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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여인들
버지니아 라운딩 지음, 김승욱 옮김 / 동아일보사 / 2004년 12월
평점 :
품절
..왠지 많이 읽게 되는군요. 이런 종류의 책....
그러니까, 매춘부의 이야기입니다. 그중에서도 사회적으로 명망이 있는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고급 매춘부의 이야기지요.
사실 제목만 보고 뭔가 싶어 서가에서 뽑아내어 휘릭 훑어보고서는 대출할 마음을 먹은 것은, 고급 매춘부에 대해 어느 정도 흥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급 매춘부를 주인공으로 한 유명한 에밀 졸라의 [나나]도 열심히 읽었고.
...재미있게 읽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열심히 읽은 겁니다...OTL
과연 자연주의 문학의 거장. 제 2제정의 파리와 그 부패상에 대해 참으로 면밀하게 서술하고 있었습니다마는.
제가 그 작품 속에서 감정을 이입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OTL
전 여자라구요?! 나나의 나이스 바디♡에도, 그 나이스 바디에 열광하는 남자들 기분도 관심 없어요!!! 게다가 나나의 내면이라고 한다면 그야말로... 불모지....
그때까지는 막연히 고급 매춘부의 지적이고 요염한 자태에 대한 환상이 있었습니다만, [나나]를 읽고 몇 할은 날아가버렸습니다.
헌데 공교롭게도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프랑스 제 2제정을 전후한 시기에 이름을 떨친 고급 매춘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마리 뒤플레시스, 라 파이바, 아폴리니 사바티에, 코라 펄.
당대의 지도자급 인사들과 관계를 가지고 수많은 문인 및 예술가를 매료시킨 여성들이지요.
그들이 태어난 출신에서부터 생애를 마칠 때까지의 행적을 쭉 나열한 일화들을 읽고 있자니... 어딘지 기시감이 드는 것이....
알렉상드르 뒤마의 [춘희]의 마르가리타를 비롯해서 에밀 졸라의 [나나]등, 당대의 작가들이 지은 작품에서 등장하는 고급 매춘부의 이미지에 이들의 모습이 반영되어 있었던 것이지요.
아니, [춘희]의 경우는 대놓고 마리 뒤플레시스에게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고.... 하지만 책에서 해명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고결한 마르가리타의 이미지가 반넘어 뒤마의 창작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마리 뒤플레시스가 얼마나 교묘하게 순결한 (듯한)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내었느냐 하는 점이지요.
그와 마찬가지로, 자연주의의 대표 작품으로서 현실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있다고 일컬어지는 [나나]입니다만, 결국 당대의 고급 매춘부- 무엇보다도 매춘부의 전형적인 단점이라고 여겨지는 점을 주로 골라 모아서 나나라는 여성을 창조하여 단점만 있는 그녀에게 반감을 가지도록 짜여졌다고밖에 여길 수 없습니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그게 명백히 드러나죠.
실제로 고급 매춘부는- 제가 아는 고급 매춘부래봐야 이 책이 소개하고 있는 네 사람의 여성이 다입니다만- 나나처럼 미모 외에는 흠잡을 데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이미지를 창조하고 전파하는 데에 능숙했던 마리 뒤플레시스, 고급 매춘부에서 상류 계급으로 격상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또 성공한 라 파이바, 당대 최고의 문인들을 자신의 살롱으로 불러모았던 아폴리니 사바티에, 나나와 가장 비슷하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자서전을 낼 정도로 자기주장이 강했던 코라 펄.
가장 쾌락을 사랑하고 고급 매춘부의 미모에 찬사를 보낸 파리였지만, 그 이면에는 고급 매춘부를 결코 같은 인간으로 여기지 않는 이중구조가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낮은 계급 출신으로서, 여성으로서는 결코 스스로 신분을 끌어올릴 수 없는 엄중한 계급사회에서, 올바르게 살았다면 절대로 얻을 수 없는 것들을 손에 거머쥐기 위해 살았던 여성들.
...전 꽤 고지식한 인간입니다만 그녀들을 칭찬은 할 수 없을지언정 비난 또한 할 수 없습니다.
비교해보면 요즘은 정말 행복한 시대로군요....(쓴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