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부패사건에 휘말리다 - 조말생 뇌물사건의 재구성
서정민 지음 / 살림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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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종처럼 성군으로 알려진 임금의 이름 옆에 쓰여진 "부패"라는 단어가 의아했다. 세종이 우리가 몰랐던 무슨 "부패"사건을 일으키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럴 리는 없을테고. 그럼 혹 신하의 부정부패사건을 눈감아 준 것일까?  "조말생 뇌물사건의 재구성"이라는 부제를 보면 전자보다는 후자의 측면이 강할 것 같다고 짐작은 되지만..  제목에 호기심이 동했다. 세종에 대한 책을 근래 들어 몇 권 읽으면서도, 내가 잘 몰랐던 세종의 위대한 모습, 인간적인 모습만을 확인했었지, 세종의 부정적인 모습은 찾아보기가 힘들었는데, 이 책에선 세종의 어떤 모습을 이야기하려고 이런 제목을 붙인 것일까?

   성급한 마음에 책을 펼쳐보니 글쓴이가 현직 검사다. 세종에 관한 이야기니 역사가가 쓴 책이겠거니 했는데 현직 검사가 쓴 책이라..? 조금 더 호기심이 동한다. 법조인이 보는 세종의 모습은 어떨까?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는 부제에서 짐작되는 바와 같이 조말생이라는 신하의 뇌물 수수 사건이다.
"조말생이 김도련의 부탁에 따라 김도련의 노비소송을 담당하는 형조刑曺와 노비변정도감奴婢辨定都監의 담당관리에게 유리하게 판결하여 줄 것을 청탁하고 이 대가로 김도련으로부터 노비를 증여받았는데, 증여받은 노비가 24명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p25)  한마디로 조말생의 뇌물 수수 사건은 권력형 비리의 전형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도덕성은 공직자의 자질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긴 한다만, 조선의 법은 현재의 법보다 조금 더 엄격했던 모양이다. "<대명률>에 따르면 뇌물을 받은 관리는 받은 뇌물의 수량에 따라 처벌받게 되는데 조말생이 받은 뇌물의 수량은 사형에 해당하는 규모였다."(p40) 아직까지 뇌물 좀 받았다고 해서 사형에 처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말이다.

   조말생의 죄가 사형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사형에 처하자는 대간의 압박과,  조말생이 부왕인 태종으로부터 신임받던 신하로써 공이 있으니 유형으로 그치자는 세종의 중도론이 대립했다. 결국 세종의 승리? 조말생의 유배로 사건은 종결되는 듯 했다. 하지만 얼마 후 세종은 그를 사면하고 결국엔 복직을 시키기까지 한다. 이에 반발한 대간의 반발 상소가 이어진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강력한 왕권만이 존재했을 것 같은 왕조시대에 신하된 자들이 감히 겁도 없이(?) 왕의 말에 반발하며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하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일방통행이 아니라, 왕과 신하가 어떤 사안에 대해 주거니받거니 논쟁하는 모습은 왕권과 신권이 균형과 조화를 이룬 조선 왕조의 시대상의 단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그리고 의문점이 하나 생기기도 했다. 왜 세종은 조말생에 대해 그토록 관대한 처분을 고집하였던 것일까?  책의 중반부분까지는 조말생이 왕실과 인척관계였다는 점, 태종의 총애를 받았다는 점, 그리고 국사에 공이 있다는 점 등을 그 이유로 들고 있는데 그것만으로는 뭔가 모자란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간의 공격을 받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사형에 처할만큼 중죄를 지은 신하를 보호할 이유로는 부족하지 않은가..?  그렇다. 책을 좀더 읽어나가다 보면 글쓴이는 그 이유를 함길도의 국방 방어를 위한 적임자가 바로 조말생이었음을 추가로 설명하고 있어, 그 의문점이 해결됐다. 세종은 조말생을 함길감사로 임명한데 대해 대간이 반발하자 "내가 그대들의 말을 진실로 아름답게 여긴다. 허나 말생을 보낸 뒤에야 함길도의 백성을 구제할 수 있기 때문에 윤허하지 아니하는 것이다."(p137)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조말생을 등용하여 활용한 것은 단지 시대적으로 요긴한 서북면 정벌의 군사 활동과 대명 외교 차원 때문이었지 절대로 조말생이 행한 부정부패를 부정하여 개인을 신원하여 주기 위한 차원이 아니었음을 분명히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p198) 그랬다. 이 책을 통해 세종의 부정적인 모습을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절반의 걱정과 절반의 호기심은 이렇게 해결됐다. 다행이다. 내가 머리 속으로 그리고 있는 성군 세종의 이미지에 흠집이 나지 않아서..

