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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10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신이 저지른 죄의 무게를 몇 푼의 돈으로 남에게 지워버린 사람, 사리분별에 능하지 못한 탓에 돈에 덥석 자신의 신분을 벗어던진 노숙자, 이 모든 사실을 이용하고 알선한 오미우라. 그리고 두 번이나 되는 자살 미수 후에 누군가의 아들이 아닌 그저 보통 사람이 되고 싶었던 사람, 하라 마코토. 정 떨어지는 가문과의 연을 끊어버리고 두 번째의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었던, 다니구치 다이스케.
소설 <한 남자>는 등단한지 20년이 된 저자 히라노 게이치로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일본소설 특유의 적당한 거리감과 작가 특유의 무미건조함이 느껴지는 문체로 미루어 원문을 색을 유지한 번역이 담백하다.
변호사 기도 아키라씨는 싼 수임료를 받고서도 X의 정체를 찾는데에 몰두했다. 그것은 다케모토 리에씨에 대한 측은지심일 수 있고 X에 대한 동경심 일지도 모른다. 간토 대학살 등 일련의 사태에서 재일 3세로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그는 X의 생각에 몰두하면서 골치아픈 자신의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또한 수사 과정에서 만나게 된 다이스케의 첫사랑 미스즈에 대한 흥미와 관심으로 미약하게나마 삶의 생기를 느낀다.
나도 이따금씩 아침에 눈을 뜨면 여기는 어디인지, 지금 무엇을 해야할지 가늠하는 데에 몇 분이나 걸릴 때가 있다. 그것은 나의 육신이 급작스렐 낯설기 때문이기도 혹은 막 벗어난 꿈이 너무 생생해서 사고에 혼동을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물며 내가 사랑하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그는 어떠한 삶을 살았을까? 그가 그간에 내게 보인 모습이 진심일지 나는 알 리가 없다. 만약 그것이 진짜 그의 모습이 아니라면 나의 세상을 어떻게 버텨낼 수 있을지 막막하다.
박복한 리에의 삶에 대한 몰입으로 소설을 읽는 동안 마음이 착잡했다.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기도에 대한 공감으로 마음이 부웅 뜨기도 했다. 나 역시 과거 타국에서도 지금 모국에서도 여전히 자아의 갈피를 잡지 못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