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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최선
문진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10월
평점 :
『최소한의 최선』
문진영 소설
문학동네 출판
우선 읽기가 쉬웠다. 그래서 더 재미있게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오! 상그리아>에서 엄마는 자꾸 떠나고, <내 할머니의 모든 것>의 끝내 사라져버리는 배정심 할머니, <지나가는 바람>의 나에게만 멈추지 않는 바람같은 소설들. 조금은 이기적일 수 있으나 자신의 삶을 찾아떠난 멋진 인물일 수도 있는 인물들, 해결되지 않고 답답한 날들의 연속이지만 하루를 충실하게 살아가는 인물들, 다양한 인물들이 많다. 늘 가까이 있는 가족과 친구의 이야기이지만 생각해보면 나는 잘 살았는가, 잘 살고있는가 질문하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독파챌린지 '문진영 작가님'과 Zoom 토크!!
|작가님이 애정하는 소설책
- 존 윌리엄스 ‘스토너’
-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올리브 키터리지’
|작가님 요즘 근황
- 다음 쓰려는 경장편에 관련된 생각과 독서를 하고 있다.
슬퍼할 권리에 대한 얘기를 쓰고 있어서 개인의 슬픔과 사회에서 바라보는 슬픔이
어떻게 어긋나는지 많이 생각하고 있다.
(이재현 편집자님 머리스타일이 바뀌셨는데 더 잘 생겨지신듯 😊)
📚미노리와 테츠
항상 수민과 반대같던 나(희주)는 일본으로 여행을 갔다가 미노리와 테츠 부부를 만난다. 테츠는 수민을 볼 때 미노리가 처음보는 표정을 짓거나 둘 사이의 에너지를 알아챘을 때, 수민의 2인자같은 느낌이 싫었던 희주는 미노리와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수민과 미노리는 빛이 없는 그림자같은 느낌 때문이었을까. 그렇게 말없이 헤어졌다. 좋아하지만 마음이 하나일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으니까.
아, 이애는 빈 종이에 자기 이름을 적을 때의 기분 같은 건 평생 모르겠구나. 아보카도 씨앗처럼 웅크리고 있던 뭔가가 그 순간 뿅, 하고 돋아났다. 결코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에. 테츠가 말하려던 건 이것이었을까. 그렇게 한번 자라난 것은 되돌릴 수 없었고, 나는 그것을 마음 속 어두운 구석에 숨겨두고 문을 잠갔다. P27
집으로 돌아오는 길, 버스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있으면 주변의 소리들이 활자처럼 머릿속에 들어와 박혔다. 그때마다 나는 다른 무엇보다도 내가 이 불가해한 세계와 소통하려고 애쓰는 와중에, 쏟아지는 말들의 의미를 해독하는 와중에 조금씩 소진되어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종종 두려웠다. P28-29
빛이 환할수록 더 짙어지는 그림자에 관해. 임계점에 닿기도 전에 쉽게 무너져버리는 마음에 관해. P31
📚변산에서
수온의 아빠 승민의 산재가 승인되던 날 민주와 내가 신나게 먹는 장면, 항소를 포기하던 날 저녁 또 갈비를 먹던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무기력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모습이 아니라 전투적으로 먹는 모습들에서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느껴졌다. 번데기 세 명은 서로가 서로를 알아주는 마음이 있기에 아름다운 나비가 되어 날아갈 거다. 함께 싸워주는 친구가 있기에, 지금 졌어도 끝내 이겨낼 수 있다!