   현직검사가 쓴 글이라 그런지 조말생 사건을 현재의 시점과 비교 분석하는 부분이 많다. 그리고 과거의 사법제도와 현재의 사법제도에 대해서도 여러 장에 걸쳐 비교설명해 주고 있다. 알수록 더욱 호감을 갖게 되는 세종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다.
 

  오자? P49의 3줄 : 체통를 -> 체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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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 살아있는 미국역사 - 신대륙 발견부터 부시 정권까지, 그 진실한 기록
하워드 진.레베카 스테포프 지음, 김영진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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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도덕한 나라, 미국사의 진실을 말한다.]

    얄팍한 독서이력이라 어떤 책을 많이 읽었네 말하기에 스스로도 부끄러울 따름이지만, 그 얄팍한 독서목록 중에서 다른 분야의 책보다 그나마 역사서를 많이 읽어온 편이다. 우리 나라, 동서양에 관한 역사책이라면, 고대사가 됐든 비교적 최근의 일을 다룬 역사서가 됐든 챙겨읽고자 노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읽은 게 별로 없다보니, 감히 책에 대해서 "이 책은 어떤 관점에서 쓰였다"거나 "이런 면은 저자의 관점이 이상하다"는 둥의 평가를 내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핑계 같지만 그런 판단을 할 수 없게 만든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저자는 어디 가 버렸는지 없고, 책에 쓰인 말투는 주관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지극히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 같아 보이는 책들이 거의 전부였다. 예전에 강준만 교수의 [한국현대사 산책]이란 시리즈의 책을 읽으면서는 또 얼마나 놀랐던가? 이전까지 나는 역사서에서 저자의 관점이 드러나는 글을 접해보지 못했을 뿐더러, 접했다하더라도 어떤 것이 저자에 의해 선택된 역사인지를, 어떤 것이 저자의 관점인지를 눈치채지 못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비주류의 역사 혹은 저항의 역사, 피지배층의 역사, 하워드 진 교수의 역사를 보는 관점이 밖으로 표현된 역사"라면 이 책에 대한 정리가 될 지 모르겠다. 이 책의 원제는 [Peopleps History of the United Staes ; 미국민중사]라고 한다. 한국어 번역본의 제목도 나름 어울리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이 책의 제목은 원제 그대로 [미국민중사] 편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관통하는 하워드 진 교수의 역사를 보는 관점을 내 나름대로 정리해보자면, "부도덕한 나라, 미국"이 아닌가 싶다. "콜럼버스는 황금이 매장되어 있는 곳을 알려줄 인디언을 납치하는 것으로 처음 그들과 관계를 맺었다."(p20) "이것이 바로 유럽인의 아메리카 대륙 생활의 첫출발이었다. 정복과 노예와 죽음의 역사였던 것이다."(p23) 이 부분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에 대해서. 며칠 전에 읽은 또다른 책(유럽인이 쓴 책이었다.)에서 "발견"이라는 단어 때문에 배알이 틀렸었다. 원주민들은 이미 알고 있던 생물에 대해 유럽인들이 그제서야 알게 된것을 엄청난 "발견"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서 별로 유쾌하지 않았었다.

