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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 살아있는 미국역사 - 신대륙 발견부터 부시 정권까지, 그 진실한 기록
하워드 진.레베카 스테포프 지음, 김영진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3월
평점 :
[부도덕한 나라, 미국사의 진실을 말한다.]
얄팍한 독서이력이라 어떤 책을 많이 읽었네 말하기에 스스로도 부끄러울 따름이지만, 그 얄팍한 독서목록 중에서 다른 분야의 책보다 그나마 역사서를 많이 읽어온 편이다. 우리 나라, 동서양에 관한 역사책이라면, 고대사가 됐든 비교적 최근의 일을 다룬 역사서가 됐든 챙겨읽고자 노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읽은 게 별로 없다보니, 감히 책에 대해서 "이 책은 어떤 관점에서 쓰였다"거나 "이런 면은 저자의 관점이 이상하다"는 둥의 평가를 내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핑계 같지만 그런 판단을 할 수 없게 만든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저자는 어디 가 버렸는지 없고, 책에 쓰인 말투는 주관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지극히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 같아 보이는 책들이 거의 전부였다. 예전에 강준만 교수의 [한국현대사 산책]이란 시리즈의 책을 읽으면서는 또 얼마나 놀랐던가? 이전까지 나는 역사서에서 저자의 관점이 드러나는 글을 접해보지 못했을 뿐더러, 접했다하더라도 어떤 것이 저자에 의해 선택된 역사인지를, 어떤 것이 저자의 관점인지를 눈치채지 못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비주류의 역사 혹은 저항의 역사, 피지배층의 역사, 하워드 진 교수의 역사를 보는 관점이 밖으로 표현된 역사"라면 이 책에 대한 정리가 될 지 모르겠다. 이 책의 원제는 [Peopleps History of the United Staes ; 미국민중사]라고 한다. 한국어 번역본의 제목도 나름 어울리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이 책의 제목은 원제 그대로 [미국민중사] 편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관통하는 하워드 진 교수의 역사를 보는 관점을 내 나름대로 정리해보자면, "부도덕한 나라, 미국"이 아닌가 싶다. "콜럼버스는 황금이 매장되어 있는 곳을 알려줄 인디언을 납치하는 것으로 처음 그들과 관계를 맺었다."(p20) "이것이 바로 유럽인의 아메리카 대륙 생활의 첫출발이었다. 정복과 노예와 죽음의 역사였던 것이다."(p23) 이 부분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에 대해서. 며칠 전에 읽은 또다른 책(유럽인이 쓴 책이었다.)에서 "발견"이라는 단어 때문에 배알이 틀렸었다. 원주민들은 이미 알고 있던 생물에 대해 유럽인들이 그제서야 알게 된것을 엄청난 "발견"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서 별로 유쾌하지 않았었다.
그런 의미에서 하워드 진, 이 사람(1922년생, 내게는 증조할아버지뻘이라 "이 사람"이란 표현이 상당히 거만하게 느껴진다만.) 글쓰는 스타일 한번 마음에 든다. 콜럼버스와 그 이후 아메리카로 온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를 "발견"하고나서 얼마나 몹쓸 짓을 했는지를, 왜 콜럼버스가 영웅시되어서는 안 되는지를 조목조목 설명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은 이후에 전개되는 미국사에서 가려져왔던(내가 보아왔던 역사서에서만 가려졌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인디언, 흑인노예와 백인 하인 그리고 여성들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으로 일관하고 있다. 미국사를 주도했던 백인들이 그들의 명백한 사명("해마다 수백만씩 인구가 증가하는 우리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이 대륙을 우리가 모두 차지하는 것은 명백한 사명이다." -John O`Sullivan p105)을 위해 그 땅의 원래 주인이었고 오랜 시간동안 그 곳에서 평화롭게 살아왔던 인디언들을 얼마나 잔인하게 학대했는지. 그리고 짐짝마냥 배에 선적된 채 붙들려 온 흑인노예들에게 얼마나 가혹했는지. 여성들에게는 또 얼마나 가혹한 차별을 가했는지를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1,2차 세계대전은 물론이고, 베트남전쟁, 그리고 90년대의 걸프전, 911이후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이라크전에 이르기까지의 그들의 기만적이고 착취적이고, 부도덕한 전쟁의 모습과 그에 가려지고 무시당해온 많은 사람들의 양심의 소리까지 이 책을 통해 그동안 내가 잘 몰랐던 미국의 역사를 확인하게 됐다. 이 책을 옮긴이는 하워드 진 교수에 대해 "그의 정신을 한 마디로 표현하라면 저는 감히 '젊음'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라고 얘기하고 있다. 나 역시 동의한다. 1922년생, 아흔에 가까운 그의 젊고 냉철한 비판 정신을 통해 미국사를 새로운 관점에서 접하게 되었기에.. 이런 역사책들 앞으로도 많이 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자? 책13쪽 8줄 : 영답다 -> 영웅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