조에게 단순히 학교 담임 교사의 역할을 넘어 멘토와 같은 역할을 해 주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데쓰조의 삶의 지향을 아이의 그것이라고 해서 무시해 버리지 않고 끝까지 도와 준 고다니 선생님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보라는 말을 많이 듣지만 막상 그것을 현실에서 실천하기란 어렵다. 선생님도 똑같이 상처받기 쉽고 낙심하기 쉬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생님이 학생을 자기 힘으로, 자기 방식으로 변화시키려고 하면 대개는 실패하는 것 같다. 학생의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마음을 어루만져 줄 때에만이 변화가 가능한 것 같다. 학생이 꿈꾸고 지향하는 것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마음이 꼭 필요하다. 더럽고 혐오스럽게 느껴지는 파리이지만 계속해서 관심을 갖고 연구에 동참하자 고다니 선생님의 마음도 변한다. 데쓰조의 마음이 출발한 자리에 고다니 선생님도 함께 서게 된 것이다. 그러한 과정은 말처럼 단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랜 기다림과 노력이 필요하다. 선생님의 오랜 기다림과 노력이 열매를 맺는 순간 나 역시 참으로 기뻤다.

 이 소설은 데쓰조라는 아이를 축으로 이야기가 전개됨과 동시에 데쓰조와 같은 쓰레기 하치장 주변에 사는 다른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들의 이야기가 짠하게 그려진다. 쓰레기 하치장 주변에서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는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지극히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어쩌면 그들은 데쓰조가 좋아하는 파리처럼 이 사회에서 파리와 같이 취급받는 존재들일지도 모른다.  하이티니 겐지로는 파리의 생태를 서민의 생활에 비유하고 있는데, 그것은 일견 적확한 비유일지 모르지만, 왠지 서글프다. 경제적으로 가난하고 못 배워서 결국에 자식대에까지 그것을 대물림해야 하는 쓰레기 하치장의 사람들의 삶은 이 책을 아름다운 동화로만 여길 수 없게 만든다.

 하이타니 겐지로의 이 동화는 삶을 미화시켜 그리지 않는다. 동화라고 해서 현실의 아픔과 고충을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해 주려고 하는 것 같다. 사회적 불평등과 소외와 차별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그의 솜씨에 놀랐다. 교훈적이고 계몽적인 방식이 아닌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 주고 함께 풀어 나가자고 마음을 두드린다. 이 상투적이지 않은 이야기 전개 방식이 참 맘에 들었다. 독자에게 소외와 차별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가는 것이 옳은지 대안을 보여 주며 우리의 의식을 깨운다.

 사회 속에서 파리와 같이 차별받고, 미움을 당하는 소외된 자들의 삶을 다시금 돌아 보게 하는  이 동화는 어린이는 물론 모든 세대가 함께 읽어야만 할 것 같다. 쓰레기 하치장 아이들의 교육 여건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덕분에 아이들이 보다 나은 여건 하에서 교육받을 수 있게 되었을 때는 나 역시 기뻤다. 소외된 자들의 문제를 그들만의 문제로 치부하지 않고, 함께 동참해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여러 학교 선생님들과 이웃들, 그리고 하치장 사람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처럼 우리들이 사는 사회는 작은 연대와 작은 실천이 모여 변화되는 것 같다.

  하이타니의 이 동화는 '개인과 사회의 변화'를 어떻게 이끌어 낼 수 있는지에 대한 명징한 답을 제시해 준다. 말은 쉬워 보이지만 그 실천의 과정은 참으로 고단할 것이다. 데쓰조의 변화를 이끌어낸 고다니 선생님의 자세를 우리도 배워야 하지 않을까? 그 끈질감과 열정을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 콜드 블러드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트루먼 카포티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트루먼 카포티가 그려낸 <인 콜드 블러드>는 범죄를 저지른 두 사람 페리와 딕의 내면을 충실하게 묘파해낸 심리학책같다. 미국의 한 평온한 마을에 일어난 극악하고 선정적인 범죄는 사람들을 분노와 슬픔에 빠뜨렸지만, 이내 그 파장은 사그라든다. 그러나 수사관들은 아무런 단서도 없는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고뇌한다. 결국 범죄가 감옥안에서부터 마치 허풍처럼 계획되어 왔던 것을 제보자를 통해 알게 되고 사건의 실마리는 하나하나 풀려 간다.

