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르수 우잘라 - 시베리아 우수리 강변의 숲이 된 사람
블라디미르 클라우디에비치 아르세니에프 지음, 김욱 옮김 / 갈라파고스 / 2005년 11월
평점 :
품절


수험 기간 동안 포스트 모더니즘 역사학에 대해 지겹도록 공부하고 있었습니다만... 포스트 모더니즘 역사학에서 소수민족사나 문화사를 강조한다는 것을 배우기 전부터도, 저는 소수민족 문화에 대해 흥미도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기 땀시...=ㅁ=/

뭐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한 불평은 접어두고.

그래서 원주민에 대해 이런저런 책을 잔뜩 읽었습니다만.... 이건 또 매너리즘이라고나 할까요. 서구 문명의 지배와 탄압에 억눌려 사라지는 슬픈 역사, 한편으로는 명맥을 이어가는 원주민의 아름다운 전통 문화-

저도 원주민 전통 문화의 아름다움에 매혹된 사람 중의 하나이지만서도.... 현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에 거주하는 사람으로서 그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지요. 아직도 세계 각지에는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은 오지가 건재한 곳도 있을 터입니다만 정작 저는 컴퓨터와 문명과 뗄레야 뗄 수 없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살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자연의 가르침을 되살리자는 말도 현실과 너무 괴리가 있으니까 나중에는 조금 비뚤어진 기분이 되는 것이..=ㅁ=/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생각조차 지워버리는 곳에 있었습니다.

데르수 우잘라는 사람 이름입니다. 시베리아의 원주민인 고리드 족의 늙은 사냥꾼이지요.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이 한창 성행할 때인 19세기 말, 러시아의 군인이자 지리학자인 아르세니에프가 시베리아의 우수리 강변 주위를 탐사하면서 도움을 받게 되는 길잡이가 그였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르세니에프는 데르수 우잘라에게 깊은 우정을 느낍니다. 문명은 옳고 야만은 틀렸다-라는, 제국주의 열강 시대의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지 않아서겠지요. 그 입장은 데르수 우잘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역사는 그 시대를 침략과 수탈의 시대로 기록하고 있지만, 데르수는 그런 역사의 비극에 얽매여 있지 않습니다. 시베리아의 원시림을 자유롭게 걸어다니는 그에게 아직 문명은 삶을 강제하지 않았습니다.

문화인류학자들이 고리드 족을 어떻게 정의하고 연구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작품 중에서 데르수 우잘라는 문화라고 할 만한 것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많은 원주민 문화는 조상과 전통과 신화를 가지고 있지만 데르수는 그것을 입에 담지 않았습니다. 그의 생활방식은 그가 태어나서 자란 시베리아의 숲을 살아가면서 스스로 체득한 것입니다. 어쩌면 원시에서 태어난 자연 그대로의 인간이 있다면, 데르수와 닮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데르수가 보여주는 자연 그대로의 인간이란 무엇일까요?

사냥감을 잡으면 반드시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나누어 가지는 데르수. 곤경에 처한 사람은 반드시 돕고, 결코 감사를 바리지 않는 데르수. 호랑이나 짐승 뿐만이 아니라, 나무에서 장작불 같은 무생물에 이르기까지 모두 '사람'이라고 부르면서 친근하게 말을 거는 데르수. 도망치려고 하는 호랑이를 쏜 것을 일생 가장 큰 잘못으로 생각하고 회한을 느끼는 데르수.

대체 누가 자연의 법칙을 약육강식이라고 했단 말입니까? 그것은 문명이라는 얄팍한 색안경을 끼고 저 대자연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어리석은 우리들이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닐까요?

아르세니에프는 노쇠해서 마침내 사냥을 못하게 된 데르수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옵니다. 그러나 러시아 인의 도시는 데르수에게 있어 고통 그 이상이 되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아르세니에프가 모르는 새 도시를 떠나 산으로 들어간 데르수. 그러나 누구인지 모를 불한당에 의해 총에 맞은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어, 아르세니에프는 통곡합니다.

참으로 상냥했던 데르수 우잘라. 러시아인이나 중국인, 원주민의 차이를 알고 있으면서도 결코 편견이나 악의를 품지 않았던 데르수 우잘라.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겠지만 자신만의 올바름을 알고, 그것을 반드시 실천했던 데르수 우잘라.

그토록 선량한 사람이 살아갈 수 없는 문명이라는 세계는 어쩌면-

너무나, 너무나 잘못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저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아무리 잘못되어 있다는 사실을 안다고 해도, 문명이라는 세계를 뒤엎고 새로운 세계를 건설할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래도 글이라는 수단은, 데르수 우잘라의 그 정다운 모습을 지금의 우리에게까지 남겨주고 있습니다.

그 형언할 수 없는 비탄을 느끼고, 기억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뭔가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아르세니에프의 꿈 속에서 데르수는 아내에게 돌아간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았으니까-

틀림없이 그 꿈 속의 오두막집으로 돌아간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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