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실에 찾아온 유학자들 - 공자에서 정약용까지, 대표 유학자 13인이 말하다
백민정 지음 / 사계절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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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랫만에 나를 향해 높임말을 하고 있는 책을 만났다. 역사서나 인문사회서적들이 주로 "이랬다 저랬다"하고 말을 짧게 끝내는데 비해 "~습니다"로 끝나는 문장을 오랫만에 대하니 어색하기조차 했다. 글쓴이가 대학에서 동양사상을 강의하고 있는 강사라 그런지, 혹은 "강의실에 찾아온 유학자들"이란 제목 때문이었는지, 혹은 오랫만에 대하는 높임말로 쓰여진 글이었기 때문인지(세 가지 모두의 이유 때문이겠지..) 책을 펼쳐들자말자, 강의실 한 구석에서 유학자에 대한 강의를 듣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지루하게 느껴졌다는 말이 아니라, "그래서" 차분하게 책에 몰입할 수 있었다는 얘길 하고 싶은 것이다.

    글쓴이는 프롤로그에서 2002년 중국인민대학에서 <공자연구원>의 창립 기념식 이야기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공자의 부활에 대한 말문을 트고 있다. 1960-70년대의 문화혁명기를 거치면서 철저히 비판받은 공자 사상의 부활. 내가 아는 짧은 중국사에 대한 지식으로도 근현대에 들어서 공자는 상당한 비판을 받았던 인물로 기억된다. 시대를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1910-20년대의 신문화운동이 펼쳐진 때에도 공자학설과 존공사상에 대한 비판이 지식인층에서 대두되었다고 배운 기억이 난다.  유학의 발생지라 할 중국에서조차 비판 받아왔던 공자와 유가사상의 화려한 부활.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나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싶어서 책을 펼쳐들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겐 다소 어려운 "강의"였다. 만약 이 과목을 내가 수강했더라면 결코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각 장 도입부에 소개되는 작은 일화는 그나마 이해가 쉬웠지만 본격적인 유학 이론에 대한 설명은 나의 모자라는 이해력으로 다 소화해내기 어려웠다. 이 말을 글쓴이가 들으면 얼마나 답답해할까 싶다. 글쓴이는 최대한 쉬운 단어를 선택하고 여러가지 비유를 들어가며 쉽게 설명해주려고 엄청 노력하는데, 그 앞에 앉아서는 "잘 모르겠는데요....?"하면 얼마나 답답할까 싶은 생각이 절로 드는 거다.

   그러나 정리해보자. 이 책을 통해 내가 알게 된 것들을.. 순자(荀子). 성악설을 주장했고 한비자나 이사와 같은 제자가 있었다는 주워들은 지식으로 나는 그간 순자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오해를 했던 모양이다. 유학의 이단아이거나 돌연변이 같은 인물이 아니었을까 하고.. 공자와 맹자가 인(仁)과 성선설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반해 순자는 그와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뭔가 꼬인 인물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그가 전국시대 제자백가를 대표할 만한 좨주의 자리에 세번이나 올랐던 인물이라는 것, "제자백가의 모든 사유 경향들을 정합적으로 체계화한 종합자"(p77)였다는 것 등은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된 사실이다. 또한 순자가 성악설을 주장한 이유 등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설명해주고 있다. 어설프게 앎으로서 발생하는 무지 내지는 오해를 경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이 있지 않으면 눈으로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p171)는 [대학]의 구절이 인용되어 있다. 내가 이 책을 읽고서도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말하는 것도 어쩜 같은 이치가 아닐까" 하고 철학적인 문장을 내 유치한 경험에 빗대어본다. 이 책을 통해 유학에 대해 뭔가 알아내야겠다는 생각으로 글자만 따라 내려갔을 뿐 마음을 담아 글을 보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나는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왕수인의 물래이순응(物來而順應)의 상태에는 절대 다다를 수 없는 것일까..?

