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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커크의 섬
다이애나 수하미 지음, 조숙경.윤선아 옮김 / 동아일보사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문명에서 아득하게 떨어진 곳에서 고립되어, 자신의 지혜와 기술을 총동원하여 생존에의 기반을 마련한다- 극지라는 테마에 이끌린 뒤로 이런 이야기가 좋더라고요. 물론 [로빈슨 크루소]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마는, 아무래도 소설인 만큼 낭만성이 가미된 바가 크지요. 그래서 [로빈슨 크루소]에 영감을 제공하였다는, 실제로 4년 4개월간 무인도에 고립되어 있었던 알렉산더 셀커크의 이야기라는 제목을 보고 눈이 번뜩 해서 대출했습니다.
이 책은 셀커크가 탄 사략선이 출발하게 된 배경과 그 사건에 개입한 중요한 인물들을 조명하면서 시작합니다. 에스파냐가 신대륙을 개척하기 시작한 뒤로 신대륙의 엄청난 부가 에스파냐에 흘러들기 시작하자 각국에서는 질투의 쌍심지를 켭니다만, 그 중에서도 가장 군침을 흘렸던 것은 영국이었죠. 당대 영국에서 찬사를 받고 있던 프랜시스 드레이크도 결국 에스파냐의 선박을 약탈하는 '공인된 해적'이었지요. 이에 자극받았는지 많은 배가 사략선으로 꾸며져 신대륙으로 출발했고, 알렉산더 셀커크가 탔던 배도 바로 그런 종류의 배였습니다.
....여기에 로망도 뭣도 없다는 현실이 책 전반부에서는 자세하게 서술됩니다=ㅁ=/
오랜 항해에 의해 환경은 최악이고, 지휘자는 삽질하고, 습격을 해봤자 반격을 당하거나 별볼일없는 성과가 대부분이고.... 말이 좋아 대항해시대의 꽃인 사략선이지, 배 위에 나타난 지옥으로밖에 보이지 않더군요.
그런 중 지휘급 인사와 트러블이 생겨서 배에서 쫓겨나 무인도에 버려지게 된 셀커크. 이 인물을 로빈슨 크루소와 동일시하면 배신당합니다=ㅅ= 로빈슨 크루소는 신앙이 있고 문명을 버리지 않았습니다만, 셀커크는 우선 범죄를 저지르고 배에 탄 인간일 뿐더러 문명의 껍데기를 깨끗이 벗어던지니까요. 거의 원시인 수준으로 살아가는 셀커크의 생활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나저나 염소는 그만둬...OTL(이 점에 대해서는 책을 읽고 충격받아주시길)
다행히 셀커크는 문명의 세계로 돌아옵니다만, 그 고립 생활이 그에게 결정적인 변화를 주지 않았다는 것은 금방 드러납니다. 문명 세계에 있건, 고립되어 대자연의 품에 있건... 거기에서 의미를 구하는 것은 결국 인간 자신의 문제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