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에 빠진 세계사 - 세상을 뒤흔든 뜻밖의 미스터리
치우커핑 지음, 이지은 옮김 / 두리미디어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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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끌벅적. 이합집산의 정치면 기사보다는 연예 가쉽란을 더 좋아하는 천박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이라 그런지 역사서도 흔히들 말하는 정사보다는 야사에 더 관심이 간다. 이런 천박한 나의 관심사에 대해 변명해보자면, 정사는 사람이 없는 사건의 연속이라면 야사는 그래도 과거 속의 "그들"을 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좋다는 정도로 핑계가 될 수 있을까? 역사서를 좋아해서 흔히들 말하는 "주류"의 역사책으로 줄거리를 잡고자 하면서도 종종 곁눈질을 하게 된다. 더 재미난 얘기는 없을까 하고... 이 책의 제목은 나 같은 사람에겐 관심의 대상일 수 밖에 없다. 특히 책 앞 표지에 실린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남자와 그를 껴안고 있는 한 늙은 남자에 관한 그림처럼 자극적인 소재를 담고 있는 표지와 함께라면 더더욱이나..

    고대사 부분을 읽으면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사를 살펴 볼 때면 누구의 말이 더 그럴 듯 한가에 대한 학자들의 내기를 보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제목처럼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다양한 고대사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앍고 있는 미궁(크레타섬의 미궁)은 궁전이었을까 무덤이었을까? 소크라테스는 악처와 일부러 결혼했다고..? 클레오파트라는 어떻게 죽었는가? 등등.. 정사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를 보면서 종종 곁가지쳐지는 궁금증.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왜 그랬을까? 그 건물은 무슨 용도였을까? 등에 대한 주제에 대해 소개를 하고 있는 정도랄까? 그런 면에서 볼 때 이 책은 깊이 있는 역사서는 아닌 것 같다.

     이 책의 고대부분을 읽으며 몇 가지 역사외적으로 단순히 이 책에 대해 궁금해진 것인데, 저자가 [무대 뒤편에서 바라본 역사 이야기]라는 서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이야기, "부루투스는 왜 카이사르의 칼을 순순히 받아들였을까?"(p5)라는 문장과 "기원전 410년 8월 '영원의 성' 로마가 하루아침에 멸망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전 세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p67)는 두 문장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책 49쪽에서 다루고 있는 카이사르에 관한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라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의 이야기인데, 부르투스가 카이사르의 칼을 받아들였다는 저 문장은 단순오타인지, 아님 나의 이해력 부족에서 비롯된 내용인지.. 마찬가지로 기원전 410년에 로마가 멸망했다는 이야기 또한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서로마가 망한 것은 기원후 476년 동로마가 망한 것은 그로부터 약 1000년 후라고 알고 있는데.. 뭔 얘기지...?

    중세사 부분을 읽으면서는  표지에서 강한 인상을 남겼던 그림이 러시아의 이반 4세와 그의 아들에 얽힌 불행한 사건과 관련한 이야기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책의 장점이라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주제와 관련된 그림이나 유적, 조각 작품등 다양한 미술품의 사진도 함께 실려 있다는 것이다. 서양의 명화를 볼 때면 그들의 역사나 신화에 대해 얼마간의 지식이 있어야 이해가 가능한 작품들이 많았는데, 이 책을 통해 역사를 중심에 두고 관련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웠다. 

    근대사에서 다루고 있는 다양한 주제들 중에서 동화작가 안데르센의 출생에 대한 비밀은 처음으로 알게 된 사실이라 흥미로웠다.  또한 어렸을 때 믿거나말거나 식의 책에서 읽고 기억에 남았던 히틀러가 사실은 여자였다?에 관한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나치의 하켄크로이츠와 관련된 설명을 진지하게 읽다가 마지막 문장 때문에 웃음이 났다. "로버트 페임은 당시 창문에 비춰진 "卍"의 모습을 본 히틀러가 좌우 바뀐 것도 모르고 무조건 "卍"(뒤집어서 인용해야 하는데 편집하기 어려워서 이렇게밖에 인용을 못하겠다. -서평자) 를 나치즘의 상징으로 사용했다고 설명했다."(p166)는 문장 말이다.

