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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자본주의의 폭력 - 부채위기를 넘어 공통으로 아우또노미아총서 41
크리스티안 마라찌 지음, 심성보 옮김 / 갈무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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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이 책을 읽는 방법

 

  유명한 Foucault, Lazzarato등 뿐 아니라 (특히 인지자본주의-생명자본주의 계열의) 여러 빛나는 영감과 통찰, 성과들을 집약해 놓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Marx주의 혁신 경제학의 새로운 방향성을 보여주는 좋은 이정표이자 선언의 성격을 가진 책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영감에 찬 aphorism을 가득 담은 잠언집처럼 혁신의 착상들을 얻기 위해 구절, 구절들을 명상적으로 깊이 읽어 나갈 필요가 있다.

또한 『인지자본주의』가 다소 원론적인 문제들에 대해 이론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면 이 책은 그 계열에서 세계 경제 위기부터 일반화된 부채, 대학 등록금과 학자금 대출 문제까지 시급한 현실의 사태와 여러 현재적 사안들을 바라보는 견해를 종합적으로 제시하고 있어 그 계열의 최신 흐름을 정리할 수 있는 좋은 참조가 된다.

단, 종합적 집약이고 이정표이기 때문에 정밀한 논증이나 통계적 Data 등은 기대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고, 사안에 따라 다소 논쟁적일 수는 있으나 반드시 전적인 찬성이나 반대가 중요하다기 보다 "진보의 몰락"이나 "죽음", 또는 그 훨씬 전부터 얘기되어 온 "좌파의 구조적 위기", 그리고 이미 수십 년 된 "Marx주의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새로운 사유의 방향을 열어주는 하나의 출구이자 풍부한 생각할 거리들의 보고라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0. 이 얇은 책이 제시하는 중대한 논점들

 

1. College de France 강의들과 특히『생명관리정치의 탄생』 이후 Foucault 정치경제학의 계승발전이자 일반화된 인지자본주의로서의 생명자본주의, 생명경제론

 

  생명자본은 자본주의 하에서 이윤을 생산하는 ‘노동(력)’을 ‘생명(력)’으로 바꿔 쓴 표현으로, 포스트 포드주의 시대에 생명은 이윤의 지배적 원천이 되었음을 포착한다. 생명이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공통된 자질로, 아주 기초적인 생리학적 특성부터 상징, 관념, 감정, 언어 등 인간의 추상적인 요소와, 자연생태계까지 포괄하는 용어이다. 이제 자본은 공장이나 사무실에서 노동자가 수행하는 물리적 노동뿐만 아니라 감정과 상징까지 흡수하며, 나아가 일상생활 곳곳에서 인간 활동을 추적하여 식민화한다. ‘셀프서비스’는 소비자를 생산자로 만들며, 온라인 쇼핑몰에 남겨진 소비자의 구매정보는 어느새 분류되어 생산과정에 통합되어 버린다.

 

생명자본주의, 생명경제란 Foucault가 생명(관리)정치/삶정치, 즉 bio-politics라는 개념을 동원해 포착하고자 했던, 그러나 생전에는 끝내 충분한 이론 전개를 완수하지 못한 바로 그 새로운 현상들의 핵심적 본질이자, 물적 토대이다. 

bio-politics란 결국 후기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실체로서의 bio-capitalism과 그 통치 ideology로서의 복지국가 model을 중심으로/에서부터 현대/후기 자유주의, 신자유주의와 (이후 도래할) post-자유주의까지를 포괄하는 장기 후기 자본주의를 지칭하고자 했던 개념인 것이다.

bio-capitalism과 bio-politics, bio-pouvoir는 신자유주의를 초월하여 지속할 상위 범주이고, platform-capitalism, digital-capitalism에서 더욱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Google과 Apple사 등의 국제독점자본들이 열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각종 생체의료, 건강운동정보를 핵심으로 한 Big Data collecting & mining 산업의 급부상은 이러한 예측을 잘 증명해주는 현상들이다.

