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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불류 시불류 - 이외수의 비상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10년 4월
평점 :
좋은 책에서는 향기가 난다.
이 말을 이렇게 기상천외하게 실현한 책이 있을까?
향기가 나는 책갈피를 끼워넣어서 향기나는 책을 만든
이외수의 아불류, 시불류.
이런 신선함이 좋다.
이렇게 향기가 나는 책에 향기가는 도안도 필수?
물론, 정말 향기가 나는 것은 아니지만, 야생화와 풀벌레들을 그려넣은 도안이
삭막한 도시에 사는 사람의 감성을 충분히 풍부하고 신선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처음에 이 책을 읽을 땐, 외뿔, 하악하악, 사부님, 싸부님 등으로 이어지는
그의 하이쿠식 짧은 글들의 모음집이 또 한 권 생겨난 것 같다는 생각에 아쉬웠다.
뭐랄까, 쉽게 쓰여진 책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코끼리가 돼지를 보고, 눈뜨고 코베어 먹히는 세상이라더니! 라며 놀란다는 글이나
미친놈이 미친년보다 위험한 이유는,
미친년은 머리에 꽃을 달고 사랑을 갈구하지만,
미친놈은 뿔이 나서 남을 받아버리기 때문이라는 글처럼
이외수 특유의 재기발랄하고 위트넘치는 글들이 탄성을 자아내지만,
사실 그런 책이 너무 많지 않았던가. 좋은 노래도 세 번 들으면 잔소리가 된다는데...
그런데 알고보니 이 책은 이외수의 트위터를 엮은 책이라고 한다.
아. 그래서 이토록이나 가볍고 짧은 글들로 엮여 있었구나.
그렇다면, 내가 흐르지 않으면 시간도 흐르지 않는다는 이 제목이 얼마나 근사한가.
트위터의 정의와 의의를 단 여섯글자로 표현하다니. 역시 이외수다.
다만, 트위터답게 ‘소통’을 표현하는 형식으로 책을 꾸몄어도 좋지 않았을까 싶다.
리플이나 대화의 재구성이랄까.
예술의 부재와 각박해지는 세상을 걱정하는 이외수의 한 구절 한구절은
얼마전 본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를 떠오르게 하는 측면이 있기도 하다.
이 책을 보면, 소통의 달인이라고 불리는 한 도인이 소통의 핵심은
상대의 눈높이에 맞는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장면이 나온다.
소문을 듣고 구름때같이 사람이 몰려드는데, 도인과 대화하고 돌아오던 건달이
“굳이 찾아갈 필요 없소, 딱 내 수준이니”라고 말했더라는 것이다.
이제 이외수 선생님이 좀 더 진지한, 글을 집필해주길 바라는 독자이라서 그런지
이 책을 보면서, 너무 동어 반복이 아닌가 하고 조금 아쉬운 마음도 들었었는데,
저 에피소드를 읽고 다시 한번 생각해보니 왜 굳이 이외수는 이 말을 반복하는가라는 의문이 든다.
책이란 워낙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작품이니,
과연 누구의 눈높이로, 누구에게 듣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일까?
나는 혹시 건달과 같은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