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오류 - 되짚어볼 세계사의 의혹 혹은 거짓말 50
베른트 잉그마르 구트베를레트 지음, 이지영 옮김 / 열음사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나는 소위 정사라고 일컬어지는 역사의 큰 나무도 좋아하지만, 곁가지로 빠져드는 자잘한 곁가지 같은 역사이야기도 좋아하는 편이다. 이런 류의 책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틈새 메꾸기 역사책"이라면 적절할지 모르겠다. 내가 알고 있는 역사지식이 워낙 엉성한 것이다 보니 틈이 많다. 그 틈을 요리조리 잘 메꿔주는 책이 바로 이런 책이어서 읽을 때마다 감사하다. 개설서나 이론서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재미"라는 요소가 추가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역사의 오류라.... 목차를 훑어보니 고대의 "노아의 홍수"에서부터  최근의 일이라 할만한 "유고슬라비아 내전"에 이르기까지 흥미로운 소재들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세계사"라는 작은 주제에 비한다면, 아시아의 역사는 거의 배제되어있다. 아쉽다. 저자가 독일인이라 그런가? 아시아, 동양의 역사에도 재미있는 소재 많은데 이왕 세계사라 이름 붙인 책이라면, 좀더 조사하고 연구해서 같이 실려있었으면 더 좋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이 책에서 읽은 이야기들은 예전에 어딘가에서 주워들어 이미 알고 있었던 이야기도 더러 있었지만, 내가 잘 모르던 이야기들도 많았다. 그 중 몇 가지를 얘기해보자면 이렇다.

   마라톤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 마라톤의 기원은 비교적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하지만 글쓴이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 이야기에 대해 부정하는 입장이다. "그런 그(=헤로도토스를 말한다. 서평자 인용)가 승리의 소식을 아테네에 전하기 위해 목숨을 버릴 마늠 용감했던 병사에 관해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은 상당히 의심스러운 일이다."(p26)라는 문장이나 "당시 그리스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신호로 소식을 전하는 통신체계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p26)에 굳이 목숨 걸고 아테네로 달려올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그 이유로 들고 있다. 내가 예전에 읽었던 이야기와는 너무나 반대의 이야기라 어느 편이 옳은 이야기인지는 잘 모르겠다. 

   또 하나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에 관한 이야기. 내가 유럽인이 아니기 때문인지 "신대륙 발견"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약간 불쾌하다. 뭔 발견씩이나 했다고 그렇게 떠벌리는지.. 이미 그 대륙엔 짐승도 아니고 문명을 이룬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런 면에서 글쓴이가 말하는 발견의 개념이 마음에 들었다. "우선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이라는 개념 자체가 철저히 서구 중심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대단히 주제넘은 개념이라는 것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p132)라고 언급하고 있다는 면에서. 그리고 그가 인용한 노벨상 수상자인 알베르트 쇤트 죄르지의 "발견이란 이미 다른 사람들이 보았던 것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해내는 것이다."라는 정도의 의미로 "발견"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면 콜롬버스의 아메리카 "발견"이라고 말해도 용인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려졌던 사실을 알게 되서 기분 좋아지는 역사도 있지만, 그 반대인 역사도 있다. 예를 들자면 링컨의 노예해방과 관련된 이야기 말이다. 어린 시절 링컨의 위인전기를 읽으며 링컨이 얼마나 위대해보였던가? 하지만 "이 전쟁에서 내가 최우선적으로 추구하는 목적은 연방회복이지, 노예해방이나 노예제도 폐지가 아니다."(p223)라는 그의 말은 내겐 약간의 실망을 안겨준다.


   이 책은 서양사에 대한 어느 정도의 사전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더 적합한 책일 것 같다. "되짚어볼 세계사의 의혹 혹은 거짓말 50"이라는 부제처럼, 유명하지만 왜곡되어 기록된 이야기나 사실 여부를 두고 학자들 사이의 이견이 존재하는 사건들에 관한 것이라 재미는 있으나, 서양사의 큰 틀에 대한 이해없이는 읽는 재미가 감하는 책이기도 하다. 서양중세의 보편 논쟁에 대한 지식이 있다면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사랑 이야기를 알 터이고 그 둘 사이에서 오고갔다는 연서의 진위여부에 관심이 가겠지만, 그렇지 않은사람에게는 재미없는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글쓴이는 특정사건을 바라보는 상반되는 관점에 대해 자신이 옳다고 생각되는 쪽에 전적으로 편을 들어주고 있는데, 그건 글쓴이의 독단적인 의견 피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종종 글쓴이가 반박하고 있는 주장이 오히려 더 그럴 듯해 보이는 면이 있기도 했기 때문에.

   하지만 내가 잘 몰랐던 역사이야기와 이견이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사건에 대해 알게 된 점, 역사가 딱딱한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재미있는 이야기거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발견케 해준 고마운 책이기도 하다. 의구심이 남는 몇몇 이야기에 관해서는 글쓴이의 의견에 반박할 만한 역사적 지식과 안목을 키워 다음에는 반박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그러려면 많은 역사책을 읽고 생각해보아야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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