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생전 - 상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동양편 544
홍승 지음, 이지은 옮김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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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국연구재산 학술명저번역총서는 못 참죠...!!!

그나저나 이 총서 주로 소명출판에서 나오는 줄 알았더니만, 이 출판사에서도 나오네요.


작가는 명청교체기 한인 신사이지만 딱히 절개파는 아니었던 모양으로, 조부와 부친도 청에 벼슬을 했고 본인도 국자감생까지 올랐으나 빈궁해지면서 극작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 작가의 흥미로운 점은 같은 소재를 가지고 작품을 쓰면서 주인공과 주제를 달리 합니다. 시리즈(?) 첫 작품인 [침향정]은 이백의 시점으로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그리는 한편 당 현종을 칭송하였으나, 이어 [무예상]에서는 이필([장안 24시]의 더블 주인공이네요!) 시점에서 당 현종이 양귀비에게 빠져 나라가 기울게 만듦을 비판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은 양귀비를 주인공으로 삼아 당 현종과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었으니 연회나 기방에서 이 노래가 아니면 연주하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인기를 모아 공연료도 폭등.

하지만 강희제가 황가의 기일에 이 작품을 공연한 일을 두고 불경스럽다며 처벌한 까닭에 작가도 출세길이 막히고 낙향합니다. 그러나 [장생전]은 오히려 더욱 유명해졌으니, [홍루몽]의 작가 조설근의 조부도 그를 초청해 [장생전]을 함께 관람했다지요.

작가는 술에 취해 물에 빠져 죽었다는데, 공교롭게도 그 날이 양귀비의 생일인지라 양귀비가 그를 아껴 데려갔다는 소문마저 돌았다고 합니다.


서문에서는 그밖에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그린 작품도 소개합니다. 잘 알려진 이백의 [청평조], 두보의 [여인행], 두말할 필요 없는 백거이의 [장한가].... 뿐만 아니라 제목만 전해지는 것도 40여 종, 내용까지 전해지는 작품은 20여종에 이른다고 하니 그만큼 양귀비와 당현종의 사랑이 엄연히 나라 말아먹은 사실이 있다 할지라도 작품의 서문에서 말하는 것처럼 '정'으로 사람 마음을 울리는 것이겠지요.


무릇 정이란 금석을 감동시키고, 천지를 돌이키고, 태양처럼 빛나며, 청사에 길이 남는다네. 보라, 신하의 충성과 자식의 효심은 모두 정에서 말미암고, 성현 공자께서 일찍이 시경을 편찬하실 적에 정풍과 위풍을 삭제하지 않으셨으니 ...

각 척(중국 연극의 막)마다 말미에 주석을 달아 문학적 표현, 역사적 사건, 인물의 역사적 행적에 대해 소상하게 설명한 점도 아주 좋네요!


작품의 전개는 꽤 빠릅니다. 3척에서 이미 안록산이 등장하고 상권의 마지막 부분인 24척은 안사의 난, 25척이 양귀비 절명씬입니다.


이 작품에서는 [장한가전]에서 따온 듯, 양귀비가 봉래의 옥비로 신선이며 지상으로 귀양 왔다는 설정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같은 장르 중에는 당 현종 또한 천상의 공승진인이라 유배되어 왔다는 썰도 있다니, 실제 역사에서 두 사람이 도가를 숭앙하기에 만들어진 설일 거라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중심 주제는 '예상우의곡'.... 수당시대 도교의 법곡으로 당 현종이 음색을 가다듬어 즐겨 연주했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천상의 노래로 이 노래를 지상에 전파하기 위해 봉래옥비를 지상으로 보냈다는 설정. 그리하여 꿈 속에서 양귀비를 천상으로 불러들여 곡을 전수하니, 양귀비는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여 악보를 써냈을 뿐 아니라 그 곡으로 춤까지 추니 이름하여 예상무. 매비의 경홍무를 발라버릴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토록 재능 넘치는 양귀비는 사랑에 있어서도 양보하지 않아서, 현종이 언니인 괵국부인과 동침하자 사가로 되돌려보내지지만 머리채를 잘라 현종에게 보내어 총애를 되찾습니다. 같은 짓을 건륭제의 계후인 호이파라나 씨가 했다가 폭망한 일을 떠올리면 과연 진짜 경국지색은 클라쓰가 다르다고밖엔....