     그런 의미에서 하워드 진, 이 사람(1922년생, 내게는 증조할아버지뻘이라 "이 사람"이란 표현이 상당히 거만하게 느껴진다만.) 글쓰는 스타일 한번 마음에 든다. 콜럼버스와 그 이후 아메리카로 온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를 "발견"하고나서 얼마나 몹쓸 짓을 했는지를, 왜 콜럼버스가 영웅시되어서는 안 되는지를 조목조목 설명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은 이후에 전개되는 미국사에서 가려져왔던(내가 보아왔던 역사서에서만 가려졌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인디언, 흑인노예와 백인 하인 그리고 여성들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으로 일관하고 있다. 미국사를 주도했던 백인들이 그들의 명백한 사명("해마다 수백만씩 인구가 증가하는 우리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이 대륙을 우리가 모두 차지하는 것은 명백한 사명이다." -John O`Sullivan p105)을 위해 그 땅의 원래 주인이었고 오랜 시간동안 그 곳에서 평화롭게 살아왔던 인디언들을 얼마나 잔인하게 학대했는지.  그리고 짐짝마냥 배에 선적된 채 붙들려 온 흑인노예들에게 얼마나 가혹했는지. 여성들에게는 또 얼마나 가혹한 차별을 가했는지를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1,2차 세계대전은 물론이고, 베트남전쟁, 그리고 90년대의 걸프전, 911이후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이라크전에 이르기까지의 그들의 기만적이고 착취적이고, 부도덕한 전쟁의 모습과 그에 가려지고 무시당해온 많은 사람들의 양심의 소리까지 이 책을 통해 그동안 내가 잘 몰랐던 미국의 역사를 확인하게 됐다. 이 책을 옮긴이는 하워드 진 교수에 대해 "그의 정신을 한 마디로 표현하라면 저는 감히 '젊음'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라고 얘기하고 있다. 나 역시 동의한다. 1922년생, 아흔에 가까운 그의 젊고 냉철한 비판 정신을 통해 미국사를 새로운 관점에서 접하게 되었기에.. 이런 역사책들 앞으로도 많이 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자? 책13쪽 8줄 : 영답다 -> 영웅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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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의 달인 - 적의 마음도 사로잡은 25인의 설득 기술!
한창욱 지음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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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마다 책 읽는 방식이 다를 것이다. 좋아하는 분야도 다르고,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읽어온 책도 다를테고. 이 책을 읽다보니 나는 책을 통해 재미를 얻으려는 것보다 뭔가를 알게 되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다. 뭐 새삼스러운 깨달음은 아니지만,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이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의 이 책에 대한 호감도가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설득의 달인"이라.. 이 책은 소위 말하는 자기계발서로 분류될 수 있겠구나.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분야다. "이렇게 하면 잘 될꺼다. 그러니깐 이렇게 해라."는 식의 가르치려드는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이 책의 제목을 보자마자 '이 책 역시 내게 뭔가를 가르치려 들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별로 호감이 가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 책, 내겐 꽤 괜찮은 책이었다. 왜 괜찮은 책이었다고 분류할 수 있을까? 이 책은 그저 단순히 "이렇게 해라. 그러면 설득의 달인이 될 것이다."의 막무가내 "설 득"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이름이 알려진 역사 속 인물의 설득의 기술을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몇 개월 전에 읽은(아니, 두껍다는 핑계로 아직도 읽고 있는) 로버트 그린의 [전쟁의 기술]을 처음 대했을 때 놀라웠다. "이래라, 저래라"식의 훈계를 좋아하지 않는터라 자기계발서로 분류되는 책들은 아예 독서목록에서 배제하곤 했는데, 역사 속의 유명인사들, 유명한 전쟁 이야기를 소개하고 그 속에서 상대를 이기는 방법을 찾아서 설명하고 있어 "앎의 욕구"를 채워주는 자기계발서라는 새로운 분야를 처음으르 만났기 때문에. 이 책 [설득의 달인] 역시 나는 1석 2조의 자기계발서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무명의 흑인 복서였던 캐시어스 클레이는 "경기를 앞두고는 몇 라운드에서 상대를 KO시키겠노라고 예고하여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는데 몇 차례 들어맞기도 해서 유명세는 더해졌다."(p25) 그렇게 허풍(?)을 떨어댐으로써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킴은 물론이고, "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설득시켰던 것이다. 이후 그는 무하마드 알리라는 이름으로 개명을 한다. 무하마드 알리의 이야기를 통해 글쓴이는 말한다. "설득의 달인이 되기 위해선 알리처럼 스스로를 설득할 줄 알아야 한다."(p30)라고. 알리의 이야기 없이 글쓴이가 저런 말부터 던졌다면 나는 그의 말에 "설득"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글쓴이의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은 왜 명연설로 분류되는가? 글쓴이는 "대중은 일관성을 지닌 사람에게 쉽게 설득당한다. 훌륭한 연설을 하려면 행동과 말이 일치해야 한다."(p238)고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 워낙 명연설로 알려져 있어 나 역시 영어 원문으로 듣기 연습을 해서 귀에 익숙하던 연설이다. 하지만 왜 명연설인가에 대해서까진 생각해보지 못했다. 글쓴이의 지적이 맞는 것 같다. 흑백차별 철폐를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했던 그의 삶, 그리고 노벨평화상 수상자라는 후광효과, 그의 극적인 죽음이 어우러져, 연설 당시에도 물론 명연설이었지만, 지금 들어도 백번 공감이 되는 연설인 것 같다.

