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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갯머리 서책 (마쿠라노소시) ㅣ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수필비평선집
세이쇼나곤 지음, 정순분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5년 12월
평점 :
침울할 때에는 역시 포스팅이 좋아요...ㅜㅜ 비록 버닝 포스트는 쓸 수 없지만, 최소한 쓰고 있는 이야기에 집중해서 괴로움을 잊을 수가 있으니까요...
....하아아......
...아무튼 [마쿠라노소시]로 갑니다!!!
[마쿠라노소시]는 일본 헤이안 시대의 여류작가 세이쇼나곤의 수필집입니다.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와 더불어 헤이안 시대 양대 여성문학이지요. 헤이안 시대라면 우리나라에서는 대표적으로 [음양사]로 알려져 있군요. 그밖에도 몇몇 순정만화가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진냥은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는 말씀.
그래서 [겐지모노가타리]도 읽어보았고 이번에는 [마쿠라노소시]도 읽게 되었는데... 양쪽 다 헤이안 시대의 미학과 생활을 깊이 다루고 있어서 문화사광인 진냥으로서는 퍽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무엇보다 [마쿠라노소시]는 '지은이 세이쇼나곤이 보거나 들은 유명한 장소', '어떤 감정이 느껴질 때에 어울리는 장면'이라는 주제가 많이 다루어지고 있어서 당대 유명한 장소라든가 미의식에 대해 알 수 있게 해줍니다. 그밖에도 세이쇼나곤이 뇨보(상궁?)로 입궐했을 때 모시고 있던 중궁 쇼시와 그녀의 가문이 누리고 있던 영화에 대해 묘사한 단락도 있어서 당시의 정치적 상황도 대강 알 수 있고요. 뭐, 그렇다고 해도 주석에 의지하지 않으면 안되지만. 이 책은 주석이 충실한 것이 고맙군요.
헌데 [겐지모노가타리]를 읽으면서 느꼈던 거지만, 다른 어떤 나라보다 일본의 고대사는 공감하기가 힘들군요.... 같은 고대라도 다른 나라의 경우는 꽤 이해하기 쉬우며 공감하는 것도 용이한 편인데 말입니다. 오히려 지금에 와서도 귀감이 될 만한 이야기도 왕왕 있지요. 그런데 이번에 [마쿠라노소시]를 읽으면서 가장 뜨억했던 것은 '어울리지 않는 것'을 주제로 삼은 단락에서였습니다.
'천한 것들 지붕에 흰 눈이 소복이 쌓인 것. 게다가 달까지 환하게 비치면 정말이지 달빛이 아깝기만 하다.'
....잘도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군요 이 시대.....
뿐만 아니라 '천한 하인이나 하녀가 주인을 칭찬하면 그건 오히려 주인의 격이 떨어져보이는 법' 등의, 사회적으로 아랫계층에 속해있는 사람들을 모멸하는 표현이 상당히 많이 나옵니다.
뭐랄까, 아무리 신분차가 뚜렷했던 시대라도 저렇게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법은 드물지 않습니까? 얻는 것이 있는 위치일수록 그만큼 요구받는 것도 큰 것이 정론이고, 그리하여 대개는 어느 시대의 귀족층이건 자신들이 귀족이라는 인식이 확실하면 확실할수록 그만큼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표방하곤 했지요. 설령 입은 정론을 뇌까리면서 손으로는 온갖 더러운 짓은 다 하더라도 말이예요.
하지만 저렇게 시를 읊고 노래를 하는 것에 열중하는, 능력은 어쨌든간에 의식이 부족한 지배계층이 통치하던 시대에 민란이 일어나지 않았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뭐어, 세이쇼나곤이 살았던 시대는 이미 헤이안 시대가 어느정도 내리막길을 가던 무렵이라는 것 같지만요.
그걸 제외하고 재미있었던 것은... 비록 작품의 단락이 뒤섞여있어서 중간중간에 나오는 것이긴 합니다만, 후지와라노 다다노부와 세이쇼나곤의 우정이라고 하기엔 조금 뜨겁고 연애라고 하기엔 좀 미지근한 일화들이 흥미로웠습니다. 처음에 다다노부가 세이쇼나곤의 나쁜 말을 듣고 멀리했다가, 그녀의 시 실력을 시험하고는 감탄해서 차츰 친근해지는 일화들이 몇 개 이어지더군요. 다다노부는 더욱 가까운 사이가 되려 하는 거 같던데 결국 어찌되었는지 안 나와있어서 매우 궁금합니다(...)
진냥으로서는 그럭저럭 재미있게 읽은 책입니다만 헤이안 시대에 관심이 적은 다른 분들도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냐 하면 회의적인 대답을 돌려드리겠습니다아.
.......하아아.......(털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