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미스터리 세계사 - 법의학과 심리학으로 파헤친 세계 왕실의 20가지 비밀과 거짓말
피터 하우겐 지음, 문희경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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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소문이나 가십을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지만, 비슷한 이야기를 자꾸 듣다보면, 황당무계하다 싶은 그 이야기들 속에도 사실은 일말의 진실이 들어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하게 된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날까?"는 속담을 두고 최근에는 "아니 땐 굴뚝에도 연기가 나더라."고 발끈하는 연예인들도 봤지만, 그런 해명을 들으면서도 해명이 아니라 변명이나 거짓말이 아닐까 하는 의혹의 눈길을 거두지 못하는 나는 취미가 절대 고상한 편은 못 되나 보다.

 

    [왕실 미스터리 세계사]를 읽었다. 책을 펴들기 전에는 기대반 걱정반이었다. 딱딱한 역사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상 인물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볼 수 있는 재미가 있을 것 같은 기대 뒷 편엔, "카더라"통신 류의 무책임한 가십꺼리의 범벅이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있었다.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책은 처음의 우려는 말끔히 덜어냈고, 그리고 처음의 기대보다는 훨씬 재미있었던, 내겐 꽤나 괜찮았던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이 책에서는 세계사상의 유명한, 아직까지도 이론의 여지가 많은 사건과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예를 들자면 프랑스 루이14세때의 철가면 죄수의 정체라든가 영국의 전설적인 왕 아서의 실체, 나폴레옹 독살설과 러시아 황녀 아나스타샤의 진실,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비의 죽음과 관련한 이야기들.. "이 책이 매력적인 이유는 책에 등장하는 주요인물들이 왕과 여왕, 왕자와 공주를 비롯한 왕족이라는 점이다. 예전에는 왕족이 오늘날의 스타나 유명인사처럼 대중의 호기심과 흥미의 대상이었다."(p5) 그래, 이 책 재미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책은 역사적인 교훈보다는 소문과 호기심을 정면으로 다루기 위해 구상했다."(p6)고 하는데, 그 기획의도를 충분히 살린 책이 아닐까 싶다.

 

    책에서 다루어진 이야기들을  몇 가지 주제로 분류해보자면 "그는 진짜 왕자(혹은 공주)였을까?", "그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은 무엇일까" 정도의 범주에 드는 이야기들이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그 밖에는 "왕실의 사랑 혹은 불륜에 관한 이야기"와 "전설 같은 이야기들의 진실" 정도로 나눠볼 수 있을 것 같다.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주관적인 분류이다.

 

    현대의 과학이라면 쉽사리 풀렸을 것 같은 문제들, 왕자(공주)를 자처하고 나선 이들에 관한 이야기는 특히 흥미로웠다. 영국의 리처드3세는 조카들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고, 그 후 어린 두 왕자의 행방은 묘연해졌다. 왕자들은 리처드3세에 의해 살해된 것일까 혹은 어딘가에서 목숨만은 부지하고 있었던 걸까? 왕자를 사칭하고 나선 퍼킨 워벡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조선시대 소현세자의 아들을 자처하고 나섰던 요승 처경에 관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역사란 그렇게 비슷한 걸까? 조선의 수양은 조카 단종을 죽이고 세조가 되었고, 영국의 리처드는 조카를 실종시키고(?) 왕위에 올랐으며, 소현세자의 불행한 죽음 후엔 그의 아들을 주장하는 요승이 등장했고, 리처드의 조카들의 실종 후에는 퍼킨이 나타나고...   자신이 러시아 로마노프 황실의 공주라고 주장했던 안나 앤더슨은 정말 아나스타샤였을까?  "자신이 루이 17세라고 주장한 사람이 30명이 넘었다"(p229)고 하는데, 그 서른명이 넘는 인물들 중에 정말 루이 17세가 있었을까? 불행했던 정치적 사건들 뒤에는 그렇게, 빈틈을 노리는 사람들이, 어느 나라인가를 막론하고 어느 시대인가를 막론하고 많았던 모양이다.

 

     왕실 인물들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도 흥미로웠다. 나폴레옹은 정말 "살해"당했던 걸까?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죽음은 단순한 사고사였을 뿐인걸까?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는 남편의 죽음에 개입했던 걸까?