  무하마드 알리와 킹 목사에 관한 이야기 외에도 마더 테레사, 넬슨 만델라, 여불위, 비틀스, 곽가, 서희, 링컨 등 글쓴이는 다양한 인물의 설득력을 조목조목 짚어내고 있다. 잘 몰랐던 유명인사의 면모를 알게 되었음은 물론이고, 설득의 지침서 같은 역할을 해 줄 괜찮은 책이었다. 다만 아쉬움이 남는 것은 이사도라 던컨이 저명인사들과 끊임없이 "염분을 뿌리고 다녔다."(p73)거나, "이순신이 옥에 갇히기 전해인 1956년에"(p179)라는 등 책에 보이는 몇몇 오자가 글쓴이의 실수는 아니겠지만, 그가 말하는 "설득"의 신뢰성을 조금 떨어뜨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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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뒤흔든 16가지 발견
구드룬 슈리 지음, 김미선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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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산초당에서  뭔가를 "뒤흔든(?)"  이야기들을 시리즈로 엮어내고 있나보다. 얼마전에 읽었던 정여립 모반 사건을 다룬 책 [조선을 뒤흔든 최대 역모사건]을 비롯 내가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조선사의 살인사건과 연애사건 등을 다룬 책을 펴내고 있는 걸 보면.  이번엔 조선이 아니라 "세계사"다. 세계사라는 낱말이 아우르는 공간은 물론이고 시간의 범위가 무척 크다. 그 큰 범위를 "뒤흔든" 사건들이라면 뭔가 엄청난 일이겠구나 하고 기대를 가지기에 충분한 제목이다. 역사에 대해 잘 모르지만 흥미와 관심만은 누구에게도 뒤쳐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나 같은 사람을 자극하기엔 딱 좋은 제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 책은 내겐(다른 사람에겐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소 심심한 책이었다. 그리고 "세계사"라는 제목에서 내가 잔뜩 기대했던 정치사적인 이야기나 사람에 얽힌 엄청난 비밀 같은 것보다는, "발 견"이라는 제목 쪽에 조금 더 무게가 실린 책인 것 같다. 

   분명 나는 이 책을 통해 내가 모르던 것들을 새롭게 알게 되는 "앎의 즐거움"을 느끼기는 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거의 모든 이야기가 내가 모르던 것이기도 했다. 쾰른 성당의 사라졌던 설계도 이야기. 쾰른 성당이 600여년 동안 건설 중이고 현재도 완공되지는 않았다는 이야기가 그랬고, 5000년만에 발견된 아이스맨 외치에 대한 이야기가 그랬다. 아이스맨에 대한 이야기는 어디선가 주워들은 적은 있었지만 어디에서 발견되었었는지, 그 발견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를 통해 무엇을 새롭게 알게 된 것인지 등은 잘 몰랐었다. X선이라 불리우는 뢴트겐 광선이나 페니실린이란 항생제도 그저 그런 게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을 통해 어떻게 그것들을 발견했고, 우리 생활에 어떻게 도움이 되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16가지의 주제는 분명 흥미로운 소재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16가지 주제를 선정한 기준을 잘 모르겠다.  그리고 그 발견들이 "세계사를 뒤흔들"만큼의 엄청난 발견이라는 생각에는 솔직히 공감하지 못하겠다. 나보코프의 [롤리타]란 소설과 리히베르크의 [롤리타]가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세계사를 뒤흔들었는가? 라스코의 동굴벽화와 쿰란의 두루마리가 발견됐다는 것은 분명 그동안 몰랐던 많은 옛날 이야기를 해 주고 있지만, 그 발견이 세계사를 뒤흔들 정도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판적 책읽기인지 삐딱한 책 읽기인지 모르겠지만 <띠무늬 스타킹을 신은 기린>과 <진화를 거부한 살아있는 화석, 실러캔스>를 읽다가 문득 속이 약간 뒤틀렸다. 이미 원주민들은 알고 있던 오카피라는 짐승과 실러캔스라는 물고기를 유럽인들이 처음으로 봤다고 해서 "발 견"이라고 말할 수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기에. "그게 뭔 발견이야? 유럽인들 당신들이 몰랐던 것 뿐이야. 원주민들은 이미 알고 있었는데 뭘." 하는 말을 해주고 싶은 이 삐딱함이란...^^;