     그래도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13명의 유학자(내겐 이름조차 낯설었던 일본의 두 유학자 "이토 진사이"와 "오규 소라이"를 포함)에 대해 한발 다가선 것으로 이번엔 만족해야 겠다. C+을 받는데도 달게 받아야 할 이해에 그치고 말았지만, 그렇기에 다음을 기약한다. 다음번에 이 책을 펼쳐들면 한발 더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그땐 못하더라도 A-쯤은 받을 수 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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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하라,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권태현 지음, 조연상 그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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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에스프리"가 뭐지? 책 표지에 감성 에스프리라는 문구가 나오는데 그 말이 뭔지를 몰라서 인터넷검색부터 서두르는 나.  앎이 참 얕은 사람이다. 에스프리. esprit. "육체에 대한 정신을 의미하며, 근대적인 새로운 정신활동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인다. 동시에 프랑스인 특유의 발랄한 지성적인 정신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프랑스인들은 세련되고 생기 있는 대화를 존중하는데, 그들의 재치 있고 빈틈 없는 발상을 에스프리라고 하며 영국 사람들의 ‘유머’와 좋은 대조를 이룬다." 아. 그렇구나. 고개 끄덕하고서 책을 펼쳐든다.

 

    이 책이 라디오의 한 코너에 소개되었던 이야기를 묶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서 읽었기 때문인지 한편한편 읽을때마다 조용한 라디오를 듣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간간이 그려진 푸근한 파스텔톤의 그림도 그런 기분을 더해준다. 옆에서 누군가 조근조근 해주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은..  이 책 26쪽에 나오는 먼 바다에 나가 잡아오는 물고기에 대한 이야기는 언젠가 들어본 듯도 한데 글을 통해 보니 "아!!" 하고 내 마음에 느낌표 두개를 찍어준다.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다가 육지까지 살아서" 온다는 그 물고기들. 내 삶은 어떠한가를 생각해 본다. "이미" 잘못된 갈림길로 들어와 버렸다고, 다른 어부의 물고기들처럼 지레 포기해버리고 "죽어"버렸던 건 아닐까?  살기위한 몸부림. 나는 살기 위해, 죽을만큼 절박하게 내 삶을 몸부림쳐 왔던가를 생각해본다.

 

   이 책에는 여러 주제의 글들이 있지만 마음에 콱 소리를 내며 와 닿는 글이 있고, 그렇지 않은 글들이 있다. 가끔은 예전에 내가 읽었던 책에서 내가 밑줄 그은 문장을 보고 "여기에다 왜 밑줄을 그었던 걸까?"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예전의 나에게는 감동적이었거나 중요해 보였던 글이었기에 밑줄까지 그은 거겠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별 감흥이 없어져버린. 또 가끔은 예전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괜찮은" 문장을 발견해 낼 때도 있다. 그래서 책은 1회용품이 아닌가 보다. 두고두고 곁에 두고 펼칠 때마다 새로움이 가득한 것. 이 책도 지금의 내가 공감하는 부분은 크게 보이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아예 눈에도 들어오지 않은 것이리라.

 

   이치에 맞는 말들이고 가끔은 격언처럼 가슴에 새겨두어야 할 말들이지만 이런 글을 읽다보면 글쓴이가 궁금해진다. 글쓴이는 "아무리 처지가 딱하고 불행만 겹치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 속에서 얼마든지 축복해 줄 수 잇는 일을 발견할 수 있다"(p100)고 한다. 글쓴이도 과연 그러할까? 매번 불행만 겹치는데도 자신의 삶을 축복할 수 있을까? 하고 괜히 삐딱하게 보는 거다. 내가 너무 꼬였나? ^^ 그러기에 저자는 들어가는 말에다 "경험이 부족한 세대를 함부로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라, -중략-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함게 고민해 보자는 의도로 쓴 것이다."고 밝히고 있는 것일까? 나 같이 삐딱한 사람들을 위해서 말이다.

