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서아 가비 - 사랑보다 지독하다
김탁환 지음 / 살림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노서아 가비. "가비"라는 말을 커피와 바로 연결시킬 수 없었기에 이게 무슨 말일까 싶었다. Russian coffee란다. 커피라는 말보다 가비라는 말이 더 정감있네.. 가비 한잔. 가비. 김탁환이라는 작가의 글을 세번째로 만나본다. [열하광인]과 [혜초]. 그리고 이 책 노서아 가비. 그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tv문학관으로 기억되는 프로그램에서 방송되었던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을 통해서였다. 이야기가 독특하면서도 흡인력이 느껴져 원작자인 그의 이름 석자가 머리 속에 남아있었는데, 그 이듬해엔가 [열하광인]으로 그의 글을 처음으로 읽었다. 그간 읽어왔던 소설들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상투적으로 이야기해보자면 그의 글에서는 "신선한 충격"이 느껴졌다.독특했다. 그리고 몇 개월 전에는 [혜초]를 읽으면서 김탁환이라는 작가의 이야기방식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었는데 [노서아 가비]를 읽어보니 것도 아니네. 이 책은 또 느낌이 많이 다르네. 작가라는 사람들은 이렇게 다양한 모습을 숨겨두었다가 조금씩조금씩 내보이는가 보다.

 

    이야기의 흐름이 무척 빠르다. 기존에 내가 읽었던 그의 소설 두편보다는 이야기의 방식이 가볍고 쉽다. 그래서인지 "그야말로 순식간에 읽어 내려간 소설이다."는 문학평론가 전형준의 말마따나 속도감 있게 읽히는 소설이었다. "황현 선생님의 [매천야록]에 실린 김홍륙의 일화가 [노서아 가비]를 구상하는 데 중요한 모티프가 되었습니다. - 중략 - 다양한 문헌을 통해 김홍륙의 행적을 검토하면서 상상의 나래를 폈습니다. 물론 김홍륙의 삶을 사실적으로 담을 수도 있겠지만, 저는 앞서 언급한 경쾌한 사기극에 어울리도록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었습니다."(p238)  역사상에는 "김홍륙 독차사건"이라고 기록된, 고종 때의 이야기가 이 책의 배경을 이룬다.

 

    한쌍의 사기꾼 남녀의 이야기다. 벗겨내도 벗겨내도 속을 알 수 없는 양파 같은 사기꾼 사내 이반. 그리고 내가 파악한 결론으로는 사기꾼이라고 표현하기엔 뭔가 어수룩한 여자 따냐.  [노서아 가비]의 글은, 이런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는데 줄거리만 추려낸 요약본의 글 같다. 핵심만 간단히!  사기꾼의 이야기인데 이렇게 별다른 힌트없이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가는 바람에 결국엔 글쓴이조차 사기극에 동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약간 배신감이 들었다고 할까? 책에 너무 몰입해버렸나...?

