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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들 - 냄새로 기억되는 그 계절, 그 장소, 그 사람 들시리즈 4
김수정 지음 / 꿈꾸는인생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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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말 오랜 만에 잠든 내 감성을 깨워준 책을 만나서 손에서 책을 놓지 못했다. 처음에는 냄새들 이라는 주제로 어떤 글들을 쓴 것일지 호기심과 궁금이 가득했다. 그저그런 일상 기록 정도로만 생각하고 가볍게 읽기 시작했다. 과거 소녀시절의 기억들을 떠올려준 것 만으로도 사실 좋았다. 기억뿐만 아니라 내가 지금 놓치고 있는 감정들. 일상 속의 섬세함들을 다시금 깨워주게 하였다.
나도 향수를 좋아하고 하루의 날씨와 옷, 기분에 따라 다른 향수를 뿌리면서 그 향기로 하루 일과를 어떻게 시작할 지 의식 아닌 의식을 치르는 게 습관이 었는데 나의 냄새라고 생각이 드니 조금 더 신중하게 선택을 해야겠다.


💛한 번 읽는 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틈만 나면 읽어보고 또 읽어 보면서 나의 과거는 어땠는지 타임머신을 탄 기분이었다. 작가님이 어린시절 냄새를 말하면 어느새 나도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리며 그때 어땠는지 떠올렸다. 실제 냄새가 나는 것도 아님에도 단어 하나로 나를 그 단어가 존재했던 그 장소, 시간으로 데려가 주었다.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가 그 때의 기분과 그 때의 두근 거림을 다시 기억해 절대 일상에서는 떠올릴 수도 없는 그 시간들을 단어 하나로 이끌어주시다니!!

💜기교 가득한 글도 아닌 아주 담백하고 사실적인 표현들이 저를 냄새들 책 속에 퐁당 빠지게 했습니다. 낙엽떨어지는 깊어가는 가을 행복한 냄새들로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명동 토다코사
토사코사에 줄기차게 출석 도장을 찍었지만, 정작 향수는 엉뚱한 곳에서 구매했다. 명동역 밀리오레는 향수를 작은 공병에 덜어 파는 가게가 있었다. 한 병에 5,000원씩, 그곳에서 나는 고등학생 용돈으로 살 수 없었던 향기들을 5,000원에 손에 쥘 수 있었다. 하도 자주 가다 보니 사장님은 서비스로 미니어처 향수나 추천 향수를 공병에 덜어 주곤 했다. 인심 넉넉한 사장님 덕분에 구찌 엔비미, 버버리 브리트, 위켄드 같은 향수를 접할 수 있었다. 그것들을 품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 그렇게나 행복할 수 없었다. 향수 하나로 내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지루했던 고등학생의 삶이 조금은 다채로워진 듯 뿌듯했다.

——🛍핸드크림이 그냥 핸드크림이 아니라고
나는 신상 백화점에서 가난해진 기분을 3만 천원짜리 핸드크림을 사며 달랬다. 멋쟁이는 아니지만 멋쟁이들이 쓰는 향기는 살 수 있지. 살구색 이솝 향기를 맡으며 간만에 멋쟁이가 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온 어느 주말이었다.

——🧸포근하지만 슬픈
코를 파묻고 오래도록 맡고 싶은 아끼는 냄새들이 있다.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배가 간질간질하고, 목울대가 따끔따끔 뜨거워지는. 냄새를 동그랗게 말아 주머니 안쪽에 소중하게 넣고 언제든 꺼내 맡고 싶은 냄새들. 언젠가 내가 이 냄새들 때문에 눈물 흘릴 걸 알면서도 자꾸만 맡게 되는 그런 냄새들.

