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은 대답하지 않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송태욱 옮김 / 체크포인트 찰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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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이름만으로 책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 기존에 만났던 느낌이 좋아서,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그렇다. 다수의 팬을 지닌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란 이름이 주는 영향력, 아마도 이 책을 선택한 다른 이들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에세이를 읽은 기억이 나를 이 책을 이끌었다. 구름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도 한 몫 거들었다. 그러나 이 책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에세이가 아닌 취재기라고 해야 맞다.


『구름은 대답하지 않았다』는 1991년 3월 12일 심야에 후지 텔레비전에서 방송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기초로, 방송 이후 다시 취재를 거듭하여 쓴 것이다. 그 방송은 그가 스스로 기획한 첫 다큐멘터리이고 처음으로 이십 대에 쓴 책이라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그가 기획한 다큐멘터리가 무엇일까. 그것은 한 고위 관료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다. 당시 일본 사회에서 관료의 죽음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환경청 소속 관료 ‘야마노우치 도요노리’로 이 책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53세의 야마노우치는 당시 일본 사회를 뒤흔든 ‘미나마타’병의 국가 측 책임자였다. 오래 이어진 정부와 피해 환자 간 소설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야마노우치의 일생과 미나마타병의 시작과 보상 문제 진행과정에 대한 상세한 취재가 이 책의 중심이다. 잠시 쉬겠다는 말을 남긴 채 2층 자신의 방에서 가족과 직장 동료에게 짧은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연 최초 발견자는 아내 ‘도모코’였다. 그 황망함을 어찌 말할 수 있을까. 2층에 빨리 갔더라면, 조금이라도 남편을 귀찮게 했더라면, 일에 대해 물어봤더라면 죽음을 막을 수 있을 거라 자책한다. 아내의 인터뷰가 이 책의 시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편의 죽음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 그리고 애도하는 마음 말이다.


야마노우치의 아버지는 전쟁중에 죽었고 어머니는 그전에 자신을 떠났다. 불운한 가정환경에서 그는 글쓰기를 좋아했는데 소설가가 되고자 하는 마음도 품고 있었다. 그가 지는 시, 편지, 메모를 통해서도 그가 어떤 감성의 소유자인지 잘 알 수 있다. 어쩌면 그런 성향이었기에 관료 사회에서 공무원으로 지내는 일이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집에 와서는 아내나 아이들에게 한 번도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일뿐 아니라 다른 이야기도 많이 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미나마타병(화학공장에서 방류한 수은으로 인한 중독)을 맡은 후로는 귀가도 늦었고 집에 들어오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책임감이 뛰어난 그였고 정부와 피해 환자 사이에서 정신적으로 힘든 상태로 보인다. 수은중독이라는 걸 밝히는 과정부터 패해 보상까지 길고 지루한 싸움이었다. 국가를 대변하고 있지만 그 역할은 그에게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과 같았던 건 아닐까. 야마노우치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그가 남긴 글과 그가 한 말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인간은요,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에요. 이건 복지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행정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의 기본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상대의 마음을 읽어내 대처하려고 해야 합니다. 자신의 입장만으로 판단하면 복지 업무는 안 됩니다.” (116쪽)


그는 미나마타병의 발병지로 가는 출장을 다른 사람에게 인계하고 집으로 귀가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목숨을 끊었다. 얼마나 괴로웠을까. 한 인간의 내면을 알아가는 일은 불가능하기에 아내 도모코조차 그 죽음을 이해할 수 없다. 남편의 죽음 이후 괴로운 그녀를 주변 이들이 떠받쳐주었고 그런 시간이 지나면서 아내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을 조금 바꾼다.


사람은 고독하다. 철저하게 혼자다. 그러나 그것을 확실히 인식하고 거기에서 출발해야만 사람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 고독하다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사람은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259쪽)


일본에서 일어난 사건을 바탕으로 한 기록이지만 어떤 사회에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사회문제와 복지제도의 허점은 바로 우리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국가와 개인 간의 분쟁, 화해와 보상 문제로 갈등하는 모습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당사자가 아니라고 함부로 말하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쓸쓸함이 감도는 책에서 유난히 눈에 밟히는 건 바로 소개로 만난 아내에게 쓴 편지의 내용이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차분하게 써 내려간 편지에 좋아하는 것 가운데 “바라보는 것 - 구름”이라는 부분이다. 그가 편안하게 구름을 바라보는 모습을 상상해 보지만 외로움과 슬픔이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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