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100년의 기억을 찾아 일본을 걷다 - 생생한 사진으로 만나는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징용 잔혹사
이재갑 글.사진 / 살림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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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은 표지가 마음을 무겁게 했다. 제목을 듣고서 이미 예상했던 바이지만, 책에 실린 이야기 역시 무거웠다. 추석 연휴 전부터 펴든 책인데, 오늘에서야 다 읽었다. 일주일이 넘도록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는 책이었다.

 

   어떤 책이 됐든, 내게 책은 tv나 영화보다는 재미가 덜한 대상이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v나 영화보다 책을 더 자주 접하는 이유는 시간을 보내고 난 이후의 "남는 것" 때문이다. 온종일 tv채널을 이리저리 돌리고 난 날은, 순간의 재미는 있지만 "내가 대체 뭘 한 거지....?" 하는 후회가 남곤 한다. 하지만 책과 씨름하며 보낸 날은 뿌듯하다. 내가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는 재미도 있고. 대부분의 책이 그런 뿌듯함을 주곤 하지만 그 뿌듯함이  배가 되는 책은, 내게는 "역사책"이다.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이유도 이 책 제목에 "사史"자가 붙어있기 때문이다. [한국사 100년의 기억을 찾아 일본을 걷다].

 

  이 책에 실린 사진을 찍고 글을 쓴 이는 사진작가 이재갑. 그간 한국근대사와 관련된 사진작업을 많이 해 온 분인가 보다. 이 책은 제목에서 드러나는 바와 같이 글쓴이의 일본 답사기이다. 후쿠오카, 나가사키, 오사카, 히로시마, 오키나와. 글쓴이의 일본 답사는 관광이 아니라, 일본 속의 우리 근대사의 흔적을 찾기 위함이다. 결코 가벼울 수 없는 주제를 담고 있다. 글쓴이가 주로 찾아가서 보고, 듣고, 그리고 사진에 담아온 이야기들은 주로 제국주의 시대 일본의 탐욕과 야망 아래 짓밟히고 학대당하다가 결국엔 죽음에 이른 사람들, 혹은 그 후손들에 대한 것이다. 책에 씌인 글의 실제 상황을 상상해보다 그 끔찍함이 치를 떨게 했다. 댐 공사 중 시멘트 구조물에 떨어진 조선인들을 구하지 않고 시멘트를 그대로 들어부어 "인골댐"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며 탄광 내에 그대로 묻혀버린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 흔적을 보여주는, 지금은 잊혀져가는 조선인들의 한서린 그 장소들. 광복 후에도 이 땅으로 돌아오지 못한 당시 징용자들의 후손들이 산다는 우토로 마을의 슬픈 사연들은, 한국인인 나 역시도 전혀 몰랐던 이야기들이다. 슬프고 마음이 무거웠다. 글을 통해, 사진을 통해 본 참상이 이러할진대 실제로 그 곳을 두 발로 디디고 육안으로 그 흔적들을 확인했던 글쓴이의 글이, 사진이 무거울 수 밖에 없었을거다.

 

   글쓴이가 이 책에서 가장 많이 한 말은 아마도 전쟁가해자로서 과거에 대한 반성이 없는 일본에 대한 질타와 일본 근대 산업의 토대가 된 시설물들을 만들다 억울하게 죽어간 조선인들에 대한 언급이나 반성이 없는 일본에 대한 섭섭함일 것이다. '시간이 많이 흘렀으므로'라는 말만으로는 지워버릴 수 없는 기억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생각, 이 책을 보며 했다. 무거웠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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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히스토리아 2 - 불멸의 소년과 떠나는 역사 시간여행
교육공동체 나다 지음, 송동근 그림 / 북인더갭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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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이한 역사책이다. [피터 히스토리아/불멸의 소년과 떠나는 역사 시간여행]. 전면에 내세운 주인공의 이름 피터 히스토리아와 다소 이국적인 그림 풍에 외국서적의 번역본인 줄 알았는데 아니다. 글은 "교육공동체 나다"에서 썼다. "세상과 온몸으로 만나는 공감의 힘과 세상을 온몸으로 극복하는 상상의 힘, 우리는 공감과 상상의 공동체를 꿈꿉니다."(책앞날개)라고, 한국 청소년들이 많은 질문을 던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는 그런 공동체인 모양이다.

 

  만화다. 역사만화다. 그런데 기존에 보아왔던 역사만화와는 많이 다른 책이다. 주인공 피터는 원래 메소포타미아에서 살던 열 세살의 소년이었으나 이웃 부족의 침입으로 가족을 잃고 노예 같은 생활을 하다 역사시간여행을 하게 된 소년이다. 1, 2권에 걸쳐 총 10개의 장을 통해 세계사의 주요 사건 속에 휘말리게 된 피터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리고 각 장의 말미에는 "피터의 역사 비밀수첩"이라는 코너를 통해 앞서 언급된 사건들에 대한 설명을 해 주고 있는 방식이다.