——🧼친정집 비누
가끔은 내가 너무 호화롭게 지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죄책감이 들 때가 있다. 넓은 집도 아니고, 쇼핑을 즐겨 하는 것도 아니고, 외식을 자주 하는 것도 아니지만 엄마의 신혼을 떠올려 보면 이건 분명 호화로운 생활이다. 이래도 될까 싶은 마음이 들면 엄마에게 미안해진다. 나는 사고 싶은 몇만 원짜리 핸드크림도 턱턱 사고, 해외 쇼핑몰에서 샤워 젤도 맘껏 사고, 향기로운 비누도 사고, 샴푸도 2+1 말고 한 개를 사도 좋은 걸로 산다.

엄마와 이런 통화를 하고 나면 엄마의 마음과는 반대로 우리 집에 놓인 호화로운 것들만 눈에 띈다. 엄마가 누리지 못한 것들만 보여 미안해진다. 그래도 난 드봉 비누 말고 좋은 비누를 쓰고 싶은데. 우리 신혼집 화장실 냄새가 친정집 냄새보다 좋은데. 나는 이걸 누리고 싶은데. 냄새에서 나의 철없음이 느껴진다. 나도 엄마가 되면 철이 좀 들려나. 그냥, 친정집 화장실에만 가면 미안해진다. 그냥, 엄마에겐 늘 미안할 뿐이다.

——🎀머리 냄새
냄새에 민감한 어른이 되었다. 냄새나는 사람은 싫고, 냄새나는 사람을 친구로 맞이하고 싶진 않다. 냄새가 고약한 사람을 만나면 굳은 표정을 감추기 힘들다. 그런 어른이 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엔가 이제는 하늘의 별이 된, 설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설리의 엄마는 연습생 시절 설리가 머리를 꼼꼼히 말리는 법을 몰라 냄새가 났었다고 슬프게 말했다. 사람들이 설리의 머리 냄새를 맡기 싫어 얼굴을 피했다고. 엄마인 내가 이런 것도 못 가르쳤구나 싶어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속이 쓰렸다. 어느덧 나는 이층집 할머니 같은 어른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머리 냄새를 미워하는 어른. 아이의 냄새를 품어 주기는커녕 얼굴을 피하는 어른.

자구 잊고 살지만 아이의 세계는 어른의 세계만큼이나 복잡하다. 어린 시절의 우리를 가만 떠올려 보면 우리는 많은 것을 느끼며 살았다. 그걸 어른의 단어로 이름 붙일줄 몰랐을 뿐이지. 냄새 떄문에 친구와 생이별했다. 정확히는 가난의 냄새가 옮겨붙을까 두려워한 어른 때문에 헤어졌다.

편견을 알려 주기보다 위로해 주는 어른. 아이의 서투름을 다그치기보다 건강한 습관을 일러 주는 어른. 냄새로 편 가르기 하지 않는 어른. 그런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마음에 굵은 글씨로 새겨놓은 것을, 잊지 않으려 이렇게 글로 쓰며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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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탈이 무기다 - 불가능을 깨고 최고 성과를 이끄는 위대한 기술
스티븐 코틀러 지음, 이경식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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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탈을 단련하기 위해서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그런 상황이 되었다는 가정으로 훈련을 하는 것에 공감이 많이 되면서도 나 또한 그런 시간들을 가지면서 긴장감의 연속으로 멘탈을 단련하기도 전에 건강이 좋지 않아지는 것을 경험했던 적이 있어서 읽으면서 내가 놓친 부분이 없는지 앞으로 되돌아가서 읽고 또 읽고 반복하였다.
경영서적은 항상 쉽게 읽혀지고 내용 정리도 한 번 읽으면 대부분 정리가 되는데 유독 어렵게 느껴진 것은 신경화학물질들이 어떻게 우리 뇌를 움직이는지 과학적으로 접근해서 알려주는 점들로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메모장에 단어와 뜻을 적어가면서 이해하며 읽어 그랬던 것 같다.
책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베스트셀러라는 타이틀보다 일론머스크, 구글창업자는 멘탈관리를 어떻게 하는지 궁금한 점이 더 컸다 ☺️

🏷많은 이들이 성공 공식으로 잘 갖추어진 환경, 천부적인 재능, 압도적인 자본, 1만 시간의 법칙 등을 이야기하지만 사업을 하다보면 분명 슬럼프도 있을 것이고 그럴 때 어떤 방법으로 멘탈을 단련시키고 온전히 몰입하고 폭발적으로 잠재력을 키울 수 있는지 알려준다.