매일 밤 통화할 때는 침묵이 찾아오는 법이 없었는데 막상 오랜만에 마주앉으니 할말이 없었다. 이미 할 이야기는 다 해버린 뒤라 그런 건지도 몰랐다. P57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선 어둠 속에 자신을 내버려둘 용기가 필요한 게 아닐까. 너무 어두워서 도무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가도. 시간을 견디면 결국에는 아주 느린 속도로 시야가 밝아지듯이. 캄캄한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 P61
📚오! 상그리아
술에 늘 취해 있던 할아버지의 사생아로 태어난 엄마. 그런 엄마를 따스히 보듬어준 할머니. 딸에게 취한 것처럼 살라던 상그리아 같다고 말하던 엄마는 아빠없는 아이로 할머니 손에 딸이 자라게 했다. 독특한 가족 형태였는데, 지금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이 소중해서 왜 자꾸 떠나는지 이유는 물을 수 없었던 슬픈 사연.
코가 기억하는 엄마의 냄새가 있다면, 그건 바로 바람냄새다. 바람 속에 서 있을 때 그것은 아무런 냄새가 없는 것 같다가도. 분명하게 몸에 스며들었다가는 바람 없는 곳에서 그 향을 퍼뜨린다. P82
📚 내 할머니의 모든 것
대물림인가. 할머니가 자신의 길을 간다고 할아버지와 이혼하고 엄마도 아빠와 자신의 길을 가겠다고 이혼을 했다. 자신의 삶을 살겠다고 한 마음은 멋있지만 자식을 두고 떠난 것은 책임감이 없어보이는 부모의 모습이다. 소설을 다 읽어도 왜 할머니는 모두에게서 떠났고, 또 지금의 손녀에게서도 떠났을까 궁금했다. 다 버리고 흔적도 남기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혼자만 알고 있었을까. 수수께끼 같은 배정심 여사. 그녀는 누구인가. (외계인 혹은 국정원 혹은 사기꾼? ㅎㅎ)
다만 후에 내가 알게 된 것은, 그날 할머니는 자신이 가진 최선의 것들을 몸에 걸치고 나왔다는 사실이다. 최선의 것들이자 유일한 것들을. 단 한 벌의 코트, 하나의 모자, 하나의 목도리, 한 켤레의 장갑. 나는 뒤늦게야 그녀가 살아온 삶의 방식을 감히 짐작해볼 수 있었다. 최소한의 최선. 그것이었다. P96
📚 너무 늦지 않은 어떤 때*
영상을 찍는 알바를 하다 그냥 직업이 되어버린 일상 중 학원 영상을 찍던 중 남자를 만난다. 자신을 너무 불행하게 바라보는 그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름다운 폐허, 인도에서 만난 스무 살이나 차이 나는 친구 ‘안와’를 만나 인도여행의 풍경과 그들의 삶이 어느 순간 내 삶과 닮아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들처럼 지나가는 지금이지만 또 살아보자고 마음먹는 것 같았다.
말의 홍수보다는 말의 빈곤이, 그보다는 침묵이 언제나 나았다. 그래서 우리는 대부분 침묵했고 그 침묵에 만족했다. 그리고 결국에는, 서로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게 되었다. P140
다만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영원히 살 수 있는 꿈 같은 건 없다는 것을. 이 순간은 오직 지금뿐이라는 것을. 어떤 오늘도 내게 너무 늦지는 않았다는 것을. P150
📚 고래 사냥
인천 석모도 어느 해안가 민박집을 하는 부모님을 둔 룸메씨와 삼수는 하기 싫어 성적에 맞춰 생각지도 않은 대학에서 만났다. 잘해보려고 알바도 하며 열심히 살았기에 앞으로 다가올 미래도 좋을 거라는 상상을 한다. 수업 대신 바이킹을 타러 월미도로 탈출하고 하늘엔 돌고래 풍선이 날고 있으니 지금처럼 앞으로도 행복할 거라는 즐거운 상상.
