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날’이 있다는 걸 6년 전에는 몰랐었다. 그러니까 내가 책에 다시 애정을 갖고서야 ‘세계 책의 날’이, 4월 23일이라는 걸 안 것이다.  책의 생일인 오늘, 내가 읽고 있는 책은 사과를 한 입 덥석 물고 싶게 만드는 표지로 밀란 쿤데라의 『농담』이다. 생각보다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책의 날 도착한 신간 알림 문자는『제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이 나왔다는 것이다. 올해의 수상 작가중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작가가 있어 더 좋다. 게다가 대상을 거머쥔 작가, 손보미는 관심을 갖고 있는 작가니, 정말 반가운 문자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빠른 시일 내 내 손길이 닿을 것 같은 책은 마흔 일곱에 등단한 작가 전민식의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로  세계 문학상 수상작이다.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책은 이은규의 첫 시집 『다정한 호칭』으로 제목처럼 다정하고 포근할 것만 같다.

 

 

 

 

 

 

 

 

 

 

 

 

 

 

 

 

 

 

 

 

 

 

 책의 날이 아니더라도 책을 읽고, 책을 기다리는 일상은 즐겁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 소식을 듣는 일도 그렇다. 그래도 책의 생일인 오늘, 책을 이야기하는 일은 한층 더 즐거운 일이다. 당신 곁엔 어떤 책이 있나요? 당신이 기다리는 책은 어떤 책인지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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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기다리는 책
    from 존재증명, 부재증명 2012-04-24 09:31 
    생일 선물로 받은 책이 한 가득인데, 또 책을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다. '필요'라는 의미는 얼마나 간사한지. 에, 시리즈를 몽땅 장바구니로. 꽃 사진 찍어서, 이 꽃이 무어냐 물어볼때마다 친절하게 답해주시는 선생님에게 죄송하여, 이제사;; 꽃도감을. 내친김에 이런 책들을 우루루 주문했다. 요즘 들어 꽃키우기, 식물키우기에 재미를 붙인데다가, 다른 의미로의 '필요'도 있어서. 예전, 엄마가 화초나 난을 키우시면서,
 
 
 

 

 4월이 되었고 선거도 끝났다. 어딘서가 꽃이 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등처럼 환한 목련의 꽃잎이 떨어지고 있다고 누군가 내게 전했다. 나는 아직 꽃을 보지 못했다. 아파트 단지에는 꽃이 피지 않았다. 물리치료를 받으러 다니던 작년과 비교하면 외출하는 일이 거의 없기에 길 가에 핀 꽃을 마주할 날이 없다. 그나마 다행인 건, 베란다에 작은 화분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물만 주면 잘 자라는 난을 비롯해 올 초 우리집에 들어온 작은 녀석들이 제법 잘 자라고 있어 기쁘다.

 

 아, 선물받은 난에 꽃이 있긴 하다. 노란(아니 선명한 노랑이 아닌 맑은 노랑) 꽃잎이 떨어지고 있지만 아직 꽃이 있다. 고운 자주빛의 히아신스의 꽃도 사라진지 오래다. 내년까지 잘 살아줘서 그 빛을 다시 보여주면 좋겠다. 그래도 나는 아직 이 봄을 노래하는 어떤 꽃도 보지 못했다. 악수하자고 손을 내미는 개나리, 수줍은 분홍 진달래, 고고한 목련을 보고 싶다.

 

 꽃 대신 책을 만나야 할 봄일까. 맨부커상 수상작인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퓰리처 상 수상작인 <깡패단의 방문>, 극명한 고독을 만날 수 있을 듯한 <소수의 고독>, 성장소설로 알고 있는 <바다에는 악어가 살지>,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인 <와일드 펀치>, 김제동의 결혼 비용으로 쓸 꺼라는 <김제동이 어깨동무를 합니다>를 곁에 두었다.

