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는 없다
버지니아 펠로스 지음, 정탄 옮김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제목이 도발적이라고 생각했다. 셰익스피어가 없다니..? 예전에 나온 [~는 없다]는 류의 제목을 달고 나온 선구적인(?) 책이라 할만한 그 책처럼  고정관념으로 굳어진 무언가에 대한 생각의 틀을 깨뜨리기 위해 쓰인 그런 책인가도 싶었다. 그렇다면 너무 진부한 제목 설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고.. 그게 아니라면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번역되었다는 셰익스피어의 저작이기에 그의 위대함을 극찬하기 위한 반어적인 표현인가?  제목만으로도 이런저런 궁리를 하면서 펼쳐든 책.

 

   우선 책 앞날개 저자 버지니아 펠로스에 대한 소개글. "위대한 인물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그중 일부만 이해받고 있는 철학자 베이컨에 대한 오랜 연구 끝에 그녀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고는 [셰익스피어는 없다]를 집필하기에 이르렀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버젓이 셰익스피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책에 왠 베이컨? 베이컨과 셰익스피어가 무슨 관계가 있길래...?  그녀가 발견한 "놀라운 사실"이 뭘까 궁금했다. 베이컨과 셰익스피어? 혹 둘이 동시대 인물인가?(각각의 이름은 들어보았으나, 또 그들이 영국의 대표적인 인물이라는 것도 알았지만 동시대의 인물인지는 몰랐었다.) 그럼 혹 그녀가 발견했다는 "놀라운 사실"은 베이컨 =  셰익스피어?  그냥 넌지시 짚어보았다. 그런데 나의 어설픈 추측이 맞아버린 거다! 이런...

 

    이 책 172쪽에서는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과연 [2절판 초간본]에 수록된 희곡 36편을 전부 집필한 실제 작가인가 아니가, 이 오래되고 소모적인 논쟁을 이 책에서 다룰 생각은 없다."는 다프네 뒤 모리에 여사의 [The Winding Stair]에서의 문장을 인용하고 있다.  그래 나는 "이 오래되고 소모적인 논쟁"이 있어왔는지도 몰랐다! 그렇기에 이 책은 내겐 완벽한 충격이었다. 내가 어설프게나마 알고 있는 엘리자베스시대의 영국사를 말짱 허물어버린 충격의 책. 약간의 호들갑스러움을 더해 얘기한다면 이 책은 내가 근래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충격적인 책이다. 전혀 몰랐던 이 논쟁의 한 가운데로 나를 끌어들인.

 

    책의 내용을 내가 이해한 바대로 간단히 요약해보자면 이러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처녀 여왕 엘리자베스. "나는 국가와 결혼했다."라고 했던가. 뭐 하여간 그 비슷한 말을 남긴 걸로 기억하고 있다. 바람둥이(?)였던 헨리8세와 그의 둘째 부인 앤 볼린 사이에서 태어났고, 일생동안 결  혼  하  지  않  았  으  며,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했고, 셰익스피어를 인도와도 맞바꾸지 않겠다고 했다던가.. 내가 대충 그리고 있던 엘리자베스여왕. 그런데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엘리자베스는 처녀가 아니라 두 아들의 어머니였고(물론 공식적으로는 부인되었고 부인했지만), 그의 두 아들 중 첫번째 아들이 프랜시스 베이컨이라는 것. 더 충격적인 사실은 바로 그 프랜시스 베이컨이 실제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셰익스피어 작품의 작가라는 것!! 그에게 이름을 빌려준 스트랫포드의 "윌 샥스퍼"는 그저 촌뜨기 배우에 불과했다는 사실. 책을 읽으면서 너무 놀라웠다. 이런 논쟁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도 놀라움이었지만, 책에서 말하고 있는 셰익스피어 작품의 탄생배경이 "정황상" 프랜시스 베이컨의 경험과 너무나도 일치하고 있기 때문에...

 

    우선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의 가족(베이컨가)과 전혀 닮지 않았다. 책 52쪽에 실려있는 그의 친부 레스터경과 베이컨의 얼굴을 비교해보면서 어찌나 놀랐던지.. 각도가 비슷해서인가 정말 닮았다. 또 [로미오와 줄리엣]은 베이컨이 프랑스 궁정으로 도피 혹은 망명 생활을 하던 중에 만난 연상의 여인 마고공주(당시엔 이미 유부녀)를 향한 사랑에 의한 저작이라니.  책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묻게 된다.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이 문장 사실이오? 하고... 금서를 읽고 있는 기분이랄까..? "충격의 연속"이라는 표현은 내 무지함의 역설일 따름인가?

 

    논쟁의 한 가운데서 다른 쪽을 비판하려면, 시비의 대상이 되는 양쪽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셰익스피어 논쟁의 한쪽 밖에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스트랫포디안(스트랫포드 출신의 그 배우가 셰익스피어의 원작자라고 하는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에는 설득당하지 못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베이컨 - 셰익스피어 설에 전적으로 설득당해 버렸다. 물론 이 책이 거의 전적으로 근거를 삼고 있는 오빌오웬의 [Sir Francis Bacon's Cipher Story]가 과연 믿을만한 근거자료인가가 우선 되어야 하지만 말이다.  이 흥미진진한 진실게임으로 초대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앞으로는 더 관심있게 지켜볼 것 같다. 엘리자베스 시대의 영국에 대해서. 위대한 철학자로만 알아왔던 프랜시스 베이컨의 진짜 얼굴에 대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과연 누구인가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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