 

 

 

 

2.1. Marx 대 Minsky ? ;금융(자본주의)화라는 현실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급진좌파의 혁명주의를 수호하는 하나의 경로

 

최근('2013.05.10~12) 개최된 제6회 Marx Communnale에서 핵심 쟁점 중 하나로 제시된

Marx 대 Minsky, 즉 독점자본주의론=정통 Marx주의 vs 금융(자본주의)화론=Keynes주의/개혁주의라는 문제설정에 대한 하나의 대답

 

2.2. 금융자본(주의)의 위상 평가 문제

 

  일곡 유인호 학술상 제5회 수상자이기도 한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의 저자 장석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자문위원, 전 진보신당 상상연구소 부소장, 진보신당 창당준비위원회 정책위원회 의장)은 최근 "『신자유주의의 탄생』-― 문제의식과 성찰 그리고 제안들"이라는 논고에서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신자유주의의 모태가 된 자본주의의 동학 :

  이 책(『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은 신자유주의를 주도한 사회 세력을 화폐 자본(=금융 세력)으로 파악한다. Kees van der Pijl의 『The Making of an Atlantic Ruling Class』(Verso, 1984)가 이러한 역사적 이해의 기본틀을 제공해주었다. 하지만 금융 세력을 부각시키면서도 저자[=장석준]는 이것이 K. 마르크스 이후의 전통적 자본주의 이해에 어떠한 충격을 가하는 것인지 명료하게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이 책을 집필한 뒤에야 저자는 J. 잉햄의 『돈의 본성』(홍기빈 옮김, 삼천리, 2011), D. 그레이버의 『부채, 그 첫 5,000년』(정명진 옮김, 부글북스, 2011), M. 라자라토[>랏짜라또]의 『부채인간』(허경 외 옮김, 메디치미디어, 2012)을 통해 마르크스주의의 화폐, 금융 이해에 근본적 오류와 한계가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르크스의 『자본』1권은 생산 현장에서의 자본-노동 관계에 관심을 집중함으로써 자본가계급 전체에서 헤게모니적 역할을 수행하는 금융 세력을 논의에서 배제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자본』3권에서 비로소 금융 세력이 자본 전체의 지휘자라는 중대한 위상을 갖고 등장하지만, 이들에 대한 논의는 그야말로 파편적 수준에 그친다. 이에 따라 '실물 경제'/'화폐(금융) 경제'의 이분법적 인식이 지배하게 되었고 후자가 전자에 종속되거나 이로부터 파생된 것으로 이해되었다. 하지만 실제 자본주의 역사에서 2차 대전 직후부터 1970년대에 이르는 예외적 시기를 제외하고 계속 자본가계급 내의 헤게모니 집단은 금융 세력이었다.

 

  물론 이 글은 『자본』의 치밀하고 주도면밀한 저술 체계에 대해 약간의 오해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역으로 반면투사를 통해 산업자본에 대한 일방적 강조라는 『자본』에 대한 통속적 독해법의 가능성과 위험성을 동시에 잘 보여주고 있다.

  Marazzi는 (본서에서 실물/산업경제에 대한 화폐/금융경제의 전면적 지배까지를 주장/강조하고 있지는 않지만), Giovanni Arrighi 등 실물경제와 금융경제의 분리를 통해 경제파동과 주기를 설명하려는 흐름을 비판하면서 풍부하고 중요한 여러 함의들을 동반해, 양자의 분리불가능한 융합 현상을 역설한다.

이것은 본서를 둘러싼 최대 쟁점 중 하나로 향후, 금융위기에 대한 대안으로 산업자본주의(와 임금regime 기반의 복지체계)를 복원하려는 주요 선진국 좌/우파 정부들과 구좌파들의 시도(에 대한 평가)를 둘러싼 비가역성 논쟁으로 본격화될 것으로 보이며, 이후 역사적 (주요) 지배자본논쟁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3. 자본과 정동, 자본과 언어

  뿐만 아니라, 이후 엄밀한 검증과 치열한 논쟁작업이 뒤따라야 하겠으나 현재의 자본주의에서 (불변자본 중) 고정자본은 이제 [manual등을 포함하는 (범) program적] 수행 언어화되어 전 사회에 퍼져 (가고) 있음을 지적하는 Stephen Baker등의,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실에 대한 근본적 성찰 등에 대한 소개도 별처럼 빛나는 여러 논변 중 하나로 보인다.