  

    사실 이런 책은 곁에 두고 틈틈이 읽어야 할 책인데 급한 성격에 한꺼번에 처음부터 끝까지를 다 읽어버렸다. 이 책에서 정의한 친구처럼 이 책을 닮고 싶다. 가까이 두고 오래 사귀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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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는 없다
버지니아 펠로스 지음, 정탄 옮김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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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제목이 도발적이라고 생각했다. 셰익스피어가 없다니..? 예전에 나온 [~는 없다]는 류의 제목을 달고 나온 선구적인(?) 책이라 할만한 그 책처럼  고정관념으로 굳어진 무언가에 대한 생각의 틀을 깨뜨리기 위해 쓰인 그런 책인가도 싶었다. 그렇다면 너무 진부한 제목 설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고.. 그게 아니라면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번역되었다는 셰익스피어의 저작이기에 그의 위대함을 극찬하기 위한 반어적인 표현인가?  제목만으로도 이런저런 궁리를 하면서 펼쳐든 책.

 

   우선 책 앞날개 저자 버지니아 펠로스에 대한 소개글. "위대한 인물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그중 일부만 이해받고 있는 철학자 베이컨에 대한 오랜 연구 끝에 그녀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고는 [셰익스피어는 없다]를 집필하기에 이르렀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버젓이 셰익스피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책에 왠 베이컨? 베이컨과 셰익스피어가 무슨 관계가 있길래...?  그녀가 발견한 "놀라운 사실"이 뭘까 궁금했다. 베이컨과 셰익스피어? 혹 둘이 동시대 인물인가?(각각의 이름은 들어보았으나, 또 그들이 영국의 대표적인 인물이라는 것도 알았지만 동시대의 인물인지는 몰랐었다.) 그럼 혹 그녀가 발견했다는 "놀라운 사실"은 베이컨 =  셰익스피어?  그냥 넌지시 짚어보았다. 그런데 나의 어설픈 추측이 맞아버린 거다! 이런...

 

    이 책 172쪽에서는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과연 [2절판 초간본]에 수록된 희곡 36편을 전부 집필한 실제 작가인가 아니가, 이 오래되고 소모적인 논쟁을 이 책에서 다룰 생각은 없다."는 다프네 뒤 모리에 여사의 [The Winding Stair]에서의 문장을 인용하고 있다.  그래 나는 "이 오래되고 소모적인 논쟁"이 있어왔는지도 몰랐다! 그렇기에 이 책은 내겐 완벽한 충격이었다. 내가 어설프게나마 알고 있는 엘리자베스시대의 영국사를 말짱 허물어버린 충격의 책. 약간의 호들갑스러움을 더해 얘기한다면 이 책은 내가 근래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충격적인 책이다. 전혀 몰랐던 이 논쟁의 한 가운데로 나를 끌어들인.

 

    책의 내용을 내가 이해한 바대로 간단히 요약해보자면 이러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처녀 여왕 엘리자베스. "나는 국가와 결혼했다."라고 했던가. 뭐 하여간 그 비슷한 말을 남긴 걸로 기억하고 있다. 바람둥이(?)였던 헨리8세와 그의 둘째 부인 앤 볼린 사이에서 태어났고, 일생동안 결  혼  하  지  않  았  으  며,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했고, 셰익스피어를 인도와도 맞바꾸지 않겠다고 했다던가.. 내가 대충 그리고 있던 엘리자베스여왕. 그런데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엘리자베스는 처녀가 아니라 두 아들의 어머니였고(물론 공식적으로는 부인되었고 부인했지만), 그의 두 아들 중 첫번째 아들이 프랜시스 베이컨이라는 것. 더 충격적인 사실은 바로 그 프랜시스 베이컨이 실제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셰익스피어 작품의 작가라는 것!! 그에게 이름을 빌려준 스트랫포드의 "윌 샥스퍼"는 그저 촌뜨기 배우에 불과했다는 사실. 책을 읽으면서 너무 놀라웠다. 이런 논쟁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도 놀라움이었지만, 책에서 말하고 있는 셰익스피어 작품의 탄생배경이 "정황상" 프랜시스 베이컨의 경험과 너무나도 일치하고 있기 때문에...

