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이전으로 한정해서.

추리 소설 역사상 가장 뛰어난 '캐릭터' 를 창조한 작가는 도일.

추리 소설 역사상 가장 뛰어난 '묘사력' 을 갖춘 작가는 체스터튼.

추리 소설 역사상 가장 뛰어난 '괴기성' 을 보여준 작가는 딕슨 카.

추리 소설 역사상 가장 뛰어난 '논리성' 을 갖춘 소설을 쓴 작가는 밴 다인.

추리 소설 역사상 위의 네 가지를 가장 잘 종합한 작가는 엘러리 퀸.

그러나 추리 소설 역사상 최고의 작가는 애거서 크리스티라고 생각한다.

위의 다섯 사람과 크리스티 사이에는 뭐랄까, '뛰어난 평범한 사람' 과 '천재' 사이에 가로놓인 보이지 않는 벽 같은 게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건 크리스티 이후에 등장한 모든 작가들에게도 해당된다. 에드거 앨런 포우가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의 시조가 되고, 코난 도일이 셜록 홈즈를 창조한 후 모든 추리작가들이 그 둘에게 빚을 지고 있는 것처럼, 크리스티 이후에 나온 모든 추리작가들 또한 크리스티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나는 작가로서는 체스터튼이랑 퀸이 좋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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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건 살인사건 - 파일로 반스 미스터리 3
S.S. 반 다인 지음, 이정임 옮김 / 해문출판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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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은 정녕 이런 도시일까. '범죄 역사상 가장 끔찍하고, 사악하고, 기괴하며, 시민들을 공포에 떨게 만든 범죄 - '  는 계속 이어져, 어느덧 파일로 반스의 일곱 번째 사건까지 왔다. 책을 펼치자마자 나오는 밴 다인 특유의 판에 박힌 듯한 서두는 이 소설에서도 여전하여 저절로 웃음을 머금게 만든다. 7번째로 쓴 장편소설 쯤 되면 시작을 바꿔 보고 싶은 마음이 들 법도 한데, 밴 다인은 여러 가지 의미로 투철한 의지와 신념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처음 작품부터 마지막 작품까지 쭈욱 일관성을 유지했다. 이쯤 되면 유머러스한 느낌마저 든다고 해야 하나. 하여튼 반스가 해결해야 했던 그 '끔찍, 사악, 기괴, 그로테스크, 공포스러운' 사건들 중에서도 이 드래건 살인사건은 '그로테스크함' 에 가장 충실한 작품이다.

드래건 살인사건은 '살인사건이 발생한 듯 한데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는, 크리스티 풍의 추리소설과 약간은 비슷한 느낌으로 시작한다. 그 지역에 내려오는 인디언의 전설과 맞물린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의 연속으로 사건은 점점 우울하고 공포스러운 색채를 띠게 되지만, 결론은 의외로 간단하다고 해야 하나. 이번 작품에서, 밴 다인은 전기 6 작품과는 달리 수수께끼 풀이보다는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살려 보고 싶어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밴 다인이 나름대로 노력한 흔적이 보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괴기스러운 느낌은 들지 않았으므로 유감스럽다. 오히려 사건을 미궁 속으로 빠뜨리기 위해 지나치게 장식을 덧붙인 모습이 엿보여, 밴 다인 특유의 간결함과 명쾌함이 많이 사라진 점이 아쉬웠다. 밴 다인 자신도 그 점을 느꼈는지, 드래건 살인사건의 뒤에 나오는 작품인 카지노 살인사건이나 가든 살인사건에서는 이런 시도를 하지 않고 비교적 초기 작품 스타일로 회귀했다. 나름대로 반스에게는 애증이 쌓였다고 자부(?)하는 나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추리작가가 훌륭한 작품을 써낼 수 있는 건 6편까지가 한계' 라는 자신의 명제를 몸소 증명이라도 하고 싶었던 것일까. 밴 다인의 작품 12편 중 8편을 읽었고 그중 6편을 갖고 있지만, 이번에 출판된 후기 3작품의 퀄리티가, 내가 읽었던 전기의 5작품에 확실히 미치지 못함은 아쉽기 그지없다. 그래도 전기 작품들에 비해 마음에 들었던 점은 도저히 인간 같지 않던 반스가 점점 인간화(?)되어 가는 모습이 보인다는 것! 추리소설 자체로는 아쉬움을 느끼면서도, 원래 상당히 싫어하는 편이었던 반스라는 인물에게는 정이 들고 말았으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참고로, 독자와 페어플레이를 하고자 하는 밴 다인의 노력은 여전하다. 드래건 살인사건은 내가 읽었던 8편의 파일로 반스 시리즈들 중에서도 독자에게 혼란을 유발시키는 장치가 가장 많은 편이지만, 어쨌든 밴 다인은 이번에도 독자들을 속이지는 않았으므로 '진실은 언제나 하나' 라는 진리를 염두에 두고 주의해서 읽어 나가다 보면 결말은 오히려 쉽게 보일 듯. 그러나 슬프게도 밴 다인의 이런 노력 때문에, 파일로 밴스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이채로운 소설이 될 뻔 했던 작품은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소설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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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크월드 1 - 마법의 색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테리 프래쳇 지음, 이수현 옮김 / 시공사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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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징조들' 이라는 멋진 책 한 권으로 테리 프래쳇이라는 작가에게 단단히 반해 버려서 그가 팥으로 메주를 쑤는 법에 대한 책을 썼다 해도 사랑스러운 눈으로 봐 줄 용의가 있었지만, 다행히 그럴 필요는 없었다. 디스크월드는 그 자체로 웃긴다. 성가신 생각 따위 떠오르지 않고, 그저 처음부터 끝까지 즐겁게 웃으면서 봐 주면 되는 판타스틱한 판타지다.

