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설헌, 나는 시인이다
윤지강 지음 / 예담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소설을 한 권 읽었다. 마음 한켠이 아릿하다.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에 기인하는 것이지만, 나는 역사소설을 좋아한다. 소설을 통해 "옛날"을 보게 되는 게 좋다. 지금과는 다른 시간 속에 있는 그들을 만나는 게 좋다. 한동안 책읽기가 재미없어서 새로운 책을 읽기 "시작"하는 게 겁이 났다. 또 재미없는 책을 만나면 어떡하나..? 걱정이 앞서 책읽기를 쉬어볼까 생각했었다.  망설이다 선택했는데, 잘 읽었다 싶다. "잘 썼다"거나 "못 썼다"거나 객관적인 평을 내릴 수 있을만한 위치에 있는 내가 아니다. 내 취향엔 썩 맞는 작가와 글을 만나게 되었으니 "괜찮은 소설"이었다고 주변에 말을 해 줄 수는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읽고나서 책 읽기에 흥미를 읽어버린 게 아니구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허난설헌. "허균의 누이였다. 일찍 죽었다. 시(詩)를  썼다." 내가 알고 있던 허난설헌은 이 정도... 이 소설은 허난설헌의 삶에 관한 것이다. 역사적 지식이 짧다보니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어디까지가 실제 그녀의 삶의 모습인지 구분해내기가 힘들다. 글쓴이가 참 섬세한 사람인 모양이다. 그가 들려주는 허초희(난설헌은 그녀가 결혼 후에 지은 호라고 한다.)의 삶이 너무나 비극적이어서, 이야기를 읽는 내내, 마치 내 이야기를 읽는 듯 가슴 한 켠이 먹먹했다. 책을 읽기 전엔 붉은 색 책 표지가 참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으면서는 그 붉은 색이 가슴 한켠을 아릿하고 먹먹하게 만들었다. 

   조선 시대(뿐만 아니라 최근까지도..)에 "여자"로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가? 삼종지도라 했던가? 어려서는 아버지를, 결혼해서는 지아비를, 늙어서는 아들을 따라야 한다는 여자의 삶. 그 여자의 주체적인 삶의 모습은 어디에서 찾아야한다는 말인가..? 사내들보다 더 뛰어난 문재(文才)가 있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감춰야했던 허초희.

  "오호라! 사내로 태어날 몸이 여자로 태어났구나! 음양이 뒤바뀌었으니 이를 어찌하랴!" - 중 략 -   "으흐흐! 재능과 미를 모두 지녀 초희라지? 천지신명은 공평한 것이니라. 부귀와 영화를 모두 지녔으나 벼루와 붓이 그를 깨트려버릴 것임을 절대 잊지 말아라!"(p22) 는 무녀의 예언 그대로의 삶을 살았던 그녀. 아직도 그렇다. 남녀가 평등한 것 같지만, 여자니깐 이러해야 하고, 남자니깐 저러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 같은 것은 떨쳐내기가 힘들다. 조선시대에는 더 했겠지..?

    밖으로만 나도는 남편. 어려서 죽은 아들. 유산. 그리고 위로는 제사를 받들고 아래로는 후손을 이어나가는 것을 여자의 지상 최대 임무로 알고 있는 그녀의 시어머니. 시어머니로부터 받는 끊임없는 구박. 미치지 않고 못 배길 상황일 것 같다. 그녀의 삶이 27년이라는 짧은 것이었음이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했다. 더 살아서 무엇하리...? 사랑했던 그 사람 황연과의 맺을 수 없었던 사랑은 저승에서 결실을 얻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집은 장간리에 있어 / 장간리 길을 오가고는 했어요. / 꽃가지 꺾어들고 님께 물었죠. / 꽃이 더 예쁜가요? 내가 더 예쁜가요? "(p68 허난설헌의 [長干行] 중). 그곳에선 황연도 그녀의 연시에 자유로이 대답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저자의 글쓰는 방식이 내 마음엔 쏙 들었다. 허초희와 허봉의 불행했던 삶. 그리고 그 불행한 삶의 근본적인 원인이었던 당시의 사회상에 대해 섬세하고 수려한 문장력으로 펼쳐낸 이야기가 내겐 너무 마음에 들었다. 아울러 허초희의 멋진 시(詩)를 함께 접하게 된 좋은 기회였다. 허난설헌과 허균에 대해서는 좀 더 관심을 두고 알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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