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ㅣ 클라리사 P. 에스테스 ㅣ 고려원

 

 텍스트의 즐거움 - 여자와 함께 읽고 싶은 책 (심상대)

 나는 귀여운 아이나 친한 친구를 부를 때, 그 성명보다는 ‘짐승’이라는 대명사로 지칭하기를 좋아한다. 오해를 불러 서로 어색할 때도 더러 있긴 하지만 나로서는 그 본질에 대한 절실한 애정의 표현이다. ‘짐승!’ 하고 부르면, 그가 가진 본연의 덕성은 거추장스럽게 뒤집어쓰고 있던 가식과 인위의 꺼풀을 훌떡 벗어버리고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 내 앞에 턱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나는 여자라는 대상에 대해서는 허심탄회한 애칭을 마련치 못하고 있다. 내 애정을 표현해 무언가 꼬집어 부르고는 싶지만 늘 조심스러워 그러지를 못한다. 여자는 실로 경이의 대상일 뿐이다. 내가 가지지 못한 절반의 우주를 지니고 있음으로 하여, 내게 있어서 여자는 언제나 경이와 찬탄, 존경과 탐욕의 상대로 가슴을 울렁이게 하는 존재다.

    근래 내가 만난 좋은 책 가운데에는, 이러한 여자라는 존재의 원형에 관하여 말하는 흥미로운 책 한 권이 있다. 절판된 지 오래되어 지금 서점에 가면 구하기 쉽지 않겠지만, 그 책은 1994년 ‘고려원’에서 초판 발행한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이란 책이다. 금세기 최고의 심리학 베스트셀러라고 하지만 심리학이라기보다는 인류학이나 신화학, 여성학에 관계한 재미있는 논문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융 심리학 전문가인 클라리사 핑콜라 에스테스 박사이며, 역자는 영문학 박사 손영미씨이다. 이 책의 제2장에 나오는 한 흥미로운 삽화를 요약해 옮기면 아래와 같다.

    오래 전 한 여자가 미국 중서부에 살았는데, 그녀는 처녀 시절 기분이 내키면 커다란 모자를 쓰고서 기차를 타고 시카고에 가곤 했다. 시의 중심부를 관통하는 화려한 거리인 미시간 애비뉴에 나가서는 상점들을 기웃거리며 멋진 귀부인처럼 거니는 게 취미였다. 그러던 그녀가 농사꾼과 결혼해 밀밭으로 둘러싸인 동네로 이사를 가더니 고만고만한 집, 아이들, 남편에 둘러싸여 점점 삭아들어가는 것이었다. 아이들에게 시달리고 살림에 바쁘다 보니 시카고까지 여행 다닐 여유가 없어진 것이다. 그런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그녀는 부엌과 거실 바닥을 말끔히 닦아놓고, 제일 좋은 비단 블라우스에 긴 치마를 입고 큰 모자를 갖춰 쓰고는 남편의 소총을 입에 물고 방아쇠를 당긴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그녀가 죽기 전에 바닥 청소를 한 사연을 이해할 것이다.

    이 책은 단순한 임상 보고서도 아니고 관념적 수사로 이루어진 논술문집도 아니다. 동서양의 다양한 신화와 설화를 예로 들며, 우리에게 익숙한 고금의 동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 억압당하고 왜곡된 여성상을 제시하고, 아울러 건강하고 자유로운 여성성의 원형을 추적한다. 저자는 단호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방울 달린 말을 타고 끝없이 넓고 푸른 숲으로 달려가고 싶지 않은 여성이 어디 있는가?”

    구구절절 옳은 말씀이다. 저자는 야성을 원하는 여자라는 존재가 어떤 이유로 지금껏 그런 욕망을 수치스럽게 여겨 긴 머리카락으로 감추며 살아왔는지를 사례를 들면서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어쨌건 여걸의 그림자는 모든 여자들의 뒤를 어슬렁거리고 있으며, 그 그림자는 분명히 네발 달린 늑대라고 규정한다. 건강한 늑대와 여성은 심리적으로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둘 다 예민하고 장난스러우며, 강한 희생 정신을 지니고 있고 호기심이 강하며, 엄청난 지구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아주 직관적이고 자식과 배우자, 가족을 끔찍이 아끼며, 끊임없이 변하는 환경에 잘 적응하고 씩씩하며 용감하다. 이들은 이제껏 이리저리 내몰리고 학살당해오면서 열등한 존재라는 오해를 받아왔다. 그들은 미개지를 파괴하는 이들뿐만 아니라 여성의 본능을 말살하여 인간 정신 속의 황무지를 없애고자 하는 이들의 표적이 되어왔다는 것이다.

    물론 그 대안도 이 책의 내용에 포함돼 있다. 제8장에서 저자는 이렇게 정의한다.

    “야성적 자아에 가장 치명적인 것은 얌전하게 행동하면 상을 주겠다는 약속이다. 창조적 삶의 핵심은 얌전함이 아니라 즐거움이고, 즐거운 일을 하려는 충동이 바로 본능이다.”

    그러면서 제9장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고독은 에너지가 없거나 활동이 중단된 상태가 아니라, 영혼에게서 야성을 선물받은 상태다.”

    야성의 본능이 추구하는 바가 결코 쾌락과 자유만이 아니라 고독까지도 포함하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빌려 고독에 대하여 이렇게 덧붙인다.

    “내게 있어서 고독은 접어서 들고 다닐 수 있는 숲과 같아서 필요할 때마다 펼쳐놓으면 된다.”

   그러므로 이 책의 주된 메시지는 본능의 회복이라 할 수 있다. 배반당하고 무시당하는 여성들에 대한 애정에서부터 비롯한 호소이지만, 여성해방이 단순히 여성이라는 절반의 존재만을 위한 혁명이 아니듯이, 이 책의 참된 메시지는 ‘인간 회복’에 그 목적을 두고 있음이 틀림없다.

    ‘여걸’ 원형에 대한 이야기를 모아놓은 이 책은, 이야기를 일종의 치료약이라고 여기는 저자의 ‘신들린 이야기’로 꾸며져 있다. 내가 이 책을 감동만이 아니라 흥미를 가지고 읽었고, 또 누군가에게 자신 있게 권하는 이유는 그 점에 있다. 이 책이 주대상으로 하는 여성 독자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리라 믿는다. 앞에서 언급한 늑대의 야성을 고스란히 되돌려받는 한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건강하지 못한 여성성을 남루하게 걸치고서, 그 자신만이 아니라 자신의 상대인 남성까지도 병들게 하는 여자가 있다면 필히 숙독완미해야 할 책이라 여긴다. 그 질병이 어디로부터 연유하였든, 어쨌든 이 책은 읽는 이, 혹은 듣는 이의 영혼을 성숙하게 하면서, 잃어버린 야성의 본능을 회복하도록 이끌어줄 것이다.

 ◈ 문학동네 1999 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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