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자친구의 장례식 - 개정판
이응준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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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할까? 이응준의 <내 여자친구의 장례식>을 다 읽고 이런 궁금증이 생겼다. 작가에게 있어 모든 일상은 소설로 연결되어 있는 걸까? 남과 북의 가상 통일 후 한국을 그린 <국가의 사생활>을 통해 처음 만난 이응준은 회색와 검정계통의 색이었다면, <내 여자친구의 장례식>은 블루, 코발트 블루였다. 
 
7편의 단편은 모두 외로운 자아를 그렸다. 혼자가 아님에도 덩그러니 혼자인 느낌, 끊임없이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군상, 온전한 나를 알고자 하는 고독이라고 할까. 언젠가 나 역시 느꼈던 쓸쓸함과 외로움, 그것들과 오랜만에 재회를 하는 기분이었다. 이응준의 소설은 과거에서 온 긴 장문의 편지처럼 지난 날의 순간 순간을 떠올린다. 

 단편 <이교도의 풍경>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서로에 대해 다 안다고 믿었던 친구의 자살과 뒤이어 화자인 나에게 날아온 죽은 자의 편지. 친구가 남긴 물건을 전하러 가는 낯선 여행길. 그 길을 통해 자신을 알게 될 꺼라는 친구의 글은 화자에게도 독자에게도 호기심을 불러오며, 그 여행길에 동참케 한다. 과연, 그곳엔 누가 있으며, 어떤 일을 만나게 될까. 그리하여, 마주하게 된 사실은 모두를 놀라게 한다. 

 아마도 고래는 낙타를 사랑하고 있었던 걸 거야. 사막에 사는 낙타말이야. 왜, 알다시피 고래도 포유류잖아. 유전자적으로 끝까지 올라가보면 낙타에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지. 아무튼, 바다에 사는 온갖 고래 중에 몇 마리가 낙타를 그리워한 거라구. 그래서 백사장을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거야. 물 한 방울 없는, 먼지투성이의 사막을 향해 더이상은 다가가지 못한 채. 사람들은 비웃고 조롱하겠지. 불가능한 사랑이라고 치부하면서. 기껏 인심을 쓰더라도, 안타까워하는 정도일 뿐이야. 고래가 낙타를 그토록 사랑하는지 모르고, 까끌한 모래알을 씹어 삼키며 기다리고 있는 낙타의 어두운 고독은 상상도 못하면서. p 52 

 고래의 절박함과 낙타의 어두운 고독을 아는 이는 얼마나 될까?  타인의 내면을 꿰뚫어보고 심연을 잴 수 있는, 이응준은 그것을 알았던 걸까?

 <이미 어둠의 계보를 알고 있었다>의 나 역시 불안하다.  친구 준기와 그의 여자친구와 나는 언제나 함께였다. 셋은 둘보다 때로 안정적이다. 둘에서 셋은 자연스럽게 동화되지만, 셋에서 둘은 어딘가 불안하다. 갑작스런 준기의 죽음은 수영과 나는 더이상 안정적이지 못하다. 어느 날 갑자기 존재는 부재가 될 수 있다는 삶의 허무함.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지만, 쉽게 인정할 수 없다. 수영은 미국으로 떠나고 나는 대학원에 들어간다.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새로운 관계. 대학원 동기 미오. 역동적인 미오와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준기의 죽음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듯 하다.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게 죽음이며, 그것이 삶이라는 걸 확인한다. 

 한 때 연인이었으나 타인으로  다시 만나 아련한 추억을 되돌아보는 <Lemon Tree>, 서로의 외로움을 알아보지만 선뜻 다가서지 못하는 사람들의 슬픈 내면을 그린 <지평선에서 헤어지다>, 타인에게 가슴 한 켠을 내어줄 여유가 없는 <내 가슴으로 혜성이 날아들던 날 밤의 이야기>. 치열하게 고독했을 시간들, 나를 찾아 방황하던 청춘들, 상념의 시간을 지나온 그들,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엉뚱하게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10년 전과 지금의 나는 어떻게 달라졌나. 생각해보면 삶은 여전하게 불안하고, 여전하게 외롭다. 단지, 외로움을 드러내지 않을 뿐,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으려 애쓰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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