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짜다 - 작가가 그린 자화상
헤럴드경제 편집국 지음 / 헤럴드미디어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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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화상이란 모름지기 이미 존재하는 육체적 외관과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내면의 윤관 사시에 아슬아슬하게 맺히는,  하나의 긴장에 찬 이미지다. 모든 예술이 그럴 것이다. 외관과 내면 사이, 우연과 필연 사이, 자유와 부자유 사이, 필멸과 불멸 사이를 오락가락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p 163 권여선  

 어떤 식으로든 나를 그려본 적이 없다. 작가들이 그린 자화상을 보고 읽으면서 거울을 자주 들여다 봤다. 자화상(自畵像), 내가 나 자신을 그린다는 일은 나를 관찰하며 나에 대해 사유하는 시간이다 . 해서, 작가들에게 자화상이란 보이는 외면뿐 아니라, 드러나지 않는 내면을 세상에 내놓은 일이 아닐까 싶다. 

 헤럴드경제에 연재되었던 <작가가 그린 자화상>을 통해 몇 몇 작가의 글을 만났던 터라 반가움이 크다. 김주영, 안정효, 박범신, 한승원과 같은 한국 문학의 거장을 시작으로 주목받는 작가라 할 수 있는 김경주, 김이설, 김도언, 배명훈과 신세대인 전아리까지 모두  42인의 자화상을 만날 수 있다. 자화상은 작가의 개성에 따라 형식이 달랐다. 자화상이라는 말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감각있게 담아낸 작가도 있었고, 독특한 자화상을 선보인 작가도 있었다. 작가들의 글을 통해 유년시절의 기억, 상처, 작가로의 힘겨운 일상을 공개하고 작가 자신을 고백한다. 

 작가가 그린 자화상은 모두 인상적이었다. 뛰어난 그림 솜씨를 가진 작가와 독특하게 표현한 작가도 있었다. 보여지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자신이 그린 그림을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작품이 아닌 일상적인 글이 주는 매력은 남다르다. 마광수의 자화상은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야한 여자를 떠올리며, 코와 입 대신 물고기를 그려 넣은 전아리의 자화상, 한 때 자신의 머리카락을 삼손의 머리칼이라 불렀다는 천운영의
자화상은 매력적이다.  



마광수의 자화상 


전아리의 자화상  


천운영의 자화상 
 

  42인 작가 중 가장 강한 느낌의 글은 ‘내 얼굴은 한마디로 졸리게 생겼다. 그리하여 별명은 ‘졸음이’.’ p 47 백가흠이다. 자화상 역시 독특했다. 흩어져 있는 눈, 코, 입의 조각난 사진들은 분열된 자아처럼 느껴졌다.  

 ‘얼굴 표정은 내 안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그 표정을 읽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다. 아침마다 거울을 보는 시선은 내가 아니라, 내 안에 들어와 있는 타자의 눈이다.’ p 35  이문재의 글은 나는 과연 누구인가, 나는 나인가,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한다.   

 백가흠의 자화상을 떠올리는 김도언의 자화상이다. 얼굴에서 떨어진 안구 하나,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쓰는 소설은 이와 같은 극심한 분열가 대립과 충돌의 과정에서 시나브로 떨어져 내리는 금부스러기 같은 것이다. 분열은 부인할 수 없는 내 세계의 일부이며 나는 이것을 자아를 통해 골똘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 내가 그린 자화상 속에서 안구 하나가 얼굴 바깥으로 나와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 안구는 얼굴 바깥에서 내 얼굴을 바라본다.’ p 134  김도언  ‘얼굴 바깥에서 내 얼굴을 바라본다’는 말은 ‘내 안에 들어와 있는 타자의 눈’이라는 이문재의 글과 닮았다. 



김도언의 자화상

   

어린 시절 웃는 얼굴이 아니라며, 머리를 때린 선생님에 대한 기억을 꺼내 놓은 윤이형이 그린 자화상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뚱한 얼굴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지나온 인생을 짧은 글과 그림 속에 모두 담아낸 서영은과 박라연의 자화상을 가만 들여다 보니, 왠지 숙연해진다. 발표하는 작품에 수록된 ‘작가의 말’ 외에는 만날 수 없었던 작가, 개인적으로 특별하게 좋아하는 작가들의 그림까지 접할 수 있는 즐거운 책이다. 좋아하는 작가의 자화상이 궁금하다면, <나는 가짜다>를 펼쳐 보라 !!



박범신의 자화상 


김이설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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