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신도와 가구라 - 문화의 창 13
윤광봉 지음 / 태학사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아이 참, 4층 사회문학서가는 참 위험한 장소라니까요... 그만 무심코 손이 가는 책들이 잔뜩...

....물론 이런 데에서 위험함을 느끼는 것은 저만이겠지만요. 하지만 이 책의 저자같은 분들이 계시니 저는 외롭지 않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아무래도 동아시아 전반의 무속, 연희문화에 흥미가 깊은 분인 듯 합니다. 저자검색을 해보니 그런 종류의 책들이 잔뜩(....) 이 책도 저자의 그러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국과 중국의 굿거리, 가면희를 비교하여 일본 신도와 가구라에 대한 지식을 풍부하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저야 그런 이야기에 좋아죽습니다만(...) 다른 한 편으로 시선을 끌었던 것은, [일제하 무속론과 식민지권력]에서 연구된 바 있는 조선신궁의 제신논쟁에 대해 일본인의 시각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책에 따르면 조선신궁 논쟁 당시 [신도평론]이라는 연구서에서 아시츠 고지로라는 연구자는 메이지 천황과 단군을 같이 봉재해야 하며, 신사의 양식 또한 일본과 조선식을 절충한 새로운 양식으로 창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이즈모나 구마노 등의 국신을 다양한 형태로 받아들이며 성립한 일본의 기기신화의 특징도 있겠지마는.... 무엇보다도 소위 열강국이라고 하는 일본 자신에 대한 고찰을 할 기회가- 아니, 해야만 하는 이유가 생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로 1923년 관동대지진.

이 지진의 피해도 실로 대단했습니다만.. 무엇보다 일본의 지식인들을 전율시켰던 것은 서구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일류 국가의 국민이라 여겨졌던 일본인들이 일순간에 짐승으로 전락해서 조선인이나 외국인에게 가했던 학살이었습니다.

그 직전까지만 해도 일본은 열강의 반열에 든 우수한 민족이라는 자부심 뿐만 아니라, 무지몽매한 조선인(...)을 근대로 이끄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을 것입니다. 실제로 합방 전까지는 조선인조차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이 많았으니까요.

하지만 그 생각이 터무니없는 착각은 아니었는지.

일본이 조선에게 행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폭력이 아니었는지.

그러한 고민에서 나온 것이 조선신궁 제신논쟁이었던 것입니다.

이상한 것은 [일제하 무속론과 식민지권력]에서는 단군의 봉재가 없었다고 쓰고 있습니다만, 이 책에서는 1934년 9군데의 신사에서 조선국혼신(...) 단군 봉재가 있었다고 서술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조선신궁 관계자들은 조선인이 신사에 올 때 '경치도 좋고 하니 운동삼아 와서 참배도 안 하고 간다'라는 것이 고민거리였다는 점을 미루어 볼 때 조금이라도 조선인의 신앙심을 이끌어내려고 미봉책을 썼다고 생각하면 그럴듯합니다만....

이것이 조선인의 신앙을 얻었는지는, 글쎄요. 1945년 8월 16일부터 8일간 신사에 대한 방화나 파괴가 136건이나 되었다는 사실이 답이 될 것 같네요(....)

일본의 지식인들은 그래도 나름대로 고뇌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일본은 잘못된 길로 나아가도 고칠 여력이 없었지요. 우선 헌법이라는 것조차 국가의 주인이 천황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판이었으니. 천황 권력의 근간이 일본에서 말하는 신대에서 왔다는 점을 상기하면 허무할 따름입니다.

착각하는 것, 잠깐 헤매는 것,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정말로 글러먹은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중요한 것은 그것을 고칠 의지가 있는가- 이를 악물고 고쳐내고야 마는가.

...뭐, 그런 기분이 들었다는 것뿐입니다(...)

그나저나 가구라라든지 바다 위의 가구라 무대라든지 다른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도 많은데 쓸데없이 진지한 이야기만 해버렸군요.... 흥미있는 분은 모쪼록 책을 봐주십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