   그리고 "역사"라기보다는 "시사"적이라고 생각되는 문제를 다루고 있는 현대사 부분. 케네디의 죽음, 워터게이트사건, 클린턴의 사생활 문제, 다이애나비의 죽음과 911테러, 오사마빈라덴까지.. 역사서가 가지고 있는 딱딱함(?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을 벗어나서 재미있고 편하게 큰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고대사 중세사 근대사 현대사 등 큰 틀의 구분은 있어도, 그 각각의 틀 안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들은 약간 뒤죽박죽이라는 느낌이 든다. 특정 국가에 대한 이야기를 묶든지, 그렇지 않다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를 배치했더라면 읽기에 더 편리했을 꺼라는 생각 역시 나만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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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송필환 옮김 / 해냄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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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접한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이다. 예전에 [눈먼 자들의 도시]라는 소설을 통해 그의 이름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국내 작가들의 작품조차 많이 접해보지 않은 터라 몇몇 고전을 제외한 외국작가의 작품으론 그의 작품이 내겐 처음이었던 것 같다. 따옴표도 문단구분도 없이 줄줄이 나오는 그 글을 읽으며 처음에 적응이 안 되서 "뭔 말이야..?" 하면서도 소재가 너무 독특해서, 그의 글 쓰는 방식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다 보니 별 무리 없이 읽었던 기억이 난다. 얼마전엔 [눈뜬 자들의 도시]라는 작품도 나왔다던데, 아직 읽어보진 못했던 차에 이 책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를 먼저 읽게 되었다. 독특하다. 그리고 신선하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자, 소설 속에서 유일하게 이름이 언급되고 있는 사람 주제 씨. 그는 중앙호적등기소에서 일하는 사무보조원. "각자는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처리해야 할 임무가 있고, 최소한의 일만을 상관에게 넘겨 주면 된다. 말하자면 사무 보조원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잠시도 쉴틈없이 일해야 하고, 일반 직원들은 가끔 올라오는 일들을 처리하고, 부소장들은 정말 드물게 업무에 눈을 돌리며, 소장은 거의 아무 일도 하지 않는"(p9) 관료화된 행정 기구의 말단에서 일하고 있는 별 존재감 없는 공무원. 나이는 오십을 바라보고 있고 중앙호적등기소에서 25여년간을 일해왔으며, 결혼을 한 적도 없고, 지금은 등기소 옆의 작은 관사에서 홀로 생활하는 사람이다.

    주제 씨 이외에 이 소설에 등장하는 어떤 인물에게도 "이름"이  없다. 소장, 부소장, 정식 직원, 사무 보조원. 혹은 3층 집 여자, 1층에 사는 할머니 혹은 세탁소 주인, 교장 선생님, "모르는 그 여자" 혹은 "미지의 그 여자"가 있을 뿐.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라는 타이틀은 독자들로 하여금 사소한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게 한다. 왜 이 소설 속 인물들은 이름이 없을까? 작가는 현대사회의 익명성과 대중성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하긴.. 내 생활을 둘러봐도 내 이름이 중요하게 언급될 만한 일들이 없다. 은행에 가면 "몇 번 손님 몇 번 창구로 오세요"이고, 주차를 잘 못 해뒀을 땐 "0000번 차주님 안내실로 와 주세요"고 학교 다닐 때 담임선생님 외에는 "40번 읽어봐." 였었다. 은행에 가면 나는 내가 부여받은 작은 쪽지 속의 번호가 됐고, 주차장에선 0000번 차의 차주가 되었고, 학교에선 "40번"이었다. 이름 없는 그들 그리고 나.

   등기소에 일하는 사무보조원 주제 씨에게도, 다른 직원들에게도 등기 서류 속의 개개인은 중요하지 않았던 건지도 모른다. "등기소는 단지 언제 태어나고, 언제 죽고, 그런 것에만 관심이 있으니까요. 우리가 결혼을 하든, 이혼을 하든, 홀몸이 되든, 등기소에선 그런 것엔 관심도 없어요. 그런 일들 가운데서 우리가 행복하든 그렇지 않든, 행복과 불행은 마치 유명인들과 같은 거예요, 인기가 왔다가 사라지는 것처럼, 그보다 더 끔찍한 사실은, 등기소에선 우리가 누군지조차도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거죠,"(p207)