    이반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계획했던 걸까. 이반이 따냐를 사랑했던 적이 단 한번이라도 있을까.  이야기 후의 따냐의 삶이 궁금하다.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웠던 시절이 절반, 담배를 피우며 커피를 마셨던 시절이 절반"(p11)인 그런 세월을 보냈을까.. 고종을 무능하고 운이 따라주지 않았던 그저 그런 군주로만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그의 "외로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커피 맛도 모르는 입이 어디 입인가."(p29). 1년에 어쩌다 한두번 커피를 마시는 입 같지도 않은 입을 가진 독자인 나조차 "노서아 가비"의 그 향과 맛이 궁금해져버렸다. 외로운 고종과 마주앉아 따냐가 내린 노서아 가비 한 잔을 마시고 싶어지는 책. 김탁환이라는 작가의 또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해 준 책. 그리고 "출간 즉시 영화화 결정!"이라는데 영화로 만들어지면 다양한 장르가 결합된 독특한 작품 하나를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책. [노서아 가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역사란 무엇인가? - 알기 쉽게 풀어쓴 (한글판 + 영문판)
E. H. 카 지음, 이화승 옮김 / 베이직북스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E.H. Carr의 유명한 이 책 [What is History 역사란 무엇인가]는 몇 해전에 읽고서 좌절감을 맛 본 터라 이번에 다시 펴들면서 솔직히 겁이 났다. 그나마 이 책을 다시 펴볼 용기를 가진 것은,  그래도 지난 몇 년간  다른 책보다는 역사에 관한 책을 좀더 관심있게 봐 왔던 터라 이제는 읽을 수 있을 꺼라는, 읽힐 꺼라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제목 앞에 붙은 "알기 쉽게 풀어쓴"이라는 수식어구 또한 무척 매력적이었다. 지난번에 내가 [What is History]를 읽고도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순전히!" 번역의 문제라는 핑계를 끌어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옮긴이는 "나는 학창시절 [역사란 무엇인가?]를 탐독하는 과정에서 도저히 수긍하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미련 때문에 이 책에 대한 새로운 재해석 차원에서 번역에 감히 도전을 하게 되었"(p250)다고 한다. 나 같이 게으른 사람을 위해서는 고마운 일이다. 또 한 가지. 영어를 잘 하지 못해도, 우리 말과 영어의 뉘앙스 차이를 가끔 느끼는 터라, 영어 원서와 함께 한 질로 묶여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알기 쉽게 풀어쓴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알기 쉽게 풀어쓰지 않은(?)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을 때만큼이나 내겐 어렵게 느껴지네. 독해력의 부족인가 보다. 하지만 내가 이해한 바 대로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해자면 이렇다. 책은 전체 여섯개의 장으로 이뤄져있다. What is History는 E.H.Carr가 1960년에 행한 여섯 차례의 강연의 강의록이다. Carr의 그 유명한 말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p45)는 그의 첫 장 "역사가와 역사적 사실"에 나오는 말이다. 그는 역사해석에 있어서의 역사가의 역할을 강조하며, 랑케를 대표주자로 하는 실증주의 학파에 대해 반대의 견해를 보인다. 문서 숭배라는 형태를 통해 완성되고 정당화된 19세기의 사실 숭배를 비판하며 문서는 그 문서를 남긴 이가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것 혹은 일어났다고 생각하고 싶었던 것을 서술했을 뿐이라는 이야기도 하고 있다.

 

    "사건만이 흐름 속에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가 자신도 그 흐름 속에 있는 것이다. 역사서를 읽을 때, 저자의 이름을 지면에서 찾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간행 또는 집필 연대를 찾아야 하며 ~ 하략~"(p66)라는 그의 말은 그간 생각해보지 못했던 역사 읽기의 방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역사가는 그가 쓰는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개인적인 사생활에 대해 도덕적 판단에 치중해서도 안 되고, 역사에 있어서의 "우연"을  필연으로 믿는 우를 범해서도 안 된다는 조언을 던지기도 한다.

 

    그가 이 강연을 했던 1960년대와는 50년이라는 시간의 간격 때문인지 이 책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시 읽으면서는 도저히 읽기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은 점 다행이라 생각한다. 다음에 기회가 되서 다시 읽을 기회가 생긴다면 그의 생각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그리고  "카가 위대한 역사가이긴 하지만 그의 역사 인식론에 머물거나 그것에만 얽매일 필요는 없습니다."(p243)라는 옮긴이의 말을 위안 삼으며..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거창한 질문에 대한 나만의 그럴 듯한 대답을 내놓을 수 있을 때까지는 더 열심히 읽고 공부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히며... 잠시 책을 덮어둔다.

 

 

 

잘못된 글자

책 앞날개에 실린 E.H.카의 생년 "1982년 런던 출생"은 바로잡아야 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새벽녁에 빗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서 깼다. 머리맡에 놓아둔 손목시계가 째깍거렸다. 비가 잠시 그친 하늘은 여전히 회색빛인데 멀리서 새소리가 들려온다. 사람의 언어로는 표현이 되지 않는 그런 지저귐이다. 컴퓨터 키보드의 소리 역시 오늘 아침엔 도드라지게 또각거리는 것 같다. 또각또각 타다닥..."듣는다는 것이 이렇게 엄청난 일일 줄 그는 미처 몰랐다."(p40) 나도 몰랐었다. 지난밤까지는... 간밤의 잠자리는 사실 좀 불편했었다. 불편함의 원인은 한 권의 책 때문이었다. 저녁을 먹고서 "오랜만에 소설이나 한 편?"하고 펴든 책인데 이렇게 불편할 줄 알았으면 주말에 읽을 껄 싶었지만, 아직은 한 주의 첫머리인 화요일 밤에 읽기는 부적절하다 싶은 소설이었지만, 그래도 6월의 마지막날이니까 읽어도 괜찮을 꺼라고 스스로와 이상한 타협을 하고서 펴든 책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6월의 마지막날'이라는 핑계로 펴들었던 그 소설을, 화요일을 넘겨 7월의 첫 날인 수요일로 날짜가 바뀌는 걸 보고서도, 반이 넘게 읽다가 잠들었다. 그리고 이른 새벽 빗소리에 잠이 깼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밤새 꿈은 어지러웠다."(p267) 허공에서 자꾸만 곤두박질치는 그런 꿈을 꿨던 것 같다.

