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벌레 여자 - 윤대녕 장편소설
윤대녕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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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까지 윤대녕의 [사슴벌레여자]를 다 읽고나서 늦게 깬 아침(?)이었다. 펼쳐든 조간신문의 1면 하단에는 [사슴벌레여자]가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 진입!'되었다는 광고가 나와있었다. 생각했다. 팬이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구나. 그리고 '윤대녕'이라는 명성에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졌다. (내가 여전히 광고에 속고 있다해도..)


1. SF영화의 모방

...누군가 나의 등을 두드려 뒤를 돌아보는 순간, 오수의 잠결이
밀려와 눈을 감았다 뜨는 순간, 어두운 계단 모서리에 지친 다리를 끌
고 잠시 앉아 있다 일어나는 순간, 우리들의 기억은 한갓 낡은 실처럼
쉽게 끊어져버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한 낯선 골목 모퉁이를 막 돌
아 나올 때, 술에 취해 심야 버스에서 혼자 잠들어 있을 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난데없이 이별의 말을 듣게 되는 순간에도 어쩌
면 그렇지않을까. (p.208)

3인칭관찰자시점의 소설에서 불쑥 작가가 튀어나와 친절히 설명해주고 있는 이 부분이 나는 윤대녕이 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의 전부가 아닐까 생각한다. (흠..사실 이부분의 소제목부터 시점은 1인칭으로 바뀐다. --;; )
기억과 정체성의 문제(또한 '화려한 변신''21세기형 문제작'등이라고 불리도록했던 저 디지털문화의 기호들과 공상과학류의 소도구들)은 그러나 사실 새로운 것은 아니지 않은가.
기억이식, 검은 트렌치코트와 중절모와 하얀 데스마스크의 M들을 읽어내려가며 나는 <다크시티>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윤대녕이 말하고자 하는 것 역시 <다크시티>의 감독 알렉스 프로야스가 이미 했던 "SF를 통해서 인류의 역사와 기억이라는 존재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싶었다" 는 그것 아닌가. 물론 소재와 주제가 늘 새것일수는 없다. 그러나 괘씸한 것은 이미 앞서나온 많은 SF영화에서의 이미지들, 특히나 <다크시티>에서 윤대녕이 따온 이미지들이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나있다는 것이다. (너무 많아 열거하기 힘들다. 그리고 뒤에 뭔가 거대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는 음모이론조차 우리는 영화에서 익히 보아왔다.)
자 그럼 이제 [사슴벌레여자]에서 차수정이 죽어가며 했던 말과 영화 <블레이드러너>에서 레플리칸트 로이가 빗속에서 죽어가며 했던 말을 비교해보라.

"그동안저는 남들이결코 가보지 못한 곳들을 다녀봤어요. 어두
컴컴한 습기로 가득 찬 하늘. 비둘기들이 모여 사는 시체 소각장.
문을 닫은 지 이미 오래 된 시계공장. 나쁜 꿈들이 도깨비처럼
우굴거리는 음습한 방. 일 년 내내 시커먼 불길이 솟아오르는 밤의
유전. 이제 이런 기억들도 내게서 사라지겠죠." (p.169)

"나는 당신네 인간은 믿지 못할 것들을 보아왔어. 오리온좌의 옆에
서 불에 타던 전함. 탠하우저 게이트 근방에서 어둠속을 가로지르는
C-빔의 불빛도 보았어. 모든 그 순간들은 시간 속에서 사라지겠지.
빗속의 눈물처럼. 이제 죽을 시간이야."