 

    우선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의 가족(베이컨가)과 전혀 닮지 않았다. 책 52쪽에 실려있는 그의 친부 레스터경과 베이컨의 얼굴을 비교해보면서 어찌나 놀랐던지.. 각도가 비슷해서인가 정말 닮았다. 또 [로미오와 줄리엣]은 베이컨이 프랑스 궁정으로 도피 혹은 망명 생활을 하던 중에 만난 연상의 여인 마고공주(당시엔 이미 유부녀)를 향한 사랑에 의한 저작이라니.  책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묻게 된다.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이 문장 사실이오? 하고... 금서를 읽고 있는 기분이랄까..? "충격의 연속"이라는 표현은 내 무지함의 역설일 따름인가?

 

    논쟁의 한 가운데서 다른 쪽을 비판하려면, 시비의 대상이 되는 양쪽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셰익스피어 논쟁의 한쪽 밖에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스트랫포디안(스트랫포드 출신의 그 배우가 셰익스피어의 원작자라고 하는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에는 설득당하지 못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베이컨 - 셰익스피어 설에 전적으로 설득당해 버렸다. 물론 이 책이 거의 전적으로 근거를 삼고 있는 오빌오웬의 [Sir Francis Bacon's Cipher Story]가 과연 믿을만한 근거자료인가가 우선 되어야 하지만 말이다.  이 흥미진진한 진실게임으로 초대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앞으로는 더 관심있게 지켜볼 것 같다. 엘리자베스 시대의 영국에 대해서. 위대한 철학자로만 알아왔던 프랜시스 베이컨의 진짜 얼굴에 대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과연 누구인가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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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가게
장 퇼레 지음, 성귀수 옮김 / 열림원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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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실패한 삶을 사셨습니까? 당신의 죽음만큼은 성공을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이 책의 주무대인 자살가게의 광고문구, 책의 띠지에 둘러진 이 문구가 무척 자극적이다. 책을 충동구매라도 해서 보고 싶게 만드는 문구이기도 하다. 제목부터 독특하지만..  "실패한 삶"이란 것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고, 그런 것이 있을 것 같지도 않지만, 살아가면서 한번쯤 자신의 삶이 "성공적이지만은 않다"고 생각해 봤을 법하다. 누구라도 말이다. 2008년의 연초, 지금까지의 내 삶은 주관적으로 봤을 땐 "실패"에 가까운 그것이라고 절망적인 기분이 되어 말해 본다. 내 마음대로, 내 계획대로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고, 자꾸만 이상한 갈림길로 빠져들어가는 듯한 내 삶이 더럭 겁이 나기도 한다.
    책 표지에 그려진 음산한 분위기의 인물들. 이 책은 삶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그리고 유난히 크게 그려진 저 캐릭터. 보고자 하는 대로 보이는 거겠지. 책을 읽기 전엔 이 캐릭터조차 내 눈에 침울하고 뭔가 괴기스런 분위기를 느끼게 해 주었다. 입에 물고 있는 야릇한 미소조차 자살을 권유하는 캐릭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검붉은 색의 사과는 그렇다면 독사과? 한입 베어물고 나면 고통없이 "가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며 책을 펼쳐들었다.

