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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의 산맥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지음, 변용란 옮김 / 씽크북 / 2001년 7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찰스 덱스터 워드의 비밀 / 러브크래프트 지음 ; 변용란 옮김 ; 영언문화사 2003
감기 때문에 머리가 아파서일까요.... 어째선지 평소에는 읽을 의욕이 안 나던 러브크래프트 시리즈를 두 권이나 읽어버렸습니다. 정말이지 비가 주륵주륵 내리고 머리가 띠잉- 한 날에 읽기 딱 좋은 느낌이더군요.....
러브크래프트는 그가 창조해낸 독특한 신화로 유명하지요. 잠뿌리님의 말을 빌리자면 해산물에 안 좋은 추억이라도 있었던 건지(...) 상당 부분 해산물의 형태를 띈 괴이한 존재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게다가 작품 하나를 읽어선 다 알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지라, 그의 팬들은 러브크래프트 신화의 역사라든지 종족이라든지 신을 요약 정리하는 것에 열을 올리고 있는 듯 합니다. 팬 뿐만이 아니고 여러 후진 작가들 또한 러브크래프트가 남긴 신화에서 영감을 얻어 러브크래프트 신화를 소재로 한 작품을 창작하여 그 신화를 더욱 방대하게 하고 있지요.
진냥이 이 러브크래프트 신화를 접한 것은 중고등학교 시절 잡지 게임 매거진을 사모을 때, RPG 매거진의 TRPG 시스템 소개란에서였습니다. '크툴루의 부름'이라는 제목이었던가..... 이 러브크래프트 세계관을 배경으로 한 TRPG 룰북이었지요. 그 내용이 굉장히 인상깊어서 진냥은 그만 무서운 꿈을~ㅜㅜ 그 후로 러브크래프트를 한 번 읽어보고자 했으나, 워낙 독특한 이야기라서 책으로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을 뿐더러 왠지 찝찝꿀꿀한 오라가 러브크래프트란 이름에 감돌고 있어서 퓨어한 평화주의자인 진냥은 의욕이 안 났다고나 할까요.... 감기 덕분인 건가!?그러나 이번에 읽게 된 러브크래프트는....
....뭐라고나 할까, 무섭지가 않다고나 할까.....
우선 [광기의 산맥]. 이 작품은 크툴루는 이름만 나오지만, 크툴루와 한때 대적했던 고대 종족인 '옛 것들'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남극 과학탐사대의 일원인 지질학자로 동료인 레이크 박사의 열정에 의해 어떤 탐험대도 도달하지 못한 비경인 광기의 산맥에 도달하게 되죠. 그리고 앞서 간 레이크 박사는 아직 발견된 적 없는 새로운 생물의 화석을 발견하여.....
-라는 것이 전반부 스토리이고, 주인공이 남극에 대규모 탐사대가 파견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이 한 끔찍한 체험을 고백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확실히 끔찍한 체험이라는 점은 부정하지 않겠지만.... 안 무서운 것은 왜일까요....(먼 산)
러브크래프트는 '미지에 대한 공포'가 공포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공포라고 말하고 있지요. 그리고 인간의 상상의 범주를 넘어선 괴이한 존재들을 창조하여 거기에서 공포를 자아내려고 하고 있습니다만....
...아니 글쎄, 알지 못하면 무서워하기도 힘들지 않을까요오.
꿰뚫어볼 수 없는 어둠 속에 있는 그 '무엇'이 무섭다면, 그것은 인간에게 악의를 가지고 해를 끼칠 수 있는 존재라고 '상상'하고 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악의를 가졌거나 어쨌거나 접하는 순간 죽거나 미쳐버리는 사람들이 득실대는 러브크래프트 월드, 어쩐지 이해하기 힘들다.....
...또한 마침내 '옛 것들'의 숨겨진 도시에 들어가서 배회하는 주인공과 대학원생.... 남겨진 벽화를 보고 그 역사를 유추하는데 그게 어찌나 능숙한지 나중에는 건물과 벽화만 보고도 그게 후기양식인지 언제 것인지 막 알아냅니다. 아무리 봐도 그들이 그곳을 헤매다닌 것은 하룻밤도 안 된 것 같은데도 말이지요(밤을 지샌 이야기가 없었던 듯.... 아마도?). 요즘 지질학과에서는 '초고대생물의 건축양식' 같은 것도 가르칩니까. '옛 것들'의 역사가 다이제스트처럼 요약 설명되는 데에는 조금 질렸습니다. 미지의 것이라서 공포를 자아내는 것이라면 그렇게 막 설명해줘도 안되는 거 아냐!?
마지막으로 이 작품은 '옛 것들'조차 두려워하며 접하길 꺼렸던 산맥 너머에는 대체 무엇이 있는가- 하는 의문을 남기며 끝납니다만....
알 턱이 있겠냐.
....조금이라도 공감을 해야 무섭게 느끼지..... 그렇지 않냐구.....
그리고 [찰스 덱스터 워드의 비밀]. 이건 잠뿌리님이 납량특집으로 리뷰했던 게임 [어둠 속의 나홀로]랑 비슷한 스토리라인이라서 재미있었습니다. 물론 [찰스 덱스터 워드의 비밀]쪽이 창작시기는 훨씬 앞서 있고, 오히려 원형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말입니다. 흑마술과 외계의 존재, 그리고 악마적 비밀이 얽혀있는 이 작품은 훨씬 제 기호에 맞았습니다. 그러나.....
작품 중후반부에서, 찰스의 비밀을 파헤치던 월렛 박사가 들어간 비밀 지하실... 그곳에서 박사가 실수로 읽어버린 신비한 주문에 의해 뭔가가 소환되고, 박사는 공포를 이기지 못해 기절하는데...
...깨어나보니 그 정체불명의 존재는 박사를 바깥 침대에다가 정중하게 모셔놓은데다가 친절하시게도 경고 편지(7-8세기 고대 색슨어지만)까지 남기시고 비밀 지하실을 봉인했을 뿐만 아니라 커웬(요약하자면 제일 나쁜 놈)의 다른 동료들까지 처치해줍니다.
....정체불명의 존재씨, 너무 좋은 사람!!!
대체 이래서야 미지의 존재라고 공포에 벌벌 떨 수가 없잖아요...OTL
무엇보다 묻고 싶은데요 당신, 박사 옮길 때 혹시 공주님 안기로 옮긴 것은...? 그게 신경쓰여서 밤에 잠도 오지 않습니다.(거짓말)
결론을 내면... 소설로서는 재미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공포소설로서 어떠냐 하면 =ㅅ=한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던 러브크래프트 탐방이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