 

 

 

 

 

 

 

 

 

 

 

 

 

 

 

 

 

 

 

 

 

 

 

 

 

 

 

 

 

 

 

 

 아직 곁에 두지는 못했지만, 읽고 싶은 시집도 많다. 장석주의 <오랫동안>, 하재연의 <세계의 모든 해변처럼>, 임현정의 <꼭 같이 사는 것처럼> 그리고 곧 나올 2008년 등단한 시인 이은규의 첫 시집 <다정한 호칭>이다.

 

 

 

 

 

 

 

 

 

 

 

 

 

 

 

 

 

 

 

 

 

 

 

 

  어디선가 꽃은 지고 봄날은 이렇게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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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3 0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23 14: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유랑자
정찬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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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종종 삶은 여행이라 말한다. 저마다의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일 말이다. 그건 어쩌면 머물지 않고 어디론가 계속 가야하는 삶의 고단함을 달래기 위한 말인지도 모른다. 존재함과 동시에 부여된 삶이라는 짐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가볍게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 삶이 닿은 여행지가 언제나 멋지고 좋은 곳은 아니지만 때로 낯선 곳에서 낯익은 누군가와 마주하기도 하는데 우리는 그 만남을 인연이라 하기도 한다. 데자뷰처럼 가물거리는 기억 속의 누군가를 만난다면, 그 존재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때문에 환생을 다룬 『유랑자』를 읽으면서 내 삶의 궤적을 떠올리며 나의 전생이었을 누군가를 한 눈에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치지는 않았을까 조바심이 난다.

 

 소설은 화자인 나, 케이가 어머니의 장례식을 위해 예루살렘에서 서울로 향하며 시작한다. 과거 자신을 버리고 무녀가 된 어머니를 용서할 수 없었지만 바그다드 전쟁터의 한 병원에서 만난 이브라힘가 들려주는 전생의 이야기를 통해 그녀의 생을 이해하게 된다.  케이는 이브람힘을 만난 기억이 없다. 그러나 이브라힘은 케이에게 기록관인 자신을 죽인 십자군 병사였다고 말한다. 거기다 그는 그 전의 생에서 예수를 사랑한 여자였다고 한다. 기록으로 역사로만 배웠던 사실들이 아닌 경험에 의한 전달로 생생하게 예수와 제자의 유랑을, 죽음이 낭자한 잔인한 십자군 전쟁을 묘사하는 이브라힘은 그 시대를 다 겪어온 듯 고요하고 차분하다. 

 

 원하지 않았던 무녀로의 삶을 살았던 어머니의 혼령을 위한 넋굿을 보면서 케이는 죽음이 갖는 의미에 대해 생각한다. 무녀의 몸을 빌어 고통 속에서 생을 살아온 어머니의 진심을 듣는 시간, 케이는 알 수 없는 전율을 느낀다. 아주 오래 전부터 연결된 어머니와 아들이라는 연이 아닌 그 이상이라는 걸 느낀 것이다.  소설은 전생과 현실을 드나들며 그들의 삶을 들려준다.  그러니까 이런 방식을 통해 우리는 이브라힘의 전생을 통해 무의식 속의 생과 마주하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소설을 읽는 동안 나의 전생과 현재의 생을 마주하지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환생을 다룬 소설 『유랑자』는 우리 모두의 생에 관한 이야기는 아닐까. 자신의 생을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수 없는 운명을 살고 있는 우리네 모습 말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이 누군가의 전생이 아니며 누군가의 미래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는 이는 얼마나 될까. 그러니 우리는 정말 끝없는 생을 살고 있는 존재들은 아닐까. 소설 속 이브라힘의 말이 강하게 다가온다.

 

 ‘전생의 나는 과거의 존재가 아니었다. 지금의 나와 동시에 존재하고 있었다. 예수 시대의 살았던 전생의 나와, 그로부터 천년이 더 지난 후에 살고 있는 내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은 모순이었다. 아니, 불가능했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신비로운 시간이라고 말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었다. 그것은 일상의 시간과는 전혀 다른,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시간의 개념을 해체하고 무화해버리는 새로운 시간이었다.’ p. 99

 

