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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서아 가비 - 사랑보다 지독하다
김탁환 지음 / 살림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노서아 가비. "가비"라는 말을 커피와 바로 연결시킬 수 없었기에 이게 무슨 말일까 싶었다. Russian coffee란다. 커피라는 말보다 가비라는 말이 더 정감있네.. 가비 한잔. 가비. 김탁환이라는 작가의 글을 세번째로 만나본다. [열하광인]과 [혜초]. 그리고 이 책 노서아 가비. 그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tv문학관으로 기억되는 프로그램에서 방송되었던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을 통해서였다. 이야기가 독특하면서도 흡인력이 느껴져 원작자인 그의 이름 석자가 머리 속에 남아있었는데, 그 이듬해엔가 [열하광인]으로 그의 글을 처음으로 읽었다. 그간 읽어왔던 소설들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상투적으로 이야기해보자면 그의 글에서는 "신선한 충격"이 느껴졌다.독특했다. 그리고 몇 개월 전에는 [혜초]를 읽으면서 김탁환이라는 작가의 이야기방식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었는데 [노서아 가비]를 읽어보니 것도 아니네. 이 책은 또 느낌이 많이 다르네. 작가라는 사람들은 이렇게 다양한 모습을 숨겨두었다가 조금씩조금씩 내보이는가 보다.
이야기의 흐름이 무척 빠르다. 기존에 내가 읽었던 그의 소설 두편보다는 이야기의 방식이 가볍고 쉽다. 그래서인지 "그야말로 순식간에 읽어 내려간 소설이다."는 문학평론가 전형준의 말마따나 속도감 있게 읽히는 소설이었다. "황현 선생님의 [매천야록]에 실린 김홍륙의 일화가 [노서아 가비]를 구상하는 데 중요한 모티프가 되었습니다. - 중략 - 다양한 문헌을 통해 김홍륙의 행적을 검토하면서 상상의 나래를 폈습니다. 물론 김홍륙의 삶을 사실적으로 담을 수도 있겠지만, 저는 앞서 언급한 경쾌한 사기극에 어울리도록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었습니다."(p238) 역사상에는 "김홍륙 독차사건"이라고 기록된, 고종 때의 이야기가 이 책의 배경을 이룬다.
한쌍의 사기꾼 남녀의 이야기다. 벗겨내도 벗겨내도 속을 알 수 없는 양파 같은 사기꾼 사내 이반. 그리고 내가 파악한 결론으로는 사기꾼이라고 표현하기엔 뭔가 어수룩한 여자 따냐. [노서아 가비]의 글은, 이런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는데 줄거리만 추려낸 요약본의 글 같다. 핵심만 간단히! 사기꾼의 이야기인데 이렇게 별다른 힌트없이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가는 바람에 결국엔 글쓴이조차 사기극에 동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약간 배신감이 들었다고 할까? 책에 너무 몰입해버렸나...?
이반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계획했던 걸까. 이반이 따냐를 사랑했던 적이 단 한번이라도 있을까. 이야기 후의 따냐의 삶이 궁금하다.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웠던 시절이 절반, 담배를 피우며 커피를 마셨던 시절이 절반"(p11)인 그런 세월을 보냈을까.. 고종을 무능하고 운이 따라주지 않았던 그저 그런 군주로만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그의 "외로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커피 맛도 모르는 입이 어디 입인가."(p29). 1년에 어쩌다 한두번 커피를 마시는 입 같지도 않은 입을 가진 독자인 나조차 "노서아 가비"의 그 향과 맛이 궁금해져버렸다. 외로운 고종과 마주앉아 따냐가 내린 노서아 가비 한 잔을 마시고 싶어지는 책. 김탁환이라는 작가의 또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해 준 책. 그리고 "출간 즉시 영화화 결정!"이라는데 영화로 만들어지면 다양한 장르가 결합된 독특한 작품 하나를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책. [노서아 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