세계관 설정부터 기상천외하기 짝이 없다. 거대한 거북이 등에 떠 있는 세계라니! 마치 고대 인류나 상상할 법한 근사한 세계 아닌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작가의 패러디는 세계관의 설정에서부터 드러난다. 옛날 사람들은 지구가 사각형이라, 끝없이 항해하다 보면 바다의 끝에 있는 절벽으로 떨어져 죽는다고 여겼다. 지금 와서 보면 터무니없는 소리다. 그런데 디스크월드의 세계는 정말로 그렇다. 이 밖에도 고대인들의 세계관의 패러디는 작품 곳곳에서 드러난다.

또한 단 한가지 마법밖에 못 쓰는 무능한 마법사 린스월드와, 그를 따라다니는 순진무구한 관광객 '두송이 꽃', 그리고 내가 이 소설의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짐짝' 군! 독특한 등장 인물 설정도 고정 관념을 즐겁게 파괴한다. 이들이 벌이는 좌충우돌의 에피소드들은 롤러코스터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가고, 그와 함께 웃음도 쉴새없이 터져 나온다. 이런 난리 법석 속에서도 초연하게 관광객으로서의 올바른 자세를 견지하는 '두송이 꽃' 에게는 감탄마저 나온다. 사실, 이 책은 '두송이 꽃' 과 같은 자세로 읽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성가시게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그냥 즐기면 된다.

무거운 분위기의 판타지들이 많이 나온다. '삶이란 무엇인가' '존재의 성찰' '선악의 근원적 대립' 과 같은 묵직한 주제를 달고 나오는 소설들도 많다. 물론 그런 책들을 심각하게 읽고 심각하게 고민하며 그에 대한 감상을 더욱 심각하게 적는 것도 유익하다.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신나게 달리는 느낌의 판타지를 읽는 것도 좋다. 골치아픈 생각은 다 날리고 폭소를 통해 머리속을 시원하게 씻어 내는 것이다. 어떤가, '두송이 꽃' 과 함께 디스크 월드의 세상으로 떠나가 보는 것이?

경고 : 단, '영국풍 유머' 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쉴새없이 웃음이 터져나오지 않을 수도 있음.

안심하시길, 그래도 이 책은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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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로의 유혹
이언 피어스 지음, 송신화 옮김 / 서해문집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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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무래도 이언 피어스의 초기 작품인 것으로 추측된다. 따라서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핑거포스트 1663'과의 비교는 되도록이면 삼갈 생각이다. 15년 전, 아직 햇병아리(까지는 아니라도)에 가까운 시절에 썼던 작품과, 오랜 세월 동안 연륜이 쌓여 원숙해진 다음 쓴 작품을 비교하는 건 아무래도 불공평한 일이니까. 처음부터 멋지게 완성된 작품을 써내는 축복은 아무 작가나 받을 수 있는게 아니잖은가.