 

고정자본의 (수행)언어화 현상은 크게 3가지로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첫째는 그 유명한 『Grundrisse』에서의 Marx에서 유래하는 전통적 해석으로

 

 

둘째는 현대 (급진) 철학적 해석으로 사뭇 의미심장(하고 흥미진진)하다. 이중 특히 구조주의 계열에서 Lacan과 Deleuze에 이르기까지 근대성의 핵심으로서의 주체를 해체하는 철저한 (이론적) 반인간주의, 반주체주의가 드디어 철학과 인문학을 넘어 경제학까지 침입하기 시작하는 제1격, 그러나 근본적 치명타로서 해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드디어 경제(행위)의 주체, 생산의 주체라는 개념 자체가 반성적으로 의심되고, 가변자본과 불변자본의 ("형이상학적") 이분법이라는 오래된 방법론이 (발전적으로) 해체될 수 있는 위력 또는 위험을 안고 있는 해석인 것이다.

이들에게 주체란 구조화된 언어일 뿐이거나 말그대로 "기계"일 뿐이(었)기 때문에 근대 경제학적 paradigm에서 가치생산과 노동의 신성한 주체로 설정되었던 노동자(계급) 또한 이제 신경과 근육의 구조(물)로서 해체적으로 인식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전통 Marx주의의 가능한 반론은 아마도 '산 노동'과 '죽은 노동'의 대별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셋째는 (post)operaismo, 또는 후기-노동자주의적 해석으로 이 현상은 동시에 자본주의적 통제로부터의 산 노동의 점증하는 자율을, 즉 다중 내에서 점증하는 사회적 협력의 잠재적 자유를, 언어적 수행, 지식 생산의 자본주의적 통제로부터의 잠재적 자율을, 그리고 오늘날의 산 노동의 소통과 협력의 역량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인식된다. 왜냐하면 자율은 일반지성을 구체화하면서 지식과 언어의 생산적 힘들을 훨씬 독립적으로 배치하고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4.

 

 

 

 

5.

 

 

 

 

S. 본서의 대안적 결론들

 

  본서는 곳곳에서 다층적 결론들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국내에 최초로 소개되는 저자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기 위한 자료들의 혼합적 편집체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요하게는 '현실성'이라고도 읽힐 수 있는 주체별, 시계열별 다양한 정책/전략체계들이 곳곳에 중층적으로 독립나열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책들의 서론과 결론만 읽고 질 낮은 서평들을 매주 쏟아내는 언론들이 본의 아닌 왜곡을 해대고 있는 것처럼, 본문 결말부에 해당하는 '6장 나오며'의 마지막 문단을 이 책이 제출하는 단 하나의 결론이라고 독해하는 것이 가장 위험한 오해가 될 것이다.

 

 

S.1. 탈금융화 및 재산업(자본주의)화 vs 비가역성 문제

 

.....금융 경제와 실물 경제는 더 이상 구분될 수 없으며, 금융 경제의 토대는 그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행동과 생활방식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데 있습니다. 다시 말해, 소비자들은 식료품을 신용카드로 구매하고, 노동자들은 연기금에 가입해 있고, 중간계급은 주택담보대출로 질식할 지경이며, 빈민들은 "몸뚱이"를 담보로 빚을 끌어 쓰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적어도 부분적이나마, 시스템의 탈금융화가 가능할까요? 아니면 단지, 은행의 악행으로부터 시스템을 개선하는 게 문제인가요? 그리고 생산과 소비가 부채를 통해 매우 밀접하게 뒤얽혀 있다면, 위기가 가져오는 침체와 불황을 회피하는 게 가능할까요?  (p.185)

 