 

     "공지영 = 불편한 작가". 언젠가부터 그런 생각을 해 왔던 것도 같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가 그랬던 것 같고,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녀의 작품으로 기억되는, 운동권 출신의 여대생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단편이었던가 중편소설이 그랬던 것 같고, 책으로 읽지는 못했지만 흐르는 눈물을, 저 잘 생긴 배우가 우니까 나도 우는 것 뿐이란 변명을 했던 영화[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그랬다. 오디오북으로 들었던 [즐거운 나의 집] 역시 많이 불편했다. 출처가 기억나지 않는데, "돈 되는 이야기가 아니라면 안 쓴다."고 말했던 그녀의 인터뷰 기사 역시 불편한 기억으로 남아있었는데, 하나 더 추가다. [도가니]. 솔직히 이 책은 내게 분노의 도가니였다. 질척거리는 늪에 빠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구제하기 힘든 인간군상들을 보며 "Oh! My God!"을 연발케 하는 총체적 난국이었다.

 

    이야기는 무진시(霧津市)의 자애학원이라는 청각장애아를 위한 사립학교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아내 친구의 빽!으로 그 학교에 기간제 교사로 가게 된 강인호가 접하게 된, 더러운 현실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기간제다. "이 신삥 새끼구나. 가뜩이나 요새 골치 아픈 일도 많아 죽겠는데, 뭘 쳐다봐. 이 씹새야!"(p120)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행정실정과 그 행정실장의 쌍둥이 형이 교장으로 있는, 그 쌍둥이들의 아버지가 설립한 학교. "이렇게 안개가 내리면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다 한들 외부에서는 전혀 알 길이 없"(p42)는, 그런 학교의 기간제 교사. 학생들이 내지르는 비명을 들을 수는 있지만, 대다수의 선생들이 못 들은 척 넘어가버리는 상황에서 그는 학생들의 처절한 비명을 듣게 된다.

 

    글쓴이가 쏟아붓는 신랄한 독설을 들으며 "오물 가득한 욕탕에 들어가 머리끝까지 푹 잠긴 기분"(p51)이었다. 책을 읽으며 화가 났다.  나는 그들처럼 가진 것도 별로 없고, 종교의 가면을 쓴 채  선량한 척 해 본 적도 없는데 왜 자꾸만 내가 가해자인 것 같이 느껴지는지... 교회 목사의 설교는 차라리 한편의 코미디였지만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이야기라 쓴 웃음이 났고, 돈 앞에 무릎 꿇고 마는 가난한 사람들을 실컷 비난할 수 없는 나의 얄팍한 도덕성에 짜증이 났고,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에 진저리가 났고, 사회의 상층을 이루는 인간들의 보잘것 없는 도덕성에 분노가 치밀었다. 심지어는 무진의 그 안개에게까지도, 자신의 치부를 한사코 덮어버리는 듯한  무진의 그 안개에게까지 분노했다.

 

     이 모든 것에 대한 분노는 공지영 때문이다. 글을 너무 잘 썼다. 내 눈 앞에서 벌어지는 추악한 일들에 행동하지 못하는 양심, 안타까움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듯한 착각을 하며 읽었다.  그런 나와 같은 사람들을 향한 연민이 느껴져 더욱 부끄러웠던 이야기 [도가니].  "무진은 자애의 도가니였다."(p148) 그렇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이 자애의 도가니 무진(霧津)일지도 모른다.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했던 책. 분노의, 연민의, 부끄러움의, 불편함의, 안쓰러움의, 민망함의 [도가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50가지 이야기 - 생각의 크기를 쑥쑥 자라게 하는, 미국판 탈무드 생각 쑥쑥 어린이 시리즈 1
제임스 M. 볼드윈 지음, 김희정 옮김, 이정헌 그림 / 스코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원제는 [Fifty Famous Stories]라고 한다. 한국어판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50가지 이야기]라는 제목과는 사실 느낌이 많이 다르다. 한국어판의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땐 어떤 이야기들이 실려있을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책을 읽으면서는 그닥 "재미있지만은 않은데..."라는 생각을 해야했다.  그러다 책 끄트머리에 실린 "옮긴이의 말"에 나와있는 이 책의 원제를 보고는 그 제목이 더 알맞겠다는 생각을 했다. "재미"라는 단어의 사용법이 다른 모양이다. 분명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유명한, 그래서 한번쯤은 들어보았을법한 이야기들이고, 나름의 감동과 교훈이 있지만 글쎄  "재미있는" 이야기란 제목으로 묶어서 소개하기엔 다소의 무리가 있지 않나 싶다. "재미있는"이란 말에다 "웃긴"의 의미를 많이 두는 나 같은 독자들에게는 말이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앞서도 말했지만 유명한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어른들이라면 이런저런 경로로 한번쯤은 들어보았을법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빌헬름텔이 아들의 머리 위에 사과를 얹어놓고 쏘았다는 이야기나, 아르키메데스가 목욕을 하다 "유레카"를 외쳤다는 이야기 혹은 알렉산더가 그의 애마 부케팔라스를 다루게 된 이야기, 장님 코끼리 만지기와 같은 이야기들 말이다. 그래서 다소 식상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 책은 어린이용이다! 어린이들이 읽으면 분명 "아.. 이런 놀라운 이야기가 있구나."라는 감탄을 자아낼 법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책의 구성은 짧게는 두 쪽 정도에서 길게는 서너쪽 정도의 한 편의 이야기에다 그 끝부분에는 "생각꾸러미"라는 작은 박스를 통해, 앞서의 이야기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꺼리나 생각해 볼 문제를 제기하고, 간간이 실린 "역사 속으로 폴짝!"에서는 이야기 속의 인물이나 시대에 대한 설명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는 식이다.