    이야기의 주무대는 "자살가게"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죽음만큼은 성공을 보장해준다는" 자살가게. 목매는 밧줄과, 발에 매달고 물에 뛰어들면 가라앉게 만드는 고리 달린 벽돌과, 세푸쿠(할복자살)용 기모노와 칼 세트를 비롯해 각종 독약을 판매하는 자살가게. 10대째 자살로 이어져온 가계의  튀바슈 가문의 사람들.. 아들딸의 이름을 자살한 유명인의 이름 - 반고흐의 이름 뱅상(빈센트), 몬로의 이름 (마를린)으로 지어주는 것으로부터 이 집안의 상황이 대강 엿보인다. 웃음을 부정하는 엉뚱한 모습의 가족들을 보면서 나는 어이없게도 웃음이 나왔다. 깡마른데다 늘 두통에 시달려 머리에다 붕대(?)를 감고 있는 이 집의 첫째 아들 뱅상은 이 집안의 유전적 특성을 가장 완벽하게 물려받은 인물로써 다양한 자살용품을 창안하고 만들어내는 인물. 그가 만든 자살테마파크 모형은 가끔 뉴스에서 보아온 놀이공원에서의 안타까운 사고에 대한 풍자로 보였다. 그리고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지만, 그런 스스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마릴린 또한 이 가족의 일원으로써 손색이 없다. 비관적이고 절망적인 성격과 행동거지와 말투. 생일축하의 의미가 "살아가야 할 날이 한 해 더 줄었다는 것"인 이 엽기가족으로써 말이다. 하지만 이 집안의 돌연변이라 할 막내아들 알랑- 책 표지에 사과를 들고 있는 그 아이 말이다.-  매사에 긍정적이고 웃음을 머금고 있는 아이 알랑으로 인해 모든 것이 엉망(?)이 되고 마는, "우리가 제공하는 자살은 철저하게 성공이 보장된 것입니다. 만약 죽지 않는다면 전액 환불이니까요!"(p29)를 자랑하던 자살가게. 책을 다 읽고 나서 책앞표지를 다시 보니 사과를 든 알랑의 캐릭터가 희망을 전해주는 듯하다. 보기에 따라서 똑같은 사실조차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자살이라는 소재를 가볍고 해학적인 의미에서 다루고 있는 이 이야기가 영화화된다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다. 옮긴이 성귀수씨의 말마따나  그래!! "웬만하면 자살하지 말자!"  그래도 굳이 해야겠다면, "자살은 노후로 미루세요!"(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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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엔젤 - 스탈린의 비밀노트,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2 ㅣ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
로버트 해리스 지음, 조영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이 책의 저자인  로버트 해리스는 이미 [폼페이]와 [이그니마]등을 통해 국내에도 꽤알려진 작가라지만 나는 그의 작품을 처음으로 접했다. 책을 받아들고서 예상치 않게 두꺼운 분량 때문에 읽기 어려울까봐 걱정부터 앞섰다. 더군다나 "스탈린의 비밀노트"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 때문에 내용 또한 "뭔 소리지..?" 싶을 정도로 어려운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걱정까지 더해졌다. 그러나 의외로 쉽게, 그리고 속도감 있게 읽혀졌다. 읽는 재미가 있는 책이랄까..? 그리고 책의 띠지에 쓰인 "멜 깁슨의 아이콘 프로덕션, 극장판 영화로 영화화 예정!"이라는 문구 덕분에, 영화화되었을 때의 장면을 상상하는 재미가 더해지기도 했다.
 