 우리는 한 치 앞의 일도 모르면 산다. 먼 훗날 기억하지 못할 오늘을 산다. 주인공 케이처럼 혼혈아로, 두 어머니의 아들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죽음으로 둘러싸인 전쟁터를 마주하며 복잡하게 얽힌 삶을 살기도 한다. 그 안에서 이별을 하고 사랑을 하고 죽음을 경험한다. 어딘가를 향해 끝없는 유랑을 한다. 나로 존재하기 위해 나로 살아가기 위해 끝없는 유랑자의 길을 가는 이들에게 있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 우리는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나와 당신, 우리는 모두 유랑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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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목소리가 들려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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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창시절, 정확하게 말하면 고등학교 시절의 나는 존재감 없는 아이였다. 면 단위에서 살았던 내 시간들과 시에서 사는 아이들의 시간은 같지 않았다. 그들은 내가 모르는 팝송을 불렀고, 외국 배우의 포스터를 보물처럼 여기고 있었다. 거기다 소위 노는 아이들은 별천지의 세상에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의 옷차림은 이상했고 그들의 과감한 행동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감정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부러움이라 고백한다.  학교라는 제도 안에서 나는 수동적인 아이였고 그들은 능동적인 아이처럼 여겨졌다.  길 위의 아이들의 목소리를 담은 김영하의 소설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읽으면서 나는왜 내내 그 시절을 떠올리는 걸까. 

 

 “폭주는 우리가 화가 나있다는 걸 알리는 거야. 어떻게? 졸라 폭력적으로. 말로 하면 안되냐고? 안 돼. 왜? 우리는 말을 못하니까. 말은 어른들 거니까. 하면 자기들이 이기는 거니까 자꾸 우리보고 대화를 하자고 하는 거야.” p.163

 

 그 시절 내게도 말은 어른들 거였다. 그러니까 무서운 담임 선생님의 것이었고 자취 방 주인 아주머니의 것이었고 목사님의 것이었다. 나는 어떤 말을 하고 싶었을까. 아마도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어떤 거절이었고 어떤 분노였는지도 모른다.

 

 소설 속 아이들은 모두 평범을 벗어나 일탈을 일삼는다. 가출을 하고 스스럼없이 집단 폭행을 가하고 성매매를 주도하고 서로를 유린한다. 지속적인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던 아이들은 고아였거나 스스로 고아를 선택했던 것이다. 그 중심에 제이가 있다. 제이는 태어나자 세상으로부터 버려졌고 자신을 키워준 양 엄마에게도 버림을 받았다. 재개발로 무너진 집에 혼자 남았지만 제이가 갈 곳은 보육원뿐이다. 보육원을 나온 제이는 길 위에서 새로운 세상과 마주했고 그것이 들려주는 고통의 목소리를 듣게 된 것이다.

 

 제이와 어린 시절을 보낸 동규 역시 부모님이 이혼을 한 뒤 혼자이긴 마찬가지다. 한때 함구증으로 말을 잃었던 동규는 자신의 말이 되어주었던 제이를 잊지 않는다. 재혼한 아빠와의 갈등으로 집을 나온 동규는 제이를 찾아 나선다. 다시 만난 제이는 동규가 기억했던 모습이 아니었다. 동규가 모르는 어떤 강력함이 있었고 그로 인해 제이는 거리의 제왕으로 군림하고 있었다.그러나 동규는 알고 있었다. 제이가 가진 슬픔을 느낄 수 있었고 그와 자신은 빛과 그림자처럼 언제나 함께 한다는 것을 말이다.

 

 “죽음을 주고 그걸 피해갈 방법은 주지 않았지. 왜 태어났는지는 알려주지 않은 채 그냥 살아가게 만들었고.” p. 134

 

 제이의 말처럼 제이는 죽음을 피해가지 못했다. 제이와 함께 길 위에서 웃고 울었던 아이들은 모두 고아라는 타이틀을 벗어 던지고 돌아갔다. 지금도 길 위에는 수많은 제이나 동규가 존재할 것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어른들에게 그들의 화를 분출하면서 말이다.