🟠멘탈이 무기다 작가인 스티븐 코틀러는 서른 살 때 라임병에 걸려 3년 가까이 침대 밖을 나오지 못했는데 짧은 집중도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장기기억도 단기기억도 사라져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렸다. 멘탈이 약해져 자살 생각까지 한 시기에 친구의 도움으로 ‘몰입’의 순간을 경험한 뒤, 뇌 안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며 멘탈을 단련하여 수십만 명의 사람에게 최고 수행 상태의 비결을 알려주는 세계적인 전문가가 된다.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많은 문제에 부딪힌다.
해결 방안이 보이지 않을 때도 어떻게든 문제 해결에 성공하는 이도 있지만 대부분은 불가능하다고 쉽게 포기하거나 여러 번의 노력 끝에 좌절한다. 하지만 많은 불가능들을 사실 가능으로 바꿀 수 있다면 어떨까?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몰입의 순간에는 무아지경이 되어 우리가 해야 할 과제에 집중한다. 이때 창의력은 600%까지 늘며 고통과 피로에 대한 감각도 사라진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고 우리가 원하는 일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몰입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쉽게 좌절하거나 멘탈이 흔들리지 않고 몰입에 들어가려면, 또한 몰입이 깨졌을 때 다시 회복하여 잠재력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몰입만으로 안 된다. 이 책은 몰입만큼 중요한 동기부여, 학습, 창의성을 다루는 4부로 구성되어 있다.

🔴 멘탈을 단련할 강력한 네 가지 무기!
1️⃣동기부여
-자동으로 뇌에 동기를 불어넣는 패턴을 알아야 한다. ‘공포’와 ‘호기심’이라는 충동자를 활용해 저절로 목표로 다가갈 수 있도록 뇌를 충동질하라. 동기를 축적하고 호르몬과 보상물질을 활용해 맹렬하게 나아가라.

2️⃣학습
-최고의 위치에 오른 사람은 자신만의 ‘진실 필터’가 있다. 학습하는 정보가 신뢰할 만한지 확인하고, 불안과 의심의 인지부하가 능력을 갉아먹지 않도록 새로운 정보에 접근하는 진실 필터를 가질 때 우리는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 잘못된 정보와 지식을 가질 때 불가능한 일은 그대로 불가능으로 남는다.

3️⃣창의성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서 외향적이면서 동시에 내향적이고, 기쁘다가도 울적해지는 정서의 롤러코스터를 탈 때 창의성은 폭발한다. 여러 활동의 부산물인 창의성을 누리려면, 체크리스트를 매일 수행하라. 폭발적인 창의성은 오래 이어진다.

4️⃣몰입
-몰입을 방해하는 ‘4대 방해자’들을 없애고 몰입을 부르는 요소들을 파악해 완벽한 몰입 단계에 들어갈 수 있다. 외부 환경뿐만 아니라 뇌, 몸을 적절히 사용해 자신을 통제하며 자율적으로 잠재력을 끌어올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어라.


🟢모든 걸 가능하게 만드는 다섯 충동자들
-호기심, 열정, 목정, 자율성, 숙달

올바르게 구축된 삶이라면 삶은 흥미진진하고 온갖 가능성과 의미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에너지 측면에서의 이런 시너지 덕분에 불가능한 일은 애초에 생각했던 것보다 쉽게 풀린다. 내재적인 충동들이 적절하게 쌓여 있을 때 우리 심신의 생물학은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즉 불가능한 일에 매달리는 행동 자체가 우리에게 실제로 도움이 된다.


🟣<번아웃>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대응하며 <회복> 하라!