이건 패러디인가? ㅡ,.ㅡ


2. 여자

주인공 이성호가 키우게 된 사슴벌레는 수놈 한마리와 암놈 두마리이다. 그들에게도 엄연히 질서라는게 존재하는데, '수놈이 두 마리의 암놈 중 하나를 선택해 짝짓기를 하고 있으면 다른 암놈 하나는 뒤로 물러나 절대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 것이다. (p.92) 이 일부다처제의 운명을보며
주인공이느낀묘한 슬픔과 엄숙함은 무엇일까. 암만 아니라고 생각해도 이 벌레들의 삼각구도는 어쩔수없이 소설속 인물들과 맞물린다. 서하숙과 차수정, 그리고 이명구이기도하면서 이성호이기도 한 남자주인공. (슈..슈퍼맨이다...-.-) 이 사슴벌레컴플렉스(?)를 보며 괘씸한 생각이 드는건 나뿐인가.
서하숙은 스스로도 외모컴플렉스에 시달리며 주인공이 특별히 성욕을 느끼는 여자가 아니다. (비록 그것이 기억상실의 충격이라는 핑계가 있긴 하지만. 그리고 한번 해보니 그녀는 대단했다!) 그러나 그녀는 주인공에게 의식주를 베풀어주는 여자이며 그에게 결국은 매달리는 여자다. 반면 차수정은 옆테이블의 사람들이 흘끔거릴 정도의 미인대회출신 모델이다. 이명구를 빌리긴 했지만 그녀는 성욕과 살의의 대상이다. (살의란 얼마나 섹시한가!) 그러나 차수정은 차갑고 손아귀에서 자꾸만 달아나는 여자다. 이 극과 극의 여성들은 얼마나 지리하고 고리타분한 판타지인가.


3. 댄디

윤대녕 소설속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적극적인 문화의 향유자들이다. 나는 그런 댄디적 취향은 그만 작가만의 것으로 하고 인물들은 좀 다르게 만들어 보라고 말하고 싶지만사실,그것은 나만의 욕심이기에 어쩔 수 없다. 다만 영화에서 배경음악이 갖는 효과와 같은 그런 문화적 기호들의 도움 없이도 그들의 내면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작가일텐데도 윤대녕이 끝내 그런 댄디의 습관을 고집하기에 답답한 마음이다. 그런 것들이 바로 '윤대녕표'라고 말할수도 있겠지만, 그 상표부터 떼어내고 거듭났을 때 비로소 우리는 '윤대녕문학의 화려한 변신'이라는 광고문구에 고개 끄덕여줄 수 있을 것이다.


4. 사이보그가 아닌 인간

다분히 SF적인 장치들때문에, 그리고 디지털문화의 기호들때문에 이 소설은 유난히 '사이보그'라는 말이 부각되었다. (그런데 <가타카>는 사이보그가 아닌 유전자조작 인간들을 다룬 영화 아닌가...) 물론 그들은 사이보그 같은 인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서하숙이 한 말을 예로 들자면 이렇다.

"전 말이죠, 컴퓨터가 너무 좋아요. 또 냉장고와 휴대폰과 신용카드도
마찬가지구요.(중략) 밤에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얼마
나 안심이 되는지 몰라요. 커다란 남자가 옆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
는 것같아요."

사이보그의 갑옷을입은것 같지만 결국 서하숙이 원하는 것은 냉장고가 아닌 커다란 남자이다. 냉장고는 커다란 남자라는 본질에 대한 페티쉬(fetish)의 대상일뿐이다.

이 소설에서 내가 건진것은 이 몇줄이다. 이것이 바로 윤대녕의 진정한 능력아닌가. 다만 이 소설에서 윤대녕이 공상과학영화를 빌어 욕심을 부렸던 것, 여전히 고루한 여성에 대한 판타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등은 내내 찝찝함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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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방 2005-01-31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보.. 솔직히 난 윤대녕이 싫소이다..
 
푸른수염의 첫번째 아내
하성란 지음 / 창비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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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여자> 전에도 후에도 하성란은 없는 걸로 치고 싶었던 나에게 이 책은 반가운 마음과 씁쓸한 마음을 동시에 안겨준다.

먼저, 이 책에서 이제 하성란이 보여주는 어떤 완숙함. 그것은 오래된 글쟁이들이 보여주는 안정감인 동시에 오래된 많은 글쟁이들과 같은 냄새를 풍기게 되었다는 씁쓸함.

그러나 역시나 하성란인 것이, <새끼손가락>과 같은 반칙성이다.

해설을 쓴 한기욱이 소극(笑劇)이라고 일소해버린 <새끼손가락>의 후반부는 내가 이 책에서 최고로 꼽는 부분. 난 오히려 <기쁘다 구주 오셨네>의 '내 아가, 난 널 사랑한단다.'따위의 결말이 더 유치한 소극이라고 생각한다.

<옆집 여자> 이후 시시껄렁한 소설들로 나를 매우 실망시켰던 하성란이 조금은 하성란다운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역시 <옆집 여자>의 섬뜩한 칼날은 많이 둔해져있는. 성란언니, 칼 갈아 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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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방 2005-01-31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팡이 꽃.. 거기다가만 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