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별
정미경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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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미경의 장편은 『장밋빛 인생』,『이상한 슬픔의 원더랜드』에 이어 세 번째다. 그녀의 소설은 아름답고 간절하다. 그게 슬픔이든, 절망이든, 사랑이든 그랬다. 문장은 왜 이리 유려한지, 책 속으로 빠져드는 건 당연하다.

 

‘정오의 사막은 붉은 분홍이다.

 이 시간엔 부러 그렇지 않아도 눈을 가늘게 뜨게 된다.

 천지는 고요하고도 소란하다.

 와랑와랑.

 햇빛은 빛나는 동시에 속삭이며 부서진다.

 모래가 잔뜩 삼킨 열기운을 붉게 토해내면 대기는 부옇게 산란하며 뒤챈다. 더는 못 견디겠다는 듯.

 끝이 부러져나간 붉은 사암기둥. 무너진 벽과 돌더미 들. 폐허는 장엄해서, 은성했던 시절을 상상하는 게 어렵지 않다. 시간의 지층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원형 경기장의 돌기둥 사리로 검투사든 굶주린 사자든 거친 무언가가 금세라도 달려나올 것 같다.’ p. 7

 

 사막의 정오를 상상한다. 붉고 뜨거운 기운이 감도는 사막, 이처럼 황홀하게 묘사했지만 숨이 막힌다. 소설은 사막을 품고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다. 그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 그곳의 매력에 빠져 몰려드는 사람, 잠시 머무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사막의 풍경과 그들의 일상을 보여준다.

 

 죽음의 광장이라 불리는 모나코의 자마 알프나 광장을 배경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소설은 바바, 보라, 승, 로랑의 네 사람의 이야기를 교차로 들려준다. 생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의 이야기라 해도 좋을까. 승은 아내와 친구에 배신을 당한 뒤, 한국을 떠나 딸 보라와 함께 그들을 찾아 이곳으로 왔다. 승의 삶엔 오직 분노와 복수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의 흔적을 따라 사막을 헤매는 승은, 때때로 사막의 모래폭풍과 사막의 밤 하늘에 위로 받고 있었다.  그러나 돌아보면 자신을 가득 채운 건 여전하게 증오였다. 그런 아빠를 바라보며 보라는 어떤 질문도, 어떤 투정도 하지 않는다. 낯선 곳에서 그저 살아갈 뿐이다. 열 여섯, 보라에게 삶은 아무런 대답도 들려주지 않았지만 뜨거운 열기와 낯선 이방인들 속에서 스스로 답을 찾아가고 있었다.

 

 바바는 여행객에게 헤나를 그려주는 보라에게 유일한 친구였다. 보라가 좋아하는 건 뭐든지 해주고 싶었다. 새침하고 쌀쌀맞게 대해도 그런 보라가 좋았다. 보라를 웃는 일이라면 그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었다. 그게 자신을 버리는 일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바바에게 보라는 사랑이었던 것이다. 승이 사막으로 가이드를 떠나고 혼자 남겨진 보라 역시 바바가 있어 그곳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이다.

 

 사막의 아름다움에 매혹된 남자 로랑은 연인이 죽자 더 자주 그곳을 찾았다. 스스로가 아름다움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지만 사막이 주는 황홀함과는 달랐다. 사막에 숨겨진 옛 문화유적, 보물들을 소유하는 것으로 그리움을 달래고 있었다. 저마다 다른 이유가 있었지만 결국 네 사람 모두 누군가를 그리워했고 사막을 사랑하고 있었다.

 

 바바와 보라, 승과 로랑은 서로가 모르는 사이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것은 아름답고 고귀한 유물에서 시작되었지만 결국 인간의 욕망은 아니었을까. 바바에겐 보라를 향한 사랑의 표현으로, 승에게는 사막을 떠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 로랑에겐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위한 해소로 말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사막의 풍경은 때로 지독하게 외로웠고 쓸쓸했으며 때로 혼을 빼놓을 만큼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움을 만끽하려 모여든 다양한 사람들이 만드는 또 다른 풍경은 낯설면서도 낯익었다. 어쩌면 사막은 무언가를 잊기 위해,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기 위해, 혼자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일상을 벗어나기 위해 가장 적절한 공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사하라란 ‘아무것도 없는’ 이란 뜻이지.

 움직이는 건 아무것도 없다. 누렇게 뜬 사막풀마저 죽은 듯 모래에 발을 묻고 물이 있는 곳으로 실어다줄 저녁바람을 기다린다. 모래색뱀과 붉은 전갈도 한 조각 그늘을 찾아 필사적으로 몸을 감추었다.

 완전한 고독과 적막.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는 곳.’ p. 102

 

 『아프리카의 별』은 이전에 만난 정미경의 소설과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남는다. 다른 소설에게 그녀가 그려낸 건 우리의 삶의 조각이었다면, 이 소설에서는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을 담은 느낌이랄까. 소설에서 운명을 점치는 바바의 엄마가 들려주는 말처럼 말이다.

 

 “사람의 운명이란 원래 어두운 거란다. 아주 가끔 환한 빛을 발하는 때도 있지만 그건 한순간이야. 애초에 운명의 주관자가 그렇게 만들어놓았으니. 우리 짐작과 달리 신은 질투심으로 가득 차 있거든. 우리가 자족적인 행복에 젖어 있기보다는 끊임없이 자기를 찾고 매달리길 원하지. 한줌의 자비를 달라고, 이 고통만은 비켜가게 해달라고 울며 보채길 바라지.” p.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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