    그런데 우리의 주인공 주제씨가 가진 요상한(?) 취미는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널리 알려진 국내 유명인들의 기사"(p18)들을 수집하여 정리하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그 유명인들의 정확한 정보 - 예를 들자면, 부모가 누구인지, 그의 세례에 참석한 대부는 누구인지, 정확한 출생지는 어디인지 - 등을 알아내기 위해 그의 관사에서 중앙호적등기소의 사무실로 통하는 "금지된 문"(p21)을 열게 된다. 등기소에서 몰래 찾아낸 유명인사들의 서류에 딸려온 한 평범한 여자의 서류. 거기에서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주제 씨는 "그 미지의 여자"를 조사한다.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를... 그녀의 주소를 찾아가고, 이미 오래전에 이사 갔다는 말을 하는 그 여자의 이웃 할머니에게서 그녀에 대한 다소의 정보를 알아내고. 그녀가 다녔다는 학교에 몰래 침입하여 그녀의 기록부를 찾아내고. 그녀가 다녔던 학교에서 수학교사로 있었다는 사실도 알아내고 이혼을 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리고 최종적으론 그녀가 얼마전에(그의 이상한 조사가 시작되고 난 얼마 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까지. 

    왜 주제씨는 그녀의 행적을 알아야겠다고 결심했던 것일까...? 유명하지도 않은 그저 평범했던 한 여자의 삶의 행적을 찾아내느라  심한 독감으로 앓아누울만큼, 20여년간 한번도 그런 적이 없던 그가 일주일치의 병가를 내게 될 만큼 중요했을까..? 그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인간 존재에 관한 문제였을까...? 엉뚱하게도 몇 해전에 들었던 뉴스가 생각난다. 부모와 떨어져서 다른 도시에서 자취를 하고 있던 한 대학생이 자취방에서 숨진지 몇 개월만에 발견됐다는 뉴스. 사인은 영양실조. 그가 세들어 살던 집의 주인은 몇 달치 세금과 방세를 받았기에 세입자에 대해 "간섭할" 일이 없었다고. 그의 학교 선후배들은 그가  휴학계를 낸 터라 그런 줄 알았다고. 부모는 바빠서 연락을 못 하겠거니 생각하고 지내왔었다고. 그 뉴스를 들으면서 얼마나 섬찟했던가. 개별화된 현대인의 삶과 그 속에서 겪는 소외감에 몸서리쳐졌다.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이야기도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내 마음대로 추측해본다. 

   주제 씨의 끊임없는 독백(혹은 천장과의 대화), 마침표와 쉼표 외에는 어떤 문장부호도 사용되지 않는 작가의 글 쓰는 방식은 아직 적응이 잘 안 된다. 그래서 두 사람의 대화를 읽을 때면 헷갈리는 부분이 종종 있다. 누구의 말인지..(내 이해력의 부족 때문인가 보다.)

    참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하는 책이다. 내 멋대로의 해석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에 대해, 개별화된 인간 개개인에 대해 가장 많은 생각을 했다. 몇 해 지나 이 책을 꼭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결심을 해 본다. 사람에 대해 좀 더 많은 경험을 하게 된 나는 이 책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게 될 것인가가 궁금해지기 때문에.. 그의 다른 작품들이 궁금해진다. 욕심내서 찾아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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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의 해석 - 프로이트 최후의 2년
마크 에드문슨 지음, 송정은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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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표지에 그려진 두 인물 프로이드와 히틀러에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던 날들이 있었다. 하지만 두 인물에 대해 잘 모른다. 잘 모르기 때문에 더 궁금했다. 특히 프로이드. 학창시절 심리학을 독심술 정도로 생각할만큼 심리학에 대해 무지했으면서도(지금도 잘 모르지만.) 심리학이란 학문에 너무 관심이 가서 [꿈의 해석]이니, [프로이드 심리학입문] 따위의 책을 사들인 기억이 난다. 어려웠다. 빈약한 나의 이해력 탓에 소화시킬 수 없었다. 아직도 책장 한켠에 꽂혀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히틀러. 내겐 풀리지 않는 매듭과 같은 숙제 "역사"에 대한 관심으로 히틀러 역시 한 때 나의 관심의 대상이었다. 히틀러라는 이름을 내가 언제 처음으로 알게 됐던가 생각해보니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읽은 미스테리 역사(책 제목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믿거나말거나 식의 괴상한 책이었다.)이야기 모음집에서 히틀러가 사실은 여자였다는 다소 황당한 이야기를 통해서였다.
 