 

    글쓴이는 자신은 이렇게 생각한다고는 더러 말하지만, 이렇다 저렇다 결론을 내려주지는 않는다.  다만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과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함께 소개함으로써 각종 의혹들에 대한 해결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역사를 더 두껍게 보는, 더 재미있게 보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에 든다. "세계사"라고 묶기에는 너무 서양에 치우친 이야기들이라 아쉬움이 남는다. 다양한 분야의 자료조사와 재치있는 글솜씨로 역사상의 흥미로운 주제 속으로 독자들을 이끌고 가는 탐험대 같은 책. [왕실 미스터리 세계사].

 

 

 

잘못된 글자

15쪽 사진 아래 "1992년" -> "1922년"

23쪽 네번째 줄 "가습뼈"

91쪽 일곱번째 줄 "왕제자인 웨일스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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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서아 가비 - 사랑보다 지독하다
김탁환 지음 / 살림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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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노서아 가비. "가비"라는 말을 커피와 바로 연결시킬 수 없었기에 이게 무슨 말일까 싶었다. Russian coffee란다. 커피라는 말보다 가비라는 말이 더 정감있네.. 가비 한잔. 가비. 김탁환이라는 작가의 글을 세번째로 만나본다. [열하광인]과 [혜초]. 그리고 이 책 노서아 가비. 그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tv문학관으로 기억되는 프로그램에서 방송되었던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을 통해서였다. 이야기가 독특하면서도 흡인력이 느껴져 원작자인 그의 이름 석자가 머리 속에 남아있었는데, 그 이듬해엔가 [열하광인]으로 그의 글을 처음으로 읽었다. 그간 읽어왔던 소설들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상투적으로 이야기해보자면 그의 글에서는 "신선한 충격"이 느껴졌다.독특했다. 그리고 몇 개월 전에는 [혜초]를 읽으면서 김탁환이라는 작가의 이야기방식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었는데 [노서아 가비]를 읽어보니 것도 아니네. 이 책은 또 느낌이 많이 다르네. 작가라는 사람들은 이렇게 다양한 모습을 숨겨두었다가 조금씩조금씩 내보이는가 보다.

 

    이야기의 흐름이 무척 빠르다. 기존에 내가 읽었던 그의 소설 두편보다는 이야기의 방식이 가볍고 쉽다. 그래서인지 "그야말로 순식간에 읽어 내려간 소설이다."는 문학평론가 전형준의 말마따나 속도감 있게 읽히는 소설이었다. "황현 선생님의 [매천야록]에 실린 김홍륙의 일화가 [노서아 가비]를 구상하는 데 중요한 모티프가 되었습니다. - 중략 - 다양한 문헌을 통해 김홍륙의 행적을 검토하면서 상상의 나래를 폈습니다. 물론 김홍륙의 삶을 사실적으로 담을 수도 있겠지만, 저는 앞서 언급한 경쾌한 사기극에 어울리도록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었습니다."(p238)  역사상에는 "김홍륙 독차사건"이라고 기록된, 고종 때의 이야기가 이 책의 배경을 이룬다.

 

    한쌍의 사기꾼 남녀의 이야기다. 벗겨내도 벗겨내도 속을 알 수 없는 양파 같은 사기꾼 사내 이반. 그리고 내가 파악한 결론으로는 사기꾼이라고 표현하기엔 뭔가 어수룩한 여자 따냐.  [노서아 가비]의 글은, 이런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는데 줄거리만 추려낸 요약본의 글 같다. 핵심만 간단히!  사기꾼의 이야기인데 이렇게 별다른 힌트없이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가는 바람에 결국엔 글쓴이조차 사기극에 동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약간 배신감이 들었다고 할까? 책에 너무 몰입해버렸나...?