책을 보고 리뷰를 적을 때마다 언제나 염두에 두고 있는 사실이지만, 난 이런 소설을 읽을 때엔 항상 '그 책이 사회상을 얼마나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는가?' 에 중점을 두어 책을 읽는다. 이 점에서는 합격이다. 내가 생각하는 '라파엘로의 유혹' 의 가장 큰 가치는, 겉으로는 화려하게만 보이는 미술계의 이면을 뒤덮고 있는 어두운 뒷얘기들을 유머를 섞어 자세하게 풀어 냈다는 점이다. 역시 '미술사' 라는 작가의 전공은 속일 수 없는 걸까. 주인공 중 한 명인 아가일은 마치 이언 피어스 본인의 분신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책 속에서 언뜻언뜻 비치는, 이합집산이 정신없이 반복되는 이탈리아의 어지러운 정치 상황은 상당히 낯익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듯 싶다.

또한 이 책은 쉽고 빠르게 읽힌다. 미술사와 더불어 각종 미술 기법에 관한 전문 용어들이 등장하지만, 각주도 적절하게 달려 있고 피어스 본인이 어려운 단어들을 등장 인물들의 대화 속에 쉽게 풀어놓기 때문에 막히는 부분 없이 술술 읽히는 편이다. 그런데 이건 이 책의 단점이기도 하다. 너무 쉽게 읽혀진다. 그래서 작가가 여기 저기 단편적으로 깔아 놓은 복선들도 빠르게 넘어가는 책장과 함께 두리뭉실하게 넘어가고 만다. 이러면 나름대로 반전을 준비해 놓은 결말이 쌩뚱맞은 것이 되어 버린다. 결말을 보고 난 후 그 어이없음에 '이게 뭐야!' 라고 중얼거리며 책 앞부분을 다시 뒤적거려 본 다음에야 작가가 이런저런 곳에 단서를 남겨 두었음을 알았으니, 이건 나의 부주의함인지, 아니면 친절한 피어스씨의 과도한 배려였는지..

작가의 초기작인 것을 감안하면 꽤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이다. 잘 모르던 세계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조금 더 넓혀주었기 때문일까. 물론 전개가 지나치게 빨라 여기저기에 비약하는 느낌이 강했고, 플라비아와 아가일의 로맨스를 풀어나가는 점에서도 미숙했으며(이런 부분은 대선배 애거서 크리스티에게 한 수 배워야 할 듯), 전체적인 구성에서 느슨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너그럽게 넘어가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괜찮은 작품이다. 단, 아직 핑거포스트 1663을 읽지 않으신 분들은 이 소설부터 읽은 후 그것을 읽으시길. 그것부터 읽은 후 부푼 기대감을 안고 책장을 넘기면, 아무래도 실망감부터 엄습할 것 같다는 노파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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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전공은 '사회과학 전체와 교육학 일부, 약간의 인문과학' 이라고 할 수도 있고, 그 모든 것이 전공이 아니라고 햐도 전혀 틀린 말은 아닌, 몹시 애매모호한 '사회교육' 이다. 그러나 일단 '사회교육' Social education 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으므로 기본적으로는 사회학을 지적인 배경으로 깔아 놓고 들어가는 편. 사회교육과마다 커리큘럼이 다르긴 하지만, 우리 학교는 확실히 일반사회, 그것도 사회학과 정치학 중심이라 아무래도 그쪽 분야를 더 심층적으로 배우는 편이다.

그래서 '사회학개론'은 절대로 배워야 하는 필수 전공이다. 그런데 1학년 때 사회학개론을 가르치던 교수님이 정년퇴임을 몇 해 앞두신 나이 지긋하신 분이셔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난 사회학개론과 사회사상사를 비교적 옛날 책으로 배웠다. 대략 한문이 책의 1/3분량을 차지하고, '~것이다' 와 어색한 번역투가 난무하는 책들이다. 다행히 난 어릴 때부터 내 나이의 두 배는 더 먹은 낡은 책들을 많이 읽어 와서 그런 책들에는 익숙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을' 때가 많았다. 차라리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뒤르케임의 '자살론' 같은 저서들을 다이렉트로 읽는 쪽이 더 이해하기 쉬울 정도였으니. (그래도 루이스 코저의 '사회사상사'는 괜찮았다. 한문이 많다 뿐, 번역 자체가 나쁘게 된 건 아니었고 코저도 대학 교재로 쓸 요량으로 책을 집필한 만큼 정리를 잘 해놨으므로)