  궁금한 두 인물이 한꺼번에 그려진 책이라니 너무 궁금했다. 하지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 책은 히틀러보다는 프로이드에 관한 책이다. 프로이드의 마지막 생애 2년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옮긴이의 말을 통해 보면 이 책의 원제는 [The Death or Sigmund Freud]. 프로이드의 죽음. 옮긴이는 "그가 죽기 전 2년간의 행적을 좇은 전기에 다름 아니지만, 그 정의만으로는 이 책에 담긴 의미를 정당히 평가할 수 없다."(p293)는 생각에 이 책의 제목을 [광기의 해석]이라고 설정한 듯 하지만, 글쎄.. 책을 다 읽은 나로선 이 책의 제목은 원제 그대로 [프로이드의 죽음]이 더 적합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프로이드 생의 마지막 2년. 1938년과 1939년. 물론 세계사의 측면에서 보자면 중요한 사건들이 일어났던 시기이다. 세계 2차 대전과 유대인 학살. 그 중심에 히틀러가 있었던 것도 맞다. 하지만, 광기의 중심에 히틀러가 있었다는 것을 부정할 순 없지만, 이 책의 제목을 바꿀만큼 히틀러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다루고 있진 않은가..? 오히려 이야기의 대부분은 프로이드가 말년에 어떤 병으로 고통을 받았으며, 어떤 수술을 받았고, 런던으로 망명한 후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는가가 아닌가?  "그는 담배를 끊으라는 말을 들을까 봐 한동안 의사들이 그 사실을 알지 못하게 하려고 애"(p127)쓸 만큼 애연가였고, 애완견 륀을 사랑했고, 골동품을 좋아했던 프로이드의 인간적 모습 말이다.  프로이드의 생이 진행되고 있는 시간적 배경으로서 히틀러가 몇 번 언급되고 있을 따름인 것 같은데... 

    히틀러와 나치의 광기에 대해 몇 부분 이야기해보자. "정신분석학회를 차지한 나치는 프로이트의 한 마디 한마디가 거의 다 옳다고 생각했다. 그가 쓴 모든 글들은 근거가 확실한 것이었다. / 중략 / 정신분석학은 유대인에게 한정된 과학이라는 것이다. / 중략 / 유대인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사로잡힌 민족, 무의식이 폭력과 성으로 무장된 민족, 유아기로부터 성정체성을 갖기 쉬운 민족으로 여겨진 것도 이 때문이다. "(p56) 그래서였던가. 유대인에 대한 무자비한 만행. 나치가 유대인들에게 가한 무자비한 폭력이 몇 장면 소개되고 있다. 프로이드의 런던 망명 또한 그 때문이다. 영화 [쉰들러리스트]와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면서 인간에 대한 예의, 인격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도 없이 유대인을 물건 취급하던 나치와 그에 휩쓸린 독일 군중을 보면서 분노했던 기억이 났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이런 집단적인 광기를 유발시켰는가. 1차세계대전 패배와 베르사유조약(독일인들은 베르사유의 명령이라고 했다던)에서 막대한 배상금을 떠맡았다는 이유만으론 납득이 안 된다. 프로이드 또한 그러한 생각을 했던가..? "그녀는 프랑스가 베르사유조약에서 독일을 박해한 것이 오늘날의 위기를 불러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독일이 전재에서 이겼다 해도 히틀러와 나치는 반드시 나타났을 것이며, 사악한 행각을 벌였을 것이다. "(p224) 이 부분에선 그렇다면 프로이드는 나치와 히틀러의 등장을 어떻게 이해했던가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지 않아서 아쉬웠다. 

   프로이드의 말년의 생애에 대한 궁금증을 채우기엔 괜찮은 책이었다. 하지만, 책 제목을 보면서 기대했던(?나의 오해였던가?) 히틀러와 프로이드의 드라마틱한 인생과 대립점을 찾을 수는 없는 책이었다. 이 또한 나의 독해력 부족에서 오는 상실감일까..기대가 너무 커서였을까. 내 기대에는 조금 덜 차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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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풍경 - 정약용 시 선집 ㅣ 돌베개 우리고전 100선 10
정약용 지음, 최지녀 편역 / 돌베개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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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이다. 시는 어렵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내 마음에 자리잡은 걸까?

