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의 축제 2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2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소설은 언제나 읽기 힘들다. 가장 최근에 만난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를 비롯하여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가 대표적이다. 해서, 페루 태생의 바르가스 요사의 『염소의 축제엔 기대와 동시에 두려움이 있었다. 염소의 축제가 의미하는 바를 알지 못한 채 바르가스 요사의 소설과 첫 만남이 시작된 것이다.  

 『염소의 축제』는 열네 살에 도미니카 공화국을 떠난 후 35년 동안 가족과 연락을 끊고 산 주인공 우라니아가 병든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고향에 돌아오면서 시작한다. 우라니아가 들려주는 1996년 현재 시선과 독재자 트루히요가 정권을 잡던 과거 시절, 그리고 그를 암살을 시행하던 날(1961년 5월 30일)의 시선으로 현재와 과거의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우라니아는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친척에게 들려주고, 나머지 두 개의 시선은 과거에 머무르는 무척 흥미로운 흐름이다. 

소설은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세 개의 이야기는 모두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과연 서사의 끝에 무엇이 있을까. 주인공 우라니아에게 일어난 일에 대한 궁금증이 제일 크다. 트루히요 측근으로 고위 간부였던 아버지가 갑자기 독재자의 미움을 받게 되었는지, 그로 인해 우라니아가 아버지를 증오하게 되었는지 말이다.  

 진실은 사라지고 아부와 아첨이 가득했던 시절, 언제 독재자의 눈 밖에 날까 두려운 정치인들이 존재했다. 허수아비 대통령을 내 세우고 모든 권력을 휘두르는 독재자를 암살하려는 사람들이 있었음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또한 트루히요를 제거하는 거사를 완벽하게 해냈지만, 그들이 원하던 세상으로 변화하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리라. 수 십년 동안 세상을 지배했던 체제가 하루 아침에 달라질 리 없었다. 1인자가 죽었지만,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여전했고 사람들에게 공포는 습관처럼 존재했다. 암살자가 되버린 그들은 숨겨주고 보호해 줄리 만무했다. 그들은 살고 싶었으니까. 순간의 선택의 자신과 가족을 죽음으로 몰고올 수 있는 시대였다.   

 “주요 음모자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일을 보고는 스스로 겁을 집어먹었습니다. 트루히요의 시체는 거기에 있었지만, 트루히요는 계속 그들 안에 살아 있었던 것이지요.” p. 377 - 2권  바르가스 요사의 인터뷰 중  

 도미니카 공화국의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쓰여졌기에 서사는 탄탄했다. 염소로 불리던 트루히요가 벌이는 축제에 대한 묘사는 생생했다. 헤서, 더 잔혹하게 다가왔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자의 오만과 성에 대한 혐오스러운 집착은 너무도 끔찍했다. 우라니아가 자신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일흔의 독재자가 열네 살 소녀를 범하는 장면은 차마 읽기 힘든 부분이었다. 

 그랬다. 독재자가 가진 힘은 그토록 강했고, 누구도 거부할 수 없었다. 역사속 잔인한 독재자들의 이름이 떠오른건 자명한 일이다.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살아있는 자체가 중요했다. 우라니아가 고통의 시간을 견디며 살아온 이유도 그러하리라. 살아내기 위해 스스로를 담금질해야 했고, 공부해야 했고, 아버지와 고향, 조국을 잊어야만 했다. 그러나 잊혀질리 없었다. 35년이란 시간도 충분하지 않았다. 손 하나 까닥할 수 없는 자신을 남에게 맡긴 채 눈만 뜨고 살아남은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었다. 독재자에게 딸을 바친 아버지를 그만 용서하라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 과거는 잊고 현재의 성공한 삶을 누리며 살라고 할 수 있는가. 

 “자신 있게 말하지만, 날 부러워할 이유는 하나도 없어. 오히려 난 너희들이 부러워. 그래, 그래. 나도 알아. 고모와 너희들도 문제가 있고, 힘든 시기를 보냈고, 실망하고 절망하기도 했어. 그러나 가족이 있고 남편도 있고 아이들도 있고 친척도 있고 조국도 있어. 그런 게 바로 인생이겠지. 하지만 아빠와 총통은 나를 볼모지로 만들었어.” p. 365 - 2권 

 우라니아에게 사촌들과 고모가 누렸던 인생은 없었던 것이다. 한 여자의 인생은 열네 살에 머물러 성장하지 못했던 것이다. 우라니아는 도미니카 공화국를 비롯한 독재 정치의 희생양이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물론, 여타의 인물들과 배경, 역사적 기록들과는 다르게 우라니아는 허구의 인물이다. 그러나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권력의 횡포의 대상은 언제나 약자와 여성이었다는 것을. 잔혹한 축제는 도미니카 공화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지구상 어딘가에서 여전하게 자행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바르가스 요사의 소설이 높이 평가받는 점은 아마도 그런 점이 아닐까 한다. 그곳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쉽게 꺼낼 수 없는 판도라의 상자의 뚜껑을 과감하게 열어버린 것이다. 해서,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고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상황과 위치에 따라 사람들은 변화한다. 주목해야 할 점은 독재자가 사라지고 발라게르 대통령이 도미니카 공화국의 안정을 되찾아가는 과정과 조금씩 변화시키려 노력하는 모습이다. 그의 모습을 통해 위정자들과 권력의 집행자들이 무언가 느끼기를 바란다.   

 이 소설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가 나처럼 도미니카 공화국 를 검색했을 것이다. 같은 상황을 배경으로 한 주노 디아스의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에서의 그 도미니카 공화국이 분명한데, 전혀 다른 느낌이다. 카리브해 이스파니올라섬의 동반부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 한때 트루히요 시로 불리었던 우라니아의 고향 ‘산토 도밍고’에 더이상 어떤 식으로든 염소의 축제는 존재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공포와 두려움이 공기처럼 흐르는 사회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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