 

   두 권의 [피터 히스토리아]를 읽으면서 그림이나 이야기의 전개가 너무 재미있어서 몰입하게 되는 유형의 만화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 장의 이야기를 연결해주는 고리나  피터의 시간여행의 개연성 등은 설명되어 있지 않고, 4700년이라는 시간을 여행하고 있는 설정이 다소 억지스럽다는 생각도 했다. 2권 끝부분에서 역사의 방관자가 아니라, 역사 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당대인들의 삶을 그리고자 했다는 의도 정도가 드러나고 있긴 하지만...

 

   이 책이 지향하는 바는, 내가 파악한 바로는 주류의 역사가 아닌, 지금껏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던 "역사"서술의 방법이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해 새로운 각도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자 함이 아닌가 싶다. history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남자"들, 영웅들만의 역사가 아니라 "여자들"과 비주류들의 역사를, 그들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아야 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못 생긴 노예 출신의 이솝에 관한 이야기, 백인들의 침입으로 멸종하게 된 아라와크족 인디언에 관한 이야기, 68혁명 당시의 히피들의 이야기 등 기존의 역사책에서 다루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생각해보게 된 것들이라 의미가 깊다.   이 책의 관점 뿐만 아니라 예상독자로 설정하고 있는 청소년들을 부르는 호칭이 특이하다. "동무들"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는 말이라서 그런지 낯설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던 것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보는 사람들에 의해 역사는 발전하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을 통해 배운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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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방울 2012-07-18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피터 히스토리아를 출판한 교육공동체 나다는 인문학으로 청소년들을 만나오던 단체랍니다. 이번 7월 30일 부터 단행본이 나오고 처음으로 피터 히스토리아를 교재로 하는 10강의 서양사 강의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피터를 재밌게 읽고나서 더 이야기를 해나가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남으셨거나, 청소년을 위한 역사수업이 늘 연도를 외우고 옛날 이야기로만 끝나는 것에 대해 고민을 하신다면, 이번 교육공동체 나다 여름특강에 오셔서 피터히스토리아와 함께 서양사를 살펴보는 게 어떨까요? 주변에 홍보도 살짝 부탁드려볼께요 :)
자세한 설명은 http://nada.jinbo.net 나다 홈페이지에서 확인해주세요~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통으로 읽는 중국사
김인현.이항규 지음 / 삼양미디어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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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랏? "중국사"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책 치고는 기대보다 얇아 보인다? 이 책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그간 보아온 중국사 관련 책들은 특정 주제만을 추린 형식의 책이었거나 단대사가 대부분이었는데, 그런 류의 책들보다 오히려 이 책이 더 얇아보였다. 이 책의 분량은 240쪽 남짓. "촘촘하고 꼼꼼한 서술 방식보다는 대략적으로 중국사 전체의 감을 잡을 수 있는 간단한 방식을 택했다. 꼼꼼하게 쓰인 방대한 분량의 중국사는 이미 서점에 나와 있기 때문이다."(머리말 중). 글쓴이들의 이 책에 대한 소개말이 그야말로 쿨~하다는 생각을 하며 책을 펴들었다.

 

   이 책의 편저자로 책 앞날개에 소개된 이들은 "'매스컴뉴스'와 '새책소식'등에서 편집장으로 일했으며, ~등을 펴낸 글쟁이"라는 김인현과 "중국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글을 쓰고 있"다는 이항규. 그간 삼양사의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시리즈 편의 책은 몇몇 권을 보아왔다. 기획의도가 참 좋아보이기 때문에 호감이 가는 시리즈이기도 하다. 다루고 있는 주제들도 내가 특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역사"와 관련된 것들이 많아서 더욱 궁금하기도 하고... 그런데 책의 저자들을 보면 다소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인 것 같아서 실망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사실 이 책도 역사전문가가 쓴 책이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하긴,  내 바람대로 씌여진 책이라면 240여쪽이라는 이 책의 분량이 몇 갑절로 늘어나게 될 것이고 그러다보면 입문서로서 이 책을 읽기를 원한다는 출판의도와도 맞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만.