  이 논픽션 소설은 꽤 긴 분량이다. 기자였던 트루먼 카포티가 실제로 일어났던 일가족 살인 사건을 픽션 형식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르포르타주 형태를 하고 있긴 하지만, 냉철하고 이성적인 분석에서 그치지 않고, 범죄자, 살해당한 사람들, 살해당한 자들의 가족과 친구들, 수사관들, 재판에 관련된 사람들의 내면까지도 포착해낸다. 범죄소설의 긴장감과 급박감이 소설 첫머리에서는 꽤 생생하게 느껴지지만, 초반을 넘어가면 인물의 내면 심리가 정밀하게 드러난다. 이런 점이 이 소설의 의외성이었다. 내 나름의 선입견이었겠지만 범죄 추리소설의 흥미진진함을 기대했었는데, 이 소설은 그런 것과는 좀 거리가 있었다.

 지역 사회의 존경받는 인사였던 클러터씨 일가는  어느 날 무참하게 살해된다. 지위며 경제력이며 인품이며 나무랄 것이 없었던 클러터씨에 대한 묘사가 계속되고, 또 그의 딸 낸시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모범적인 소녀였는지도 그려진다. 한마디로 클러터씨 집안은 그 지역의 꽃같은 존재였다. 그런 집안 사람들이 권총을 맞고 잔혹하게 살해당한 것이다.

 그들을 도대체 누가 죽인 것일까? 딕과 페리는 감옥에서 만난 친구들이다. 그들은 클러터씨가 굉장히 부유한 농장주라는 정보를 우연히 얻게 되고, 그 집안에 있을 금고를 노린다. 치밀하게 범행계획을 짠 후에 그들은 유유히 클러터 일가를 찾아가게 된다. 범행의 전말은 이렇지만 작가의 시선은 사건 자체보다는 범죄를 저지른 두 남자의 심리에 맞닿아 있다.  직접적으로 살인을 감행한 페리는 불우하기 짝이 없는 아이였다. 부모의 불화, 엄마의 유기,고아원에서의 참담한 삶, 아빠와의 다툼으로 인해 끝내 범죄자로 전락해 감옥에 갈 수 밖에 없었던 아이였다. 그는 늘 외로웠고, 사랑에 굶주려 있었다.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알아 줄 누군가가 간절했다. 작가는 이 불쌍하기 짝이 없는 페리라는 인물을 애정을 가지고 설명한다. 그의 불우했던 삶은 동정을 불러 일으킨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이 페리 스미스의 인간적인 면을 보여 주려고 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범죄가 일어난 원인은 과연 무엇일까? 광기에 사로잡힌 한 인간의 내면엔 과연 무엇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일까? 불우하고 참담했던 유년의 경험이 인간을 얼마나 광포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일까? 나는  그것이 너무나 끔찍하게 느껴졌다. 사람을 죽이는 데 별다른 가책을 느끼지 않는 이들을 어떻게 바라 보아야 할 것인가?그들이 범죄자가 될 수 밖에 없도록 방조한 부모와 사회의 책임이 너무나 무겁게 느껴졌다. 사랑과 관심이 필요했을 뿐인 그들이 어떻게 범죄의 나락에 빠지게 되는가?  이러한 범죄의 악순환은 계속될 것이다. 차가운 이성이 아닌 뜨거운 마음으로 생각해 볼 문제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만두 2006-04-11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단명 사이코패스를 보면 이 책이 좀 더 명확하게 보이더군요.

Ruth 2006-04-11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참고할게요...
 
소망, 그 아름다운 힘
최민식.하성란 지음 / 샘터사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소망, 그 아름다운 힘'이라니...제목은 꽤 식상하게 들린다.  그러나 이 책은 표지 사진부터 범상치 않다.  최민식의 사진은 걸쭉한 생의 한장면을 고스란히 보여 준다. 전쟁통의 가난한 아이들이 해맑게 웃고 있는 사진은 가슴 한켠을 찌르르 울린다. 생생하게 잡힌 아이들의 표정에 내 마음의 등불마저 켜지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하성란이라는 소설가의 작품과는 일면식이라도 있었지만, 최민식의 사진은 명성만 들었지 접한 적은 없었다. 책 한페이지 한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가슴을 울렁거리게 만드는 사진은 나를 전율케 했다. 195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가난하고 남루한 인간들의 모습을 극사실적으로 포착한 그의 사진은 경이로웠다. 가슴을 한대 후려치는 느낌이랄까? 아름답고 화려한 이미지의 사진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요즘같은 시대에 그의 사진은 걸쭉하고 끈끈한 인간사의 단면을 잘 묘파하고 있는 것 같다.

 사진 옆에 덧붙여진 하성란의 글도 좋았다. 지난한 삶의 편린들을 꿰뚫은 하성란의 짤막한 글들은 사진을 더욱 빛나게 해 주었다. 너무나 명쾌하고 묵직해서 하나의 아포리즘처럼 느껴지는 하성란의 글들 역시 감동적이었다. 사진의 감동을 더욱 배가시켜 준다고나 할까? 참을 수 없이 무거운 삶의 단면들을 단 한문장으로 묘파해낸 하성란의 감각이 놀라울 지경이었다.

