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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하라,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권태현 지음, 조연상 그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에스프리"가 뭐지? 책 표지에 감성 에스프리라는 문구가 나오는데 그 말이 뭔지를 몰라서 인터넷검색부터 서두르는 나. 앎이 참 얕은 사람이다. 에스프리. esprit. "육체에 대한 정신을 의미하며, 근대적인 새로운 정신활동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인다. 동시에 프랑스인 특유의 발랄한 지성적인 정신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프랑스인들은 세련되고 생기 있는 대화를 존중하는데, 그들의 재치 있고 빈틈 없는 발상을 에스프리라고 하며 영국 사람들의 ‘유머’와 좋은 대조를 이룬다." 아. 그렇구나. 고개 끄덕하고서 책을 펼쳐든다.
이 책이 라디오의 한 코너에 소개되었던 이야기를 묶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서 읽었기 때문인지 한편한편 읽을때마다 조용한 라디오를 듣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간간이 그려진 푸근한 파스텔톤의 그림도 그런 기분을 더해준다. 옆에서 누군가 조근조근 해주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은.. 이 책 26쪽에 나오는 먼 바다에 나가 잡아오는 물고기에 대한 이야기는 언젠가 들어본 듯도 한데 글을 통해 보니 "아!!" 하고 내 마음에 느낌표 두개를 찍어준다.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다가 육지까지 살아서" 온다는 그 물고기들. 내 삶은 어떠한가를 생각해 본다. "이미" 잘못된 갈림길로 들어와 버렸다고, 다른 어부의 물고기들처럼 지레 포기해버리고 "죽어"버렸던 건 아닐까? 살기위한 몸부림. 나는 살기 위해, 죽을만큼 절박하게 내 삶을 몸부림쳐 왔던가를 생각해본다.
이 책에는 여러 주제의 글들이 있지만 마음에 콱 소리를 내며 와 닿는 글이 있고, 그렇지 않은 글들이 있다. 가끔은 예전에 내가 읽었던 책에서 내가 밑줄 그은 문장을 보고 "여기에다 왜 밑줄을 그었던 걸까?"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예전의 나에게는 감동적이었거나 중요해 보였던 글이었기에 밑줄까지 그은 거겠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별 감흥이 없어져버린. 또 가끔은 예전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괜찮은" 문장을 발견해 낼 때도 있다. 그래서 책은 1회용품이 아닌가 보다. 두고두고 곁에 두고 펼칠 때마다 새로움이 가득한 것. 이 책도 지금의 내가 공감하는 부분은 크게 보이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아예 눈에도 들어오지 않은 것이리라.
이치에 맞는 말들이고 가끔은 격언처럼 가슴에 새겨두어야 할 말들이지만 이런 글을 읽다보면 글쓴이가 궁금해진다. 글쓴이는 "아무리 처지가 딱하고 불행만 겹치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 속에서 얼마든지 축복해 줄 수 잇는 일을 발견할 수 있다"(p100)고 한다. 글쓴이도 과연 그러할까? 매번 불행만 겹치는데도 자신의 삶을 축복할 수 있을까? 하고 괜히 삐딱하게 보는 거다. 내가 너무 꼬였나? ^^ 그러기에 저자는 들어가는 말에다 "경험이 부족한 세대를 함부로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라, -중략-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함게 고민해 보자는 의도로 쓴 것이다."고 밝히고 있는 것일까? 나 같이 삐딱한 사람들을 위해서 말이다.
사실 이런 책은 곁에 두고 틈틈이 읽어야 할 책인데 급한 성격에 한꺼번에 처음부터 끝까지를 다 읽어버렸다. 이 책에서 정의한 친구처럼 이 책을 닮고 싶다. 가까이 두고 오래 사귀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