[송알송알 사리잎에 은구슬 /  조롱조롱 거미줄에 옥구슬 / 대롱대롱 풀잎마다 총총 / ....]. 동시를 읽으며 머리 속에다 동시 속의 풍경을 그려볼 줄도 알았고, 동시에다 곡을 붙인 동요가 좋아서 줄곧 흥얼거리기도 했던 어리 시절이 있었건만. 동시 수준을 벗어난 시(詩)를 배우면서부터가 아니었을까? 시에 사용된 각종 수사법에 대한 "설명", 시인은 지금 이 대목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라고 "설명되어지는" 시를 접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글을 읽고 나서 내가 생각했던 느낌과 "설명되어진" 시의 느낌이 너무나 달라서 "시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는 벽을 두껍게 쌓아왔던 모양이다. 

   한 편의 시도 아니고 시"집"이어서 더 겁이 났다. 겁이 나서 조금조금씩 읽고, 읽은 걸 소화시키려고 애쓰다 보니 책 읽기가 더뎠다. 사실 다른 사람의 시집이었다면 시도조차 안 해봤을테다. 다산 정약용의 시라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예전에.. 정일근 시인의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라는 시를 읽어주셨던 분이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다산이 쓴 시는 아니었지만, 그 시와 시를 읽어주셨던 그 장면이 영화의 한 장면마냥 머리 속에 각인되어 쉽게 잊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 시집을 읽는 사이엔 조선시대 여류시인이라 할 난설헌 허초희에 관한 소설도 한 권 읽었다. 소설에 나온 난설헌의 시와 다산의 시를 비교해 볼 수 있어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그리하여 고등학생 이상이면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작품에 간단한 해설을 붙이기도 하는 등,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하였다."는 우리고전100선의 간행사를 읽으면서 제발 어렵지 않길 바랬다. 다행히도 "시는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약간은 허물 수 있었다.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번역된 말투가 어렵지 않아서 편했다. 이 책에선 90편 정도의 다산의 시를 [세상을 향한 뜻 / 오징어와 해오라기 / 백성이 아프니 나도 아프네 / 하늘 끝에 홀로 앉아 / 달빛이 내 마음을 비추네 / 아내와 아들을 그리며 ]라는 몇 가지 주제로 분류해서 싣고 있다. 

   다산이라면 으레 국사 시간에 배웠던 애민시, 사회시가 먼저 떠올랐다.  역시나 국사시간에 배웠던 "애절양"이란 제목의 시도 "스스로 거세한 사내를 슬퍼함"이라고 쉽게 번역되어 있었다.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 오랜 유배생활에서 오는 적막함 같은 게 그의 시 곳곳에서 느껴졌다. 내가 이 시집에서 가장 관심있게 읽었던 부분은 [아내와 아이들을 그리며]란 주제로 분류된 그의 개인적인 이야기다. 실학을 집대성했다는, 거중기를 이용해 화성을 쌓았다는, 오랜 유배생활을 했고, 수많은 저서를 남겼다는 그의 사회적인 모습은 귀동냥을 통해서도 익숙하지만, 다산의 가정에서의 모습은 어떠했을까가 궁금했다.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워 않노라 / 그리워 않노라 슬픈 꿈속의 그 얼굴"(p209)로 나타나는 아내에 대한 절절한 사랑이 애틋했다. 부러웠다. 그의 아내가.. 그리고

  생김새는 내 자식 같은데 / 수염이 나서 딴사람 갵애. / 집에서 보낸 편지를 갖고 오긴 했지만 / 틀림없는 진짜인지 의심스러워. (p210)라는 "8년 만에 아들을 만나"라는 시를 보며 웃었다. 웃다가 생각해보니 시에 붙은 해설처럼 "이내 슬퍼서 마음이 아파"왔다. 8년만에 아들을 만난 그 마음이 어떠했을까 생각하니...

  사회시, 애민시를 생각하면 안타깝고, 속이 아리는 시들이 많은데, 113쪽에 실린 그의 "보리타작"이라는 시는 슬픔과 고통이 아니라 풍요로운 즐겁고 흥겨운 백성들의 모습을 보게 된 것 같아 좋았다.