<번아웃>은 동기부여와 운동량을 동시에 갉아먹는다.
만성적인 스트레스가 인지 기능을 방해하므로 일의 성과를 떨어뜨리고, 문제 해결부터 감정 조절에 이르는 모든 부문에 오랫동안 신경학적으로 악영향을 주어서 불가능에 도전하겠다는 생각 자체를 없앨 수 있다.
휴식을 취하는 것이 시간 낭비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번아웃이 찾아왔을 때 낭비하게 될 시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만일 당신이 많은 시간이 걸리든 적은 시간이 걸리든 간에 회복의 끈기를 확보하고 나면 그 뒤부터는 예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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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기억
류주연 지음 / 채륜서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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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시작부터 눈물이다.
작가는 켜켜이 쌓아온 감정, 억지로 묻어 둔 기억을 용기내어 직면하기 위해, 아픈 엄마가 지금을 잘 견뎌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책을 썼다고 했다.
작가 자신의 이야기들을 담은 책으로 어린시절과 청춘의 이야기들이 가난이라는 우울한 느낌도 있지만 분명 그 속에서 예쁜 사랑과 가슴 찡한 감동적인 부분들을 우울함과 대등한 비율로 적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읽는 내내 나도 진심이 아님에도 가족에게 상처준 말과 행동들이 생각나서 부끄러웠고, 막내 딸인데 애교가 없어그 흔한 사랑한다는 말도 전하지 못했고 지금도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반성했다.

후배가 끓여준 닭백숙을 보며 눈앞이 흐려졌다는 부분에서 자신에게 보살핌과 투자없이 버틴 시간들이 생각났던 걸까? 눈 앞에 닭백숙이 없는데도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책의 첫 챕터부터 엄청 울었는데 닭백숙에서도 계속 눈물이 났다.

사람들에게 이겨내라고 하지만, 나와 같은 독자는 반성의 시간을 갖게 될 것 같다. 특히 나도 지역이 멀리 있다고 언니에게 엄마, 아빠의 무게를 짊어지게 한 것 같아 오늘부터라도 나도 용건없지만 전화를 걸고 짐들을 함께 나누어야겠다.

**
평범할 순 없는 힘든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잘 이겨내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존재의 증명이 필요했다. 때로는 나 자신에게, 그리고 종종 타인에게 증명하기 위해 애썼던 것들은 내 존재의 가치였다. 난 비록 가난하고, 아르바이트로 스펙을 대신하고, 열심히 번 돈으로 여행을 가는 대신 이자를 갚아야 하고, 청춘이 누려 마땅하다는 어떤 것들을 경험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나는 가치 있는 존재여야만 했다. 그래야 내가 보내는 그 청춘의 시간이 헛되지 않은 것이라며 버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 느끼는 힘듦보다 과장해서 힘듦을 이야기하고, 와중에 의젓해야만 하고, 힘들다는 말 대신 나는 잘 견디고 있다 말하고 다녔다. 그럴 때마다 들려오는 타인의 인정과 대단하다는 말을 주홍글씨 위에 훈장처럼 덧씌웠다. 그렇게 버텼던 시간들. 그 시간들이 허무하게도 닭백숙을 배경으로 녹아내렸다.

역설적이게도 투병이 안겨준 우리의 순간들,
이런 순간을 늦게 알게 된 만큼
오래 간직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럴 수 있다면 꽤 많은 것을
포기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
이제 집에가면 더 이상 홍시는 없지만, 홍시를 먹는 딸을 앞에 두지 않고도 흐릿한 눈을 하고 있는 엄마가 있다. 살갑게 말을 붙이거나 엄마와 깊은 대화를 나누는 방법을 잊은 지 너무 오래된 딸은 이번엔 어떻게 행동해야 엄마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그동안엔 홍시를 맛있게 먹으면 됐었는데, 이번엔 홍시가 없는데, 얼려 둔 홍시가 없는데 어떡하나.