 

   중국의 기나긴 역사를, 통사로 정리해주고 있는 책이다. 중국의 역사를 개괄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개괄서이자 입문서 정도에 해당하는 책일 것 같다. 바뀐 중학교 교육과정의 "역사"교과서로 중국사를 접하는 중학생 정도라면 중국사의 흐름을 잡기에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세계사를 공부하는 고등학생이나 성인이 읽어도 괜찮을 것 같다. 친절한 각주와 다양한 사진 자료가 풍성한 점이 무엇보다도 마음에 들었다. 단순히 흘러간 이야기로서의 역사가 아니라 직접 가거나 본 적 없는 중국 역사의 현장이 손에 잡히는 느낌이랄까. 각 장의 말미에 실린 "고사성어"란 역시 마음에 드는 부분이었다. 본문에서 간략하게 언급된 인물이나 사건과 관련된 고사성어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어서 이 부분만 훑어보아도 중국사에 관한 토막상식을 챙기기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중국인의 입장에서 씌인 중국사가 아니라 우리 나라 사람들이 쓴 중국사이기 때문에 특히 우리나라와 관련된 중국사 부분에 대한 설명에 더 노력을 기울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 108쪽에서 다루고 있는 당과 고구려의 전쟁을 다룬 "안시성 싸움"의 경우 "양만춘"이라는 안시성주의 이름과 당 태종이 양만춘의 고구려군이 쏜 화살에 애꾸가 되었다는 등의 이야기는 진위여부를 확인하기는 어렵겠지만 말이다.

 

   중국사 입문서인 이 책을 읽으며 이 책을 길잡이 삼아 중국의 역사를 더 깊이 있게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통으로 읽는 중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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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특사 이준
임무영.한영희 지음 / 문이당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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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제의 특사 이준.

 

   "임무영` 한영희 장편소설". 책 앞날개에 소개된 글쓴이들의 이력이 의외라는 생각을 했다. "현재 서울고등검찰청 검사로 재직 중"이라는 임무영과, "방송작가로 활동하다 현재 동화와 소설을 집필하고 있다."는 한영희. 공동 집필 형태의 소설을 접해 본 적이 없어 일단 두 사람의 관계가 궁금했다. 부부인가? 책 앞날개의 설명만으로는, 그렇지 않을까 추측에 불과했다. 작가의 말에서 "내가 밤에 글을 쓰고 출근하면 한영희씨가 읽어본 후 수정할 부분을 고쳐 썼다. 퇴근 후 한 차례 부부싸움이 벌어지고 난 뒤 결국 지적된 부분을 수긍하고 문장의 일관성 유지를 위해 바뀐 부분을 내가 다시 다듬었다."는 집필과정에 대한 설명을 듣고서야 두 사람이 부부가 맞구나 싶었다. 부부가 같은 관심사를 가지고 글을 쓰고, 책으로까지 펴낼 수 있는 역량이 있다는 게 부럽다는 생각을 하며 책을 폈다.

 

   이 책은 "이준"에 대한 글이다. "장편소설"로 분류되고 있는 글이지만, 소설이라기보다는 전기문 같기도 하고,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이준"이란 인물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어서인지, 혹은 글쓴이가 현직 검사라는 생각 때문인지 모르겠다. 글을 읽으면서 "객관"과 "사실"을 기대하게 됐고, 그러면서도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글쓴이들의 상상이 가미된 부분인지를 구분해내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최대한 역사적 사실에 맞추고자 했다. 등장인물도 일본인 단역까지 모두 실존 인물이다."(작가의 말 중)는 말은 이 글을 소설이 아닌 전기문으로 생각하고 읽히게 만든 부분이기도 했다. 그랬기 때문인지 소설적인 재미는 별로 없는 책이었다. 사실 내가 애당초 이 책을 펴들면서 원했던 것은, "이준"이란 인물과 그가 살았던 당시의 역사를 좀더 알고자 하는 것이었기에 그 부분이 불만스럽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준 열사에 대해 고종의 명을 받고 헤이그에 갔다가 돌아가셨다는 정도밖에 모르는 듯하다."(작가의 말 중) 나 역시 그 "대부분의 사람"에 포함된다. 기억이 정확한지는 모르겠으나 초등학교 때 교과서에서는 그가 회의에 참석하고자 하였으나 저지당하면서 회의장 앞에서 할복자살했다는 이야기가 실려있었던 듯하다. 그냥 그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그가 검사였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었다. 책에서는 이준의 이야기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이야기하고 있다. "제 1장 검사의 길"에서는 일제의 침략이 본격화되는 시점에서 이준이 근대적인 "법"에 관심을 가지고 법학을 공부한 이야기며, 검사가 되어서 공정한 법을 집행하며 "호법신"으로 칭송받는 이야기. "제2장 법치의 길"에서는 황태자의 가례를 기념한 사면조치에서 뇌물을 받고 부당하게 사면되는 부패한 관리들에 맞선 재판정에서의 이야기. 글쓴이는 이 부분에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는데 아마도 글쓴이 자신이 검사이기 때문이리라. "제3장 구국의 길"에서는 헤이그 평화회의에 참석의 여정과 헤이그에서의 활동, 그리고 그 곳에서의 죽음까지를 담고 있다.