    책을 삐딱하게 보기 시작하니 끝이 없다. 각 주제의 마지막 부분엔 "좌충우돌 세계사, 그 오해와 진실"이라는 이야기가 덧붙여져 있다. 각 주제에서 다룬 것과 비슷하거나 연관되는 이야기를 골라 약 한장 정도의 분량으로 덧붙이고 있는 부분이다. 이 책의 글쓴이는 "구트룬 슈리"라는 독일의 역사교수이다. 그런데 "좌충우돌"에 실린 이야기는 이 사람이 쓴 글 같지는 않다. "운주사 와불"에 관한 이야기나 "정약용의 카메라"이야기를 설명하고 있는 걸 보면, 출판사 측에서 관련이야기를 첨가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 부분은 글쓴이의 저작과 출판사의 덧붙임을 사전에 설명해주는 편이 독자에게 덜 혼란스럽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까지 들었다.

   좋은 책에 대해 너무 혹평을 한 건 아닌가 걱정이 되긴 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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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톈, 중국인을 말하다
이중텐 지음, 박경숙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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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톈 교수와 중국인을 주제로 한담을 나누다.>
 

  2008년이다. 중국 베이징에서 올림픽이 열리기로 예정된 해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중국에 관한 책이 종종 보였다. 유행처럼 중국에 대해 말들 하길래 나도 한 권쯤은 읽어야 할 것 같다는 의무감이 생기기도 했다. 그래서 읽게 된 책이 바로 이 책 [이중톈, 중국인을 말하다]라는 책. 글을 쓴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가 궁금했다. 어떻게 생긴 사람일까가 궁금했다가 더 맞는 말인 것 같다. 인터넷을 통해 검색을 해 봐도 나와있지 않고, 흔히들 책 앞날개에다 저자 사진을 붙여두곤 하던데 것도 없어서 저자의 모습은 확인할 수 없었지만  책 소개글에서 "중국 CCTV <백가강단>의 스타교수 이중톈"이란 문구를 보고는 글쓴이에 대해서 내 마음대로 상상해버렸다. 텔레비전에 나와서 고전을  강의하는 "스타교수"라...? 잘은 모르지만 왠지 도올 선생과 비슷할 것 같은 생각이 자꾸 떠오른 건 나뿐일까..? 이미 삼국지 강의 등을 통해 우리나라에서도 꽤 이름이 알려지신 분인 듯 한데 나야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글쓴이를 접하게 된 것이니..

  중국인이 말하는 중국인은 어떤 모습일까..? 내가 알고 있는 중국은 과거의 모습 뿐이다. 어줍잖게 주워들어 알고 있는 중국의 역사가 내가 알고 있는 중국의 전부이기에 내가 알고 있는 중국인은 과거의 그들뿐이다. 500쪽을 훌쩍 뛰어넘는 분량에 처음엔 약간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내가 모르던 무언가를 책을 통해서 만나게 된다는 건 기쁜 일이다. 적지않은 분량만큼 다양한 중국인들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는 계기가 되겠지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책을 읽으니 그다지 어렵지않게 읽을 수 있었다. 