  우리가 앞서 논의했듯이 부채를 줄이는 퇴행적인 방식으로, 자본주의 자체가 탈금융화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수요와 소비를 침체시키고, 결국 죄책감 규율은 삶 자체를 절하시키고 우울하게 만듭니다. 대신에, 우리는 사적 지대(rent)를 사회적 지대로 재전환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부채를 사회화하고, 사회적으로 유용한 재화의 수요와 소비를 다시 촉진하고, 공적 공간을 재전유하고, 사회적 관계와 집합적 행복을 재건해야 합니다. 이것이 공통적인 것이며, 악화 일로를 걷는 금융화의 병폐가 악순환의 경로를 벗어나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습니다. 기본소득이나 토빈세처럼, 지난 몇 년 동안 사회적 투쟁에서 활용된 키워드들은 이미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p.186)

 

 

 

 

S.2. 급진(주의)적 하위 대안으로서의 부채 탕감 및 상환 거부 운동

 

  파산할 권리를 주장하는 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회운동은 이를 삶의 금융화에 맞선 저항권처럼 제시하고 있는데요.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대중을 현혹하는 운동이라고 보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유럽의 기술관료들이 무력화시킨 국가 주권을 재구축할 수 있다고 보는데요.

 

  내[Marazzi]가 볼 때, 그러한 운동이 주체적이고 맥락적인 실천이라면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운동이 국가의 손아귀에 빠지면 성공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학자금 대출의 거품이 한 동안 치솟아,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거의 절반에 육박했습니다. 이런 경우, 정당한 대출과 부당한 대출을 구별하려면, 학생들과 이들의 가족이 파산권을 확보해 행사해야 합니다. 하지만 파산권을 국가에 맡겨서도 안 되고, 이를 통해 잃어버린 주권을 회복하려는 국가의 야망에 맡겨서도 안 됩니다. (p.187)

 

 

 

S.3. Rosa Luxemburg 경제학의 복권적 재발견과 여성주의(적 통찰들)와의 접합성

      ;적-록-보라 경제학, 또는 (친)여성주의 경제학( Project)을 향하여

 

S.3.0. 전통적 Marx주의, Trotsky주의 계열, 혁신 Marx주의 계열, post±anarcho 계열, 여성주의, 생태주의 계열의 시발적 공통분모/대모로서의 Rosa Luxemburg

 

S.3.1. 비자본주의적 처녀성에 대한 정복으로서 자본주의는 그 태생부터 언제나 제국주의였다는 각성

  제국주의가 자본주의의 최근/최고/최후 단계라는 단계론적 주류 제국주의론 전통에 대한 확장적 교정과 녹색, 보라와의 접합 가능성의 이론적 개방

 

내가 로자 룩셈부르크의 이론을 택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 자본주의적 축적 과정이 비자본주의적 '타자'에 대한 지배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그의 주장은 데이비드 하비, 엘런 우드 등 오늘날의 반제국주의자들에게도 강렬한 영감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룩셈부르크는 제국주의를 자본주의 발전의 필연적 귀결로 이해한 최초의 비중 있는 마르크스주의자였던 듯하다. 반면에 힐퍼딩은 금융자본이 우세해질수록 부르주아지가 제국주의(그가 생각하기에는 '군사력 증강과 식민 정책'을 뜻했던)라는 정책을 채택하는 경향이 나타난다면서 제국주의를 일관되게 모종의 정책으로 묘사한다.

 

