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코담뱃갑 동서 미스터리 북스 108
존 딕슨 카 지음, 전형기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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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딕슨 카의 작품에는 일반적으로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흐른다. '불가능범죄의 대가' 라는 호칭 답게 그의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범죄는 음울하면서도 기괴한, 축축하게 내리깔린 런던의 안개 같은 분위기가 난다. 이 작품 이외에도 번역되었던 <화형법정>, <세 개의 관>, <흑사장 살인사건> 등등의 소설에도 어김없이 그런 느낌의 범죄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황제의 코담배케이스> 에서의 딕슨 카는 음울하지도, 기괴하지도 않다. 소설의 배경이 영국이 아니라 프랑스라는 점이 거기에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다.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범죄 자체를 예술적이고도 불가사의하게 묘사하는 데에 일가견이 있었던 딕슨 카의 글솜씨가 이번에는 등장 인물들의 개성을 생생하게 살려내는 것으로 발휘되었다고 해야 할까. 그의 예전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사건을 저지르는 주체가 되는 인물들이라기보다는, 사건 자체가 갖고 있는 카리스마에 압도당해 휘둘리는(심지어 범인마저도!) 모습을 보였었는데 반해, 이 작품에서 나오는 인물들의 특성과 그들간의 관계는 이전에 비해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고 설명하면 될 듯 싶다. 즉 '이브' 라는 여주인공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일들 --- 사랑, 질투, 그리고 새로운 시작 --- 에 더욱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듯 하다.

물론 초기 작품들보다 더 인물 묘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해서 수수께끼풀이의 재미와, 딕슨 카 특유의 아슬아슬한 분위기가 사라진 것은 결코 아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체포된 여인과 그녀를 구하기 위한 박사와의 로맨스, 전남편의 질투, 새 연인과의 문제,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자리한 살인사건.. 팽팽하게 긴장된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관찰하는 재미는 '누가 그를 죽였는가?' 라는 문제를 풀어 나가는 과정 못지 않게 흥미롭다. 단, 약간 흠이 있다면 사건의 해결을 너무 우연적인 요소에 의지한 감이 없지 않다는 점이지만..

<황제의 코담배케이스>는 딕슨 카에 대한 고정관념을 타파하게 만들어 준 소설이었다. 작가의 새로운 시도는 독자를 들뜨게 한다. 그 시도가 잔뜩 걸고 있던 기대에 상당히 부응했다면 더욱 그렇다. 꽤 만족스럽게 읽었던 소설로 오래 기억에 남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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