**
‘괜찮냐’는 엄마의 메시지에 정말 단순한 궁금증만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눈치챘어야 했다. 해주지 못하는 마음은 받지 못하는 마음보다 훨씬 더 미어질 수도 있음을, ‘괜찮다’는 대답을 듣지 못한 엄마가 내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가슴 아파할 수도 있음을 알았어야 했다. 지금의 내가 엄마의 괜찮음에 하루에도 몇 번씩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것처럼, 아무것도 해주지 못해 괴로워하는 것처럼, 그때의 엄마에게 나의 괜찮음이 간절했음을 알았어야 했는데. 알리가 없었던 나는 그렇게 또 하나의 죄를 지었고, 깨달음은 항상 너무 늦게 찾아온다.

**
괜찮다는 음절의 사이에는 나의 안부보다 너의 안위에 대한 바람이 들어 있음을 이제는 안다. 나는 이제부터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에게만은 괜찮을 예정이다. 엄마가 언제, 어느 순간에든 내게 물어봐 줬으면 좋겠다. 그다지 큰 무게를 담지 않고라도 좋으니, 지나가는 말로라도 ‘괜찮냐’고. 이제 일 초도 망설이지 않고 정말로 나는 ‘괜찮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니 엄마는 아무 생각말고, 몸이나 신경 쓰라고.

**
나이를 더해가며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 것 중 가장 옳다고 여기는 것은 경험해보면 알게 된다는 사실이다. 나의 경우 경험해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로 바꿔야 할 것 같다. 약한 마음으로 살다 보니 그냥 그렇게 되었고 그 순간들에 나를 돌보는 것보다 당장 눈앞에 닥친 것들이 버거웠다. 그것이 나의 경우는 생사와 직결된 먹고 사는 문제였고 엄마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이제 어떤 여자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은 그만둔 지 오래다. 아무런 소용이 없다. 아마도 엄마도 진작에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그저 토닥이며 밤을 지새웠을 것이다.

#도서협찬 #서평단 #딸의기억 #채륜서 #류주연 #에세이 #감성 #엄마 #청춘기록 #책추천 #가을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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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너 자매 을유세계문학전집 114
이디스 워튼 지음, 홍정아 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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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너 자매」는 이디스 워튼의 중단편 선집으로 「징구」, 「로마열(熱)」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버너 자매」는 작가의 초기 작품으로 몇몇 잡지사에 작품을 보냈지만 길이가 짧은 데다 연재하기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거절당하다가 24년이 지나서야 『징구와 다른 이야기들』에 수록되어 빛을 볼 수 있었다.

언니 앤 엘리자 버너와 동생 에블리나 버너 두 자매는 화려한 도시 뉴욕의 뒷골목에서 미혼으로 조화, 작은 수예품, 모자 등을 근처 여성 고객들에게 팔아 겨우 생계를 유지하지만 그런 대로 행복하게 살아간다. 독일 이민자 시계 수리공인 래미라는 남자를 만나면서 버너 자매의 비극은 시작이 된다. 자매가 래미를 두고 질투를 하다 동생을 위해 언니는 래미에 대한 감정을 정리한다. 언니는 동생의 결혼을 위해 자신의 돈까지 주면서 배려하지만 래미는 실제로는 마약중독자로 돈을 위해 에블리나를 속였고, 친구의 딸인 린다 호치뮬러와 도망가버린다. 졸지에 남편한테 버림받고 길거리에 걸식하는 신분을 전락한 에블리나는 결국 병에 걸려 죽는다. 동생이 죽은 후 앤 엘리자는 빚을 갚기 위해 가게를 청산하고 일자리를 찾아 맨해튼 거리를 헤매는 것으로 끝내 한 줄기 희망의 빛도 남기지 않은 채 글은 끝난다.

버너자매는 사회에서 아래 계층에 속하나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누리고 싶어한다. 하지만 가난한 생활에서 벗어나기는 커녕 더 궁핍하고 힘들어진다. 왜 가난한 사람들은 행복하지 못하고 불행하게 삶을 살 수 없는 것인가. 책을 덮는 순간까지 여운이 남는 다. 특히 배경을 설명하는 장면들은 버너 자매의 희생당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묘사하는 것처럼 보였다. 코가 빨간 남자들과 깨진 단지를 든 창백한 어린 소녀들이 슬며시 문을 여닫는 술집이 점점 더 많아지는 환경적인 배경도 버너 자매의 삶을 보여주듯 쓸쓸하고 우울하다.