 

 이 소설에서 김영하는 무척 냉소적이다. 잔혹하고 끔찍한 일들을 너무도 친절하게 자세히 묘사하면서도 무심함을 잃지 않는다. 어쩌면 그가 소설을 통해 말하고 싶은 건 비행 청소년을 바라보는 우리 어른의 시선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태어남과 동시에 고통의 날개를 달고 살아야 하는 가혹한 생이라는 운명에 대해 말하고 싶은 걸까. 그렇다면, 이 소설은 누구를 위한 소설이며 누가 읽어야 할 소설일까. 말만 내세우며 아이들에게 대화를 하자고 달려드는 어른들인가, 아니면 혼란과 방황이 교차하는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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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보이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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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사소한 우연의 만남은 운명적인 만남이 되기도 한다. 확대해서 말하자면,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생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말이다. 해서 우리는 종종 만약에 라는 말을 사용하다. 만약에 그 순간 다른 사람을 만났더라면, 그 공간에 가지 않았더라면 삶은 분명 달라졌을 꺼라 말한다.

 

 그러다 다시 생각한다. 내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그 시각, 그 순간에 마주한 사람이라면 그건 운명인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그 모든 것은 만약에라는 삶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다는 걸 증명하는 건 아닐까. 그러니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고, 나와 닿은 이들을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라고 말이다. 이상하게도 김연수의 소설을 읽고 나면 언제나 작은 위로를 받은 듯 충만해진다. 그러니까 이 말은 김연수의 소설은 누군가도 나처럼 슬프고 누군가도 나처럼 아팠고 그 시간을 지나왔으니 너도 괜찮아질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따뜻함이 있다는 거다.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고아가 된 열네 살 정훈이 들려주는 이야기 <원더보이>는 특히 더 그랬다. 트럭으로 과일 장사를 하는 아빠와 단 둘이 살던 정훈은 1984년 겨울 교통사고를 당한다. 단 한 번도 상상한 적 없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빠는 죽고 정훈만 살아남은 것이다. 공교롭게 그 사건은 남파 간첩이 연류 되어 있어 죽은 아빠는 마지막 순간에 애국자가 되고 정훈은 세상의 시선을 한몸에 받는다. 고아가 된 정훈은 나라의 보호를 받게 되고 그 뒤로 정훈은 원하지 않았는데도 다른 이의 마음을 읽게 된다. 정훈의 능력을 알게 된 국가는 이를 이용하려 한다.

 

 1980년대, 사회는 불안했고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가는 젊은 청춘이 많았던 시절이다. 원하는 대답을 얻기 위해 정훈은 그들의 마음을 읽어내야 했다. 아니, 국가가 원하는 대로 읽어야 했다는 게 맞다. 누군가의 마음을 읽는다는 건 신비로운 일이었지만 누군가의 두려운 마음을 누군가를 간절히 그리워하는 마음을 읽는 일은 사춘기 소년 정훈에게는 너무도 버거운 일이었다. 아빠를 잃은 슬픔을 견디기도 힘든 아이에게 국가라는 보호자는 참으로 가혹했다. 그러던 중 정훈은 돌아가신 엄마가 살아 있다는 기쁘고 놀라운 사실을 알았고 아빠의 유품인 망원경과 수첩을 통해 어딘가 존재할 엄마를 찾아 나선다.

 

 더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세상의 모든 게 다르게 보였을 정훈은 자신의 병실을 지키다 제대한 선재를 찾아가고 그를 통해 강토를 만난다. 슬픔은 슬픔을 알아본다고 했을까. 아니, 사실은 강토를 고문을 당하던 누군가의 마음에서 보았던 것이다. 약혼자를 잃은 강토는 정훈에게 든든한 버팀목이자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정훈은 죽은 아빠가 단지 보이지 않을 뿐 저 우주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 그러니 언젠가는 분명 아빠와 닿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연수는 정훈이라는 아이의 슬픔을 통해 1980년대의 슬픔을 보여준다. 더불어 개인의 슬픔과 고통을 외면하는 사회에 대해 말한다. 그 누구도 위로하지 않는 정훈의 아픔을 안아주는 어른은 어디에도 없는 현실은, 그 시절을 지나온 이라면 모두 기억할 것이다. 그 시대의 어른은 어떠했나. 강압적이었고 비겁했다. 오직 당사자만이 그 모든 것을 안고 살아야 한다고 무책임하게 내뱉는 세상이, 끔찍하다. 물론 우리는 안다. 누구에게나 피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을 말이다.