이 년째 그런 일상이 반복되고 있었다. 우리는 제일 저렴한 시리얼로 아침을 먹고, 점심에는 참치 캔 하나 따는 것을 세상 고민하면서도, 저녁이 되면 편의점에서 제일 비싼 수입 맥주를 종류별로 돌아가며 하나씩 사다 먹었다. 그건 일종의 보상이었다.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아냈다는 데 대한 보상이 아니라, ‘아무 일 없음’을 또 하루 견뎌 냈다는 데 대한. P157
📚 네버랜드에서
풍차돌리기 적금을 들며 계획적인 삶을 살고 있는 남자친구 희욱을 두고 부모님을 모시고 언니와 조카, 형부가 일하고 있는 태국으로 휴양을 떠났다. ‘피터 팬’ 이름을 가진 태국 남쪽 바다 어느 작은 섬으로. 그곳에서 차갑지만 나에게만 보이는 바보같은 웃음을 짓는 희욱과 달리 수영을 알려주는 다정한 론을 만난다.
희욱이 없기 때문일까. 즐거워하는 언니네, 휴양지의 모습 모든 것이 다 싫다. 동화 속 네버랜드처럼 친구를 두고 다시 현실로 오지만 휴양지에서의 만남으로 내 삶은 행복한지 되돌아보게 된다.
‘그냥 젊다는 것’에 관해 생각했다. 단지 젊기만 하다는 것은 젊음 외에 내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의미했고, 나는 그 사실을 견디느라 젊음을 다 소모해 버린 것 같은데. 그러면서도 무언가가 되라는 목소리에는 늘 저항감을 느꼈었다. P189
뭔가 여기, 조그만 구멍이 하나 있는데, 이건 새 옷을 사도, 맛있는 걸 먹어도, 애인을 바꿔도 메워지질 않는 거야. P191
📚 지나가는 바람
한없는 무기력에 빠진 나. 전 직장 동료 민지씨처럼 SNS 유명인사가 되어 매달 천만 원을 벌고 싶었다. 영상장비를 사고 여행준비물을 샀지만 코로나가 터졌다.
가만 누우면 표팀장의 콘텐츠MD 라는 사람이 그걸 모르냐는 얼굴이 떠오를 만큼 정신적으로는 힘들다.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퇴사를 했는데 경제적으로 힘들어져서 다시 일을 해야하는 삶이란.. 이런 힘듦도 지나가는 바람이겠지만 지금은 매섭고 차갑다.
그냥 쉬고 싶다. 잠깐이 아니고 계속.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는 게 아니라, 전원을 끄고 싶다.
배터리를 빼고 싶다. P210
세상은 왜 이렇게 나에게 불친절한가.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였다. 카페에서, 마트에서. 아무도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얼굴의 반쪽이 마스크로 가려진 세계에서는, 입가에 희미하게 묻어 있을지도 모를 미소가 상대에게 가닿지 못한다. P212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바람이.
지나가는 바람.
그냥 지나가는 바람이 간판을 떨어뜨리고, 전봇대를 넘어뜨린다면. 벚꽃 잎을 남김없이 탈탈 털어버리는 바람에 대해 생각했다. 꽃잎은 바로 이 순간에도 떨어지고 있겠지. 한번 떨어진 건 다시 붙지 않아. 봄은 찰나 같고 곧장 여름이었다. P222
내가 할 수 있는 건 겨우 이런 게 아닐까 생각했다. 누군가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지켜보는 것. P226
📚 한낮의 빛
부유한 집 딸이었지만 가세가 기울어 나의 집에 잠시 오게 된 유영언니가 오빠와 침대 위에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내가 부모님께 말함으로 두 집은 완전 남이 되었고, 학교에서 말함으로 언니는 결국 우리나라를 떠났다. 어릴 때 그림을 잘 그리고 싶었지만 소질없던 나의 모습이 스물다섯 유럽 여행 중 엘로이즈의 <이중 자화상>을 보고 놀라게 된다.
언니에 대한 말을 자신이 했다는 것에 죄책감으로 누구에게도 언니라 부르지도 듣지도 않는데 현재 전시장에서 엘로이즈의 <이중 자화상>을 보고 있는 아르바이트 생 주명을 보게 되고, 자신을 언니라 부르고 싶다고 말하는 주명을 보며 유영언니를 떠올린다.