   저자가 "들어가는 글"에서 소개하는 앞의 두 우스갯소리. 참 재미있다. 나는 "국민성"이 어떠하다는 둥 "지역성"이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이 그렇다는 식의 말을  "혈액형"으로 성격을 결정짓는 것만큼이나 믿지 않는 편이다. 어떻게 사람의 성격이 혈액형에 의해서, 지역에 의해서 결정될 수 있다는 말이지? 하는 의문이 생기곤 하기 때문에. 그 지역에 살지만, 혹은 그 혈액형이지만 일반적으로 분류되는 그들의 대표성격과는 다른 사람이 더 많던걸 뭐.. 하는 생각 때문에라도..  하지만 더러는 내가 믿지 않는 그런 것들이 맞아들어갈 때도 있더라. 특히나 국민성 어쩌고 하는 말들. 자신의 생활환경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게 마련인 사람이니까. 몇몇 나라 사람들을 무인도에다 떨어뜨려 놓았더니 영국인들은 어땠고, 스페인 사람들은 이랬고, 프랑스 사람은 저렇더라는 이야기.. 글쓴이는 그것을 "이 역시 이상할 게 없다. 인간은 문화의 존재물이기 때문이다."(p12)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 인간은 문화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자신들이 만든 문화에 영향을 받기도 하는 존재다. 그렇다면 중국인들은 어떤 문화를 만들어내고 그 문화에 어떤 영향을 받고 살아왔는가? 글쓴이는 중국인과 중국인의 문화를 살펴보는 큰 주제로 <음식> <의복> <체면> <인정> <단위> <가정> <결혼과 연애> <우정> <한담>의 9가지를 들고 있다. 

   특히 시작부분인 <음식>부분에서 중국의 역사와 한자에서 발견되는 중국인의 문화에 대한 설명에 많은 부분 공감을 했다. 초 장왕이 "구정의 무게가 얼마나 되느지 모르냐"(p44)라고 물었다는 이야기는 중국 역사를 훑어보면서 익히 보아왔던 것이다. 하지만 글쓴이처럼 "나라의 솥을 맡았다는 것은 정권의 장악을 의미했다."(p44)라는 것으로 연결지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왜 중국인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먹는다"는 것과 관련된 말들이 믾은지를 글쓴이는 농경문화에서 찾고 있다. 유목민족과는 달리 농사를 지어서 때를 기다려야 했던 중국인들로서는 먹을 것을 항상 염려했어야 했다는 것. 비슷한 농경문화를 형성해 왔던 그들과 우리라서 그런지 공감되는 부분이 정말 많았다.  그리고 <의복>부분에서는 옷을 뜻하는 단어 衣와 기대다 의지하다는 뜻의 한자 依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중국인은 스스로 일을 해결하려기보다는 조직이나 어떤 사람에 기대어 일을 해 나감을 설명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글쓴이가 말하는 중국인의 벌떼근성과 획일성은 우리가 말하는 대한민국의 "냄비근성"과 닮아보였다. "중국인의 벌떼 근성은 다름 아닌 단체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p149)는 그 말은 왠지 우리 나라에도 적용되는 말인 것 같았다.

  <체면> <인정> <단위> <가정>에서는 중국인의 사회생활과 관련된 부분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의복>부분에서도 이미 설명했지만, 중국인의 단체의식. "튀거나 뒤떨어지지 않고" 적당히 비슷하게 뭉뚱거려지는 중국인의 모습, 체면을 중시하고, 받은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꼭 돌려주어야 하는 인정 혹은 복수도 우리와 너무나 닮아보였다.
 
  책을 읽으면서 중국인과 우리는 비슷한 면이 참 많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같은 한자문화권이라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비록 번역을 통해서지만 별 무리없이 그대로 내게 다가오는 듯한 느낌이 들어 좋았다. 영어나 다른 언어로 번역된 이 책을 읽는다면 혹은 중국이나 우리와는 문화가 많이 다른 서양인이나 그 외의 국가들의 사람들도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을까가 궁금해졌다. 글쓴이의 "한담"을 나누는 듯한 편안한 글쓰기가 책을 어렵잖게 읽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아울러 책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고 있는 <홍루몽>과 <수호전>, <아Q정전>은 기회가 되면 꼭 읽어보고 싶다. 그 속의 등장인물들을 통해 중국인의 모습을  설명하는 걸 보면 아마도 세 작품 속에서 중국인의 전형이라 할 만한 인물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가 생긴다.  오랜 시간  많은 분량을 고민하면서 글로 풀어낸 중국인에 대한 이야기를 내 짧은 글 실력으로 정리하기엔 벅차다. 이렇게밖에 정리할 수 없는 내 글 솜씨를 원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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