 

     이미 많이 자라버린 나로서는 어린이들이 이 책을 읽으며 느낄 구체적인 감동은 짐작하기 힘들다. 하지만 어른의 입장에서 이 책을 읽은 느낌을 말해본다면.. 이 책에 실린 인물들은 "정말 이런 사람들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바보같은" 인물들의 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적군에게 한 모금의 물을 건네는 바보 같은 덴마크 병사의 이야기(p144)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모르겠다. 적군과의 약속을 지키겠다고,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 비참하게 죽었다는 레굴루스의 행동을 "로마를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도시로 만든 참다운 용기"(p133)로 받아들여야 할 지, 내가 그 덴마크 병사였더라도, 내가 레굴루스였더라도 그렇게 행동했을꺼라고는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 어렸을 때는 이런 책을 읽으면 감동이 커서 오랫동안 다시 생각해봤을 법하지만, 그런 순수함을 많이 잃어버린 모양이다.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은 그들을 "바보 같다"고 여기지만 그들은 위대했기 때문에 오랜동안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뜻을 기려온 것일테고, 세상은 오히려 그런 "바보"들의 우직함으로 움직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아쉬움 한 가지. "필립 왕의 병사들 중에는 재주가 뛰어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는 용감하고 여러 가지로 왕을 늘 즐겁게 해 주었기 때문에 왕은 그를 유달리 믿고 좋아했습니다."(p140)  "필립 시드니 경 때의 일입니다. 이후 백여 년이 채 못 되어 스웨덴과 덴마크 사람들 사이에 전쟁이 일었났습니다."(p143) 두 인용문 다 각각의 이야기의 첫머리이다. 문장 연결이 어색하다고 생각한 건 나 뿐일까? 전문번역가가 옮긴 글 치고는 어색한 문맥이 자주 보여서 많이 아쉬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청소년을 위한 삼국유사 청소년을 위한 동서양 고전 1
일연 원저, 김봉주 글 / 두리미디어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타임머신이 필요하다.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은 분명, 한 가지 모습일텐데 어떻게 이렇게 다른 해석들을 내릴 수 있는 걸까?  이 책 [청소년을 위한 삼국유사]를 읽으면서 예전에 봤던 영화 [라쇼몽]이 떠올랐다. 산길을 걷던 부부가 산적을 만났고, 아내는 산적에게 겁탈을 당했다. 얼마 후 남편은 가슴에 칼을 꽂은 채 시체로 발견되었다. 산적은 자신이 그 남자를 죽였다고 했고, 겁탈당한 아내는 자신을 불결하다 여기는 남편의 시선에 혼란을 느끼고 남편을 죽였다고 한다. 그러나 무당의 힘을 빌어 강신한 남편은 자신이 자결했다고 한다. 자. 이 남자를 죽인 이는 과연 누구인가? 그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궁금했다. 이 책 [~삼국유사]를 읽으면서도, 멀게는 2000년전, 가까이는 1000여년 전 이 땅에서는 과연 어떤 일들이 있었던 걸까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됐다. 그래서 내겐 타임머신이 필요하다.