그러다가, 요즘은 기든스의 '현대 사회학' 을 읽고 있다. ('제 3의 길' 로 일약 스타 저자가 된 영국의 사회학자) 사회학 개론서들 이것저것 보다가 사회학자들의 이론을 짜집기해 붙여놓은 그 내용의 한결같음과, 그보다 더 한결같은 짜증나는 난해함에 '원저보다 난해한게 무슨 입문서냐!' 라고 외치며 집어던져 버리곤 했는데, 기든스는 확실히 세계적 석학답게(그리고 학자로서는 정말 되기 힘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사람답게) 뭔가 달라도 달랐다. 일단 쉽다. 그리고 재미있다. 굳이 어려운 단어 쓰지 않고도 개념들을 잘 풀어 설명하면서도 현대 사회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현상을 여러 가지 사회학적 관점에서 구조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러면서도 사회학 교재를 제공하겠다는 목적에 충실하게 단원의 말미에는 요약과 생각해 볼 거리를 제공하는 적절한 문제들까지 잘 덧붙여 놓았다. 어려운 걸 어렵게 설명하는 건 쉽다. 그러나 어려운 걸 쉽게 적절한 예까지 덧붙여가며 설명하는 건 그 내용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기존 사회학자들의 이론부터 현대의 포스트모던적 담론까지를 현대 사회의 실상에 맞게 알기 쉽게 풀어서 재미있게 설명하는 이 책을 보고, 입문서란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고 몇 번을 중얼거렸는지 모른다. 소위 말하는 사회학 개론서며 입문서들을 보라, 사회학을 공부하고 싶어지기는커녕 이런 골치아픈 학문 따위 때려 치우고 싶어진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는 책은 'OO개론' 이라는 말이 붙은 책이며, 그건 말 그대로 '개'론(犬論) 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물론 모든 책이 그런 건 아니다. 문제는, 아직까지도 난해한 '개'론 책들을 사회학 공부를 하고 싶어하는(또는 별 관심은 없지만 학점 따려고 들으려 하는) 학생들을 위한 교재로 사용하고 있는 현실에 있다. 활자보다는 인터넷에 익숙한 요즘 학생들은 점점 어려운 책, 글자만 가득한 책을 읽기 싫어한다. 이런 학생들에게 내가 배웠던 것 같은 개론서를 주면 10페이지도 못 읽고(우선, 그들은 대개 한자 읽기 능력이 너무나 부족하다) 때려치우고 말 것이다. 그리고 이런 걸로 사회학을 시작하라고 하면 '뷁' 또는' 섊' 이라는 알 수 없는 합성어를 질겅질겅 씹듯 내뱉을 것이다.

물론 점점 쉬운 것만을 찾는 현상이 결코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 '어려운 책이 좋다' 라는 고정관념은 바뀌어야 하지 않나? 어려운 책이 좋은 책이라는 편견 내지는 고정관념은 대체 어디에서 나온 걸까? 나에겐 그 발상은, 학자들이 일반 대중들과 차별되는 자기들만의 지적 우월성을 확보하기 위해 머리 맞대고 고안해 낸 일종의 묵계나 다름없이 느껴진다. 특히 입문서적이나 개론서적은 더욱 이해하기 쉬워야 한다. 그 책들의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거 괜찮은 학문인데?' 라고 느끼게 하는 것이지, 더 멀어지게 하는 게 아니잖은가.

친구와 후배들 중 자기 전공에 회의를 느끼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던 적이 있다. 도대체 자기가 뭘 배웠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친구들이 여럿 있었고, 특히 사회학 강의 들을 때 도대체 뭘 하고 있는지 몰랐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꼈다는 얘기들이 많았다. 사회학에 대한 혐오증상을 나타내는 사람까지도 있었다. 만약 한문이 1/3을 차지하는 난해한 개론서가 아니라 기든스의 '현대사회학' 을 교재로 삼아 배웠다면 이런 반응이 나왔을까? 사회학이 이렇게 재미 없는 학문이라고 생각했을까? 사회학이 너무너무 재미있고 좋은 학문이라고 여길 정도는 아니었겠지만, 적어도 자기가 뭘 배우고 있는지 모르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입문서, 개론서의 역할은 이렇게 중요하다. 사람들이 그 학문에 대해 가지는 인상을 좌우하고, 학문에 대한 흥미를 갖게 할 수도, 완전히 없애 버릴 수도 때문이다.

그래도 요즘은 입문서와 개론서의 본분을 이해하고 있는 듯한 학자들이 늘어나는 듯 하여 다행스럽게 여기고 있다. 정말 '어려운 책이 좋은 책' 이라는 희한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건지, 아니면 학창 시절에 애먹었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후배들을 어엿비 녀겨 28자를 창제하는 대신 쉬운 개론서를 쓰기로 마음먹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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