그리고 현종이 매비를 취화서각에 불러 회포를 풀자 득달같이 들이닥쳐 난리치는 데도 현종은 절절 맵니다. 이후 매비는 개구멍으로 쫓겨나다시피 해 분사했다는 간단한 서술. 양귀비와 총애를 겨루다가 밀려났다는 워낙 기구한 운명인 만큼 그녀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도 꽤 있다는데요, 안사의 난 때 참살당해 매화나무 아래서 시신으로 발견되거나 비구니가 되어 현종과 재회하거나 한다죠.


좌우간 이렇게 현종의 사랑을 독차지한 양귀비이지만...

그녀가 좋아하는 여지를 운반하는 파발마가 벼이삭을 죄다 밟아버리고 맹인 점쟁이도 밟아죽이고, 공을 다투는 파발꾼들이 역참의 역인을 두들겨패는 장면도 생생하게 공연합니다. 이 꼴을 보고도 사랑을 응원하고 싶니 견우직녀야....


물론 그 응보로 안사의 난이 터져 양귀비가 자진합니다만. 인과응보! 나무삼!

일단은(?) 자진할 때에도 현종은 만류하는데 양귀비가 스스로 희생하는 묘사네요.


현종은 고통스러워하면서 피난을 가다가 촌로 곽종근이 바친 맥반(잡곡을 갈아서 익힌 밥)을 받고 맛없다고 징징거립니다. 피난행궁에서 단향목으로 양귀비의 목상을 만들어 통곡하거나 합니다.(여친 피규어?) 송 휘종이 생각나는 묘사이지만 그래도 곽종근의 충언에 귀기울이는 묘사가 있으니 이것이 주인공 가오일까요?

이 곽종근은 난이 평정된 것을 축하하고자 화산에 향을 올리러 가던 중 양귀비의 비단 버선을 주워 구경거리로 삼는 광경을 보고 혀를 차며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이런 기개 있는 사람이 일개 촌부에 머무르니 당이 망하는 겁니다~

또 안록산이 변절한 신하들과 연회를 즐길 때 비파를 던져 공격한 뇌해청 같은 인물이 일개 악공에 머무르니(이하생략) 어쩌면 당 왕조에 변절한 자, 당 왕조에 충성을 바치는 자들을 묘사하여 작가가 건륭제에게 밉보였을지도 모르겠군요.


난이 평정되고 현종은 양귀비의 가묘를 이장하여 무덤을 만들어주려고 합니다. 그녀의 유체를 남자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 여공을 모으는데 사람이 부족해서 남자가 여장하고 슬그머니 끼여드는 개그씬이 유쾌합니다.

하지만 가묘를 파봐도 양귀비의 시신은 온데간데 없습니다! 이미 그녀는 봉래선자라는 원래 신분 덕분에 천상으로 올라간 것이었죠.(괵국부인이며 양국충의 혼은 지옥 익스프레스 탔는뎅....) 결국 양귀비가 정표로 준 향낭만 목갑에 싸서 이장했을 따름.


결국 현종은 미련을 못 버리고 도사 양통유를 불러 양귀비의 영혼을 찾아달라고 부탁합니다. 양통유는 유체이탈까지 해가며 그녀의 행방을 찾다가 직녀를 만나고, 현종이 양귀비를 배반한 줄 알고 빡쳐 있던 직녀는 양통유와 견우가 설득하여 분노를 풀고 양귀비의 소재를 가르쳐줍니다. 양통유와 만난 양귀비는 생전의 시신과 같이 묻었던 정표인 금채와 전합을 증표로 주고, 천보 10년 장생전(드디어 타이틀 회수!)에서 칠월칠석 견우직녀성으 보며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 에피소드 또한 들려줍니다.

마침내 태진옥비(양귀비)가 천상의 신들 얖에서 예상우의곡을 연주하기로 한 날 현종도 승천! 두 사람이 공승진인과 봉래선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두 사람의 진실한 사랑에 감동한 천상의 신들의 배려로 천계에서 영원히 사랑하며 지냈다는 결말-


......당 왕조의 쇠락은? 백성들의 고통은? 커플충 폭사해라....!!!


이렇게 된 이상 당 현종을 디스한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지 않으면~ 힘내세요, 한국연구재산 학술명저번역총서 관계자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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