... 룩셈부르크는 이러한 주장을 기초로 『자본축적론』 끝 부분에서 세기말 제국주의를 강렬하고도 독창적으로 묘사한다. 여기서도 그는 마르크스를 비판하면서 "이른바 시초 축적"(근대 초 영국에서 한편으로는 전세계에서 속임수와 강탈을 통해 자본의 수중에 부를 집중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토지 몰수를 통해 농민들을 무토지 프롤레타리아로 전락시켜서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기초를 확립했던 역사적 과정)에 관한 『자본(론)』 1권 8편의 묘사가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는 시초 축적을] 자본의 탄생 과정만을 보여 주는 우연적 사건, ... 봉건 사회에서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등장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산통[으로 묘사한다.] ... 그러나 앞서 살펴봤듯이 성숙한 자본주의는 그와 나란히 공존하는 비자본주의 계층과 사회 조직들에 모든 면으로 의존한다." 또한 시초 축적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관계는 평화로운 교류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비자본주의 사회들을 자본주의의 법칙에 폭력적으로 종속시키는 데 기초하고 있다. 그렇기에 "역사적 과정으로서 바라본 자본축적은 그 탄생 과정에서 뿐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줄곧 강제력을 자신의 영원한 무기로 사용한다." 이 과정은 '자연경제', 즉 비시장적 사회 형태들(그것이 어디에 존재하든 간에)의 체계적 파괴를 수반하며, 자연경제의 생산적 요소들을 세계시장에 흡수하는 것, 그리고 단순상품생산에 대한 선진 자본주의의 전형적인 적개심(단순상품생산을 자원과 시장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의 라이벌로 보기 때문에)[과 경멸적 우월감(-작성자)]을 수반한다.

 

...그러나 일각의 주장과 달리, 룩셈부르크는 그렇다고 해서 사회주의의 도래가 사회주의의 도래가 필연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자본주의가 경제적 붕괴로 나아가는 내재적 경향이 있고, 그러한 경향이 제국주의 시대에는 재앙을 부를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말이다(룩셈부르크는 제1차세계대전으로 자신의 예측이 입증됐다고 봤는데, 그렇게 볼 만한 근거는 충분하다). 그가 보기에 자본주의의 붕괴는 사회주의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야만주의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그는 자본주의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위기들이 예정된 결과를 낳기보다는 인간의 행동에 좌우되는 대안들을 제기한다고 봤다. 따라서 룩셈부르크는 자신의 경제 이론에도 불구하고 숙명론적 마르크스주의자는 아니었다.

 

룩셈부르크의 동시대인들과 오늘날의 이론가들은 모두 전자[마르크스에 대한 룩셈부르크의 비판]와 후자[서구 자본주의가 나머지 세계를 침탈한 구체적 과정에 대한 탁월한 해설]를 구분하면서 전자는 거부하고 후자는 매우 높이 사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하비는 "오늘날 룩셈부르크의 과소 소비론을 경제 위기에 대한 설명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라면서도 "자본주의는 언제나, 필연적으로 자신에 대한 '타자'를 창조한다"면서, 마르크스가 이른바 '시초 축적'(하비는 이를 '강탈에 의한 축적'이라고 새롭게 명명하면서 그 개념을 확장한다)에서 필수적 요소라고 봤던 약탈과 폭력이 사실은 자본주의의 탄생 시기에 국한되지 않고 자본주의를 늘 따라다니는 요소라는, 룩셈부르크의 주장을 계승하고 발전시킨다. 룩셈부르크의 제국주의 분석은 실로 통렬하고, 면밀한 조사에 바탕하고 있으며, 당대의 추세들에 대한 설명으로서는 여러모로 설득력이 있다. 그의 분석 속에서 식민지 정복, 융자, 관세, 군국주의는 하나로 연결된다. ... 자본주의가 비자본주의 사회로 침하하는 것에 대한 룩셈부르크의 설명은 '순수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잉여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문제에 한정되지 않는다.

 

 

이상은 (놀랍게도) Alex Callinicos의 2009년 저작 (한국어판은 2011년) 『제국주의와 국제 정치경제』(책갈피 간)의 p.60~67에 수록된 내용이다.

