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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경감 듀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80
피터 러브제이 지음, 강영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7월
평점 :
원래 리뷰를 보고 추리소설을 고르는 편은 아니다. 추리소설을 고를 때 가장 먼저 따지는 것은 작가의 이름이며 ---- 추리소설은 대개 작가가 확실하게 '이름 값' 을 해 주는 장르에 속하기 때문이다 ---- 그 다음에는 번역이 잘 되었는지, 어느 출판사에서 나왔는지를 따져 가면서 책을 고른다. 하지만 이 '가짜 경감 듀' 만큼은 17편이나 쌓여 있는 동서추리문고 최고의 리뷰 회수를 보고, 그리고 거의 모든 사람이 주저 없이 별 다섯 개의 점수를 매긴 것을 확인하고 골랐다. 그 선택에 결코 후회는 없을 것임을, 지금 막 책장을 덮은 순간 확신할 수 있다.
이 책은 마치 여러 편의 다른 그림들이 한데 모여 하나의 주제를 표현하는 일종의 그림첩을 연상시킨다. 맨 처음에는 찰리 채플린이 영국으로 금의환향하는 모습이 묘사되고, 그 다음에는 루시타니아호의 침몰 사건이 나온다. 뜬금없이 꽃집 여자와 소매치기 아가씨가 등장할 때는 '대체 이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이 뭔가?' 라는 생각에 골치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애써 머리를 쥐어짜 가며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연이어 나오는 다른 그림들이 혼미해진 머리 속을 조금씩 밝혀 주며, 사건의 진상에 한 발짝식 더 접근하게 만들어 주었으니까. 무슨 연관이 있는지 알 수 없었던 장면들은 사실 수많은 복선과 반전을 내포하며 치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모험을 하는 듯한 기분으로 책을 읽으면서 거의 마지막 장에 도달했을 때 펼쳐진, 모든 사람이 무릎을 쳤던 기가 막히면서도 통쾌한 반전 장면에는 역시나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그 전까지 미스테리로 남았던 모든 것들이 엉킨 실타래가 갑자기 확 풀리듯 술술 풀려나올 때의 그 느낌이란! 정말 간만에, '이것이 진정한 반전이다' 라고 극찬할 수 있을 만한 소설을 만났다.
유쾌한 살인과 유쾌한 범죄가 가능할까? 아니, 아래 어떤 독자분의 말씀처럼 '유쾌한 스릴러' 라는 장르가 과연 성립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런 질문 자체가 말도 안된다며 고개를 가로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피터 러브시는 이런 것을 해냈다. 작중 인물들은 모두 심각한 상황에 처해서 허둥지둥하지만, 책 전체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를 보는 것처럼 우스꽝스럽다. 희극적 몸짓 속에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으려 했던 것이 채플린의 영화라면, 비극적인 사건들의 연속 안에서 독자들의 입가에 미소 한 자락을 머금게 하는 것은 바로 이 소설이랄까. 책 서두와 말미에 채플린이 등장한 것은 단순히 복선을 깔기 위한 것 뿐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마치 채플린의 영화와 같은 소설을 쓰고 싶었던 것일까. 이건 어디까지나 단순히 개인적인 추측일 뿐이다.