 이 책은 절대 소망에 대해 교훈적이고 식상한 목소리로 말하지 않는다. 온갖 인간사의 희비극이 어우러진 인간의 얼굴을 그림으로써 자연스레 소망이란 무엇일까 생각케 한다. 희극보다는 비극에 가까운 우리의 생을 이끌어 갈 소망의 원천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결코 소망을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지만 이 책은 소망이라는 단어의 아름다움에 묻어 가려 하지 않는다. 걸쭉하고 끈끈한 삶을 살아 내고 있는 인간 개개인의 얼굴을 가장 리얼하게 보여 주기만 한다. 그로써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소망은 어디에서 오는가? 소망이 왜 우리에게 아름다운 힘으로 작용할 수 있는가? 아무리 생의 짐이 무거워 그림자가 축 처진다 해도 끝까지 소망할 수 밖에 없는가? 물론 최민식의 사진은 인생의 남루함과 고단함을 보여 주지만, 우리는 그 처절함과 비극성을 통해 소망의 다른 얼굴을 보게 된다. 이 책은 소망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주는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망의 밥상
제인 구달 외 지음, 김은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인 구달은 침팬지를 연구하는 학자인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그녀가 전방위적인 환경 운동가임을 알게 되었다. 자연과 동물, 식물 더불어 인간을 사랑하는 제인 구달의 따스한 마음이 가득 담긴  이 책은 우리에게 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 조금만 더 생각하고, 깨어 있을 것을 권한다. 그녀의 냉철하지만 따끔한 조언은 따스하고 조근조근한 어조에 실려 우리의 마음과 머리를 열어 놓는다.

  이 책은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다종다양한 환경문제를 다루고 있다. 오늘날의 환경 문제는 비단 한 개인, 한 국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이제 환경문제는 전지구적으로 논의되어야만 하는 심각한 무게를 지니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루는 다양한 환경오염, 동물 학대, 유전자 변형 작물의 폐해, 비만을 일으키는 식품들, 수자원부족 문제 등등의 이슈는 우리에게 이미 친숙한 주제이다. 그러나 친숙한 주제로 느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가 나 자신 또는 우리 자신과 얼마나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지는 간과하고 있다.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늘 보도를 통해 듣지만 우리는 '나 몰라라'하며 무책임한 태도로 수수방관하고 있다. 나 역시 그런 부류중의 한명이었다.

 이 책에서 제인 구달은 여러 환경문제를 다루며 개개인의 작은 실천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말한다. 나 한사람의 힘이 얼마나 파급력이 있을까 하고 과소평가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지구의 지극히 작은 일부인 우리 개개인이 실천을 시작했을 때야만이 '희망의 밥상'은 우리의 것이 됨을 말한다. 그녀의 목소리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고, 환경운동이 결코 운동가들만의 몫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지구를 병들게 하고, 자연을 병들게 하고, 동식물을 학대했던 인간들의 폐해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물론 모든 인간이 그런 짓을 자행한 것은 아니다. 주로 거대 다국적 기업들의 횡포로 인해 전지구가 병들고 있다. 인간에 의한 끊임없는 착취와 학대 때문에 지구는 신음하고 있다. 그 결과 지구의 생태계는 계속해서 파괴되고 있고, 오염은 가중되고 있다. 이러한 환경 오염은 고스란히 인간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오고 있다. 환경 오염과 생태계 파괴로 인해 생겨나는 질병의 징후들은 이제 우리에게 공포심을 안겨 준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이 상태로 가다가는 과연 지구와 인간 및 다른 생명체들은 어떻게 될 것인지 암울한 생각마저 들었다.

 이 책은 지금도 늦지 않았다며 희망을 이루기 위한 작은 실천들을 해 볼 것을 권유한다. 육식을 줄이고 채식을 할 것을 권장하고 있고, 근거리에서 재배된 제철 식품을 섭취하라고 말한다. 또한 유전자 변형 작물이 들어설 땅이 없도록 소비자의 힘을 보여 줄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비만으로 인한 각종 문제를 줄이기 위해 슬로우 푸드를 권장한다. 이 외에도 갖가지 실천 사항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준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내 마음은 무거웠다. 전지구적인 환경 위기가 공포심을 자아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지금 그 공포감에 압도당해서는 안 될 것이다. 어떻게 하면 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삶을 영위할 것인가?  또 지구상의 다른 생명체들과 어떻게 조호롭게 상생할 것인가를 생각해야만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지극히 실질적이고 실용적이다. 제인 구달이 말하는 작은 실천법들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일상에서 고민하고 실천하기 시작한다면 변화는 일어날지도 모른다,  이 책에 등장하는 혁신하고 개혁하는 운동가들을 본받아 우리도 자그마한 실천부터 시작해 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