 

 

 

이러한 동역학/역동(적) 관계는 가치화 과정들에 변형/전환이 있어 왔고 그래서 오늘날 잉여가치의 축적이 [전통적 생산(노동)영역에서] 순환[유통], 교환, 재생산의 영역으로 [확장]이동했으며[a] 사람들의 전체 삶에 온통 일을 시키고 [(삶을) 온통 노동으로 내몰고/만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자연인으로서의 인간도 포함] (살아있는) [자연적] 생명존재/산 존재들을 고정자본으로 변형[양육]시켜서 [양계장처럼 인간도] 생명 형태/삶-생활 형식들의 생산으로 부터 부가가치를 추출해내는 (일종의) "인간 발생/생성(론(적)) 모형"이다[b]. 이것은 이번 금융위기의 해석에 있어 하나의 핵심적 기여로서, 1929년 탄생기 Ford(주의적 자본)주의의 위기 후에 처음 채택됐던 케인즈주의적 해법들을 무너지기 쉽고 불안정한 오늘날의 금융(적) 생명자본주의에 [재]적용하는 것의 한계를 보여준다.

 

 

이러한 비자본주의를 향한 (전면)확장적 자본주의 주장은 원래 Rosa Luxemburg의 『자본 축적론』에서 그 사유방식의 원형적 패턴을 찾아 볼 수 있다.

『자본 축적론』자체는 Russia Bolsheviki, 특히 Lenin, Bukharin과의 논쟁을 통해 비판받았지만, 상기의 논점과 관련해서 만약 이 패턴이 '내부식민지론'에 의해 결합, 보강될 경우

이후 Deleuze와 Guattari가 『L'anti-Oedipe』에서 주장한 code화로서의 금융자본론, 그리고 Marazzi 등 인지자본주의-생명자본주의론 계열이 전개하는 전면확장적 (후기)자본주의론 주장과 거의 유사한 형태를 취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때에만 비로소 우리는 Karl Polanyi가 2009년에야 국역된 그의 주저 『거대한 전환』(1944)에서 다소 낭만적이고 윤리적으로 지적한 "상품화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상품화"의 문제가 단지 (시장) 자유주의 사상가들의 자기 조정 시장 경제에 대한 잘못된 이상과 믿음 때문이 아니라 사회 내부의 비자본주의적 요소와 영역들에 대한 자본주의의 잔인하고 폭력적인 식민화 과정이(었다)라는 극명한 현실 인식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바로 여기에 Luxemburg 경제학의 또 다른 최대 강점이자 여타 제국주의론들 특히 최근 각광받고 있는 David Harvey류의 신제국주의론들을 포함한 공간/지정학적 제국주의론들의 최대 약점/난점이 동시에 놓이게 된다. 즉 여타의 모든 제국주의론은 내부식민지 문제를 전혀 설명할 수 없고 그러한 사유의 방향 자체를 개방해 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매우 재미있게도 내부식민지론과 제국론은 이러한 기본 관점에서, 특히 공간 문제에 대한 사유( 방식)에 있어서 상당한 유사성이 있어 보인다.




더군다나 이러한 Luxemburg의 놀라운 통찰과 그 귀결은 뿐만 아니라 오늘날 거의 최첨단의 좌파적 각성들 중 하나에 속하는 탈식민주의론 경향들―postcolonialism 계열은 물론이고 decolonialaism 계열도 포함하여―의 공통 기반인 '근대성=식민성' These와도 완전히 정확하게 일치하는 근원적 모태 관념이자 원천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더더욱 재평가되어야 마땅하다.

 

 

 
 

 

 

 

S.3.2. Rosa Luxemburg 경제학에 대한 약간의 수정과 여성주의적 해석


물론 완고한 Luxemburg주의자들로서 이를테면 좌익공산주의 계열의 ICC 같은 group뿐만 아니라 여타 많은 주류 좌파들은 그들의 이론 체계에서 과소소비론을 (decadance기) 세계자본주의 위기의 근본 원인으로 상정하는 것을 조금도 포기하려 하지 않고 있지만,

어쨌든 (최소한) 내/외 식민지를 향한 제국주의적 팽창의 근본동력으로(만) 말하자면 (심지어 좌익공산주의 계열 내부에서조차) 대부분 동의하듯 그것은 (일상/항상적으로는) 주로 과소소비( 단독 원인 뿐이) 아닌 고질적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 때문.


