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새벽녁에 빗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서 깼다. 머리맡에 놓아둔 손목시계가 째깍거렸다. 비가 잠시 그친 하늘은 여전히 회색빛인데 멀리서 새소리가 들려온다. 사람의 언어로는 표현이 되지 않는 그런 지저귐이다. 컴퓨터 키보드의 소리 역시 오늘 아침엔 도드라지게 또각거리는 것 같다. 또각또각 타다닥..."듣는다는 것이 이렇게 엄청난 일일 줄 그는 미처 몰랐다."(p40) 나도 몰랐었다. 지난밤까지는... 간밤의 잠자리는 사실 좀 불편했었다. 불편함의 원인은 한 권의 책 때문이었다. 저녁을 먹고서 "오랜만에 소설이나 한 편?"하고 펴든 책인데 이렇게 불편할 줄 알았으면 주말에 읽을 껄 싶었지만, 아직은 한 주의 첫머리인 화요일 밤에 읽기는 부적절하다 싶은 소설이었지만, 그래도 6월의 마지막날이니까 읽어도 괜찮을 꺼라고 스스로와 이상한 타협을 하고서 펴든 책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6월의 마지막날'이라는 핑계로 펴들었던 그 소설을, 화요일을 넘겨 7월의 첫 날인 수요일로 날짜가 바뀌는 걸 보고서도, 반이 넘게 읽다가 잠들었다. 그리고 이른 새벽 빗소리에 잠이 깼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밤새 꿈은 어지러웠다."(p267) 허공에서 자꾸만 곤두박질치는 그런 꿈을 꿨던 것 같다.

 

     "공지영 = 불편한 작가". 언젠가부터 그런 생각을 해 왔던 것도 같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가 그랬던 것 같고,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녀의 작품으로 기억되는, 운동권 출신의 여대생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단편이었던가 중편소설이 그랬던 것 같고, 책으로 읽지는 못했지만 흐르는 눈물을, 저 잘 생긴 배우가 우니까 나도 우는 것 뿐이란 변명을 했던 영화[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그랬다. 오디오북으로 들었던 [즐거운 나의 집] 역시 많이 불편했다. 출처가 기억나지 않는데, "돈 되는 이야기가 아니라면 안 쓴다."고 말했던 그녀의 인터뷰 기사 역시 불편한 기억으로 남아있었는데, 하나 더 추가다. [도가니]. 솔직히 이 책은 내게 분노의 도가니였다. 질척거리는 늪에 빠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구제하기 힘든 인간군상들을 보며 "Oh! My God!"을 연발케 하는 총체적 난국이었다.

 

    이야기는 무진시(霧津市)의 자애학원이라는 청각장애아를 위한 사립학교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아내 친구의 빽!으로 그 학교에 기간제 교사로 가게 된 강인호가 접하게 된, 더러운 현실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기간제다. "이 신삥 새끼구나. 가뜩이나 요새 골치 아픈 일도 많아 죽겠는데, 뭘 쳐다봐. 이 씹새야!"(p120)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행정실정과 그 행정실장의 쌍둥이 형이 교장으로 있는, 그 쌍둥이들의 아버지가 설립한 학교. "이렇게 안개가 내리면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다 한들 외부에서는 전혀 알 길이 없"(p42)는, 그런 학교의 기간제 교사. 학생들이 내지르는 비명을 들을 수는 있지만, 대다수의 선생들이 못 들은 척 넘어가버리는 상황에서 그는 학생들의 처절한 비명을 듣게 된다.

 

    글쓴이가 쏟아붓는 신랄한 독설을 들으며 "오물 가득한 욕탕에 들어가 머리끝까지 푹 잠긴 기분"(p51)이었다. 책을 읽으며 화가 났다.  나는 그들처럼 가진 것도 별로 없고, 종교의 가면을 쓴 채  선량한 척 해 본 적도 없는데 왜 자꾸만 내가 가해자인 것 같이 느껴지는지... 교회 목사의 설교는 차라리 한편의 코미디였지만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이야기라 쓴 웃음이 났고, 돈 앞에 무릎 꿇고 마는 가난한 사람들을 실컷 비난할 수 없는 나의 얄팍한 도덕성에 짜증이 났고,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에 진저리가 났고, 사회의 상층을 이루는 인간들의 보잘것 없는 도덕성에 분노가 치밀었다. 심지어는 무진의 그 안개에게까지도, 자신의 치부를 한사코 덮어버리는 듯한  무진의 그 안개에게까지 분노했다.

 

     이 모든 것에 대한 분노는 공지영 때문이다. 글을 너무 잘 썼다. 내 눈 앞에서 벌어지는 추악한 일들에 행동하지 못하는 양심, 안타까움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듯한 착각을 하며 읽었다.  그런 나와 같은 사람들을 향한 연민이 느껴져 더욱 부끄러웠던 이야기 [도가니].  "무진은 자애의 도가니였다."(p148) 그렇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이 자애의 도가니 무진(霧津)일지도 모른다.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했던 책. 분노의, 연민의, 부끄러움의, 불편함의, 안쓰러움의, 민망함의 [도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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