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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부패사건에 휘말리다 - 조말생 뇌물사건의 재구성
서정민 지음 / 살림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세종처럼 성군으로 알려진 임금의 이름 옆에 쓰여진 "부패"라는 단어가 의아했다. 세종이 우리가 몰랐던 무슨 "부패"사건을 일으키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럴 리는 없을테고. 그럼 혹 신하의 부정부패사건을 눈감아 준 것일까? "조말생 뇌물사건의 재구성"이라는 부제를 보면 전자보다는 후자의 측면이 강할 것 같다고 짐작은 되지만.. 제목에 호기심이 동했다. 세종에 대한 책을 근래 들어 몇 권 읽으면서도, 내가 잘 몰랐던 세종의 위대한 모습, 인간적인 모습만을 확인했었지, 세종의 부정적인 모습은 찾아보기가 힘들었는데, 이 책에선 세종의 어떤 모습을 이야기하려고 이런 제목을 붙인 것일까?
성급한 마음에 책을 펼쳐보니 글쓴이가 현직 검사다. 세종에 관한 이야기니 역사가가 쓴 책이겠거니 했는데 현직 검사가 쓴 책이라..? 조금 더 호기심이 동한다. 법조인이 보는 세종의 모습은 어떨까?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는 부제에서 짐작되는 바와 같이 조말생이라는 신하의 뇌물 수수 사건이다.
"조말생이 김도련의 부탁에 따라 김도련의 노비소송을 담당하는 형조刑曺와 노비변정도감奴婢辨定都監의 담당관리에게 유리하게 판결하여 줄 것을 청탁하고 이 대가로 김도련으로부터 노비를 증여받았는데, 증여받은 노비가 24명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p25) 한마디로 조말생의 뇌물 수수 사건은 권력형 비리의 전형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도덕성은 공직자의 자질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긴 한다만, 조선의 법은 현재의 법보다 조금 더 엄격했던 모양이다. "<대명률>에 따르면 뇌물을 받은 관리는 받은 뇌물의 수량에 따라 처벌받게 되는데 조말생이 받은 뇌물의 수량은 사형에 해당하는 규모였다."(p40) 아직까지 뇌물 좀 받았다고 해서 사형에 처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말이다.
조말생의 죄가 사형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사형에 처하자는 대간의 압박과, 조말생이 부왕인 태종으로부터 신임받던 신하로써 공이 있으니 유형으로 그치자는 세종의 중도론이 대립했다. 결국 세종의 승리? 조말생의 유배로 사건은 종결되는 듯 했다. 하지만 얼마 후 세종은 그를 사면하고 결국엔 복직을 시키기까지 한다. 이에 반발한 대간의 반발 상소가 이어진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강력한 왕권만이 존재했을 것 같은 왕조시대에 신하된 자들이 감히 겁도 없이(?) 왕의 말에 반발하며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하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일방통행이 아니라, 왕과 신하가 어떤 사안에 대해 주거니받거니 논쟁하는 모습은 왕권과 신권이 균형과 조화를 이룬 조선 왕조의 시대상의 단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그리고 의문점이 하나 생기기도 했다. 왜 세종은 조말생에 대해 그토록 관대한 처분을 고집하였던 것일까? 책의 중반부분까지는 조말생이 왕실과 인척관계였다는 점, 태종의 총애를 받았다는 점, 그리고 국사에 공이 있다는 점 등을 그 이유로 들고 있는데 그것만으로는 뭔가 모자란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간의 공격을 받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사형에 처할만큼 중죄를 지은 신하를 보호할 이유로는 부족하지 않은가..? 그렇다. 책을 좀더 읽어나가다 보면 글쓴이는 그 이유를 함길도의 국방 방어를 위한 적임자가 바로 조말생이었음을 추가로 설명하고 있어, 그 의문점이 해결됐다. 세종은 조말생을 함길감사로 임명한데 대해 대간이 반발하자 "내가 그대들의 말을 진실로 아름답게 여긴다. 허나 말생을 보낸 뒤에야 함길도의 백성을 구제할 수 있기 때문에 윤허하지 아니하는 것이다."(p137)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조말생을 등용하여 활용한 것은 단지 시대적으로 요긴한 서북면 정벌의 군사 활동과 대명 외교 차원 때문이었지 절대로 조말생이 행한 부정부패를 부정하여 개인을 신원하여 주기 위한 차원이 아니었음을 분명히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p198) 그랬다. 이 책을 통해 세종의 부정적인 모습을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절반의 걱정과 절반의 호기심은 이렇게 해결됐다. 다행이다. 내가 머리 속으로 그리고 있는 성군 세종의 이미지에 흠집이 나지 않아서..
현직검사가 쓴 글이라 그런지 조말생 사건을 현재의 시점과 비교 분석하는 부분이 많다. 그리고 과거의 사법제도와 현재의 사법제도에 대해서도 여러 장에 걸쳐 비교설명해 주고 있다. 알수록 더욱 호감을 갖게 되는 세종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다.
오자? P49의 3줄 : 체통를 -> 체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