그렇다고 과소소비론이 Lenin주의자들에 의해 왜곡되어 왔던 것처럼 완전한,  또는 심각한 오류는 전혀 아니며, 이는 주류 경제학에까지도 강력한 설득력을 파급, 유효 수요론으로 발전하여 Fordism 체계/체제 하에서는 임금 regime에 기반한 복지( 예산 및 정책들)로, Post-Fordism 하에서는 부채를 중심 수단으로 (임시) 관리/해소해 와야만 했던, 자본주의의 ((항시적) 위기와 이의 조절을 위한 자기 변형 및 내/외 식민(지 개척)주의적 팽창을 초래할 수 밖에 없는) 3대 근본문제임은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내/외 식민지의 비자본주의적 처녀성에 대한 선진국 자본들의 윤간 파티

쾌락의 원천으로서의 잉여가치

(더 많은 쾌락을 제공하는) 처녀성의 본질로서의 고이윤율과 저임금, 순종(성)

 

 

 

S.3.3. 중심부/선진국 내에서 기존 (산업)자본주의 부문의 비자본주의/탈산업(자본주의)적 환원으로서의 적극적 비고용노동/완전부불노동=여성노동=그림자노동-화 현상과 생명자본주의

 

 

S.3.4. (여성의) 인간 생산/생성 노동과 그 전면확장으로서의 인간(생성)산업, 그 (중(상)위) 대안적 가능성

 

  최근 여성주의 (운동) 진영은 상품생산에 대비하여, 전통적인 여성들의 (완전)부불노동을 기존에 잘 알려진 가사(생산/관리)노동외에도 쾌락생산노동, 인간생산노동 등으로 확장 규정하는 통찰력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본서는 중요한 2가지 시사를 주고 있는데, 첫째는 경제 위기에 대한 중(상)위 대안 중 하나로서 인간 (생산/생성) 산업에 대한 (대대적) 공적 투자와 그를 통한 고용 및 (유효) 수요 창출, 경기부양안이다. 여기에는 임신, 출산, 보육, 양육, 교육, 자기계발, 자기관리, 자아실현, 주체변형, 의료보건, 복지, 후생, 양생, 각종 건강산업, Leisure-Sports-운동-체육산업, 성형미용산업, Silver산업 등등 요람에서 무덤까지 인간과 인체에 관한 거의 모든 활동과 산업이 모두 포함될 수 있는 매우 광범위한 범주이다.

 

인간 발생/생성론(적) 모델;anthropogenetic model

 abiogenesis(무생물적 발생론=생물 자연발생론) vs biogenesis(생물적 발생론)

 ananthropogenesis(인간 자연발생/탄생론) vs anthropogenesis(인간 (인위)발생론=인간 형성/육성론)


a. 생물학 및 진화론 역사에서 있었던 abiogenesis(무생물(로 부터의/에 의한 (생물)) 발생론=생물 자연발생론) vs biogenesis(생물(로 부터의/에 의한 (생물)) 발생론) 논쟁에서 유래해 사회문화적 비유개념으로 차용된 듯 보이며, 원래는 인류학과 유사 학문분과로서 역사적으로 인류발생의 기원(만)을 연구하는 인류발생학(anthropogeny), 그 설명 이론들로서의 인류발생설/론(anthropogenesis)을 의미했으나,


b. Foucault의 "생명(관리)정치"에서 유래(하여 이딸리아 자율주의 진영 주변에서 발전하고 있는) 생명경제, 생명자본주의(bio-capitalism)론에서는 그보다 '인간'발생론의 의미로 상기 후자 개념, 즉 인간 인위발생론=인간 형성/육성론을 이르는 용어로 제기됨.

다시 말해, 인간은 처음부터 인간으로서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동물)적 생명존재로 태어나 사회문화적 체제에 의해 인간으로 훈육, 육성되어 비로소 인적 자본등 생산요소나 체제구성요소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함의. (이런 관점은 가끔 동물에 의해 양육되다 숲 속에서 발견되는 늑대소년('2012.10. 동명의 흥행영화도) 유형의 존재들이 실재해 왔기 때문에 전혀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 아니다.)

