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문장 - 책 속의 한 문장이 여자의 삶을 일으켜 세운다
한귀은 지음 / 홍익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읽는 동안 나도 모르게 책과 하나가 될 수도 있겠다는 착각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소설이라면 소설 속 주인공의 삶의 일부가 내가 지나온 삶과 닮았다고 느껴질 때 소설이 아닌 다른 책의 경우는 반복해서 읽게 만드는 문장을 지녔을 때가 그러하다. 공감을 부르는 문장과 내용이라고 이해하면 좋겠다. 따져보지 않았지만 그런 경우 저자는 대체로 여자다. 독자층을 여자로 겨냥하고 쓴 글도 있지만 다른 글에서도 묘한 끌림이 있다. 한귀은이라는 작가도 그러하다. 작가에 대한 애정과는 별개로 그녀의 글에는 부드러운 강함이 있다.

 

 『여자의 문장』은 제목이 암시하듯 문장이 주는 울림을 만날 수 있다. 여자에게 더 많은 답을 주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문장은 한귀은이 읽고 선택한 문장에서 그녀의 문장으로 이어진다. 그러니까 나 같은 독자는 한귀은의 문장에서 힘과 위안을 받는다. 인문학을 가르치는 교수, 한 아들의 엄마,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여자 한귀은의 삶을 공감하는 것이다. 분명 타인의 삶이다. 그럼에도 그녀의 이야기는 문장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다 알고 있는 소설의 줄거리, 영화 속 주인공의 대사, 일정 부분 겹지는 감정을 나누는 시간을 통해 여전히 성장을 원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한귀은은 자신의 경험을 조금씩 내보이고 지인의 이야기를 통해 지난 삶을 어떻게 이겨왔는지 들려준다. 현재가 아닌 과거, 성숙한 사람이 아닌 불완전한 자아, 강요만 했던 아이와의 관계, 분노하지 않았기에 힘들었던 시절, 편안해진 일상까지. 행복한 삶을 원하지만 타인을 의식한 삶은 행복할 수 없다고 말한다. 어떤 감정을 지나기 위해, 나를 견디기 위해 달렸다는 부분을 읽노라면 그녀와 함께 달리는 내가 보이기도 한다. 달리기의 다른 이름으로 채워졌던 시간들 말이다. 스스로에게 고통을 부여해야만 잊을 수 있었던 시간들.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안아주고 싶은 모습이다.

 

 ‘달리기나 걷기는 삶의 메타포이며, 내가 이겨야 할 것은 과거의 나 자신이다. 뛰기나 걷기는 온전히 자기 몸에 집중하게 해준다. 눈에 풍경이 들어오더라도 그 풍경은 자기 내면이 투과된 풍경이다. 바람 또한 내 몸과 부딪혀서 나의 체온이 된다. 내 몸에서 맺힌 땀은 쾌적한 공기와 만나 나의 체취가 된다.’ (66쪽)

 

 ‘모두들 자신만의 역사, 상흔을 안고 살아간다. 인생에 완전한 실패란 것은 없다. 단지 피득백을 받을 수 있는 경험이 있을 뿐이다. 실패에 내재한 의미를 찾으면 그것을 훌륭한 피드백이 된다. 자신의 아픈 역사와 상흔이 어느 시점에 결정화되는 것이다.’ (85쪽)

 

 그러나 한귀은의 말처럼 그렇게 달렸기에 피드백을 할 수 있고, 누군가에게 진심을 전할 수 있다. 지금까지 자신의 몫이라 여기는 삶을 살아내려 혼자 고통을 짊어지고 이겨냈다면 이제는 조금은 비우고 조금은 내려놓음으로 채워질 수 있다고 말한다. 아픔이 있는 이가 아픔을 볼 수 있고 상처가 있는 이가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고 실패한 이가 실패의 원인을 분석할 수 있으니까. 지나간 사랑, 서툰 이별에 대해서도 정리할 수 있는 힘을 기르게 된다. 그리하여 앞으로 살아야 할 날들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이를테면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젊음에 대한 열망, 늙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 한귀은이 제시한 계획은 이렇다.

 

 ‘우리도 한때는 더 아름다웠다. 젊음의 아름다움을 가진 적이 있었다는 거다. 나이 들어 아름다운 사람은 젊은 시절의 아름다움을 간직해서가 아니라 그 아름다움을 잘 떠나보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다른 아름다움을 계발해야 한다.’ (170쪽)

 

 아름다움과의 이별과 다른 아름다움의 계발이라. 그것은 육체적인 의미만을 뜻하는 게 아닐 것이다. 아름다운 삶에 대한 의미는 저마다 다를 터. 현재 자신의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간직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움을 계발한다는 건 성장하는 게 아닐까. 늦은 나이에 새롭게 도전하는 아름다움, 관계에 있어 주도하는 게 아니라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환대하기, 나를 더 사랑하고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 것. 나를 위한 시간을 갖는 건 더욱 중요하다. 그러므로 한귀은의 말처럼 우리에게는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만 한다. 나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나만의 여유를 찾기 위해, 나와 대화하기 위해.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는 것은 여전히 유요하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자기만의 삶, 충만한 자아를 갖기 위해서 필요하다. ‘방’이 아니라면 ‘틈’이라도 가져야 한다. 온전히 자신에게 올인할 수 있는 틈,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성장할 수 있는 틈. 그 틈이 개성이 되고 자유와 자존감이 되고 품위가 된다.’ (2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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