 

내가 김연수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그런 것이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들, 가령 그것은 서울대공원에 놀러 간다거나, 밥을 짓는다거나, 밤 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일이거나, 나무의 연두빛 잎들이 누렇게 변해 떨어지는 일이거나, 누군가를 짝사랑하는 일이거나, 누군가와 이별을 해야 할 때도 있고 삶을 뒤흔드는 거대한 사건일 수도 있는 것이다. 셀 수 없는 많은 일들을 통해 우리 생이 간직한 무궁한 비밀들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건 어쩌면 막연한 일처럼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한결같이 그 일상들을 아름답고 경건하게 지켜보고 말한다.    

 

 ‘내가 자라는 만큼 이 세상 어딘가에는 허물어지는 게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게 바로 인생의 본뜻이었다. 아이가 자라나 어른이 되는 정도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그사이 아무리 단단한 것이라도, 제 아무리 견고한 것이라도 모두 부서지거나 녹아내리거나 혹은 산산이 흩어진다.’ <단편, 뉴욕 백화점 중에서>

 

 ‘좋고 좋기만 한 시절들도 결국에는 다 지나가게 돼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 나날들이 완전히 사라졌다고는 말할 수 없다.’ <단편, 세계의 끝 여자친구 중에서>

 

 그러니까 정훈은 열네 살이었던 1984년을 지나가게 될 것이고 어른이 될 것이다. 아빠가 죽던 그 순간 보았던 빛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고, 희선 역시 약혼자의 죽음으로 인해 희선이 아닌 강토의 삶을 살았던 시절을 간직할 것이다. 나는 소설 속 정훈처럼 열네 살의 소년도 아니고 누군가의 마음을 읽기는 커녕 내 마음도 제대로 읽을 수 없다. 그러나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정훈과 강토가 서로에게 바람이었던 것처럼 누군가에게 우주에서 부는 바람을 만날 것이라는 것을, 어쩌면 나 역시 누군가에게 바람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앞으로 마주할 수많은 봉우리를 넘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바람 말이다.

 

 ‘모든 건 너의 선택이라는 걸 잊지 말아라. 원하는 쪽으로 부는 바람을 잡아타면 되는 거야. 절대로 네 혼자 힘으로 저 봉오리를 넘겠다고 생각해서는 안 돼. 혼자서는 어디도 갈 수 없다는 걸 기억해. 너를 움직이게 하는 건 바람이란다. 너는 어떤 바람을 잡아탈 것인지 선택할 수 있을 뿐이야.’ <원더보이 p. 300>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 좋은 시절만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너무도 잘 안다. 슬픔, 아픔, 고통, 절망이라는 징검다리를 건너는 게 삶이라는 걸 말이다. 그 위험한 돌, 하나 하나 건너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훈의 삶이 그러했듯 우리는 분명 어떤 바람을 만나게 될 것이고 찰나의 순간에 우주의 빛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어느 순간 저절로 어떤 비밀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 순간은 당신과 마주한 지금 일 수도 있고, 아직 닿지 않은 누군가를 만날 때일 수도 있다. 그렇게 눈부신 날들이 바로 생이다. 그러니 나의 우주와 당신의 우주가 품은 비밀이 만나는 순간을 기다리는 일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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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2012-04-03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을 책이라서 앞의 두 문단만 읽었어요. 좋아요. 뭔가 우연과 운명에 대헤 새로 생각하게 되네요. 글구 "세계의 끝 여자친구" 인용구도 좋아요... 모든 날들이 가버리지만 아주 가버리지는 않는다,라니요.. 김연수답네요. 위로도 되구요...^^*

자목련 2012-04-05 09:40   좋아요 0 | URL
김연수답다, 정말 이 책과 잘 어울리는 말이네요. 즐겁게 읽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