아무렇지 않게 유영언니는 나를 만나주었는데. 과거의 일을 용서한 것일까. 나는 평생을 정신과 치료를 요할만큼 부채를 떠안고 지냈는데 언니는 괜찮았던 건지 궁금해졌다.
내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면 찰나의 웃음기가 느껴지는 눈인사를 건넸으나, 다른 것은 일체 묻지도 관심을 보이지도 않았다. 그는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디에 사는지는 몰랐지만 내 연애의 연대기를 알았다. 그와 나는 모종의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인 동시에 절대 궤도가 겹치지 않을 행성 같았고, 그래서 편안했다. P234
‘한낮의 빛이 어둠의 깊이를 어찌 알겠는가.’
그러나 밤의 어둠도 한낮의 빛을 알지 못한다.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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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동네’로부터 도서지원 받았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선 어둠 속에 자신을 내버려둘 용기가 필요한 게 아닐까. 너무 어두워서 도무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가도. 시간을 견디면 결국에는 아주 느린 속도로 시야가 밝아지듯이. 캄캄한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 - P61
빛이 환할수록 더 짙어지는 그림자에 관해. 임계점에 닿기도 전에 쉽게 무너져버리는 마음에 관해. - P31
다만 후에 내가 알게 된 것은, 그날 할머니는 자신이 가진 최선의 것들을 몸에 걸치고 나왔다는 사실이다. 최선의 것들이자 유일한 것들을. 단 한 벌의 코트, 하나의 모자, 하나의 목도리, 한 켤레의 장갑. 나는 뒤늦게야 그녀가 살아온 삶의 방식을 감히 짐작해볼 수 있었다. 최소한의 최선. 그것이었다. - P96
말의 홍수보다는 말의 빈곤이, 그보다는 침묵이 언제나 나았다. 그래서 우리는 대부분 침묵했고 그 침묵에 만족했다. 그리고 결국에는, 서로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게 되었다. - P140
다만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영원히 살 수 있는 꿈 같은 건 없다는 것을. 이 순간은 오직 지금뿐이라는 것을. 어떤 오늘도 내게 너무 늦지는 않았다는 것을. - P150
이 년째 그런 일상이 반복되고 있었다. 우리는 제일 저렴한 시리얼로 아침을 먹고, 점심에는 참치 캔 하나 따는 것을 세상 고민하면서도, 저녁이 되면 편의점에서 제일 비싼 수입 맥주를 종류별로 돌아가며 하나씩 사다 먹었다. 그건 일종의 보상이었다.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아냈다는 데 대한 보상이 아니라, ‘아무 일 없음’을 또 하루 견뎌 냈다는 데 대한. - P157
‘그냥 젊다는 것’에 관해 생각했다. 단지 젊기만 하다는 것은 젊음 외에 내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의미했고, 나는 그 사실을 견디느라 젊음을 다 소모해 버린 것 같은데. 그러면서도 무언가가 되라는 목소리에는 늘 저항감을 느꼈었다. - P189
뭔가 여기, 조그만 구멍이 하나 있는데, 이건 새 옷을 사도, 맛있는 걸 먹어도, 애인을 바꿔도 메워지질 않는 거야. - P191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바람이.
지나가는 바람.
그냥 지나가는 바람이 간판을 떨어뜨리고, 전봇대를 넘어뜨린다면. 벚꽃 잎을 남김없이 탈탈 털어버리는 바람에 대해 생각했다. 꽃잎은 바로 이 순간에도 떨어지고 있겠지. 한번 떨어진 건 다시 붙지 않아. 봄은 찰나 같고 곧장 여름이었다. - P222
‘한낮의 빛이 어둠의 깊이를 어찌 알겠는가.’
그러나 밤의 어둠도 한낮의 빛을 알지 못한다. -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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