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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과 루비
박연준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7월
평점 :
『여름과 루비』🌿
박연준 장편소설
은행나무
여름은 겨울이름을 가진 사촌언니와 겨울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는 고모네에 눈치밥을 먹으며 살고 있다. 고모 남동생 상아 아빠는 고등학교 졸업도 안한 문제가 많은 여름의 아빠다. 고모의 눈빛, 손짓으로 어떤 기분인지 알아차리고 말 잘듣는 아이로 살아야 했던 여름은 어느 날 아빠가 데리고 온 새 엄마와 함께 살게 된다. 고모 눈치밥도 서러운데 아빠가 없는 동안 손찌검까지 하는 새엄마의 행동들이 여름은 싫다.
자신이 질투하는 대상이 어린이 인줄 모르고 대하는 새 엄마나 엄마가 그리워 돌려 말해도 끝내 알아채지 못하는 아빠. 나(여름)는 비빌 언덕이 없었기에 말을 아낄 수 밖에 없었고. 알고 있어도 어린 어른들 사이에서 그들의 시선에 맞게 살았다.
학교에서 여름이를 꼬집는 아이에게 루비가 그러지 말라고 여름이의 편을 들어준다. 그때부터였을 것 같다. 여름이는 루비가 자신을 잘 알아준다고 생각했던 게.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한 여름과 책을 읽기 좋아한 루비. 둘과 있을 때와 달리 학교에서 괴롭힘 당하는 루비를 보며 돕겠다는 마음보다 겁이 난 여름은 늘 루비를 두고 돌아섰다.
유년 시절. 루비는 혼자였고 따돌림을 받으며 엄마 미옥은 집을 나갔다. 루비는 나(여름) 처럼 흔들리지 않고 책을 읽으며 중심을 잘 잡는 듯한 모습에 난삽하다는 말을하며 상처를 준다. 루비는 성숙했던 것일까. 여름과 말다툼하면 거리가 멀어질꺼라 생각했던 걸까. 루비는 여름과 더이상 말하지 않고 아주아주 야한 책이라고 말한 마르그리트 뒤라스 책만 읽는다. 여름이와 자신은 다르다는 경계를 긋는 듯이.
루비는 밖에서 늘 혼자이고 침울하고 두려움도 있었을 텐데 여름이는 그런 루비를 돕지 않고 모르는 척, 보이지 않는 척을 했다. 여름이는 새엄마의 어린 행동을 루비에게 했다. 밖에 친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가서 놀아라고 말하며 상처를 주려하지만 본인이 뱉은 말에 나(여름)도 상처를 받는다. 자신을 봐 달라고 관심을 달라고 하는 루비가 마음을 몰라줘서.
박연준 시인의 첫 장편소설이다. 중간 중간 시를 읽는 듯 은유들이 나오는 데 여름이와 루비의 서사와 어우러져 어리기만하고 유치할 수도 있었던 유년 시절을 큰 시절로 만들어준 것 같다. 숨어있는 시적 표현들에 대해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 시절, 그 때만 알 수 있는 감정이 있을텐데 아마도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쩌면 잊었을 수도 있을 그 시절의 감정을 나는 아직 찾지 못했기에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닐까.

🔖 책 속 밑줄긋기
나는 깜빡인다, 세상에서, 아주 작은 점처럼 깜빡이며 존재한다. 늘 존재할 수는 없다. 욕심쟁이들만 늘 존재한다. 나는 존재하는 것을 깜빡 잊는다. 잊는다는 것을 또 잊는다. 자주 울고, 웃는 것을 잊었다고 생각할 때만, 잠깐 웃는다. 사람들은 나를 고장 난 신호등을 보듯 바라본다. P20
좋아져버린 사람들이 좋아 죽겠어서 들고 있는 것. 그들은 그걸 들고 있다. 보이지 않는 것. 실체가 없는 것. 사라지거나 누군가 집어던져 깨트릴지도 모르는 것. 마음이 생긴 초기에는 도무지 내려놓지 못하는 것. P25

어둠을 지배하는 신을 향한 내 믿음은 오래 이어졌다. 훗날 내 기도가 귀신을 향한 서원(誓願)이었다는 생각을 하면 서늘해졌다. 내 오랜 서원으로, 삶에서 뭔가를 지불해야 할 것 같아서. 죽은 혼에 대고 중얼거린 어린 날의 기나긴 기도, 그 시간이 마당 구석에 켜켜이 쌓여 내 그림자를 이룰 것 같았다. P40
할머니는 변하지 않는 사람, 정확히 말하면 거칠어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거칠어지지 않는 사람을 이길 자는 없다. 고모는 할머니의 부드러움을 질투한 것인지도 모른다. P93
모른 척하기, 그건 수도 없이 해온일이다. 무언가를 들키는 순간 어른들은 쉽게 무너진다. 화를 내거나 고개를 파묻고 싶어 하고, 어느 때는 울기도 한다. P94
모든 ‘처음’이 사라질 때 즈음, 그때부터 인간은 ‘뒤’를 생각하다 잠든다. P129
모든 걸 괜찮게 보이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피로해진다. 괜찮지 않은 것도 괜찮아 보여야 하고 괜찮은 것은 더 괜찮게 보이려 하다 보면 거짓이 침투하고 외로움이 스며든다. P193

“루비 엄마는 애를 버린 게 아니야. 루비 엄마가 새벽에 루비를 데려갔어.”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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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져버린 사람들이 좋아 죽겠어서 들고 있는 것. 그들은 그걸 들고 있다. 보이지 않는 것. 실체가 없는 것. 사라지거나 누군가 집어던져 깨트릴지도 모르는 것. 마음이 생긴 초기에는 도무지 내려놓지 못하는 것 - P25
어둠을 지배하는 신을 향한 내 믿음은 오래 이어졌다. 훗날 내 기도가 귀신을 향한 서원(誓願)이었다는 생각을 하면 서늘해졌다. 내 오랜 서원으로, 삶에서 뭔가를 지불해야 할 것 같아서. 죽은 혼에 대고 중얼거린 어린 날의 기나긴 기도, 그 시간이 마당 구석에 켜켜이 쌓여 내 그림자를 이룰 것 같았다. - P40
할머니는 변하지 않는 사람, 정확히 말하면 거칠어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거칠어지지 않는 사람을 이길 자는 없다. 고모는 할머니의 부드러움을 질투한 것인지도 모른다. - P93
모른 척하기, 그건 수도 없이 해온일이다. 무언가를 들키는 순간 어른들은 쉽게 무너진다. 화를 내거나 고개를 파묻고 싶어 하고, 어느 때는 울기도 한다 - P94
모든 ‘처음’이 사라질 때 즈음, 그때부터 인간은 ‘뒤’를 생각하다 잠든다. - P129
모든 걸 괜찮게 보이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피로해진다. 괜찮지 않은 것도 괜찮아 보여야 하고 괜찮은 것은 더 괜찮게 보이려 하다 보면 거짓이 침투하고 외로움이 스며든다. -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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