    이반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계획했던 걸까. 이반이 따냐를 사랑했던 적이 단 한번이라도 있을까.  이야기 후의 따냐의 삶이 궁금하다.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웠던 시절이 절반, 담배를 피우며 커피를 마셨던 시절이 절반"(p11)인 그런 세월을 보냈을까.. 고종을 무능하고 운이 따라주지 않았던 그저 그런 군주로만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그의 "외로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커피 맛도 모르는 입이 어디 입인가."(p29). 1년에 어쩌다 한두번 커피를 마시는 입 같지도 않은 입을 가진 독자인 나조차 "노서아 가비"의 그 향과 맛이 궁금해져버렸다. 외로운 고종과 마주앉아 따냐가 내린 노서아 가비 한 잔을 마시고 싶어지는 책. 김탁환이라는 작가의 또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해 준 책. 그리고 "출간 즉시 영화화 결정!"이라는데 영화로 만들어지면 다양한 장르가 결합된 독특한 작품 하나를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책. [노서아 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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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 알기 쉽게 풀어쓴 (한글판 + 영문판)
E. H. 카 지음, 이화승 옮김 / 베이직북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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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H. Carr의 유명한 이 책 [What is History 역사란 무엇인가]는 몇 해전에 읽고서 좌절감을 맛 본 터라 이번에 다시 펴들면서 솔직히 겁이 났다. 그나마 이 책을 다시 펴볼 용기를 가진 것은,  그래도 지난 몇 년간  다른 책보다는 역사에 관한 책을 좀더 관심있게 봐 왔던 터라 이제는 읽을 수 있을 꺼라는, 읽힐 꺼라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제목 앞에 붙은 "알기 쉽게 풀어쓴"이라는 수식어구 또한 무척 매력적이었다. 지난번에 내가 [What is History]를 읽고도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순전히!" 번역의 문제라는 핑계를 끌어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옮긴이는 "나는 학창시절 [역사란 무엇인가?]를 탐독하는 과정에서 도저히 수긍하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미련 때문에 이 책에 대한 새로운 재해석 차원에서 번역에 감히 도전을 하게 되었"(p250)다고 한다. 나 같이 게으른 사람을 위해서는 고마운 일이다. 또 한 가지. 영어를 잘 하지 못해도, 우리 말과 영어의 뉘앙스 차이를 가끔 느끼는 터라, 영어 원서와 함께 한 질로 묶여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알기 쉽게 풀어쓴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알기 쉽게 풀어쓰지 않은(?)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을 때만큼이나 내겐 어렵게 느껴지네. 독해력의 부족인가 보다. 하지만 내가 이해한 바 대로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해자면 이렇다. 책은 전체 여섯개의 장으로 이뤄져있다. What is History는 E.H.Carr가 1960년에 행한 여섯 차례의 강연의 강의록이다. Carr의 그 유명한 말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p45)는 그의 첫 장 "역사가와 역사적 사실"에 나오는 말이다. 그는 역사해석에 있어서의 역사가의 역할을 강조하며, 랑케를 대표주자로 하는 실증주의 학파에 대해 반대의 견해를 보인다. 문서 숭배라는 형태를 통해 완성되고 정당화된 19세기의 사실 숭배를 비판하며 문서는 그 문서를 남긴 이가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것 혹은 일어났다고 생각하고 싶었던 것을 서술했을 뿐이라는 이야기도 하고 있다.

 

    "사건만이 흐름 속에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가 자신도 그 흐름 속에 있는 것이다. 역사서를 읽을 때, 저자의 이름을 지면에서 찾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간행 또는 집필 연대를 찾아야 하며 ~ 하략~"(p66)라는 그의 말은 그간 생각해보지 못했던 역사 읽기의 방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역사가는 그가 쓰는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개인적인 사생활에 대해 도덕적 판단에 치중해서도 안 되고, 역사에 있어서의 "우연"을  필연으로 믿는 우를 범해서도 안 된다는 조언을 던지기도 한다.

 

    그가 이 강연을 했던 1960년대와는 50년이라는 시간의 간격 때문인지 이 책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시 읽으면서는 도저히 읽기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은 점 다행이라 생각한다. 다음에 기회가 되서 다시 읽을 기회가 생긴다면 그의 생각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그리고  "카가 위대한 역사가이긴 하지만 그의 역사 인식론에 머물거나 그것에만 얽매일 필요는 없습니다."(p243)라는 옮긴이의 말을 위안 삼으며..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거창한 질문에 대한 나만의 그럴 듯한 대답을 내놓을 수 있을 때까지는 더 열심히 읽고 공부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히며... 잠시 책을 덮어둔다.

