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유맹사 - 중국 건달의 사회사: 건달에서 황제까지 대우학술총서 신간 - 문학/인문(번역) 501
진보량 지음, 이치수 옮김 / 아카넷 / 2001년 2월
평점 :
품절



예전부터 흥미가 있었지만 잘못 떨어뜨려 발등이라도 찧었다간 발가락 뼈가 부러질 것 같은 부피와 두께에 주눅이 들어 여태 손대지 못하고 있었던 책입니다. 학부생 때부터 마음에 두었는데 막상 읽은 것은 졸업을 앞둔 시점이군요.... 이 복잡한 심경.....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유맹'이란 까놓고 말해 건달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조폭, 일본으로 치면 야쿠자쯤 되겠군요.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그저 법을 무시하고 폭력에 의지하는 이 집단이, 중국 역사에서 놓고 봤을 때에는 한 갈래의 문화사를 이룰 정도로 다채로운 모습을 보인다는 사실은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이 책은 그러한 건달- 유맹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건 책 제목만 봐도 알지만서도.

말로 하면 간단합니다만 이 책이 다루는 것은, 길고 긴 중국 역사 속에서 유맹- 유민, 무직자 뿐만 아니라 부잣집 한량, 소송 거간꾼, 관리, 승려, 황실 종친, 환관-의 종류와 명칭을 상세하게 들면서 그들의 무법행각과 일화를 총망라했으니 읽고 있자면 고개가 숙여질 따름이군요OTL

중국 역사 속에서 건달에 불과한 유맹이 의외로 큰 획을 그은 일은 왕왕 있지요. 서민 출신으로 유명하며 사람들의 친애를 받는 두 황제- 한 고조 유방과 명 태도 주원장도 이러한 유맹의 하나였습니다. 또 법도를 무시하고 폭력을 앞세웠다는 점에서, 사마천의 사기 중 자객열전의 기라성 같은 인물들도 이 범주에 넣을 수 있겠지요. 한 고조의 성품에 힘입음인지 한나라는 의협을 숭상하여 곽해와 같은 이름난 협객이 사람들의 존경을 아우르기도 했습니다. 허나 사람 하는 일이 꼭 좋을 수만 없는 데다, 무법과 폭력을 앞세울 때 대개 그러하듯이, 이렇게 의리로 이름을 날린 협객도 있지만 훨씬 더 많은 유맹이 악명을 남겼습니다.

모종의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공부를 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사람들이 일반 상식으로 여기고 있는 역사란, 제도와 왕조를 중심으로 규격을 맞춘 역사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 계보에서 사회 질서를 파괴하고 범죄를 저지르는 유맹은 거론의 가치도 없지요. 그러나 크게는 한 고조와 명 태조에서, 작게는 수많은 민중운동에 이르기까지, 제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유맹은 강력한 생명력을 가지고 모든 시대의 무수한 뒷골목에서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더럽다고 여기며 없는 것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도- 쾌활하게 약동하는 흐름이었습니다.

진지한 고찰은 둘째로 치고라도 읽을 만한 점은, 이러한 유맹의 이야기를 사료를 인용하며 이것저것 끄집어내는 데에도 있습니다. 대부분이 범죄 이야기니까 눈살 찌푸리는 것이 태반이라지만 그 중에서도 피식 웃음이 나오거나, 무릎을 치며 낄낄거리거나, 이따금씩 어라 제법인걸 하면서 감동을 주는 이야기도 있으니, 중국의 생생한 뒷골목에 흥미있으신 분들은 망설이지 말고 Go(웃음)

그러고보니 말미에 인상깊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한 건달과 한 여자가 잠자리를 같이 했는데, 관아에서 여자를 심문하자 和姦이라고 자백했다는 겁니다. 판관이 지레짐작을 한 건지, 여자가 어떤 협박을 당한 건지, 아니면 정말 건달이 좋았던 것인지, 그거야 설명이 되어 있지 않아 추측의 범주를 넘을 수는 없겠습니다만... 헌데 이 건달은 자신이 한 일은 겁탈이라며 완고하게 뻗대었다는 겁니다. 당시의 법률은 모릅니다만 간통이 되면 여자의 책임도 면치 못했을 터. 그러나 건달은 전후사정이야 어찌되었든 자신만 벌을 받기 위해 잡아떼었던 것이지요. 이것을 두고 이야기 속에서는 이렇게 서술했습니다. '이것은 불의한 가운데 의로운 것이니, 천하의 박정한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기에는 족하다'

...아~ 피해자의 증언이야 어찌되었건 멋대로 판결을 내려버리는 사례(그리고 이런 종류의 인터넷 뉴스 리플란에 피해자를 매도하는 리플이 쇄도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세상에서 살며 이런 이야기를 접하니 참으로 가슴이 훈훈한 감동이 아닐 수 없군요.....(미묘하게 모 처에 유행하는 리플같은 마무리)

이것은 불의한 가운데 의로운 것이니, 천하의 박정한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기에는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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