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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바꾸는 7일간의 여행
A-Works 지음, 송모험 옮김 / 에이지21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23살 때 처음 떠난 배낭여행에서 캄보디아를 간 적이 있다.
유럽을 가겠다고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돈을 많이 모으지 못해서 한달간 떠난 태국 여행.
그 중 일주일을 캄보디아에 머물렀다.
앙코르 와트의 엄청난 인상, 개발되지 않은 천혜의 자연도 좋았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침에는 피곤해서 일어나지도 못하면서도 저녁에는 꼭 한국어와 영어를 공부하고 잠이 들던,
먹고 살기 위해서 외국어를 꼭 잘 해야 한다며 흰 이를 드러내고 씩 웃던-
10대 모터사이클 기사 소년이었다. 가난하게 태어나서 이름도 없었던.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엔 앙코르 와트를 구경하기 위해 모터사이클 기사를 살 수 있었다)
그 때 배운 캄보디아어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데, 바로 '꼬물랑'이다. '피곤해-' 라는 뜻.
별 필요도 없어 보이는 그 말을 왜 가르쳐주나 싶었는데, 여행중에 어디 가고 싶다고 하면
못알아듣는 척 할래야 할 수도 없게 꼬물랑!이라고 말하면서 핀잔을 주던 모습이 기억난다.
한국에 태어난 것이 얼마나 축복이고 감사해야 하는 일인지,
그리고 내가 하루를 헛되이 보내는 것이 얼마나 큰 죄를 짓는 것인지를
그 날 여행을 통하지 않았다면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누가 내게 그런 얘길 한다면 잔소리라고 생각했겠지.
그리하여 나는나는 단연코 말할 수 있다.
겨우 일주일간의 여행만으로도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그래서 이 책이 제목만으로도 반가웠다. 그래서 유랑 이벤트에 응모했는데 당첨까지 됐다.
책은 역시 '인연이 있는 책'이 있는 법이다.(유랑은 유럽 배낭여행자에겐 바이블같은 까페다)
마침 유럽에 다녀와서 여행 게이지가 충전돼 있는 상태에서 만나 더욱 반가웠다.
냉큼 펼쳐보는데 없던 방랑벽도 생겨날 것 같은 페이지마다 수록된 사진들이 참 좋았다.
그래! 일주일이면 인생을 바꿀 수 있어! 떠나!! 떠나라구!! 라며 채근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랑에 불타는 그 순간이 '영원'인거야.
-오카모토 다로
그러나 내용은 허무맹랑했다.
일주일 동안 미국 네바다를 다녀오라고? 비행기값이 얼만데!!! 한 번 가면 한달은 가야지!!!
일주일 동안 알래스카를 다녀오라고? 아니 그 동안 들이는 시간과 경비가 얼만데 그게 가능해?
심지어 일주일 만에 세계여행을 하라고? 아니 일주일 동안 비행기만 타라는 거야, 뭐야?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내가 얼마나 산다고. 단 한 번 나를 위해 일주일 동안 400만원을 쓰는 게 그렇게 못할 일인가?
내가 일주일에 400만원의 가치도 안 된단 말인가! 왜 안 된다고 생각했지?
여행은 계획하는 동안은 신나지만 막상 떠나기는 참 머뭇거리게 된다.
휴가를 내자니 회사에 눈치가 보이고, 막상 여행경비를 따져보니 허리끈을 졸라매야 할 것 같고,
이런 저런 기회비용을 따지자니 그냥 집에 있는 것이 훨씬 경제적일 것 같다.
그러다 남들이 여행가면 부럽고, 책으로 대리만족하고, 괜히 나도 가야 할 것 같아서 계획하다가
또 다시 눈치 보고, 경비 생각하고, 기회비용을 따지는 악순환의 연속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여행이란 내가 얼마나 모르는 존재인지 확인하는 일.
여행의 가격대 성능, 효율성, 경제성을 따지다보면 언제 떠날 수 있을까?
영국 속담에 널리 여행하면 현명해진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글쎄, 어쨌든 대문밖을 떠나는 순간 배우는 것은 무한히 많아진다는 것은 틀림없는 일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이 책을 보니, 딱히 못갈 곳만도 아니다.
실제로 이 책은 '여행 좀 한다' 싶은 사람들에게 '가장 인상적인 여행지'를 물어보고 정리한 책이라고.
한다 하는 사람들이 엄선한 곳이라니 선정된 장소에 대해선 의심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언젠가 일상에 지치고 새로운 자극이 필요할 때, 다시 한 번 이 책을 펼쳐본다면,
이 책은 나에게 이렇게 말해줄 것이다.

사실은 알고 있잖아?
모든 해답은 자기 안에 있다는 것을.
참, 이 책에는 여행에 관한 짧은 글귀가 곳곳에 수록돼 있는데, 보다가 빵 터진 문구.

뭐라고? 또 떠난다고? 너, 일은 제대로 하고 있어? 장래는 믿어도 돼?
- 우리 엄마
아- 놔. 이번에 유럽 간다고 했을 때 이런 얘기 들었는데. ㅎㅎ
여행 전문가든 아니든 사람 사는 건 다 똑같구나, 싶어서 묘하게 안심이 됐다. ㅎㅎ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삶에 위로와 희망이 될 것 같은 책, 인생을 바꾸는 7일간의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