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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정원 - 제151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ㅣ 오늘의 일본문학 17
시바사키 도모카 지음, 권영주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4월
평점 :
품절
하나의 공간에 대한 기억은 다양하다. 학교는 친구와 선생님이라는 그리운 존재와 함께 시험과 성적이라는 스트레스가 따라온다. 하여 공간의 기억은 때로 잔혹하다. 누군가에게 소중한 집은 다른 누군가에게는 지겨운 공간이 되기도 하다. 같은 공간에서 생활한 가족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럼 공간에 대한 애정은 어떻게 생성되는 것일까. 아니, 공간에 대한 그리움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전혀 상관없는 공간에 대한 동경은 내가 한 번도 그곳에 머물지 않았기에 가능한지도 모른다. 현재는 아파트에 살고 있어 이 공간이 주는 편리함에 익숙해졌지만 어린 시절 아파트는 거대한 성 같았다. 예쁘고 반듯하게 정리된 비싼 장난감처럼 함부로 소유할 수 없는 공간으로 존재했다. 소유하지 못했던 것들을 향한 욕망이 자라듯 특정한 공간에 머물고 싶은 욕망도 멈추지 않는다.
‘물빛 집은 확실히 눈에 띈다. 서양식 저택 같은 건물이다. 가로 방향으로 댄 벽널은 밝은 물빛으로 칠했다. 적갈색 기와지붕은 납작한 피라미드 같은 각뿔형이고, 꼭대기에 창끝 모양의 장식이 달렸다. 빙 두른 흰 담장에는 미장이의 흙손 자국이 비늘 모양을 그리고 있다. 골목에서는 2층만 보인다. 왼쪽에 베란다, 오른쪽에는 세로로 열리는 작은 창문이 둘. 둘 다 지붕과 똑같은 적갈색으로 창틀을 칠했다.’ (18쪽)
문장만으로도 한 번 들어가고 싶은 집이다. 아니, 그 집에는 누가 살며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궁금하다. 시바사키 도모카의 『봄의 정원』에 나오는 물빛 집이다. 물빛 집이라니. 쪽빛이나 청록색을 상상하다 고개를 젓는다. 나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빛깔이다. 철거가 예정된 연립주택에 살고 있는 ‘다로’와 ‘니시’에게 물빛 집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혼해서 혼자 살고 있는 다로는 그 집을 기웃거리는 여자 니시를 통해 그 집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과거 젊은 광고 감독인 남편과 여배우 아내가 이 집에 거주하며 촬영한 「봄의 정원」이라는 사진집을 냈다는 것이다. 니시는 그 사진집을 무척 좋아했고 우연히 물빛 집을 발견하고 근처로 이사까지 왔다. 사진에서 만났던 집안 곳곳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는 갈망 때문이다. 다로는 니시를 이해할 수 없지만 물빛 집이 점점 궁금해진다.
‘빈집이었을 때는 정지되어 있던 시간이 움직이고 있었다. 건물 자체는 집 안에 아무도 없었던 일주일 전과 똑같은데, 그곳의 기척이며 색조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있는 데 그치지 않고 집 자체가 별안간 생명을 되찾은 듯했다. 사진과 마찬가지로 언제까지고 바라볼 수 있을 줄 알았던 집이 자기 의사를 가지고 움직이기 시작한 것 같았다.’ (57쪽)
니시의 행동으로 나는 물빛 집에 대단한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게 아닐까, 다로와 니시가 연인으로 발전하는 건 아닐까 기대했다. 그러나 소설은 아주 평화롭고 조용하며 단조롭다. 연립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는 이웃들과 남겨진 사람들의 반복된 일상, 큰 변화 없이 흘러가는 다로의 직장생활과 동료와의 관계, 사진집과 물빛 집을 비교하는 니시의 이야기가 전부다. 그러나 이상하게 지루하지 않다. 계절마다 변하는 물빛 집에 대한 풍경과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이 친근하고 따뜻했기 때문이다. 다로가 매일 출근을 위해 걷는 길, 물빛 집 아이들과 친해져 초대를 받은 니시가 마주한 봄의 정원도 그랬다.
일상을 벗어나야 일상은 소중한 그리움이 된다. 이제 다로와 니시에게 연립과 물빛 집은 추억이고 그리움이다. 사라져 버릴 연립, 다시 찾아올 수 없는 물빛 집이었다. 영원히 머무를 수 없는 공간이기에 평범하게 다가오지 않았고 특별한 존재가 된 것이다. 계절이 변하듯 삶도 변한다. 시간은 모든 것을 조금씩 천천히 마모시킨다. 당연한 사실을 알면서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살아간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고 믿으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조금만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면 전혀 다른 존재로 다가온다는 걸 모른 척 말이다. 다로가 물빛 집에서 바라본 연립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듯 고요한 것처럼 우리는 그런 시간을 원하고 살아가는 건 아닐까.
‘베란다와 창문이 질서 정연하게 늘어서 있었다. 형태가 똑같은 창으로 햇빛이 비쳐 들었다. 2층 집은 벽에, 1층 집은 바닥에도, 볕이 드는 곳과 그늘의 경계가 보였다. 변화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소리를 내는 것도 없었다. 해시계처럼 양달과 응달의 경계가 이동할 뿐이었다.’ (15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