   이야기는 스탈린의 죽음을 목격한( 그 당시엔 젊은 경비병이었던) 한 노인-라파바-의 회상과 더불어 시작된다. 스탈린의 비밀노트를 그가 숨겨두었다는 진술. 그리고 스탈린의 비밀노트를 찾아내려는 영국인 역사학자 켈소.(그가 이 책의 주인공 격이다. 영화화된다면 멜 깁슨이 켈소 역을 맞게 되는 걸까..?) 이야기의 중반부까지 나의 관심은 오로지 "스탈린의 비밀노트"에 무슨 이야기가 적혀있길래, 그리고 현재 시점에서 그것이 어떤 영향력을 가지는 것이길래 여러 사람이 목 매달고 있나 싶었다. 스탈린이란 이름은 많이 들어보았지만 스탈린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생긴 의문점일 수도 있겠다. 러시아인들, 조금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구소련인들에게 스탈린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사람인지가 궁금하다. 내가 알고 있는 독재자, 히틀러만큼이나 많은 인명을 살상한 사람 정도의 이미지라면, 그의 비밀 노트가 가지는 영향력은 거의 제로이거나 마이너스일텐데, 이 소설을 통해 보자면 그게 아닌가 보다. 스탈린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한다는 과제를 함께 던져주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이야기의 중반을 넘어서면 핵심은 스탈린의 비밀노트가 아니라 정확히 얘기하자면 스탈린의 정부(情婦)였던-이건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중요한 사실이다- 한 소녀 안나 사파노바의 것임이 밝혀진다. 오로지 스탈린의 비밀노트만을 추적하던 나는 약간의 배신감 같은 걸 느꼈다. 이건 또 뭐야? 스탈린의 비밀 노트가 아니잖아?! 그렇다면 안나 사파노바의 비밀노트엔 무슨 이야기가 적혀있나? 열렬한 공산주의자의 모습을 가진 어린 소녀의 모습?  "어, 엄마, 아빠, 그는 고독한 분이세요! 제 가슴이 아릴 정도로요. 결국 그분도 우리처럼 살과 뼈로 된 인간이랍니다. 게다가 가까이서 보니 너무 늙으셨더군요. 사진에서 볼 때보다도 훨씬요. 콧수염은 하얗게 세었고, 수염 끝은 파이프 담배 때문에 노랗게 변색되었더라고요. 게다가 이는 거의 하나도 없고 숨을 쉴 때마다 가슴에서 딸그락 소리까지 났어요. 그분이 불쌍해요. 우리 모두가 불쌍해요."(p256)라는 그분, 스탈린의 인간적인 모습? 그게 비밀이라고 할 만큼 혹은 밝혀진다면 현재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값어치가 있는 이야기들인가..? 어찌보면 너무 평범한 이야기가 아닐까? 스탈린 같은 거물급 독재자의 의외의 인간적인 면모, 그리고 그 옆에 한명쯤 있었을 법한 어리고 예쁜 정부(情婦)의 이야기라면.. 아닐텐데.. 분명 뭔가 더 있단 말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맞았다. 스탈린에 의해 선택되어진 - 집안의 유전적 배경까지 조사한 후에 선택되어진 - 그녀 사파노바와 스탈린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 있었던 거다.!! 스탈린의 숨겨진 아들 말이다. 나의 이해력 부족 때문인지 "그런데 그게 왜 문제가 되는 건데..?" 싶었다. 그러다 곧이어, 아. 그 아들이 엄청난 인물이라면 문제가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렇다면 스탈린의 숨겨진 아들은 어떤 인물일까?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당시의 러시아 대통령 "옐친"이 그 아들일까? 아님 구소련을 해체시킨 "고르바초프"? 오.. 그 정도라면 엄청나겠는걸.. 전혀 엉뚱한 추측이었다는 게 곧 밝혀지지만 말이다.

  

   스탈린의 아들에 대해서는 다음에 책을 읽을 사람들을 위해 여기까지만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무얼까..? 어디일까..? 누굴까..?"를 끊임없이 추리하면서 읽는 재미가 읽는 책이었다. 사실 이 글을 통해 작가가 전달하려는 메세지를 정확하게 이해하지는 못했다. 역자 후기에 나와있는 것처럼 "이놈의 어리석은 역사가 다름 아닌 우리들의 일그러진 이성에 의해 끊임없이 반복되어 온 것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p510) 같은 것, 혹은 광기의 역사 같은 것을 말하고자 함이었을까..? 사실과 허구가 뒤섞인 이야기였지만, 내겐 스탈린에 대해 그리고 현재의 러시아에 대해 한발자국 정도 가깝게 만들어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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