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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한국을 이끈 역사 속 명저 - 옛 책 속을 거닐며 미래를 여행하다
이종호 지음 / 글로연 / 2010년 2월
평점 :
학교의 역사수업 시간이 짧은데다, 입시를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겠지. 수많은 요약 프린트물의 괄호 채우기와 교과서에 밑줄 긋기로 많은 역사 수업 시간을 보냈다. 물론 다른 방식으로 수업하시는 선생님들도 계셨다. 재미난 일화, 관련 책과 영화 소개에다 가끔은 해당 단원과 관련되는 다큐멘터리를 짧게나마 보여주시기도 하셨고, 역사가 사람들의 이야기임을 알려주시려고 열정적으로 수업하셨던 분들.. 하지만 그렇게 수업하시는 선생님들을 외면했다. 시험에 나올 것, 하나라도 더 외우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에, 그런 수업을 "시간낭비"라고까지 여겼던 것 같다. 지금은 후회한다.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이유 역시 그런 후회와 반성의 연장선이다. 수업시간에 들어본 적이 있고, 중요한 책이라고 외우기는 했는데 그 안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는 자세히 몰랐던, "옛날 책"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글쓴이는 "현재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초빙과학자로 연구하고 있다."(책 앞날개)는 이종호 박사. 이 분의 책은 이전에도 두어권 읽어본 적이 있다. 건축과 과학을 연구하신 분이, 그간 역사 관련서적을 몇몇 권 써온 점이 특이하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이 분이 쓴 책을 읽어보면, "과학자의 관점으로 본 역사"랄까.. 하여간 그런 맛이 난다. 논리적이면서도 깔끔한 글쓰기에다 역사도 꾸준히 연구하신 듯..
이 책[과학 한국을 이끈 역사 속 명저] 역시 저자의 그런 장점이 잘 드러나는 책이다. 외국인들은 한국전쟁 이후 우리 나라가 일구어낸 발전을 불가사의한 일로 여긴다. 하지만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듯 "한국인의 교육열, 유교사상으로 무장한 국가관과 도덕성 그리고 근면성"(p7)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글쓴이는 한가지를 더 보탠다. "5천년 역사를 토대로 독창성과 창의력이 뒷받침되는 우리의 과학기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p7)고. 그래서 글쓴이는 "한국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준 옛 책 8권을 선정하여"(p7)이 책을 썼다. 선정된 책은 [왕오천축국전], [칠정산], [산가요록], [표해록], [동의보감], [자산어보], [지봉유설], [대동여지도]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나라를 포함한 동양의 역사 속 과학과 문화에 대해 바로 알려고 노력하지 않았을 뿐더러 잘못된 상식으로 서양의 그것에 비해 열등하고 비과학적이라고 여겨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은 어렸을 때부터 만화로, 책으로 자주 접해봤으면서도 것보다 훨씬 이전에 쓰인 [왕오천축국전]이 어떤 경위로 다시 발견되었으며, 어떤 내용이 실려 있는지는 몰랐었다. 글쓴이는 혜초와 [왕오천축국전]의 의의에 대해 문명연구가 정수일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세계성이란 세계에 대한 앎을 추구하고 세계와 삶을 함께하는 정신을 말하며, 이러한 정신을 지니고 실천하는 사람이 곧 세계인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정신을 지닌 첫 세계인이 바로 신라 고승 혜초라고 말할 수 있다."(p34)는...
또한 글쓴이가 조선의 3대 천재(정약용과 이순지, 최부) 중 하나로 [표해록]의 저자 최부를 들고 있는 점이 다소 의외였다. [표해록]을 그저 여행기로만 생각했는데(사실 [표해록]을 알게 된 것도 얼마되지 않는다...!) 글쓴이는 [표해록]의 기록의 정확성과 꼼꼼함, 최부의 국제적인 감각 등을 들어 그를 천재라고 부르는데 주저함이 없다.
정약전의 [자산어보]. "조선시대에 유배지로 가장 악명이 높은 흑산도에 유배되었을지언정 결코 운명을 탓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으면서 자신이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실학자로서의 책무를 다하고자"(p290)했다는 글쓴이의 평가가 가슴 한 켠에 진하게 새겨진다.
서구화, 근대화를 중심에다 둔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일까. 서양의 것이 "항상, 더" 나은 것인 줄 알았다. 우리는(동양은) 지금도, 예전에도 그들보다 "못한"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결코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수박 겉핥기 식으로 외워왔던 옛 책에 대한 지식은 물론 우리 역사에도 폭넓은 식견과 합리적이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멋진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음을 생각하게 해 주는 책이었다.
잘못된 글자
284쪽 : 정양전 ->약?
232쪽 : 아버지 허론許倫 ?
371쪽 : 진을 건설한 왕망 ->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