버너자매에 이어 짦은 단편 2편이 함께 이 책에는 실려 있는데,
<징구>는 미국상류사회의 겉만 관심이 있는 독서 클럽에서 다들 아는 것처럼 하나의 강의 주제인 것 마냥 강이름을 다들 알지 못하면서 아는 척 하는 행동들은 상류층의 위선적인 가면을 들춰 재밌게 읽을 수 있고, <로마열(熱)>은 겉으로는 친해보이는 두 여자가 한 남자를 두고 질투, 비난, 분노하는 감정들을 볼 수 있는 감성가득한 글이다. 이 역시 마지막 문장은 여기서 끝이 나면 안될 것 같이 뒷 이야기가 더 궁금했다.

가을에 정말 어울리는 감성적이고 쓸쓸함을 느낄 수 있는 책! 입니다.


태양에 한 뼘도 자리를 내주지 않고 음산한 구름이 하늘을 덮은 그날 아침은 습하고 추웠지만, 아직은 눈송이가 어쩌다 떨어질 뿐이었다. 이른 아침 빛에 길거리는 철저히 버림받은 것처럼 누추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스스로 책임질 필요 없는 더러움에 대해서는 눈곱만치도 상관하지 않는 앤 엘리자에게 길거리는 이상하리만큼 친근해 보였다. P23

거친 난간 너무 저 멀리 땅이 움푹 파였고, 푹 꺼진 곳에는 작은 숲이 있었다. 그 더운 일요일 오후, 모든 게 이상할 정도로 싱그럽고 고요했다. 사과나무 가지들 밑으로 잔디밭을 가로지르자 앤 엘리자는 교회에서 보내던 조용한 오후와 어렸을 적 엄마가 불러 주던 찬송가가 생각났다. P61

앤 엘리자는 그들의 친절을 당연히 고맙게 생각했지만, 그들이 ‘위로‘라 믿고 건네는 말들은 그녀에게 빈 껍데기와 같았다. 그녀는 익숙하고 따뜻한 그들의 존재 바로 저편에 ‘고독‘이라는 손님이 문 앞에 서서 기다리는 것을 봤다. P88

누구든 독립적인 삶을 ‘아내‘라는 달콤한 이름과 바꾼 사람이라면, 반짝이는 것이 모두 금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각오를 해야 해. 그리고 나는 언니의 삶이 한여름 구름처럼 속박 없고 평온하길 바라. P91

다른 사람을 위해 자기 유익을 내려놓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우면서도 꼭 필요한 일이라 생각했었다. 그것이 곧 복을 받는 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자기가 인생의 선물을 거절한다고 하더라도 그 선물이 그녀가 양보한 사람들에게 전달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해서 그녀에게 익숙한 천국에는 아무도 살지 않게 되었다. 앤 엘리자는 더는 하느님이 선량하다고 믿을 수 없었다. P127


#도서협찬 #서평단 #이디스워튼 #세계문학 #문학 #고전 #소설 #버너자매 #가을외국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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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 - 반복되는 일상에 떠밀리다 마침내 새로운 세계에 닿다
오건호 지음 / 텍스트칼로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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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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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살면서 어느 순간 닮기 싫고 떠올리기 싫은 기억과 육체적 정신적으로 지쳤을 때 안식을 갖게 해주는 기억을 떠올리게 되는 순간이 있어요. 그런 순간을 작가는 포르투갈 여행중 아버지의 독재의 기억은 텅빈 광장을 보며 떠올리고, 어머니의 따뜻함을 성당에서 떠올리는데 나도 그런 순간들이 있었는데 그래! 그 때였지 하며 잠시 생각에 잠겼답니다. 🧡
여행을 직접 간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글을 읽으면서 마치 포르투갈 여행을 하는 듯한 착각에 들게 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직장인으로 현실에 지쳐있으면서도 도망칠 용기없는 나에게는 여행이자 힐링이었어요. 가을에 읽으면 더욱 좋을 것 같은 책입니다. ❤️