이상이 Marazzi와 bio-capitalism 계열의 어법.


(c. 그런데, 재미삼아 anthropogenetic을 더 확장하면, 세상 모든 사물은 이제 더이상 과거처럼 그 자체로서 발생,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질학적 '장기' 시간단위로서의 인류세(anthropocene)의 절정기(, 또는 후말기)인 현재는 인간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들이 인간에 의해 (학교, 교도소, (특히 성형외과)병원 등등) 거대한 사회공장, 세계공장 체계를 통해서 모두 (산산히) 분해, 조립, 창조, 재창조를 통해 (새롭게) 만들어지고, 이름과 의미를 부여받고, 재배치됨으로서 탄생/발생, 존재하고 있(는 기호)다라고 하는 맥락에서 '(만물의) 인간발생론'이라는 제3의 최대광의로 사용할 수도 있겠고, 이런 어법에 이르면 anthropogenetic과 anthropogenic은 별다른 차이가 없어지게 되겠다.)


  cf.anthropogenic model이라면 '(인간활동에 의한/의해 발생하는) 인위/인공 생성(론) 모형'이 됨.

     ananthropogenesis는 anthropogenesis의 어원배경 설명을 위해 동원된 (a)biogenesis와의 대비 목적 임시조어.


 

 

 

S.3.S.

 

 

 

 

S.4.

 

 

 

 

S.S.

 

 

 

X. 남겨진 문제들

 

X.1. (신)자유주의적 상품화의 첨병으로 자발적 총알받이가 되려는 MILSA 진영( 돌격대 급진 누나들)께

   : (내외 비자본주의적 타자/요소들에 대한) 식민화, 외주화 1단계로서의 시원 축적적 비고용노동/완전부불노동/여성노동-화에 맞서는 방법들

  

 

 

 

 

[작성 중]

시간 관계 상 현재 매우 엉성한 메모 형식에 불과함을 깊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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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자본주의의 폭력 - 부채위기를 넘어 공통으로 아우또노미아총서 41
크리스티안 마라찌 지음, 심성보 옮김 / 갈무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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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Marx는 옳았다. 그러나 낡은 공황론/파동론 하나에만 만족하고 있어선 현실의 급변을 결코 돌파할 수 없다. 전통적 Marx주의의 마지막 시험대가 될 이번 위기에 대해 (좀 얇아 거칠진 몰라도) Foucault, Lazzarato등 뿐 아니라 여러 빛나는 영감과 통찰, 성과들을 잘 집약해 놓은 혁신의 보물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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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 만들어진 대륙 - 식민적 상처와 탈식민적 전환 트랜스라틴 총서 3
월터 D. 미뇰로 지음, 김은중 옮김 / 그린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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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지성의 최전선.탈근대를 넘어선 탈식민주의의 대표작.신자유주의의 은밀한 공모자로 위기에 몰린 Post주의의 마지막 온상으로 지목된 PostColonialism을 본격비판하며 대두하는 DeColonialism사상의 훌륭한 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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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 - 9.11 이후 달라진 세계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자음과모음 하이브리드 총서 7
이현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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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LLYHERRINGTON님의 마이리뷰는 논리학적 오류, AD HOMINEM의 전형적인 예를 잘 보여준다.


지젝의 책은 궤변이고 세상에 퍼져선 안 될 헛소리이고 쓰레기라는 인신공격적 선언만 있을 뿐 왜 그런지 그 논거는 단 한 줄도 제시하지 못한다.


이런 리뷰 자체가 우리의 문화공간과 알라딘을 더럽히는 쓰레기의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다.




[P.S.]


BILLYHERRINGTON님의 글은 전적인 수사(학으)로만 구성된 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꽤 강력한 감성적 효과를 가지고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후에 이 반박이 올라온 후 바로 삭제된 것으로 확인되는 바..


좀 더 탄탄한 (재)반론을 기대하며 이 글은 삭제하지 않고 당분간 보존하는 것으로 결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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