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
황정은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설명이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 요즘 세상에는. 

너도나도 설명하고 말하려고만 들지 아무도 담담히 들어주거나 별거 아니라는 듯 툭 내어놓진 않는다 

자신에 대해, 자신의 생각에 대해 기를 쓰고 설명하고 설득하려 달려드는 모습을 보면 숨이 턱 막히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가만히 옆에 앉아 있는다 

굳이 설명하거나 이해시키려 하지 않고 그냥  

툭 

소설이다 

취향에 따라 어떤 이는 너무 가볍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벼우면 어떤가. 어차피 우리 삶이 가벼운 것을 

가벼운 것을 가볍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점에서 나는 무심하게 바라보는 이 시선이 좋았다 

무심하지만 무심하지 않은 이 시선이 좋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그다드 카페에는 커피가 없다
김경욱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6년 1월
평점 :
절판


90년대에 나는 10대였다   

초등학교 시절 피아노 학원에서 엉뚱하게 영웅본색을 배웠고 

중학교 때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은퇴와 김성재의 죽음에 절망했으며

고등학교 때는 에쵸티의 텅빈 화려함에 열광했다 

 

이제 2000년이고 나는 20대이다 

김경욱의 '바그다드 카페에는 커피가 없다'에는 90년대가 있다 

빗발치는 총알은 주인공을 피해가고, 무엇보다 코트자락을 휘날리는 것이 중요한 

폼이 세계를 지배하던 시절 

하늘 아래 유일할 것만 같던 스타도 돌연 사라지고, 열광하는 것들은 텅비어 있을 뿐이던 그때 

 

소설도 그와 같다. 

아웃사이더를 자처하며 뽐내듯 각종 영화가 난무하고 수식 가득한 문장이 줄줄이 엮여있는 소설은 20대의 작가가 살았던 90년대 그리고 10대의 내가 살았던 90년대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90년대가 지독히 잘 담겨 있다는 점에서 마치 어린시절 잃어버린 보물상자 하나 발견한 듯 아련해지는 것 하나 만으로도 나는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국경을 넘는 일
전성태 지음 / 창비 / 200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입담이라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입담이 쎈 사람들은 뻥튀기 장수처럼 과장하고 부풀리고 자기 맘대로 만들어 버리니까 

그래서 소설에서도 입담이 느껴지는 소설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라? 이건 좀 다르네 

친구가 하도 좋다고 해서 봤는데 정말 좋았다 

이리저리 이야기를 굴리는 맛은 결과 과장되거나 부풀지 않고, 오히려 담백하고 직선적이다 

 

역시 글이 짧은 나는;;; 소설의 한 부분을 인용해야겠다 

 

"선생, 해학은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다?" 

어느덧 나는 그를 선생으로 부르며 제법 진지해져 있었다. 

"글쎼올시다, 캄캄한 삶을 밞아야겠지요. 그러면 말이 자연히 따르지 않겠소? 요새 사람들, 캄캄한 이야기를 싫어할 것 같지만 실상은 없어서 못 듣는 것이리다." 

"그럼 흔한 말로 진창에서 구르며 겪어봐야 한단 말입니까?" 

"나는 그 말을 안 믿소. 자기연민은 공연히 억지가 되기 십상이지. 그저 남 이야기나 재미나게 듣는 수밖에. 절실하면 남 얘기가 내 얘기가 되는 것 아니겠소?" 

-'존재의 숲'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행복
정지아 지음 / 창비 / 200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소설 제목 치고 참 심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행복'이라는 단어는 단순하고 밋밋한 느낌을 주고 있다 

이제는 '행복'이나 '사랑', '믿음'과 같은 단어들은 다른 단어로 대체되고 있다 

그런데 '행복'이라니 

 

나는 자전적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자전적 소설은 뭔가 오로지 자기 만족을 위해 쓰였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좀 다르다  

서늘함을 가진 화자를 애써 설명하려하지 않는다 

그걸 설명하려 들었다면 그저 그랬을텐데, 설명하고 포장하고 덧붙이기보다 

그냥 나는 이래, 라며 가만히 앉아 있는 듯한 느낌? 

  

어쩌면 누군가는 이걸 읽고 뭐가 '행복'이야, 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그래도, 행복 

나도 '행복'을 말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고 둥근 달
정찬 지음 / 현대문학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나는 소설가 정찬의 소설을 좋아한다 

내가 정찬 소설에서 좋아하는 지점은 이런 것 들이다 

더이상 진실, 영원 등 피상적인 근원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들려 하지 않은 때 

정찬은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다  

그러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고 있다 

 그래서 정찬의 소설을 보면 나는 소설 앞에서 내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고 부끄러워짐을 느낀다 

나는 그것을 향해 파고들기는커녕 보려고도 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정찬의 '희고 둥근 달'에서도 역시 파상적 근원에 대한 작가의 집요한, 경건한 

마치, 어떤 종교의식을 보는 것과 같은 자세가 느껴졌다 

무조건적인 추종이 아닌, 온몸으로 끊임없이 그것에 다가가려는 몸부림이 느껴졌다 

 

나는 글을 잘 못 쓴다 

그래서 이럴 땐 내가 느낀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하기도 하다 

그래서 그냥, 소설의 한 대목을 인용하고 말련다 

 

'진실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끊임없이 움직인다. 그러므로 진실을 보려면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 진실을 잃어버리는 까닭은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는 인간을 고정시킨다. 역할에 고정시키고, 영역에 고정시키고, 계급에 고정시키고, 집단에 고정시키고, 이데올로기에 고정시킨다. 인간의 꿈조차도 고정의 대상이다. 고정된 인간은 고정된 얼굴을 갖는다. 세계는 고정된 인간의 얼굴을 끊임없이 찍어낸다. 고정된 얼굴은 생명의 얼굴이 아니다. 죽음의 얼굴이다. 세계가 거대한 묘지로 느껴지는 데에는 까닭이 있다. 이 묘지 사이를 바람처럼 질주하는 이들이 있다. 유랑자들이다. 그들의 존재성은 끊임없는 변신에 있다. 그들은 고정된 얼굴을 거부한다. 고정된 얼굴을 거부함으로써 세계를 근원적으로 비판한다. 세계가 그들을 두려워하고 적대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유랑극단'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