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플린, 채플린
염승숙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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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적으로 상상의 세계에 빠져드는 것에 대해 현실의 도피라고 말하기도 한다. 현실의 고통이 극에 다랐을 때,  벗어나고 싶은 욕망은 마술이나, 판타지에 환호한다. 영화 '나니아 연대기'에서 옷장을 통해 새로운 세상이 열리듯 염승숙는 꼬리뼈를 통해, 숫자를 통해, 달력을 통해서 환상으로 이끈다. 그 환상은 환영이 아니라, 그리움이고 추억이었다. 황정은의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 열차>을 읽은 이라면 분명, 두 소설이 비슷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닮은 듯 달랐다.  황정은은 깊고 무거웠으며, 염승숙은 엉뚱하면서도 따뜻했다. 

  염승숙은 환상의 도착점을 달로 연결시켰다. 달은 죽음이기도 했고, 희망이기도 했다. 꼬리뼈 전문 물리치료사가 주인공인 <뱀꼬리왕쥐>에서 아버지는 사라졌고, <춤추는 핀업걸>에서는 자유 자재로 달력속을 드나드는 엄마가 있다.  표제작인 <채플린, 채플린>이나 , <채플린, 채플린 2>에서도 마찬가지로 채플린의 모습처럼 사람들이 멈춰버린다. 세상사가 지겹고 돈벌이가 힘들어서 그들은 사라진 걸까. 아니다, 이미 사라진 사실일진대, 잠시 숨어버렸다고 남아있는 자들은 그렇게 믿고 싶었는지 모른다.  상상이라는 허구의 공간에서 그들을 추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퇴화해버렸지만, 우리 몸의 일부였던 꼬리뼈를 기억하는 <뱀꼬리 왕쥐>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사람이면 누구나 각자 하나씩 자신만의 달을 가지고 태어나. 그게 바로 꼬리뼈야. 천골에 이어지는, 여러 개의 미추가 결합된 뼈. 태생기에는 누구나 아홉 개의 미추로 이루어진 꼬리뼈를 가지고 있다는 건 너도 알고 있지? 성장하면서 소실되어버리지만 흔적기관으로 남아 있지. 난 그게 우리의 마음에 떠오르는 달이라고 생각해. 안타깝게도 우린 늘, 삶이 너무 고되고 팍팍하게 느껴질 때만 고개를 들어 하늘에 매달린 달을 바라보지. 하지만 우리의 마음속에서는 언제나 자신만의 달이 떠오르고 있어. 우리는 스스로 그걸 깨달아야 해.”p 28

 정말 우리의 마음에 떠오른 달이 있는지도 모른다.  일상에 지쳐, 눈물이 날때, 달을 올려다보면 그곳에 돌아가신 엄마가 웃고 있다면, 그렇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 염승숙은 그런 확신을 주고 싶었나 보다. 사라졌다 다시 차오르는 달이 항상 우리를 지켜보고 있으니 힘을 내라고 말하고 싶었나 보다. 그것은 주민증록 말소를 해도 엄연하게 삶은 존재한다고 말하는 <피에로 행진곡>에서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런 소설도 있다. 태어날 때 온몸 구석구석 숫자를 가지고 태어나, 공영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아이의 이야기인 <수의 세계>. 공영에게 세상은 수로 통하는 것, 신비하고 놀라운 수의 세계를 만나게 되는 기발한 소설. 

 <다만 내가 지금 이 순간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동안에 그 누구도 아프거나 괴롭거나 슬프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 당신에게 건네는 나의 조금만 농담이, 작게나마 따뜻한 위로로 다가갔으면 좋겠다. 작가의 말>이 다정하게 들린다. 독자가 기꺼이 염승숙과 함께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즐겁게 넘나드는 것은 앞으로 다양한 현실과 부딪쳐 많은 것을 겪게 되면서 선보일 소설에 대한 앞선 기대를 해도 괜찮다는 믿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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