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락
필립 로스 지음, 박범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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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망이 시작되는 순간을 포착할 수 있다면 절망을 제거할 수 있을까? 거기 절망이 보이므로 그것을 피해하거나 그것을 빨리 지나친다면 절망과 마주하는 순간은 아주 짧을지도 모른다. 괴변 아닌 괴변이라는 걸 알면서도 똑바로 절망을 지켜본다면 피할 수 있을 것만 같다. 필립 로스의 『전락』을 읽으면서 늙음과 두려움의 정체가 문득 궁금해진다. 과연 늙음이란 기준은 어디에 있을까?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예순다섯 살은 늙음이라 불려도 좋을 나이일까? 인생은 60부터라고 말하는 시대에서 과연 그것을 판단하는 이는 누구란 말인가.

 

 무대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을 경험하는 배우 액슬러에게 찾아온 예순다섯 살의 시련은 극복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연기에 대한 열정은 사라진 게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 연기를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어쩌면 은퇴를 해야 하는 나이였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는 여전히 연기를 꿈꾸는 배우였다.

 

 ‘도저히 연기를 할 수 없었다. 무대에 오르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운 일이 되었다. 그는 자신이 연기를 훌륭하게 해내리라 확신하는 대신 실패하리라는 걸 알았다. 내리 세 번이나 그런 일이 일어났다. 마지막에는 아무도 그의 연기에 관심을 갖지 않았고, 아무도 보러 오지 않았다. 그는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었다. 재능이 죽어버린 것이다.’ (9쪽)

 

 내가 아닌 타인과 호흡하며 그들의 인정으로 인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배우라는 직업의 특성 때문이라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액슬러는 스스로를 갉아먹는 시간을 견디지 못했다. 결국 아내는 떠났고 혼자 남았다. 돈과 명예가 있었지만 자살 충동을 막을 수는 없었다. 무엇이 그를 죽고 싶게 만들었을까. 아니, 이런 심경을 보면 그는 죽고 싶었던 게 아니다. 그저 모든 게 연기의 일부라고 여겼던 건 아닐까. 그리하여 스스로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상담을 받고 이십육 일 동안 지낼 수 있었던 것이다.

 

 ‘아침마다 그는 몇 시간씩 침대에 숨어 있곤 했는데, 그런 역할에서 숨는다기보다는 단순히 그 역할을 연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침대에서 일어났을 때 그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이라곤 자살에 대한 게 전부였지만, 그것을 흉내 내지는 않았다. 죽고 싶어하는 남자를 연기하는 살고 싶은 남자였으니까.’ (15쪽)

 

 그곳에서 머무는 동안 액슬러는 시블 밴 뷰런이란 두 아이의 엄마를 만난다. 남편이 딸을 성추행하는 모습을 보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을 경멸하고 저주하는 여자. 언젠가 남편을 죽이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에 찬 여자. 액슬러에게 연극은 무엇일까. 무대에 다시 서야 한다고 말하며 찾아온 지인에게 액슬러는 그럴 수 없다며 돌려보낸다. 그런 그에게 찾아온 마흔 살의 페긴은 새로운 활력을 불러온다. 친구의 딸이자 동성애자인 그녀는 근처의 대학에서 강의를 한다. 페긴과 지내면서 액슬러는 현재의 행복이 곧 깨질 거라는 걸 예감한다. 그건 예순 다섯이란 나이만이 알 수 있는 직감인지도 모른다. 친구이자 폐긴의 부모들은 그들의 관계를 인정하는 것처럼 굴면서도 진심으로는 딸이 액슬러와 헤어지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들의 바람대로 페긴은 액슬러를 떠났다. 그런 과정에 액슬러는 시블 밴 뷰런이 남편을 총으로 쏴 죽인 기사를 읽는다.

 

 ‘그녀가 할 수 있었다면, 나도 할 수 있다, 그녀가 할 수 있었다면…… 마침내 연극에서 자살을 하는 것인 척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떠오를 때까지. 체호프의 희곡을 연기하는 것처럼. 이보다 더 딱 들어맞을 수 있을까? 이것으로 다시 연기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149~150쪽)

 

 어쩌면 전락이라는 제목에서 액슬러의 죽음을 예견된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사라지고 있다는 걸 견딜 수 없었으므로. 페긴이 떠나지 않았다면 그는 살고 싶은 남자를 연기할 수 있었을까. 그만큼 액슬러는 자신을 사랑했던 것일까. 젊지 않은 한 남자의 이야기라는 점과 죽음이라는 결말 때문에 『에브리맨』과 겹쳐진다. 병으로 인해 죽은 『에브리맨』과 다르다면 혼자 남겨진 삶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했다고 봐야 할까. 죽음이야 말로 액슬러에게 가장 완벽한 연기였다. 누구도 그의 삶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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