 

 

 

잘못된 글자

책 앞날개에 실린 E.H.카의 생년 "1982년 런던 출생"은 바로잡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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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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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녁에 빗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서 깼다. 머리맡에 놓아둔 손목시계가 째깍거렸다. 비가 잠시 그친 하늘은 여전히 회색빛인데 멀리서 새소리가 들려온다. 사람의 언어로는 표현이 되지 않는 그런 지저귐이다. 컴퓨터 키보드의 소리 역시 오늘 아침엔 도드라지게 또각거리는 것 같다. 또각또각 타다닥..."듣는다는 것이 이렇게 엄청난 일일 줄 그는 미처 몰랐다."(p40) 나도 몰랐었다. 지난밤까지는... 간밤의 잠자리는 사실 좀 불편했었다. 불편함의 원인은 한 권의 책 때문이었다. 저녁을 먹고서 "오랜만에 소설이나 한 편?"하고 펴든 책인데 이렇게 불편할 줄 알았으면 주말에 읽을 껄 싶었지만, 아직은 한 주의 첫머리인 화요일 밤에 읽기는 부적절하다 싶은 소설이었지만, 그래도 6월의 마지막날이니까 읽어도 괜찮을 꺼라고 스스로와 이상한 타협을 하고서 펴든 책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6월의 마지막날'이라는 핑계로 펴들었던 그 소설을, 화요일을 넘겨 7월의 첫 날인 수요일로 날짜가 바뀌는 걸 보고서도, 반이 넘게 읽다가 잠들었다. 그리고 이른 새벽 빗소리에 잠이 깼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밤새 꿈은 어지러웠다."(p267) 허공에서 자꾸만 곤두박질치는 그런 꿈을 꿨던 것 같다.

 

     "공지영 = 불편한 작가". 언젠가부터 그런 생각을 해 왔던 것도 같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가 그랬던 것 같고,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녀의 작품으로 기억되는, 운동권 출신의 여대생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단편이었던가 중편소설이 그랬던 것 같고, 책으로 읽지는 못했지만 흐르는 눈물을, 저 잘 생긴 배우가 우니까 나도 우는 것 뿐이란 변명을 했던 영화[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그랬다. 오디오북으로 들었던 [즐거운 나의 집] 역시 많이 불편했다. 출처가 기억나지 않는데, "돈 되는 이야기가 아니라면 안 쓴다."고 말했던 그녀의 인터뷰 기사 역시 불편한 기억으로 남아있었는데, 하나 더 추가다. [도가니]. 솔직히 이 책은 내게 분노의 도가니였다. 질척거리는 늪에 빠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구제하기 힘든 인간군상들을 보며 "Oh! My God!"을 연발케 하는 총체적 난국이었다.

 

    이야기는 무진시(霧津市)의 자애학원이라는 청각장애아를 위한 사립학교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아내 친구의 빽!으로 그 학교에 기간제 교사로 가게 된 강인호가 접하게 된, 더러운 현실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기간제다. "이 신삥 새끼구나. 가뜩이나 요새 골치 아픈 일도 많아 죽겠는데, 뭘 쳐다봐. 이 씹새야!"(p120)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행정실정과 그 행정실장의 쌍둥이 형이 교장으로 있는, 그 쌍둥이들의 아버지가 설립한 학교. "이렇게 안개가 내리면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다 한들 외부에서는 전혀 알 길이 없"(p42)는, 그런 학교의 기간제 교사. 학생들이 내지르는 비명을 들을 수는 있지만, 대다수의 선생들이 못 들은 척 넘어가버리는 상황에서 그는 학생들의 처절한 비명을 듣게 된다.

 

    글쓴이가 쏟아붓는 신랄한 독설을 들으며 "오물 가득한 욕탕에 들어가 머리끝까지 푹 잠긴 기분"(p51)이었다. 책을 읽으며 화가 났다.  나는 그들처럼 가진 것도 별로 없고, 종교의 가면을 쓴 채  선량한 척 해 본 적도 없는데 왜 자꾸만 내가 가해자인 것 같이 느껴지는지... 교회 목사의 설교는 차라리 한편의 코미디였지만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이야기라 쓴 웃음이 났고, 돈 앞에 무릎 꿇고 마는 가난한 사람들을 실컷 비난할 수 없는 나의 얄팍한 도덕성에 짜증이 났고,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에 진저리가 났고, 사회의 상층을 이루는 인간들의 보잘것 없는 도덕성에 분노가 치밀었다. 심지어는 무진의 그 안개에게까지도, 자신의 치부를 한사코 덮어버리는 듯한  무진의 그 안개에게까지 분노했다.

