퉁구스족의 곰 의례 - 국립민속박물관 비교민속학술총서 5
한스 오아힘 파프로트 지음, 강정원 옮김 / 태학사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어린 시절에 곰이라는 캐릭터를 좋아하지 않은 사람은 드물 듯 합니다. '아기곰 푸우'라는 대중적인 캐릭터도 있고.... 저만 해도 2살 무렵 다른 예쁜 인형은 놔두고 곰인형을 선택하여 곰돌이라 이름짓고 애지중지한 이래 쭉 곰을 좋아했습니다. 물론 지금 베스트는 늑대지만 여전히 곰은 좋습니다. 곰돌이도 마산의 본가에서 건재합니다. 나이로 환산하면 25세.

이러한 곰 애호가 범지구적임을 보여주는 책이 바로 [퉁구스 족의 곰 의례]입니다(....)

이 책은 시베리아에 거주하는 퉁구스족이 곰과 관련해서 행하는 의식에 대해 자세하게 파헤치고 있습니다. 인용하는 문헌, 지면상 등장하는 연구자의 이름만 해도 어마어마한 수입니다(....) 게다가 퉁구스족에 대해 우선 문화인류학적으로 분류하고 있어서 전문용어가 아주 쏟아집니다. 퉁구스족의 문화인류학적 위치와 전세계의 곰 의례에 관해 설명하는 1장 일반 개관을 돌파하는 것이 제일 힘들었습니다.

똑같은 곰 숭배에 곰 의례라고 해도 지역과 민족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이것을 다 훑어보려면 대단한 중노동이 될 것입니다만... 이 책에서는 일단 크게 두 가지로 나눕니다. 사냥을 본업으로 하는 북퉁구스족(대표적으로 에벵키)과 농업을 주로 하는 남퉁구스족(사할린, 훗카이도의 아이누도 여기에 해당)의 곰 의례이지요. 전자는 사냥에서 잡은 곰을 죽이고 요리할 때에 베푸는 의례가 주가 되고, 후자의 경우 새끼곰을 잡아와 집에서 기른 뒤에 잡아죽인다는 식이지요.

읽으면서 웃고 말았던 부분은 에벵키 족이 죽은 곰을 위로하면서 하는 말 중 하나였습니다. "너를 죽인 것은 에벵키가 아냐, 러시아인이야. 러시아인이 만든 총과 총알이 너를 죽였어"라고 말하는데... 어린애도 아니고!(...) 더 우스웠던 것은 이 풍습을 기록했던 러시아 학자 카이고로도프가 의례의 진행을 돕기 위해 곰을 죽인 것은 러시아인인 자신이며 에벵키가 아니라고 위증(?)해주자, 의례에 참여하고 있던 에벵키 주민들이 미칠듯이 기뻐했다는 대목이었습니다.

남퉁구스 족은 죽은 가족의 영혼을 저승으로 무사히 보내기 위해 새끼곰을 잡아오거나 사와서 우리에 가두고 길렀다가 키워서 의식을 통해 잡아먹습니다. 이 의식은 요즘 동물보호협회가 보면 기절해 자빠질 정도로 잔인한 과정입니다. 이리저리 끌고다니고, 나뭇가지로 쿡쿡 찌르거나 화살을 쏘고... 그러나 그들은 곰이 죽고 나면 갖은 말로 슬퍼하고, 눈물 닦는 띠를 마련해서 곰의 눈을 닦아주며, 곰을 위로하고 기쁘게 하기 위해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합니다. 죽은 곰이 타이가의 주인에게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그리고 만족한 곰이 슬픔과 아픔을 이겨내고 다시 돌아와주길 희망하면서.

만물의 영장으로서 열등한 생물에게 베푸는 오만한 보호가 아닌- 타이가에 기대어 살아가는 같은 생명, 베풀고 베품을 구하는 생명, 아득한 신화의 시대 같은 피를 나누었던 할아버지 할머니이자 형제에게 바치는 예우.

어느쪽이든 인간 본위라는 혐의는 벗을 수 없을 테지만- 저는 동물보호협회와 남퉁구스족이 싸운다면 단연 후자의 편을 들어주고 싶군요.

...냅, 저 시베리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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