 

  "재미"를 주는 소설은 아니었지만, 구체적인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던 "이준"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해 준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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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휴와 침묵의 제국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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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역사학자 이덕일의 책을 읽었다. 이덕일은, 내게는 좀 특별한 사람이다. 무언가 오랫동안 붙잡고 있어 본 기억이 별로 없는데, 그나마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래 진득하니 붙잡고 있으며 아마 앞으로도 붙잡고 갈, "역사"라는 분야에 징검다리를 만들어준 사람이기 때문이다. 요즘 아이들한테 물어보면 그런다. 역사란 고리타분하고 재미없으며 도대체 왜 공부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는, 암기과목에 지나지 않는다고... 나 역시 그 아이들과 비슷한 나이 즈음에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첫 역사 수업에 졸았나 보다. 그 때나 지금이나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 가장 첫머리에는 역사학습의 목적과 필요성에 관한 이야기가 적잖은 분량으로 언급되고 있는데 말이다.

 

   막연하고 추상적이고 손에 잡히지 않는 그 무엇이라 생각했던 역사를 내 눈 앞에다 그림을 그려주었던 사람이 이덕일이었다. 벌써 10여년전이구나 그게.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사도세자의 고백], [사화로 보는 조선 역사] 같은 책들을  기갈든 사람마냥 탐독했던 게... 그 때까지 교과서에 나오는 역사가 "사실"내지는 "진실"이라고 믿었던 내게 이덕일의 책은 놀라움이었다. 우리가 보고 있는 대부분의 과거사는 "기록으로서의 역사"라는 걸 처음으로 깨달은 충격이었달까...

 

   [윤휴와 침묵의 제국]이라... 윤휴라는 이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도 궁금했지만, 이덕일은 과연 윤휴를 어떤 사람으로 그려낼까가 더 궁금해서 펴든 책이다. 책에 둘러진 띠지에 적힌 문구가 인상적이다. "송시열처럼 살 것인가, 윤휴처럼 죽을 것인가." 묻는 이가 원하는 정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 셈이다. 배부른 돼지가 될 것인가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될 것인가를 묻는 이의 의도가 명백하듯. 글쓴이는 송시열과 윤휴를 나란히 두었을 따름인데, 돼지와 소크라테스를 그들에다 비유하고 있자니 너무 과격하고 성급한 비유일까 염려스럽기도 하지만 글쓴이가 의도한 바가 아니었을까 하고 내 마음대로 넘겨짚어본다.

 

    이 책의 주인공은 윤휴다. 글쓴이는 윤휴라는 인물을 통해 윤휴가 살아내야 했던 조선사회의 모순을 이야기하고 있다. 윤휴는 조선 현종~숙종 대의 인물이다. 식민사학에 의하자면 당쟁이 최고조로 달했던 즈음, 그 당쟁의 한가운데 서 있었던 사람. 교조화된 성리학이 사상을 억압하고 있던 시대, 실질이 아니라 명분만이 중요했던 시대. 당대의 사상을 움켜쥐고 있던 송시열과는 대척점에 섰던 인물. 그래서 결국 죽어야 했던 인물.

 

   "윤휴는 자신이 이 모양이 된 것이 시대의 우환을 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사대부들이 제 한 몸의 영화에 제 집안의 부귀만 힘쓰는 것이 조선의 형세였는데 이를 무시하고 북벌하겠다고 나선 것이 시대의 우환을 범한 것이었으며, 사대부들이 힘없는 백성들의 등골을 빼서 제 배를 채우는 것이 시대의 형세였는데 양반들에게도 군역을 부과해야 한다고 나선 것이 시대의 우환이었으며, 입으로 주자학을 외우는 것으로 학문이 완성되었다고 자부하는 것이 시대의 형세였는데 "천하의 이치를 어찌 주자 홀로 안다는 말이냐!"라면서 새로운 학문의 길을 열려고 했던 것이 시대의 우환이었다."(p399~400)

 

   이덕일이라는 안경을 쓰고 본 윤휴라는 사람은 시대를 너무 앞섰던 인물이고, 모두가 "Yes!"를 외칠 때 홀로 "No!"를 외치다 좌절하고 만 인물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비록 책을 통해서지만 이덕일이라는 역사학자의 이야기만 너무 많이 들어왔다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며 했다. 혹 균형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할 수 있다는 건, 그 덕분에 내 역사적인 안목 역시도 많이 성장했음을 의미하는 걸까. 이제 그와는 반대편 시소에 앉아서 조선사회를 들여다볼 기회도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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