 

     이 모든 것에 대한 분노는 공지영 때문이다. 글을 너무 잘 썼다. 내 눈 앞에서 벌어지는 추악한 일들에 행동하지 못하는 양심, 안타까움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듯한 착각을 하며 읽었다.  그런 나와 같은 사람들을 향한 연민이 느껴져 더욱 부끄러웠던 이야기 [도가니].  "무진은 자애의 도가니였다."(p148) 그렇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이 자애의 도가니 무진(霧津)일지도 모른다.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했던 책. 분노의, 연민의, 부끄러움의, 불편함의, 안쓰러움의, 민망함의 [도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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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50가지 이야기 - 생각의 크기를 쑥쑥 자라게 하는, 미국판 탈무드 생각 쑥쑥 어린이 시리즈 1
제임스 M. 볼드윈 지음, 김희정 옮김, 이정헌 그림 / 스코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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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원제는 [Fifty Famous Stories]라고 한다. 한국어판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50가지 이야기]라는 제목과는 사실 느낌이 많이 다르다. 한국어판의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땐 어떤 이야기들이 실려있을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책을 읽으면서는 그닥 "재미있지만은 않은데..."라는 생각을 해야했다.  그러다 책 끄트머리에 실린 "옮긴이의 말"에 나와있는 이 책의 원제를 보고는 그 제목이 더 알맞겠다는 생각을 했다. "재미"라는 단어의 사용법이 다른 모양이다. 분명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유명한, 그래서 한번쯤은 들어보았을법한 이야기들이고, 나름의 감동과 교훈이 있지만 글쎄  "재미있는" 이야기란 제목으로 묶어서 소개하기엔 다소의 무리가 있지 않나 싶다. "재미있는"이란 말에다 "웃긴"의 의미를 많이 두는 나 같은 독자들에게는 말이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앞서도 말했지만 유명한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어른들이라면 이런저런 경로로 한번쯤은 들어보았을법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빌헬름텔이 아들의 머리 위에 사과를 얹어놓고 쏘았다는 이야기나, 아르키메데스가 목욕을 하다 "유레카"를 외쳤다는 이야기 혹은 알렉산더가 그의 애마 부케팔라스를 다루게 된 이야기, 장님 코끼리 만지기와 같은 이야기들 말이다. 그래서 다소 식상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 책은 어린이용이다! 어린이들이 읽으면 분명 "아.. 이런 놀라운 이야기가 있구나."라는 감탄을 자아낼 법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책의 구성은 짧게는 두 쪽 정도에서 길게는 서너쪽 정도의 한 편의 이야기에다 그 끝부분에는 "생각꾸러미"라는 작은 박스를 통해, 앞서의 이야기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꺼리나 생각해 볼 문제를 제기하고, 간간이 실린 "역사 속으로 폴짝!"에서는 이야기 속의 인물이나 시대에 대한 설명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는 식이다.

 

     이미 많이 자라버린 나로서는 어린이들이 이 책을 읽으며 느낄 구체적인 감동은 짐작하기 힘들다. 하지만 어른의 입장에서 이 책을 읽은 느낌을 말해본다면.. 이 책에 실린 인물들은 "정말 이런 사람들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바보같은" 인물들의 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적군에게 한 모금의 물을 건네는 바보 같은 덴마크 병사의 이야기(p144)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모르겠다. 적군과의 약속을 지키겠다고,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 비참하게 죽었다는 레굴루스의 행동을 "로마를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도시로 만든 참다운 용기"(p133)로 받아들여야 할 지, 내가 그 덴마크 병사였더라도, 내가 레굴루스였더라도 그렇게 행동했을꺼라고는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 어렸을 때는 이런 책을 읽으면 감동이 커서 오랫동안 다시 생각해봤을 법하지만, 그런 순수함을 많이 잃어버린 모양이다.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은 그들을 "바보 같다"고 여기지만 그들은 위대했기 때문에 오랜동안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뜻을 기려온 것일테고, 세상은 오히려 그런 "바보"들의 우직함으로 움직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아쉬움 한 가지. "필립 왕의 병사들 중에는 재주가 뛰어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는 용감하고 여러 가지로 왕을 늘 즐겁게 해 주었기 때문에 왕은 그를 유달리 믿고 좋아했습니다."(p140)  "필립 시드니 경 때의 일입니다. 이후 백여 년이 채 못 되어 스웨덴과 덴마크 사람들 사이에 전쟁이 일었났습니다."(p143) 두 인용문 다 각각의 이야기의 첫머리이다. 문장 연결이 어색하다고 생각한 건 나 뿐일까? 전문번역가가 옮긴 글 치고는 어색한 문맥이 자주 보여서 많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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