  독해력도 상상력도 부족한 내겐 산문보다 시가 훨씬 어렵다. 하지만 다산의 시를 읽다보니 시(詩)도 읽을만한 것임을. 그 속에도 인간의 희노애락이 담겨져 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내가 처음으로 시도한 시 읽기였기에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종종 꺼내 읽어보아야겠고, 다른 시인과 시도 많이 접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우선은 책을 덮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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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설헌, 나는 시인이다
윤지강 지음 / 예담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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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을 한 권 읽었다. 마음 한켠이 아릿하다.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에 기인하는 것이지만, 나는 역사소설을 좋아한다. 소설을 통해 "옛날"을 보게 되는 게 좋다. 지금과는 다른 시간 속에 있는 그들을 만나는 게 좋다. 한동안 책읽기가 재미없어서 새로운 책을 읽기 "시작"하는 게 겁이 났다. 또 재미없는 책을 만나면 어떡하나..? 걱정이 앞서 책읽기를 쉬어볼까 생각했었다.  망설이다 선택했는데, 잘 읽었다 싶다. "잘 썼다"거나 "못 썼다"거나 객관적인 평을 내릴 수 있을만한 위치에 있는 내가 아니다. 내 취향엔 썩 맞는 작가와 글을 만나게 되었으니 "괜찮은 소설"이었다고 주변에 말을 해 줄 수는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읽고나서 책 읽기에 흥미를 읽어버린 게 아니구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허난설헌. "허균의 누이였다. 일찍 죽었다. 시(詩)를  썼다." 내가 알고 있던 허난설헌은 이 정도... 이 소설은 허난설헌의 삶에 관한 것이다. 역사적 지식이 짧다보니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어디까지가 실제 그녀의 삶의 모습인지 구분해내기가 힘들다. 글쓴이가 참 섬세한 사람인 모양이다. 그가 들려주는 허초희(난설헌은 그녀가 결혼 후에 지은 호라고 한다.)의 삶이 너무나 비극적이어서, 이야기를 읽는 내내, 마치 내 이야기를 읽는 듯 가슴 한 켠이 먹먹했다. 책을 읽기 전엔 붉은 색 책 표지가 참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으면서는 그 붉은 색이 가슴 한켠을 아릿하고 먹먹하게 만들었다. 

   조선 시대(뿐만 아니라 최근까지도..)에 "여자"로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가? 삼종지도라 했던가? 어려서는 아버지를, 결혼해서는 지아비를, 늙어서는 아들을 따라야 한다는 여자의 삶. 그 여자의 주체적인 삶의 모습은 어디에서 찾아야한다는 말인가..? 사내들보다 더 뛰어난 문재(文才)가 있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감춰야했던 허초희.

  "오호라! 사내로 태어날 몸이 여자로 태어났구나! 음양이 뒤바뀌었으니 이를 어찌하랴!" - 중 략 -   "으흐흐! 재능과 미를 모두 지녀 초희라지? 천지신명은 공평한 것이니라. 부귀와 영화를 모두 지녔으나 벼루와 붓이 그를 깨트려버릴 것임을 절대 잊지 말아라!"(p22) 는 무녀의 예언 그대로의 삶을 살았던 그녀. 아직도 그렇다. 남녀가 평등한 것 같지만, 여자니깐 이러해야 하고, 남자니깐 저러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 같은 것은 떨쳐내기가 힘들다. 조선시대에는 더 했겠지..?

    밖으로만 나도는 남편. 어려서 죽은 아들. 유산. 그리고 위로는 제사를 받들고 아래로는 후손을 이어나가는 것을 여자의 지상 최대 임무로 알고 있는 그녀의 시어머니. 시어머니로부터 받는 끊임없는 구박. 미치지 않고 못 배길 상황일 것 같다. 그녀의 삶이 27년이라는 짧은 것이었음이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했다. 더 살아서 무엇하리...? 사랑했던 그 사람 황연과의 맺을 수 없었던 사랑은 저승에서 결실을 얻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집은 장간리에 있어 / 장간리 길을 오가고는 했어요. / 꽃가지 꺾어들고 님께 물었죠. / 꽃이 더 예쁜가요? 내가 더 예쁜가요? "(p68 허난설헌의 [長干行] 중). 그곳에선 황연도 그녀의 연시에 자유로이 대답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저자의 글쓰는 방식이 내 마음엔 쏙 들었다. 허초희와 허봉의 불행했던 삶. 그리고 그 불행한 삶의 근본적인 원인이었던 당시의 사회상에 대해 섬세하고 수려한 문장력으로 펼쳐낸 이야기가 내겐 너무 마음에 들었다. 아울러 허초희의 멋진 시(詩)를 함께 접하게 된 좋은 기회였다. 허난설헌과 허균에 대해서는 좀 더 관심을 두고 알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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