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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 우리 시에 비친 현대 철학의 풍경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0년 2월
평점 :
한계. 책읽기를 즐기는 편이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읽을 수 없는 책들이 종종 있다. 어려운 책들.. 분명 글자를 읽어내려가고 있지만, 내가 읽고 있는 이 글이 무슨 의미인지 머리 속에 그려지지 않을 땐, 읽던 책을 휙 하니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까지 생길 때가 있다. 이해력의 한계치를 시험당하는 느낌이랄까... 내게 그런 좌절감을 주는 책의 부류가 주로 철학서이다. 어렵다는 선입견 때문에 읽지 않기 때문에 더욱 어렵게 느껴지는 걸까...? 철학 다음으로 난해한 분야는 시詩다. 철학보다야 덜 하지만, 알아듣기 힘들기는 마찬가지...
사실 이 책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은 그닥 읽고 싶지 않은 책이었다. 시詩만 해도 어려운데, 철학은 더욱 어려운데, 철학적으로 시를 읽는다니, 얼마나 어려운 이야기를 늘어놓을 것인가 싶었다.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다행히도 나는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시집이나 철학책은 다른 장르의 글들보다 상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시에는 주관적이고 낯선 이미지들이, 그리고 철학책에는 이해하기 힘든 추상적 용어들이 도처에 산재해 있기 때문이지요."(p15). 나 같은 독자를 염두에 둔 글쓴이의 배려 덕분이었을까.. 종종 못 알아들을 이야기들도 있었지만, 겁먹고 시작한 것에 비해 그나마 덜 어려운 책이었다. 글쓴이는 "노장사상을 전공한 동양철학자이면서 서양철학의 흐름에도 능한 그는 쉽게 읽히는 인문학을 지향하며 2007년에 출범한 출판기획집단 문사철(文史哲)의 기획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책 앞날개)는 강신주.
책은 총 21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장마다 한 명의 시인과 한 명의 철학자를 연결시켜 제목그대로 철학적으로 시를 읽어보고 시와 시인과 철학자와 철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는 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니까 모두 21명의 시인과 21명의 철학자가 짝을 이루고 있다. 아... 시를 이렇게도 읽을 수 있는 거구나.
글쓴이는 김남주 시인의 "어떤 관료"를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다 연결시킨다. "관료에게는 주인이 따로 없다! /봉급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다! /개에게 개밥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듯".. "대부분의 관료들과 마찬가지로 아이히만은 승진을 꿈꾸었던 평범한 독일인이었습니다. 우리가 이 대목에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그가 승진을 할 속셈으로 사악한 음모를 꾸미거나 이상한 행동을 한 적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입니다."(p75) 김남주 시인은 군부독재로 암울했던 대한민국에서, 아렌트는 2차세계대전 당시의 독일에서 생각할 줄 모르는, 그저 주어진 밥값만큼의 자기 몫의 역할을 해 내는 '개 같은!' 관료들을 본 것이구나. 시인과 철학자는 그러니까 같은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수용소 공간이 부족해지자 이제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보내야만 한다는 정책이 채택되었을 때, 가스실로 걸어 들어가는 유대인들의 극심한 공포를"(p79) 사유하지 못했던, 그러니까 그저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와 다를 바 없는 아이히만과 같은 관료들에 대한 이야기.. "사유는 인간에게 주어진 능력이 아니라 의무이다!"라는 말, 공감한다. 사실 "어떤 관료"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따로따로 읽었더라면 나는 두 작품 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리라. 하지만 글쓴이가 그 둘을 연결해주니 훨씬 이해가 쉬웠다. 책에 실린 그 외의 시-철학의 연결 역시, 김남주-아렌트 만큼은 쉽게 와닿지 않았지만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시와 철학을 잘 모르지만 책장이 수월케 넘어갔던 건 글쓴이의 쉬운 설명 덕분이었다. "젊은 시절 그렇게 난해해 보이기만 하던 시집들이 너무도 잘 읽히는 것이 마냥 신기하기만 합니다."(p420)는 글쓴이의 말은 위로가 된다. 아직 젊기에, 앞으로 공부해야 할 시간이 더 많기에. 나중엔 글쓴이처럼 시를, 그리고 철학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색다른 경험이었다.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의 맛을 볼 수 있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