🏷송골송골 땀이 돋아난 이마와 목덜미를 스치는 바람이 매우 시원하다. 가만히 서서 바라보고 있는 풍경이 아름다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먼 길을 둘러가느라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하더라도, 끝내 가려던 곳을 찾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지난 갈림길에서 선택하지 못했던 길들 역시 떠올리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최선을 선택을 하고 있는 중이니까.

🏷타인을 위로하는 마음 깊숙한 곳에는 자신이 가진 슬픔을 위로하려는 무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슬픈 소식을 듣고 있으면 내 안의 슬픔들이 늘 떠오르는데, 그런 슬픔들을 통해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위로하려는 마음이 생기고는 했기 때문이다. 내가 위로하고자 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곳엔 언제나 상대방에게 투영된 나의 슬픔이 있었다.

🏷그의 연주는 고독은 피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온전히 고독을 받아들이는 순간에 낭만이 피어나는 것이라 말하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외로움에 사람들을 만나 허한 마음을 채우려 했던 날의 끝은 허전했던 반면, 홀로 여행을 떠나거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때는 허전함이 채워지는 순간이 많았다. 낯선 길을 걷고, 그림을 그리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고독을 고스란히 받아들인 시간 속에서 좋아하는 것을 찾아 그것에 몰입하다 보면, 그 순간이 아름답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것이 낭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맞는 길인지 확신도 없으면서 쉽사리 놓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늘 고민만 해왔지만, 이곳에서는 모든 게 까마득해져 있었다. 상황이 변한 것도 아닌데 무엇이 불안한 고민들을 잊게 한 것일까. 유리창 너머 흘러가는 바깥 풍경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생각에 빠져들었다.

🏷꽃을 말린다는 것은 누군가의 마음을 기억하는 일이다. 누군가 나를 생각하며 꽃을 고르던 시간, 나의 미소를 떠올리며 꽃을 들고 걸어왔을 마음을 오래 간직하고 싶은 소박한 바람 같은 것이다. 시든 꽃을 쓰레기통에 구겨 넣어야 할 때는 꽃에 담긴 상대방의 마음과 나의 감사함까지도 시들어 버려지는 듯한 마음이 든다. 꽃에는 알록달록한 빛의 생기뿐만 아니라 사람의 따뜻함이 머물러 있으니까.

🏷조그만 식물이 심긴 화분을 받은 적이 있다. 베고니아라 했다. 그날 나는 햇빛이 들어오는 복도 끝창가에 화분을 두고서 매주 물을 주기 시작했다. 어느덧 겨울이 지났고 봄이 올 무렵 푸른 잎 사이로 꽃대가 올라와 하얗게 꽃이 피어났다. 처음에는 그저 시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시작한 일이었다. 그러나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나는 꽃을 바라보는 일을, 물을 주고 돌보는 일을 좋아하게 되었다.

🏷맛있는 커피 한 모금 머금는 순간에는 늘 그날의 물음이 떠오른다. ‘맛있다’ 대신 ‘행복하다’라고 표현하는 버릇이 생겼고, 커피 말고도 먹고 마시고 보는 여러 것들에 대해서 ‘행복하다’라는 말을 붙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삶의 방향이 현재 사용하는 단어의 표현을 따라 조금씩 변하게 되어 가는 것이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Are you happy?’

🏷저 바다 너머를 지옥이라 두려워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세상의 시작이라고 희망할 것인지,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이곳에서 푸른빛 가득 넘실대는 물결을 바라보며, 미지의 세계를 찾아 항해를 떠났을 옛 선원들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그날의 장면들은 그림처럼 기억으로 남아 메마른 일상을 위로한다.
그래, 포르투갈에 다녀오기를 잘했다.
당신에게도 그러한 순간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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