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휴와 침묵의 제국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랜만에 역사학자 이덕일의 책을 읽었다. 이덕일은, 내게는 좀 특별한 사람이다. 무언가 오랫동안 붙잡고 있어 본 기억이 별로 없는데, 그나마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래 진득하니 붙잡고 있으며 아마 앞으로도 붙잡고 갈, "역사"라는 분야에 징검다리를 만들어준 사람이기 때문이다. 요즘 아이들한테 물어보면 그런다. 역사란 고리타분하고 재미없으며 도대체 왜 공부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는, 암기과목에 지나지 않는다고... 나 역시 그 아이들과 비슷한 나이 즈음에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첫 역사 수업에 졸았나 보다. 그 때나 지금이나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 가장 첫머리에는 역사학습의 목적과 필요성에 관한 이야기가 적잖은 분량으로 언급되고 있는데 말이다.

 

   막연하고 추상적이고 손에 잡히지 않는 그 무엇이라 생각했던 역사를 내 눈 앞에다 그림을 그려주었던 사람이 이덕일이었다. 벌써 10여년전이구나 그게.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사도세자의 고백], [사화로 보는 조선 역사] 같은 책들을  기갈든 사람마냥 탐독했던 게... 그 때까지 교과서에 나오는 역사가 "사실"내지는 "진실"이라고 믿었던 내게 이덕일의 책은 놀라움이었다. 우리가 보고 있는 대부분의 과거사는 "기록으로서의 역사"라는 걸 처음으로 깨달은 충격이었달까...

 

   [윤휴와 침묵의 제국]이라... 윤휴라는 이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도 궁금했지만, 이덕일은 과연 윤휴를 어떤 사람으로 그려낼까가 더 궁금해서 펴든 책이다. 책에 둘러진 띠지에 적힌 문구가 인상적이다. "송시열처럼 살 것인가, 윤휴처럼 죽을 것인가." 묻는 이가 원하는 정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 셈이다. 배부른 돼지가 될 것인가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될 것인가를 묻는 이의 의도가 명백하듯. 글쓴이는 송시열과 윤휴를 나란히 두었을 따름인데, 돼지와 소크라테스를 그들에다 비유하고 있자니 너무 과격하고 성급한 비유일까 염려스럽기도 하지만 글쓴이가 의도한 바가 아니었을까 하고 내 마음대로 넘겨짚어본다.

 

    이 책의 주인공은 윤휴다. 글쓴이는 윤휴라는 인물을 통해 윤휴가 살아내야 했던 조선사회의 모순을 이야기하고 있다. 윤휴는 조선 현종~숙종 대의 인물이다. 식민사학에 의하자면 당쟁이 최고조로 달했던 즈음, 그 당쟁의 한가운데 서 있었던 사람. 교조화된 성리학이 사상을 억압하고 있던 시대, 실질이 아니라 명분만이 중요했던 시대. 당대의 사상을 움켜쥐고 있던 송시열과는 대척점에 섰던 인물. 그래서 결국 죽어야 했던 인물.

 

   "윤휴는 자신이 이 모양이 된 것이 시대의 우환을 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사대부들이 제 한 몸의 영화에 제 집안의 부귀만 힘쓰는 것이 조선의 형세였는데 이를 무시하고 북벌하겠다고 나선 것이 시대의 우환을 범한 것이었으며, 사대부들이 힘없는 백성들의 등골을 빼서 제 배를 채우는 것이 시대의 형세였는데 양반들에게도 군역을 부과해야 한다고 나선 것이 시대의 우환이었으며, 입으로 주자학을 외우는 것으로 학문이 완성되었다고 자부하는 것이 시대의 형세였는데 "천하의 이치를 어찌 주자 홀로 안다는 말이냐!"라면서 새로운 학문의 길을 열려고 했던 것이 시대의 우환이었다."(p399~400)

 

   이덕일이라는 안경을 쓰고 본 윤휴라는 사람은 시대를 너무 앞섰던 인물이고, 모두가 "Yes!"를 외칠 때 홀로 "No!"를 외치다 좌절하고 만 인물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비록 책을 통해서지만 이덕일이라는 역사학자의 이야기만 너무 많이 들어왔다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며 했다. 혹 균형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할 수 있다는 건, 그 덕분에 내 역사적인 안목 역시도 많이 성장했음을 의미하는 걸까. 이제 그와는 반대편 시소에 앉아서 조선사회를 들여다볼 기회도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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