 

      [삼국유사]를 읽은 기억이 있다. 우리 역사의 고전이라 불리우는 책이니까, 다른 분야보다는 그나마 역사에 관심이 많은지라 꼭 한번은 읽어야 할 것 같다는 의무감에 펼쳐든 책이었다. 그러나 어려웠다. 역사에 관한 바탕 지식이 없으니, 삼국유사에 나오는 "신기한!" 이야기들을 사실 그대로 믿어야 할런지 판단을 내리기가 어려웠고, 남들은 재미있다는데 글을 통해 표현된 당시의 정확한 상황을 머리속으로 그려내기엔 턱없이 부족한 내 상상력으론 읽어내기 힘들어  읽다가 중간에 멈추기를 여러 번 했던 것 같다. 이 책 [청소년을 위한 삼국유사]는, "청소년을 위한" 책이니까 쉽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펴들었다. 다행히도 기존에 읽다가 몇 번을 멈추었던 [삼국유사]보다는 훨씬 쉽게 읽히는 책이었고, 재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가독성이 좋은 책이라 책장이 잘 넘어갔다.

 

    책을 펴들기 전에 "일연 원저 / 김봉주 지음"이라는 저자 소개가 의아했었다. 삼국유사는 당연히 일연스님의 글인데, 김봉주 지음이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싶어서. 하지만 책을 펴보면 그 의문은 금방 풀린다. 글쓴이 김봉주는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이 책은 일연의 삼국유사 원문을 소개하고 그 앞뒤로 글쓴이의 역사해석이 가미된, 그러니까 단순히 "옮김"으로 표현할 수 없는 새로운 의미의 삼국유사, 좀더 정확히는 삼국유사 해설서라고 표현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아무래도 일연스님과는 800년 가까운 세대차이가 나는 터라 직접적으로 대화하기엔 어려움이 있었는데, 이 책의 글쓴이가 "일연스님의 이 말은 이런이런 뜻인 것 같다."고 통역의 역할을 하고 있는 그런 책이랄까...?

 

    글쓴이는 "여는글"에서   "<삼국유사>에는 분명 역사적 사실이라고 부를만한 이야기도 많지만, 그 자체를 사실로 보기 어려운 이야기도 많습니다. 상상력이 가미된 역사, 그런 것을 '사화史話'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사시과 허구가 뒤섞인 이야기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삼국유사>가 바로 사화의 대표적인 예가 되겠습니다. 그러나 허구가 섞여 있다고 해서 그것이 사실을 말하지 않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 허구의 내면을 적절히 해석하여 이해할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기록보다 훨씬 더 사실이나 실체적 진실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p13) 는 말을 하고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 허구의 내면을 적절히 해석하여 이해할 수만 있다면"이라는 전제가 되겠는데, 이 책은 글쓴이가 생각하는 삼국유사 속의 허구의 내면을 글쓴이 나름의 방식으로 적절히 해석하고 이해한 결과물이라 하겠다. 

 

     글쓴이는 삼국유사의 원문과 그에 대한 기존의 다양한 설명들을 아울러 소개하고, 그 중에서 글쓴이가 가장 그럴 듯하다고 판단 내린 사실을 재구성하여 들려준다. 그러한 글쓴이의 의견 대부분이 그럴 듯하다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주억거렸지만, 선화공주에 대한 이야기나 수로부인과 관련된 이야기 등 몇몇 부분에서는 글쓴이의 자의적 역사해석이 아닐까 하는, 우려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또 하나 책을 보면서 눈에 거슬렸던 몇몇 오류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28쪽의 각주 "배구전"은 "당나라 사람 배구전의 전기"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아마도 "배구裵矩"라는 사람의 전기를 말하는 듯하고, 그 아래의 각주 "통전"은 "당나라 사람 구우"가 아닌 "두우杜佑"가 쓴 책으로 알고 있다. 243쪽의 석굴암 본존불상 아래의 "혜공와 10년", 247쪽의 "월망사가 지은 <제망매가>"라는 단순한 오류도 눈에 거슬렸다. 청소년들이 읽을 책이니까 이왕이면 글자 하나하나까지 신경을 써서 만들었더라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들었기에..

 

     역사는 해석의 문제다. 타임머신이 존재하지 않는 한 우리는 절대로 과거에 일어난 "사실 그대로의 역사"를 알 수 없을거다. 다만 더 그럴 듯한 누군가의 설명에 손을 들어줄 수 있을 따름이다. 이 책은 800년전 일연의 글을 토대로 글쓴이가 삼국시대에 일어났을 법한 이야기를 재구성해서 들려주고 있는 책이다. 역사를 보는 다양한 시각을 보여주는 책, 어른이 읽어도 역사적 상식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될 책 [청소년을 위한 삼국유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